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舊) ‘평양팔경’ & 신(新) ‘서울팔경’
우리나라에선 옛 부터 경치 좋은 곳을 ‘팔경(八景)’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팔경’으로는 ‘관동팔경(關東八景)’이 있다. 관동팔경은 강원도 동해안에 있는 청간정(간성), 경포대(강릉), 삼일포(고성), 죽서루(삼척), 의사대(양양), 망양정(울진), 총석정(통천), 월송정(평해) 인데 월송정 대신에 흡곡 시중대(歙谷 侍中臺)를 넣어 치기도 하고, ‘영동팔경’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팔경’이란 말은 중국의 ‘소상팔경(瀟湘八景)이 먼저인 것 같다. 중국의 동정호(洞庭湖)와 소수(瀟水) 상수(湘水)에 있는 멋진 경치이다. 그래도 금수강산(錦繡江山)의 경치가 최고다. 곳곳이 무릉도원(武陵桃源)이요, 선경(仙境)이다. 무한정경(無限情景), 즉 끝없는 흥겨운 경치가 이어지는 우리 땅이다.
그 중 하나인 단양팔경(丹陽八景)은 예로부터 중국의 소상팔경보다도 더 아름답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충주호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구담봉 옥순봉 등인데, 단양 팔경은 정도전, 퇴계 이황, 단원 김홍도, 정선 등의 글과 그림으로 더 더욱 유명하다.
백두산천지, 금강산, 개마고원의 일부인 부전고원, 압록강, 모란봉, 석굴암 일출, 해운대 달맞이 고개, 한라산을 지칭하는 ‘대한팔경(大韓八景)’도 있다. 여기엔 북녘 땅이 다섯 곳이다.북한에선 평안남도·평안북도·자강도에 있는 여덟 곳의 명승지, 즉 평양의 연광정, 자강도 강계의 인풍루, 만포의 세검정, 평안북도 영변의 약산동대, 의주의 통군정, 선천의 동림폭포, 평안남도 안주의 백상루, 성천의 강선루를 일컫는 ‘관서팔경(關西八景)’이 절경이다.
그리고 평양팔경(平壤八景)은 예로부터 관서팔경과 더불어 유명하다. 평양팔경(平壤八景)의 뛰어난 경치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평양팔경가>를 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1995년 북한의 평양출판사가 펴낸 《민요 따라 삼천리》의 저자 최창호는 이 책에서 <평양팔경가>의 가사를 다음과 같이 적고, [주해]를 달았다.
얼-씨구씨구 두른다 / 저얼씨구 둘러요 / 이때 마침 어느때냐 / 양춘가절이 분명타 / 어화춘절 동무네 / 이내말씀 들어보소 / 꽃은 피여 만발하고 / 잎은 피여 왕성한데 / 양춘화답에 / 뭇새들은 / 쌍거쌍래 날아든다 / 곳곳마다 만화는 / 활짝피여 방창한데 / 람화봉접은 미친듯 / 붕붕거리며 날아든다
구경가세 구경가세 / 여러 동무 작반하여 / 명승지로 찾아갈제 / 칠성문안 찾아들어 / 동서사방을 둘러보니 / 모란봉은 주산이요 / 창광산이 안대로다 / 천천히 완보하여 / 최승대에 올라가서 / 멀리 앞을 바라보니 / 좌청룡에 우백호에 / 대평양이 생겼구나
대야동두 점점산은 / 만고불변 용감함이 / 군자의 절개로다 / 삼층루각 대동문은 / 반공중에 솟아있고 / 놀기좋은 련광정은 / 운무중천에 싸였구나
석양무렵에 가경이요 / 련당청우에 보슬비는 / 련잎우에 은근하다 / 보통문에 송객정은 / 리별잦다 설어말아 / 인간리별 만사중에 / 고금이래 리별처라 / 거문범주의 뱃놀이 / 청춘남녀가 신났다 / 마탄춘장에 봄물결 / 바라보면 용용수 / 룡산만취의 솔풍경 / 사시장철 푸르다
현무문을 구경하고 / 전금문을 얼핏 지나 / 일보일보 걸어가서 / 대동강에 당도하니 / 릉라도의 버들은 / 실실이 늘어지고 / 류상앵비 꾀꼴새는 / 제 이름을 제가 불러 / 꾀꼴꾀꼴 울음 운다 / 반월도의 물소리는 / 수심(愁心)을 자아내고 / 청류벽을 지나서 / 양각도를 바라보니 / 천하절경 여기로다 / 앞을 봐도 절경이요 / 옆을 봐도 절경이라 / 뒤에는 모란봉 / 제일강산이 좋을씨구 (123~126쪽)
