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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소개와 참고사항 그리고 서문 그리고 1장의 일부만 소개합니다 ~~>>>
제 목: <티벳 死者의 書>
티벳 사람들에게는 <中間界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해탈
에 이르게 하는 책>으로 알려져 있음.
영역본명 :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영역자 : Robert A.F. Thurman
출판사 : BANTAM BOOKS
출판년도 : 1994년 1월.
판권소유 : 1994 by Robert A.F. Thurman
한글판 번역자 : 정 창 영
참고사항: 이 책은 <시공사>와 <Bantam Books>가 한국어판 출판 계약을 맺고, 현
재 출판 준비 중에 있습니다. 따라서 상업용으로 복제 출판한다면 저작권에 관련된 문
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읽으신 다음 잘못된 부분이나 고쳤으면 좋을듯한 표현이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오. 그러면 원고를 다듬어 더 좋은 번역본을 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참고로, 이번 작업을 위해 나름대로 세운 번역 원칙을 소개하겠습
니다.
1. 문법적인 형식의 일치 보다는 내용의 동등성을 먼저 고려한다.
2. 번역의 기본 단위는 문장이 아니라 문단이다. 그러므로 때에 따라서
는 한 문단 안에서 문장 순서의 재배열도 가능하다. 하지만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이런 방법은 삼간다.
3. 수동태 문장은 될 수 있는한 능동태 문장으로 바꾼다.
4. 불교에 익숙치 않은 독자들을 위해, 불교의 전문 용어는 가급적 서술
적 표현으로 바꾸거나 함께 표기한다.
5. 원문의 관용어나 관용적 표현을 그대로 번역할 경우 본문이 지닌 뜻
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거나 오해를 불러 일으킬 가능성이 있을 때
는 우리말의 용법에 따라 적절히 표현을 바꾼다.
달라이 라마의 서문
서구 세계에 <티벳 死者의 書>로 알려진 <바르도 쉐돌>은 티벳 문화가 산출해 낸
아주 중요한 책 중에 하나다. 서구인들은 우리 티벳인을 대단히 영적인 사람들이라고
본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땅 위에서 실제적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우리의 체계적인 연구와 분석을 죽음을 신중하게 맞기 위
한 실제적인 준비라고 여긴다. 다소 빠르고 늦음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죽지 않는 사람
은 없다. 그래서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죽음의 과정을 고통 없이 지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등을 우리 티벳인들은 실제
적인 문제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티벳 사람들은 죽음에 관한 주제를 심도 있게 다
루고, 인간적으로 잘 죽는 방법을 개발하고 습득하는 것이야말로 현실적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티벳 사람들은 <中間界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해탈에 이르게 하는
책>을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티벳에서 이 책은 아주 일반적인 책이다. 이 책은
자신이나 가족 또는 친구의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에게 필요한 가르침이 실려 있는
안내서이다. 티벳에는 죽음과 그 현상을 조사하고 탐구한 문헌이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데, 이 책도 그 중에 하나다. 모든 불교 사회에서, 죽음이 실재한다는 사실이 덕스럽고
지성적으로 행동하도록 고무한 중요한 요인이 되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죽음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병적인 상태가 아니다. 오히려 죽음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두려
움을 벗어버릴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삶을 건강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나의 옛친구 로버트 터만 교수가 이 중요한 책을 새롭게 번역했다니 기쁘기 그지없
다. 그는 실력은 물론 헌신적인 마음까지 겸비한 학자다. 나는 그가 정확하고 풍부한
표현력으로, 서구 독자들을 위해 훌륭한 번역을 했다고 확신한다. 티벳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그래 왔던 것처럼, 서구의 독자들도 이 책을 근본적으로 유용하고 깨달음을
빛을 비쳐 주는 책으로 인식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달라이 라마 친필 서명
1993. 1. 29.
영어판 번역자의 머 리 말
여러해 전이었다. 스승 게쉬 가왕 왕걀은 <티벳 사자의 서>라고 제목이 붙은 인도
에서 출판된 책 한 권을 나에게 주었다. 그는 게쉬 가왕 왕걀 수도원에 주석하고 있었
는데, 무엇이든 한 번 들으면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분명하게 말하는 성격이었
다. 그는 "자, 앞으로 이 책이 필요할거야!"라면서 그 책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나
당시로는 다른 일 때문에 그 책을 연구하는 데 몰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스승
의 통찰력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필요할 것이라 여기고 그 책을 소중하
게 간직했다.
