제94회 산행일지 : 대한민국 대표 육산
(강원도 정선군 가리왕산)
일시 : 2010년 7월 3(토)
날씨 : 비, 흐림
지난 6월은 대한민국이 모처럼 행복했던 달이다. 6월 10일 시작되었던 남아공 월드컵 덕분이다.
B조에 속한 우리는 12일 첫 경기에서 그리스를 2:0을 완파하여 기세를 올렸으나 17일 메시와 이과인이 이끄는 아르헨에 4:1로 완패하였다.
그러나 23일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나이지리아를 어렵게 2:2 무승부로 이끌어 원정 첫 16강을 달성했다.
일본 역시 2승 1무로 조1위로 원정 16강에 진출함으로써 열도 역시 흥분에 빠졌으나 북한은 포르투칼에 7:0으로 패하는 등 3전 전패 하였고 디펜딩 참피언인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예선 탈락하였다.
26일의 16강전인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는 잘 싸웠으나 2:1로 아깝게 패하였고 우리를 이긴 우루과이는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피파컵은 처음으로 스페인 품에 안겼다.
100명산이 얼마 남지 않아 취사선택의 여지가 좁다.
해가 긴 철이어서 먼 거리의 남은 산들을 꼽아보아도 가리왕산과 방태산 정도가 후보지로 떠오른다.
교매 총무가 추천하는 대로 가리왕산으로 94회 산행을 정하고 8시20분 서대구 IC에 모였다.
사실 일주일 전 홍도 깃대봉을 계획하고 KJ에 예약하였으나 인원이 차지 않아 취소되고 우리끼리 계획도 추진하였지만 총무의 회사 노조일로 참석이 어려워 부득이 다음기회로 연기한 적이 있다.
거리나 경비상 가고 또 갈 수 있는 곳도 아니기에 이왕이면 전 멤버가 참석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리라.
그 바람에 6월을 건너뛰고 장마전선이 한반도를 지난다는 예보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을 잡았다.
단양휴게소에는 비가 내린다.
아메리카노를 마시고(매송은 캬라멜 마키야토) 출발하여 등고선 역사 얘기에 빠진 탓에 네비양이 지시하는 남제천을 통과하여 제천 IC를 나왔다.
영월, 평창, 정선 방향으로 진행하여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입구에 닿았다.
친절한 여직원 덕에 주차비를 아끼고 당일 입장료만 지불하고 입구 길가 비켜선 자리에 주차한다.
비가 많이 내린다.
비옷으로 갈아입고 마침 대기하던 휴양림 작업용 포터에 부탁하여 뽕나무가지들과 함께 짐칸에 타고 1.2km 정도를 쉽게 들어갔다.
오늘 산행의 높이와 거리가 만만치 않은데 참 다행스런 일이었다.
오늘은 휴양림(3.0km)-어은골임도(1.7km)-정상(2.2km)-중봉(2km)-중봉임도(1.5km)-휴양림에 이르는 10km 이상 거리이다,
우측 다리를 건너 숲속의 집을 정면으로 왼쪽으로 돌아서면 등산로가 시작된다.
물고기가 숨어 산다는 뜻의 어은골을 지나는 나무다리(긴 통나무 두어 개를 묶고 그 위에 송판을 덧댄)를 건너 계곡을 우측에 두고 오르기 시작한다. 골짜기엔 이끼들의 천국이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초록의 이끼들이 작고 큰 바위를 융단처럼 둘렀다.
3km를 오르면 어은골 임도를 만난다.
이제 비는 그쳤다.
다시 산으로 들었더니 이제부터는 경사도 급하지만 숲에 구름이 가득하여 시야도 흐려 답답하기도 하고 바람도 없어 힘든 구간이다.
마항치 삼거리를 지나면 경사도가 훨씬 낮아져 다소 편안하다.
그러나 1km가 아직 남았다는 이정표는 기운을 싹 빼앗아 간다.
다행이도 지나는 산객들에게 정상을 물었더니 거의 다왔다며 10여분 정도 남았다고 한다.
정상 500m 사인과 함께 나무들의 키가 낮아지고 시야가 멀어진다.
질경이 등 풀들이 바닥을 꼼꼼하게 메우고 있다.
