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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진 ( 羅陳 ) [ 나지포 ( 羅之浦 , 羅地浦 , 나지개 ]
화양면 ( 華陽面 ) 소재지 마을 , 바다의 깊이가 낮아서 물이 빠지면 배가 다닐 수 없는 개
( 浦口 ). ' 낮 ( 다 ) 은 + 개 > 나즌개 > 나진개 > 나지개 ' 로 변화된 이름을 소리 나는 대로
한자로 표기한 경우이다 .
면지의 지명유래에는 '여러방면으로 생업의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 포구여서 나진이라
하였다'고 하였는데 나진의 한자를 뜻 풀이하여 지어낸 이야기이다. 1897년 화양면이 처음
만들어지면서 면사무소를 비롯한 면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1789년에 만들어진 지도에는
나지포장이 표기되어 있어 지금의 큰나지개 부근에서 열렸다고 구전되어 오던 장터의 기록이
확인이 된다.
나진이 면의 행정 중심이 되었던 것은 화양의 가장 큰 마을이었던 화동마을이 감목관의 행패가
너무 심했고 동학란때도 감목관이 있었기에 화동마을의 피해가 컸었다고 여기는 마을의 민심
때문에 면사무소가 들어서려고할 때 결사반대를 하였다고 전해온다. 이와같은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관가가 있던 큰 마을이 신식 행정구역을 반대했던 이야기와도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행정의 역할이 어떠해야하는지를 생각하게되는 내용이기도하다.
▣ 소장리 ( 小壯里 )
나진에서 2Km 지점에 있는 마을 . 처음 이 마을에서 살았던 사람이 하씨 성을 가진 사람이어서
하가당이라고 하였고 그 후에 소장기미라 부르다가 행정구역 개편시 소장 ( 小壯 ) 이라고
하였다 . 마을의 유래로 작지만 주민의 기개가 씩씩하여 소장이라 이름지었다고 하는데 이도
한자를 뜻 풀이하여 지어낸 이야기다 . 소장리와 화동리 사이의 현 농공단지가 들어선 위치에
곡화목장 시절에는 장 ( 場 ) 이섰던 관계로 지금도 장터라는 땅이름이 전해져 오는데 소장리의
이름도 장터와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겠다. 소장은 작은장이라는 뜻과 가축인 소를 팔던 장으로
생각할 수 있다 .
▣ 큰나지개
나진 남쪽 약 1.2Km 지점에 있는 마을 . 나지개의 이름은 이 마을 앞 포구가 낮아서 유래된
땅이름이다 . 나진 마을에서 처음 사람이 산 곳 . 조선 시대 말에는 나지포장이 섰었는데 이
곳 큰나지개에 장이 섰었다.
▣ 웅동 ( 熊洞 ) [ 고무골 ]
나진마을 북동쪽 약 1.2Km 지점에 있는 마을 . 고무골이란 땅이름을 곰 ( 熊 )+ 골 뜻으로
해석하여 예전에 곰이 많이 살아서 이름 지어졌다는 설과 , 곰의 형상을 하여서 이름지었다는
설 등으로 해석하였다 이곳도 고무골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그 음이 비슷한 곰熊자로
표기하였기에 이에 근거한 해석을 한것이다. 고무골은 구멍이라는 뜻의 옛말(고어) 구무와
골이 합쳐 이루어진 말로서 지형이 구멍처럼 들어간 곳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 구무 + 골 >
구무골 > 고무골 . 구무 > 구멍 비슷한 곳으로 곰챙이라고 하는 여수시의 웅천마을도
해안에서 마을이 깊숙히 들어가서 지어진 마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