나는 카지 다와-삼둡과 에반스-벤츠가 공역한 <티벳 死者의 書>를 오랜 전부터 알
고 있었다. <티벳 死者의 書>라는 책 이름은 에반스-벤츠가 번역한 영역본 제목에서
비롯되었는데, 사실 이 제목은 잘못 붙여진 것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 책을 읽었고, 친
구나 친척이 죽으면 그 책을 이용하곤 했다. 그 책은 죽음 이후에 누구나 거쳐야만 되
는 과정, 즉 죽는 순간부터 다시 태어나는 순간까지의 과정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또 프란체스카 프레맨틀과 초걋 뚜룽빠가 함께 옮긴 책도 읽어보았다. 뚜
룽빠의 번역본에 대해서는 몇 해 전에 관련 학술지에 논평을 기고한 일도 있다. 그의
번역은 심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용어와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문제는 있지만, 그럼
에도 불구하고 에반스-벤츠의 번역보다는 낫다.
<티벳 死者의 書>는 8, 9세기 경에 위대한 스승 파드마 삼바바가 인도와 티벳의 불
교도들을 위해 쓴 책이다. 파드마 삼바바는 후세대를 위해 그 책을 감추어 놓았는데,
14세기에 이르러 유명한 비장 문헌 발굴자인 까르마 링빠에 의해 발견되었다. 내용은
죽은 사람이 죽음과 재탄생 사이의 中間界(티벳어로 bar-do)에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
한 상황에 대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죽은 사람은 대개 자신의 기대에 상응하는 경험
을 하게 되는데, 기대하는 내용에 따라 신성한 우주를 묘사하고 있는 만다라에 나타나
있는 수많은 붓다와 보살과 신들 중에서 자애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을 만나기도 하
고 무시무시한 모습의 붓다와 보살을 만나기도 한다.
최근에 나는 쯔옹 까빠(1357-1419)가 화려하게 전개시킨 구야사마자Guhyasamaja
요가 탄트라 수행을 했다. 이 요가 탄트라는 내적인 체험을 추구하는, 비밀스럽게 전수
되어 온 수행법으로써 그 체계와 설명이 현대의 과학기술 못지않게 정교하게 짜여 있
다. 이 수행 체계는 마음과 자아, 삶과 죽음, 그리고 中間界의 본성을 파악하기 위해 특
별한 요가 기법을 사용하는데 특히 죽음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죽음의 육체적인 측면,
심리적인 측면, 정상적인 죽음의 경험, 요가 수행 중에 체험하게 되는 죽음의 상태 등
에 대한 매우 자세한 가르침이 이 요가 탄트라에 포함되어 있다. 나는 이 가르침이 매
우 명쾌하고, 죽음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생명과 삶과 건강에 대해서도 대단히 유용한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 수행법을 배운 이후, 나 자신의 죽음이
나 가까운 친구의 죽음을 생각할 때마다 늘 이 요가 탄트라의 가르침에 따라 그 과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탄트라 요가를 배운 후에 <티벳 死者의 書>를 다시 보았을 때, 나에게는 딱 어울리
는 책이 아니며, 현대적인 죽음의 체험과도 잘 조화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무엇보
다도 <티벳 死者의 書>는 요가 수행자가 아니라 평범한 일반 대중을 안내할 목적으로
기록된 책이었다. 나는 스티븐 레빈Stephen Levine을 비롯하여 현대 미국인들에게 죽음
과 관련된 요가를 소개한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보았다. 그들은 <티벳 死者의 書>에 나
오는 상징들이 현대인에게는 낯설 뿐만 아니라 혼란스럽기조차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
다. 지금 톨레도나 도피카에 사는 사람 중에서 <티벳 死者의 書>에 나오는 헤루까(영
웅적인 남성의 원형을 상징하는 신)나 다끼니(활력이 넘치는 여신, 또는 천사)를 만났
을 때 그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애로운 모습의 붓다나
무시무시한 모습의 진노의 신을 만날 때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오히려 그들에게는 유대교이든 기독교이든, 그들이 속해 있는 전통적인 종교의 가르침
에 따라 죽음의 길을 안내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는 <티벳 死者의 書>
보다는 요가 탄트라의 문헌에 나오는 죽음에 대한 묘사가 훨씬 더 체계적이고 명확하
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 대중을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처음 밴텀 북스BANTAM BOOKS에서 <티벳 死者의 書>를 현대적
인 해설을 붙여 다시 번역하자고 제의했을 때, 내가 과연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밴텀 북스의 제안을 거절하는 쪽으로 마음이 거의 굳어졌을 때,
스승의 말이 기억에 떠올랐다. 나는 집에 와서 에반스-벤츠와 뚜룽빠의 번역을 다시 읽
어보았다. 그리고 스승이 준 티벳어 판도 대충 훑어보았다. 그 결과 죽음을 체험하는
사람에게는 에반스-벤츠나 뚜룽빠의 번역서가 제공하는 것 보다 더 쉽고 명확하고 안
내서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먼저 <티벳 死者의 書>라는 제목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
다. 이 이름은 副題로 삼았으면 좋겠다. 티벳어 판에는 "死者의 書"라고 번역할 수 있는
표현이 없다. 티벳어 판의 原題인 Bardo thos grol에서 bardo는 단순히 "중간계(中間界)"
라는 뜻이다. 中間界란 일반적으로 죽음과 재탄생 사이의 기간과 과정을 가리킨다. 티
벳 사람들은 中間界를 다음과 같이 여섯 가지로 분류한다. 탄생과 죽음 사이의 中間界
(이승 중간계), 잠과 깨어 있음 사이의 中間界(꿈 중간계), 깨어 있음과 초월 사이의 中
間界(명상 중간계), 그리고 죽음 직후의 中間界(죽음 중간계), 죽음과 재탄생 사이의 中
間界(저승 중간계), 태어나기 직전과 태어나는 순간 사이의 中間界(탄생 중간계).