곧 너른 평지의 정상인 상봉(1,561m)이다.
그냥 편한대로 누웠다.
곧 뒤따라온 교매도 벌렁 눕는다.
바람없는 습하고 더운 날씨에 힘이 들었나 보다.
물을 마시고 정신을 차려 제단같은 돌탑, 갈(褐)왕이 난중에 피하여 갈왕산-가리왕산이 되었다는 석판의 날씬한 정상석, 삼각점과 안내판, 주변을 가득 메운 풀들을 돌아본다.
아직도 구름이 진하게 둘러있어 사물들 외의 다른 경치는 허락하질 않는다.
가리왕산은 바위를 찾기 어려운 국내 최고의 육산이다.
계곡을 제외하고는 산행 내내 그럴듯한 바위를 본 적이 없다.
정상에서도 물론이고 중봉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잘 생긴 산도, 그리 매력적인 산도 아니다.
그러나 오늘은 보지도 못한 8경을 비롯, 극상림의 활엽수, 주목의 군락지, 산나물 자생지 등 생태적 가치가 크다고 한다.
중봉에 이르는 길은 하산코스이기는 하나 거의 평탄하다.
2.2km의 중봉에 이르면 이정표가 참 웃긴다.
정상까지 2시간으로 표시되어 있는데 정작 걸린 시간은 30분 남짓이다.
그리고 휴양림 방향의 하산로 표시도 코팅된 종이에 ‘조금만 가다가 우측..’이라는 애매한 표현이다.
키 높이의 돌탑 세 개가 있는 중봉도 전혀 봉이 아니라 그냥 활엽수 지대 가운데 이정표만이 중봉임을 알려준다.
숙암분교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길을 잡으면 이젠 제법 경사가 급한 내리막 길이다.
임도에 이르는 길까지는 더러더러 잘 생긴 소나무도 섞여 있다.
2km를 내려오면 갑작스레 임도를 만나는데 이곳이 중봉 임도이다.
여기서 어느 방향이든 임도를 따르면 종일토록 걸어도 하산을 할 수 없으므로 절대 임도를 택해서는 안된다.
임도를 바로 가로지르면 휴양림방향의 하산로가 있다.
그리 굵지는 않지만 자작나무 군락이 더러 보인다.
여기서부터 1.5km에 불과하지만 지루한 하산길이다.
6시, 산뿌리에 내려서니 개망초 군락이 흰 밭을 이루었다.
청죽과 교매는 10분이나 늦게 나타난다. 세수하고 마른 옷으로 갈아입으니 다들 딴 사람 같다.
오는 길은 정선-강원랜드-남제천 방향으로 잡고 깨끗하고, 평화로운 풍광 좋은 정선읍을 지난다.
4차선을 만나 곧 우측의 ‘곤드레 산나물밥집’ 간판을 보고 식당에 들었다.
몸집 좋은 아주머니가 “강원랜드 다녀오는 길이냐”며 구수하게 맞는다.
말씨가 경상도이여서 고향을 물었더니 영양이랜다.
중3때 “다슬기는 주워도 공부는 못하겠다”며 영양고추 10근을 들고 상경하였다가 엄마에게 잡혀온 이력이 있다고 한다.
‘곤드레 산나물밥집’과 민박 ‘곰골촌’을 운영하는 대표의 명함 아래쪽에는 ‘곤드레 산나물밥 단일메뉴 전국매출1위’라고 적고 있었다.
식당의 한쪽 방문에 붙은 ‘多不有時’라는 표시를 보고 한참만에 웃음을 터뜨렸다.
혹시 이글을 읽는 분들이 계시면 이것이 무슨 표시인지 맞혀 보시라.
비록 한 사람에 한쪽씩 나온 두부부침개를 더 달라며 실갱이를 벌였으나 추가 받진 못했지만 돌솥에 나오는 곤드레밥은 맛있었다.
후덕하고 재미있던 그 아주머니는 우리 모두에게 일일이 밥을 비벼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이름을 알려 달라”고 했더니 “정선 민둥산에 오거든 사북시내 달덩이를 찾으”란다.
가리왕산은 종일토록 구름에 가려 본 것이 없지만 2부 순서인 오늘 저녁은 아주 유쾌하고 맛있어 산행의 또 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登?苦?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