[평양팔경 주해] 을밀상춘-모란봉 을밀대의 아름다운 봄경치. / 부벽완월-옛성벽우에 자리잡은 부벽루와 대동강물에 비낀 달밤의 풍경. / 영명심승-해질무렵 영명사일대의 풍경. / 련당청우-옛날에 대동문에서 종로로 통하는 길중심에는 련못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소륵소륵 내리는 비소리와 비를 맞는 련꽃의 아름다움을 련당청우라 하였다.(蓮堂廳雨) / 보통송객-보통강나루터에서 떠나는 나그네를 바래주는 광경. / 룡산만취-대성산의 사철 푸른 나무가 늦가을에도 푸르러있는 풍경.(龍山晩翠) / 거문범주-옛날에 평천의 앞을 가로막았던 외각의 성문유지(城門遊地)에서의 뱃놀이(車門泛舟) / 마탄춘장-이른봄 대동강의 여울, 마탄의 눈석임물이 넘쳐서 소용돌이치는 풍경.(馬灘春張)*(126쪽) *張- (張앞에 삼수변 포함)
북한에서 발행된 《명소에 깃든 전설(평양)》(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1995년)을 보면 “15세기의 시인 조위는 평양의 명승을 ≪서경을 여덟으로 읊노라≫라고 하면서 평양8경을 노래하였습니다. 그것이 을밀대의 봄맞이, 부벽루의 달구경, 영명사의 노을빛, 보통강나루의 나그네배웅, 대동강의 배놀이, 애련당의 비물소리, 마탄여울의 눈석이, 대성산의 푸른 숲입니다. 그전날의 평양8경의 모습은 변했어도 평양의 가는곳마다에는 새로운 ≪평양8경≫의 황홀경이 펼쳐져 관광객들을 매혹시키고 있습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북한이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명승의 도시”라고 자랑하는 평양에 어찌 아름다운 경치가 8개뿐이랴. 관서팔경(關西八景)에는 ‘평양의 연광정(練光亭)’도 포함된다. 이처럼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던 북한이 이상한(?) 팔경을 내놓고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백두산의 해돋이’는 당연한 것이지만, 군(軍)초소 설경, 감자밭, 벌판의 지평선, 산마루에 핀 진달래 등을 “선군조선의 면모를 상징하는 새 8경”(《조선》주체94(2005)년 제1호,22쪽)이란다.
북한의《조선》2004년 10월호는 “위대한 선군의 기치따라 광명한 미래에로 전진해가는 조선에서《선군8경》이 펼쳐졌다. 그것은 백두산의 해돋이, 다박솔초소의 설경, 철령의 진달래, 장자강의 불야성, 울림폭포의 메아리, 한드레벌의 지평선, 대홍단의 감자꽃바다, 범안리의 선경이다.”(12쪽)라고 처음으로 밝혔다.
지금 남한의 서울에선 ‘서울팔경’이 관심거리다. 서울시는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조망명소 91곳 중 8곳을 서울의 팔경으로 정하기로 한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해 선정된 48곳의 조망 명소와 올해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가까이에 있는 종로구 삼청동의 북악산 말바위 등 43곳을 추가 선정 헸다.
서울시는 이들 명소 중 시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서울 팔경‘을 선정할 계획이라고 한다. 남산 중턱의 나무조명대가 설치된 '포토아일랜드', 북악산 밀바위, 낙산공원, 서래섬, 하늘공원, 몽촌토성을 품은 올림픽공원 등이 모두 '서울팔경’ 후보지로 손꼽힌다.
백거이(白居易)는 ‘승지본래무정주(勝地本來無定主)’라고 했다. 승지(勝地), 즉 ‘경치가 좋은 땅’은 본래 주인이 없다는 말이다. 남과 북의 경치에 주인이 따로 있을까. 또한 청산(淸山)이든 녹수(綠水)든 남과 북이 다를 것이 없다.
새로 선정되는 ‘서울팔경’, ‘선군팔경’에 밀려 잊혀져 가는 ‘평양팔경’, 이 ‘팔경’을 남과 북의 우리 민족들이 자유롭게 구경할 수는 없을까? 북한도 ‘선경팔경’ 타령만 할 게 아니라 ‘진정한 북녘 땅의 팔경’인 ‘평양팔경’을 크게 자랑하는 것이 관광 수입 차원에서 나을 것이다. ‘팔경’이 남과 북의 문화 교류에서 한 몫 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