티벳어로 토스 빠Thos pa는 듣고 배움으로 개발되는 지혜나 관조를 통해 개발되는
지혜, 혹은 명상을 통해 개발되는 지혜 중에 하나를 가리킨다. 이 책의 제목에 포함되
어 있는 thos grol이라는 말은 이 책이 오랜 시간의 관조나 명상이 아니라 "듣고 이해함
으로써", 그리하여 中間界에 관한 이해가 깊고 명확해짐으로써 자연스럽게 해탈에 이
르게 하는 가르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티벳 사람들은 흔히 이 책을 <中間
界에서 듣고 이해함으로써 그 자리에서 해탈에 이르게 하는 위대한 책>(Bardo thos grol
chen mo)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책은 <자애로운 모습과 무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
들에 대한 명상을 통해 그 자리에서 해탈에 이르게 하는 근본 가르침>이라는 방대한
문헌의 일부이다. (앞으로는 <티벳 死者의 書>를 포함하고 있는 <자애로운 모습과 무
서운 모습의 붓다와 보살들에 대한 명상을 통해 그 자리에서 해탈에 이르게 하는 근본
가르침>이라는 문헌 제목을 <명상을 통한 해탈>이라고 줄여서 표기하겠다.)
나는 티벳어 판의 제목에 깊이 고무되었다. 그래서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
고 있는 사람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고, 자신의 육체 주위를 떠돌며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을 죽은 사람의 영혼이 알아듣기 쉽도록 쉬운 말
로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다. 동시에 방대한 요가 탄트라의 문헌에서 수집한 죽음의 과
정에 대한 개념과 설명을 해설로 붙이기로 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이 이 책이다. 이 작업을 하는 중에 신뢰할 만한 몇몇 티벳어 판
본문을 발견했다. 그것들은 스승이 나에게 주었던, 인도에서 출판된 책 보다 더 믿을
만했다. 그것을 통해 애매했던 부분이 많이 밝혀지기도 했다. 또 앞서 언급한 <명상을
통한 해탈>이라는 방대한 문헌에서 <티벳 死者의 書>의 가르침을 보다 더 명확하게
확인해 주는 몇 개의 章을 번역해서 부록으로 실었다. 아직 번역된 적이 없는 부분들이
다. 이번 작업이 나에게는 매혹적이었으며 귀중한 체험이 되었다. 스승께 다시 한 번
고마움의 인사를 드리며, 독자 여러분에게도 이 책이 유용하게 되길 바란다.
1992년 8월, 뉴욕의 '간덴 데끼 링'에서
로버트 A. F. 터만
附記 : 일반적인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각주를 다는 것을 피했다. 필요한
정보는 그 페이지에서 다 읽을 수 있도록, 해설을 본문 단락 사이에 끼워 넣었다. 낯선
용어와 개념들은 책 뒤에 별도로 어휘 사전을 만들어 붙였다. 거기에서는 특별한 개념
이나 중요한 이름, 장소, 물건 등에 관한 간단한 해설을 실었다.
□ 제 1 장 □
배 경
1. 티벳의 역사
티벳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뵈Bo라고 부르든지 아니면 카와잔 뵈Khawajen Bo라고
한다. "눈 덮인 땅"이라는 뜻이다. 그들의 역사 기록은 2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의 마케도니아 제국,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 중국의 周 왕조 말기와 비슷한 시기
이다. 티벳 역사 초기 8세기 동안은 군사력을 기반으로 한 왕조가 통치했다. 종교적으
로는 무당들이 주도하는 占, 마술, 희생 제사가 널리 행해지는 精靈信仰(애니미즘)의 시
대였다. 정치적 세력은 王家에 집중되어 있었고, 백성들은 王族을 하늘에서 내려온 사
람들이라고 믿었다. 첫 번째 7명의 왕은 허공에 걸린 마법의 사다리를 타고 그 땅을 다
스리기 위해 내려 왔으며, 죽을 때가 되면 다시 그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
러나 궁정 내부에 모종의 갈등이 생기자, 8번째 왕이 사다리가 매달린 밧줄을 끊어 버
렸다. 그때부터 티벳 왕들은 이집트의 파라오처럼, 아내와 부장물과 함께 거대한 무덤
속에 묻혔다.
초기 왕조는 동쪽에서 오늘날의 쩨땅 근처인 짱추 방면으로 흐르는 강줄기를 따라,
얄룽 계곡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주변 종족들을 정복하고 영토를 넓혀
나갔다. 그리하여 군사력을 기반으로 봉건제도가 확립되었다. 티벳 왕조에 병합된 각
종족들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었고, 언어와 종교적인 경향도 비슷했기 때문에 쉽게
융합되었다. 그들이 살고 있던 지역은 넓이 약 100만 평방 마일, 평균 높이 약 4000미터
에 달하는 티벳 고원이었다. 그렇게 높은 지역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신체적으로도
타고나야 한다. 그곳 토박이의 후손으로 태어나기 전에는 적응하기가 힘들다. 티벳 말
은 그 주변 국가인 고원 아래의 몽골, 인도, 중국, 터키 어 등과 상당히 다른 티벳-버마
語族에 속한다. 고대의 티벳 사람들은 자연계의 사물이나 현상, 특히 산과 하늘을 신성
하게 여겼다. 그래서 땅 아래, 땅 위, 그리고 하늘에 있는 수많은 신들을 달래기 위해
제사를 드리고 점을 치는 종교 행위가 성행했다.
고원 산악 지대의 문화는 평지의 문화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영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고원 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수명이 짧다. 그리고 장관을 이루고 있는 주변 산
들은 자연스럽게 명상적인 분위기로 이끈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영적인 분위기를 실
제 생활에 연결시켰다. 대부분의 샤머니즘이 그러하듯이, 고대 티벳의 샤머니즘도 현실
적인 성공, 전쟁에서의 승리, 건강, 부, 자손의 번창 등을 구했다. 특히 군사력을 바탕으
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던 시기에는, 용한 무당이 왕권 수호를 비는 굿판을 벌이는 일이
많았던 것 같다. 왕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었다. 그에게는 절대 권력이 주어졌다. 무당
은 하늘에서 왕의 후손이 내려오기를 기원하는 굿이나, 왕이 내려온 것을 축하하고 왕
국의 안녕을 위해 하늘과 땅과 땅 아래에 있는 신들의 도움을 청하는 굿을 주도했다.
옛 왕이 물러간 다음 새 왕을 등극시키는 것도 무당의 일이었다. 왕권이 바뀌는 공백
기간에는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알기 위해 죽은 자들의 세계로 가서 자문을 받아 오기도
했다. 무당은 죽은 자들 세계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 혼돈의 힘이 산 자들의 세계를
혼란스럽게 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도 했다.
티벳 왕조 문화는 여러 세기 동안 번성했다. 낮은 지역에 거주하는 종족들은 높은
고원 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티벳을, 지리적인 여건 때문에 침공할 수가 없었다. 그래
서 고대 티벳 문화는 외부의 간섭 없이 발전할 수 있었다. 티벳 종족들 간의 영토 분쟁
은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A.D. 6세기에는 고원 지대 전체가 하나의 제
국으로 통일되었다. 통일로 인해 강력해진 티벳 제국은 고원 아래 지역을 사방으로 점
령해 나갔다. 그리하여 중국, 몽골, 터키, 인도 등에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군사적인 대제국 건설은 7세기 초, 송쩨 감뽀 황제 시대에 마무리되었다. 무력을 기
반으로 한 통일 제국은 그 결속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또한 티벳 사람들은 고원 아래
평지를 정복하여 영토를 확장하는 일에도 흥미를 잃었다. 그래서 송쩨 감뽀는 윤리와
도덕에 토대를 둔, 보다 평화적이고 영적인 방향으로 티벳 문화의 흐름을 바꾸기 시작
했다. 그는 인도의 팔라 왕조와 후-굽타 왕조, 실크로드 주변에 산재한 중앙 아시아의
여러 도시국가, 그리고 중국 唐나라의 정신적인 등뼈가 된 대승불교를 받아 들여 티벳
문화를 체계적으로 개혁해 나가기 시작했다.
송쩨 감뽀는 학자들을 인도로 보내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게 했다. 그런 다음 산스크
리트어를 기반으로 티벳 문자를 만들어, 여러 가지 불교 문헌을 티벳어로 번역하기 시
작했다. 그는 주변 아홉 나라의 공주를 아내로 맞아 들였다. 그 중에는 네팔과 唐나라
의 공주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들을 통해 수많은 불경과 불교 예술품을 티벳으로 끌
어 들였다. 또한 새로운 도읍지 랏사에 조캉과 라모체라는 왕궁 사원을 건립하여, 온
나라의 종교적 중심지로 삼았다.
이후 약 250년 동안, 티벳의 왕들을 송쩨 감뽀의 뒤를 이어 문화적인 개혁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경전 번역, 연구 기관 설립, 사원 건축, 교육 사업 전개 등이 이 시기에
활발하게 이루어 졌다. 이 문화적인 개혁은 치송 데쩨 시대인 790년대에 절정에 달했
다. 치송 데쩨 황제는 인도에서 온 성자 파드마 삼바바와 철학자 샨타라크쉬타의 도움
을 받아 삼예에 티벳 불교 최초의 僧院을 세웠다. 샨타라크쉬타가 그 승원의 승원장이
되었다. 이때 인도의 불교 대학 제도와 커리큘럼이 함께 소개되었다. 치송 데쩨은 또한
아시아 전역에서 다방면의 학술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이 학술 도입 사업은 이후 60년
동안 계속되었다. 불교에 대한 연구는 물론이고 수학, 약물학, 시, 예술, 정치학, 조각 등
다방면의 학문이 이때 발전했다. 페르시아, 인도, 위굴, 몽골, 중국의 唐나라, 그리고 실
크로드 주변의 여러 도시국가에서 학자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가르침을 비교하고 조화
시키는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다.
티벳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인간과 자연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갖기에 이르
렀다. 한 가지 예로, 830년 대에는 세계 각처에서 수백 명을 학자를 초청한 다음 그들에
게 10년 동안 인도, 중국, 페르시아, 몽골, 위굴의 의학 체계를 비교하고 연구하도록 했
다. 그 결과로 건강에 관련된 불교의 영적인 가르침에 더하여 심리학, 해부학, 신경생리
학, 외과 의학, 식물학, 화학, 영양학 등이 종합된 티벳 특유의 의학 체계가 성립되었다.
삼예가 종교적인 중심지가 된 이후, 치송 데쩨의 후계자들은 삶 전체를 불교화 할
것을 강요했다. 강요의 도가 지나쳤던 까닭에 王家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등 혼란
이 거듭되었다. 암살과 반란이 계속되면서 통일 왕조는 몰락의 길을 걸었고, 급기야는
여러 조각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불교 탄압도 있었다. 하지만 1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불교의 가르침과 제도는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했으며, 지방 귀족들의 보호 아래 백성
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후 3세기 동안, 백성들은 점점 더 깊이
불교에 빠져들었다. 불교적인 교육 제도가 재확립되고, 전국 방방곡곡에 승원이 세워졌
다. 방대한 불경 번역 작업도 이 시기에 완료되었고, 티벳 고유의 불교 문헌들도 엄청
난 양이 쏟아져 나왔다. 이후로는 티벳 제국 전체를 통치하는 통일 왕조가 다시는 나타
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군사적 패권주의가 나타날 가능성 자체가 아예 없어졌다. 백
성들의 마음 속에 불교의 비폭력에 대한 가르침이 깊이 뿌리 내렸기 때문이다. 지방의
귀족들이 자기 지역을 다스렸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급속히 확장하던 승원 세력에 사
회적.정치적 관할권을 점점 더 많이 넘겨주게 되었다.
13세기와 14세기에 몽골 제국이 유라시아 일대를 통일했다. 그때 티벳도 대몽골 제
국의 관할권 안에 들어갔다. 하지만 티벳 사람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티벳은
이미 13개 행정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고, 각 지역은 지방 귀족과 승원이 협력하여 다스
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몽골의 쿠빌라이 칸은 티벳 불교의 사키야 파와 콘 가문에게 티
벳의 통치권을 주었다. 그러나 사키야 파는 정치적인 세력보다는 영적인 지도력을 발
휘하는 데 더 많은 힘을 쏟았다. 14세기가 끝나 갈 즈음, 몽골 제국의 세력이 약화되자
토착 팍모드루 왕조가 일어나 티벳 통치를 자임했다. 쯔옹 까빠가 주도한 종교 대각성
운동이 일어난 것은 그 즈음이다.
쯔옹 까빠는 1409년 수도 랏사에서 범민족적인 불교 축제를 열어, 민족 전체가 불
교 수행에 헌신하는 새 시대의 막을 열었다. 쯔옹 까빠는 그 축제에서 붓다의 영원한
현존에 대한 민족적인 깨달음을 상징하는 행위로, 화려하게 장식된 조보 린포체(아띠
샤)의 불상을 조캉 사원에 봉안했다. 음력 정월 초하루가 되면 온 백성이 모여 2주 동
안 종교적인 축제를 벌이는 전통은 그 때부터 생긴 것이다. 축제 기간 동안에는 일상적
인 모든 일이 중지되고, 승원장들이 시민의 모든 일을 책임진다. 이 축제는 1960년 티
벳 정부가 인도로 망명할 때까지 티벳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연중 행사로 치러졌다.
쯔옹 까빠가 불어 일으킨 개혁의 바람은 15세기와 16세기에 이르러 꽃이 피었다.
티벳 사람들의 영적, 사회적, 현실적인 삶 전체가 변화되었다. 각 지역에서 승원의 영향
력이 커졌고, 인생 전체를 포기하고 깨달음의 길에 들어서는 남녀 구도자들이 날이 갈
수록 늘어났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점점 더 평화로운 쪽으로 흘러갔다. 그래서 군인이
점점 줄어들어 지방 귀족을 호위하는 몇 사람 정도만 남게 되었다. 쯔옹 까빠가 창시한
겔룩파는 젊은 제자 겐둔 드룹빠(제 1대 달라이 라마)가 이끌어 나갔다.
겐둔 드룹빠는 오랜 세월 동안 영감이 넘치는 가르침을 베풀고 글도 많이 남겼다.
여기저기 사원도 많이 건립했다. 그가 죽은 다음, 태어나서 말을 할 수 있게 되자마자
자기가 겐둔 드룹빠라고 자칭하는 어린 아이가 나타났다. 그 아이는 겐둔 드룹빠가 살
던 동네와는 다른 지역에서 태어났는데, 여러 가지 시험을 거치고 상서로운 징조들을
종합한 결과 위대한 스승 겐둔 드룹빠의 還生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충분한 교육을 받
은 다음, 겐둔 갓초(제 2대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으로 겔룩파를 이끄는 영적인 스승이
되었다. 그의 다음 번 還生도 비슷한 시험과 징조를 통해 승인 받아, 소남 갓초(제 3대
달라이 라마)라는 이름을 갖고 16세기 어간에 겔룩파를 이끌었다.
1573년 소남 갓초가 몽골을 방문했을 때, 몽골 황제 알탄 칸은 그에게 '달라이 라마
'(바다와 같은 스승)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헌사 했다.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는 이렇게
소남 갓초가 처음 들은 것이지만, 티벳 사람들은 그를 그의 앞선 두 前生의 뒤를 이은
제 3대 달라이 라마로 여긴다.
소남 갓초와 그의 뒤를 이은 제 4대 달라이 라마 욘뗀 갓초 시대에, 세속의 통치자
들은 지속적으로 확산되던 종교 부흥 운동을 못마땅히 여겼다. 너나 할 것 없이 승려가
되려고 나섰고,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이 사원을 건립하고 유지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 데 대한 불만이었다. 그리하여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나라 전체가 흔들
리는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티벳은 동시대의 북유럽이나 중국 또는 일본처럼 군
부 독재자가 나타나 종교 중심의 삶을 산산 조각내 버리느냐, 아니면 세속의 지도자들
이 무기를 내려놓고 영적인 진화의 길을 받아들일 것이냐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조캉 대승원이 건립된 지 거의 천 년이 지난 1642년, 제 5대 달라이 라마 롭상 갓초
(1617-1682)는 간덴 宮을 건립하고 티벳의 왕으로 즉위했다. 티벳 사람들은 그 이후 오
늘날까지, 僧王 달라이 라마가 통치하는 간덴 정부를 합법적인 정부로 여긴다. 티벳 사
람들이 '위대한 5대'라고 부르는 이 첫 번째 僧王은, 티벳의 사회적 특성에 적합한 독특
한 정치 제도를 만들었다. 그는 승원과 비폭력이 백성들의 삶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체
제를 구축했으며, 사실상 귀족 집단을 없애 버렸다. 그들이 세습적으로 물려 오던 토지
를 몰수하고, 간덴 정부 아래서 일한 만큼 받는 보수로 살아가게 했다. 귀족들은 더 이
상 私兵을 거느릴 수가 없었다. 봉건 영주로써 소작 농민들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흔들
던 그 당당하던 세력도 완전히 날개가 꺾였다. 당시 티벳의 소작 농민들은 중세 유럽이
나 러시아의 농노들처럼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티벳은 만주(淸나라)가 아시아 지역의 새로운 覇者로 등장했을 때, 그들과 우호 관
계를 맺어 국가적인 독립과 동질성 유지를 보장받았다. 1644년, 한반도 북쪽 산악 지대
에서 발원한 퉁구스 족(淸나라)이 明나라가 멸망한 틈을 타 중국 내지로 진출한 다음,
주변 다른 나라까지 넘보기 시작했다. 그때 淸나라의 가장 강력한 적수로 떠오른 존재
는 몽골이었는데, 달라이 라마는 몽골이 불교를 받아들인 이후 몽골에서 권위 있는 존
재였다. 이런 사정 때문에 淸나라 황제의 눈에는 티벳이 도움이 될 만한 동맹 상대국으
로 보였다. 그래서 1651년 淸나라 황제 順治帝(世祖)는 '위대한 5대' 달라이 라마와 동
맹을 맺고 티벳의 독립성을 보장해 주었다.
淸나라는 달라이 라마의 티벳 통치권을 인정해 주었을 뿐 아니라, 자기들이 알고
있던 온 세상의 영적이 지도자로 떠받들었다. 달라이 라마는 淸나라 황제를 만주와 중
국의 정당한 통치자로 인정해 주었다. 또 불교의 진리와 수행자와 사원을 보호해 주는
국제적인 수호자로 여겼다. 달라이 라마는 몽골의 불교를 육성시켜 불교 사회로 만들
고, 淸나라 황제는 무장을 해제한 불교 사회를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는 약속이 티벳과
淸이 맺은 동맹의 밑바닥에 깔려 있었다. 티벳이 거칠기로 소문난 무력 국가인 몽골을
평화스러운 나라로 만든 것은 주목할 만한 사회 변혁의 한 예이다. 세계 역사에서 유례
를 찾아보기 힘든 사건이다. 그러나 천 년 동안 티벳 스스로가 경험한 변화에 비하면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다.
2. 티벳 : 영적인 문명
승원은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최근 3세기 동안, 티벳 사람들의 삶의 중심 역할을 했
다. 교육, 문학, 철학, 명상 수행, 제의와 축제, 예술의 발달 등이 모두 사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영적인 스승들은 최고의 존경을 받았으며, 자아를 계발하는 영적인 과학인
요가 탄트라 수행을 통해 완전한 붓다가 될 사람들로 인정을 받았다. 그들은 서양의 우
주 비행사들과 같은 용기로 내면 세계를 탐색하는 모험가들이었다. 사실 '정신세계 비
행사'(psychonaut)라는 말을 만들어 그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는 게 좋을 듯도 싶
다. 그들은 그들이 속해 있던 사회가 그렇게도 발견하기를 열망하던 내면 세계의 깊은
미개척지를 향해, 삶과 죽음의 바다를 건너 개인적으로 배를 저어 나갔다.
물질 세계의 정복을 목표로 하는 서구 문명의 마지막 미개척지는 우주 공간이다.
그러므로 서양에서는 미지의 우주 공간을 여행하는 우주 비행사가 영웅 대접을 받는
다. 그러나 티벳 사람들은 내면의 우주에 관심을 기울인다. 그들은 죽음과 중간계, 그리
고 환희가 넘치는 無我의 세계를 향해 여행을 떠난다. 그래서 그들은 의식을 가진 채
죽음이라는 해체 과정을 통과하는 능력, 마음을 육체에서 분리하여 마음으로 신비한
몸을 만들어 내는 능력, 그리고 그 몸으로 인간의 의식이라는 다른 우주를 여행하는 법
을 터득하게 되었다. 티벳에서는 이런 능력을 갖춘 '정신세계 비행사'들이 영웅이다. 달
라이 라마와 수천을 헤아리는 환생한 라마(이들은 '뛸꾸'라고 하는데 '붓다의 化身'이
라는 뜻이다)들은 모두 티벳의 영웅들이다. 사람들은 그들이 죽음과 중간계와 환생 과
정을 마스터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티벳 사람들과 다른 모든 중생을 깨달음의 길로 인
도하고자 하는 자비로운 마음에서, 스스로 환생을 결정한 사람들이라고 믿는다.
근대 티벳 문명은 지구상에서 가장 독특한 문명이다. 죽는 방법과 죽음에 대한 과
학은 티벳 문명과 같은 문명이 아니고서는 만들어 내지 못한다. 현대 티벳 문명의 정신
적인 특성은 '내적인 현대성'이다. 현대 서구 문명의 특성인 '외적인 현대성'과는 사뭇
대조가 된다. 서구 문명의 현대성은 보통 근대 이전의 '전통적'인 특성과 대조되는 현
상을 가리킨다. 개인주의, 개방성, 유연한 주체성, 끊임없는 사색, 이성과 합리성 등이
서구에서 말하는 현대의 특성이다. 이러한 서구의 현대적인 특성들은, 궁극적으로는 모
든 것-심리적이고 정신적 것까지 포함하여-을 물질적인 量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는 생
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현대 서구 문명은 '외향성'을 띨 수밖에 없다.
그러나 티벳 문명은 모든 것이 영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의식 영역에서는 모
든 것 사이에서 상호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불교적인 생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티벳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생각한다. 그들은 정신적.영적인 것
은 어떤 경우에도 물질적인 量으로 환산할 수 없으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적인 것
이 물질적인 것 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으로 활동하는 에너지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티벳 문명의 특성은 자연히 '내향성'을 띠게 되었다. 서구 사회의 '현대화'라는
말과 티벳 문명의 '현대화'라는 말이 뜻하는 바가 이렇게 다르다. 서구 사회는 현대화
될수록 외부의 물질 세계를 향해 밖으로 나갔고, 티벳은 현대화될수록 마음을 향해 안
으로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문명의 차이는 그 구성원들의 생각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미국의 국가적인 목표는
물질적으로 보다 더 번영하는 데 있는 반면, 티벳의 국가적인 목표는 영적으로 보다 더
풍요로와 지는 데 있다. 영적인 풍요는 지혜를 얼마나 깊게 갈고 닦느냐, 또 사랑의 힘
을 얼마나 널리 펼치느냐에 달려 있다. 티벳의 불교도들은 외부 세계는 '시작도 끝도
없는 윤회를 거듭하며 성숙하는' 내면 세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들은 영적으로 얼마나 더 성숙해야 되고, 주위 환경을 얼마나 더 좋
게 바꾸어야 하는 지에 대해 한계를 두지 않는다. 그들은 누구나 완전한 지혜와 자비의
존재인 붓다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은 또한 이 세상이 아무도 고통받는 이가 없
고 서로가 서로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완전한 붓다의 땅(佛國土)으로 바뀔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죽음에 관련된 가르침은 티벳 사람들이 내면 세계를 탐색한
결과로 나온 것들 중에 하나다. 밖으로 치달리고 있는 서구인들의 마음 속에서는 죽음
이나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생각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다. 그들은 이런 생각을 고리타
분하게 여긴다. 물질적인 사고 습관은 그들의 마음을 물질에 붙들어 매 놓고, 영혼에
대한 문제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그들은 애써 죽음 이후의 삶을 무시하면
서, 죽음을 단지 뇌파 측정기에 직선이 나타나는 육체적인 현상 정도로 여긴다. 그들은
죽음 이후의 마음과 존재의 상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이 말하는 과학적인 탐
구라는 것은, 육체적인 존재로 살아 있는 동안, 감각으로 인지할 수 있도록, 물질적인
量을 기계의 힘을 빌려 측정하는 데에 국한되어 있다. 그들은 또 외적인 세계에서 가장
멀고 깊은 곳을 향해 탐험의 닻을 올렸다. 은하계를 향해 끝없이 먼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고, 세포와 미립자와 원자의 세계를 탐색하기 위해 끝없이 깊은 영역에 발을 들여
놓았다.
내면 세계에 관심이 있는 티벳 사람들에게는 물질 세계는 부차적인 의미밖에 없다.
그들의 주된 관심은 깨어 있음, 인과 관계, 상관성, 감각과 인식, 미묘한 이미지의 영역,
빛, 무아경, 脫身, 꿈, 죽음, 초월 등과 같은 내적인 체험에 쏠려 있다. 티벳 사람들은 신
비한 내면 세계가 주관적인 체험과 객관적인 사건 일체를 조절하고 통제한다고 믿는
다. 그래서 그들은 분석적인 통찰과 매 순간 집중하여 깨어 있는 명상을 통해 내면 세
계를 탐색하고자 한다.
내면 세계를 탐색하기 위해 그들은 꿈을 조절하고, 명료한 의식을 가지고 意識下意
識 세계를 여행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또 미묘한 의식 영역에 도달하기 위해, 육체와
관련된 '나'라고 하는 주관적인 느낌과 자신을 분리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마치
꿈처럼 느껴지는 죽음과 태어남 사이의 중간계의 체험을 포함하여, 前生의 체험을 기
억해 내기 위해 집중력과 기억을 확장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첫댓글 아 무진장 끼네~ㅋ
잘못된 부분은 아니고..단순 오타 발견! 달라이 라마 서문 끝줄.... 깨달음을 빛을 비쳐 주는>>>>> 깨달음의 빛을 비춰 주는
ㅋㅋ 거기까지 읽으셧삼? ㅋ. 출판사에서 일해도 될듯 ㅎㅎ
작년에 읽어봤는데 ... 넘 어려워요. 다시 읽어봐야할듯. 니르바나의 세계로 갈까나 ()()()
그렇군요.... 티벳은 항상 좀 특이하다고는 생각해왔지만, 따로 공부할 기회가 없어서.... 티벳의 역사와 그 독특한 불교 문화의 배경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서 좋네요. 기회가 되면, 이 책 한번 사서 봐야 겠는 걸요.
사자의 서...... 한 10번 읽으면 조금 보이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