芻牟生而坐 月余能自語 以篳作弓矢 能射紡車 繩香雲常繞室 鳳皇来居樹 半年能自步 離懷而自食 割肉必方正 煮魚以香新 早起每東向 仰日吸精華 不與凡兒遊 不依婢僕護 或出大野立 百獸来護之 又登高丘臥 虎豹来乳之
芻牟(추모)는 태어나자마자 자리에 앉더니, 한 달이 넘자 스스로 말을 하였다. 대나무 가지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물레를 쏘아 맞히니, 향기로운 구름이 띠처럼 항상 집을 둘렀고, 봉황이 찾아와 나무에 머물렀다. 생후 반 년이 되자 스스로 걸어 어머니 품을 떠나 혼자 밥을 먹었는데, 고기를 자르면 반드시 반듯하였고, 물고기를 구우면 그 향내가 새로웠다. 아침 일찍 일어나 늘 동쪽을 향해 해를 우러르며 精華(정화)를 흡입하였고, 여느 아이들과 어울려 놀지 않았으며, 비복들의 보살핌에 의지하지도 않았다. 어쩌다가 큰 들판에 서 있으면 온갖 짐승들이 찾아와 그를 지켰고, 높은 언덕에 올라 누우면 호랑이와 표범들이 찾아와 젖을 먹였다.
*BC58년, 계해년, 추모왕 출생.
蛙王大奇之 賜以芻牟號 乃作芻牟殿 僚屬十余人 萱花監起居 加菽視外事 一寢與一食 無不盡其誠 或坐好人膝 或眠萱花背 時徃聖母懷 撫乳而自好 能知大風吹 禁人出海漁 能知旱與雨 使人不失稼 老者智不及 少者勇不當
蛙王(금와왕)이 대단히 기이하게 여기고, 芻牟(추모)라는 號(호)를 내렸으며, 芻牟殿 (추모전)을 지어주고, 관원 10여 명을 딸려주었다. 萱花(훤화)가 기거를 살피고, 加菽(가숙)이 바깥일을 돌보아 잠재우고 먹이는 일에 정성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芻牟(추모)는 때때로 好人(호인)의 무릎 위에 앉거나, 萱花(훤화)의 등에서 자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聖母(성모)의 품으로 가서 젖을 만지며 즐거워했다.
또한 큰 바람이 불 것을 미리 알아, 사람들이 바다로 고기잡이 나가는 것을 말렸고, 가뭄과 비를 예측하여, 사람들이 농사를 망치지 않게 하니, 늙은이들의 지혜도 이에 미치지 못하였고, 젊은이들의 용기도 당해낼 수 없었다.
二歲 能自讀 三歲能自畵 漢人来撓舌 胡人来慴伏 好聞古人書 慷慨有大志 時或種果樹 待花而自娛 聖母禱芻牟丹靑 修古社 好人抱芻牟将欲入其社 芻牟泣不入 忽有大地震 其社轉覄之 芻牟堀一处 得二金尺章 重各三百斤
두 살에(BC57년) 스스로 글을 읽을 수 있었고, 세 살에(BC56년) 혼자 글을 쓸 줄 알았으니, 漢(한) 나라 사람들이 찾아와 혀를 내두르고, 胡人(호인들)이 찾아와 두려워하며 탄복했다. 옛 사람들이 쓴 서책 듣기를 즐기며, 비분강개하여 큰 뜻을 품었으며, 때때로 과일나무를 심고, 꽃이 피기를 기다리며 스스로 즐거워했다. 聖母(성모)께서 芻牟(추모)를 위해 기도하며, 단청을 칠하고, 옛 사당을 고치셨는데, 외할머니 好人(호인)이 芻牟(추모)를 품에 안고 그 사당으로 들어가려 하자, 芻牟(추모)가 울음을 터뜨리며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자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 사당이 뒤집혀 무너졌는데, 芻牟(추모)가 그곳의 한 자리를 파내어, 각각 무게가 300근에 달하는 두 개의 금척과 금장을 얻었다.
四歲 能善射 百步墮玉環 得蟹大如蓋 不食而棄之 得獸如猉麟 時跨出江邊 或登高丘還 肉角脫復生 香蹄復生去 取之為仙薬 服之可延年 聖母生觧弗 煎此角蹄飮 精神倍佳爽 容皃日益好 帶伯欲奪之 忽然不知去 鳳皇亦飛去 觧存遣使来 欲迎芻牟去 觧存使欲入廟 廟言芻牟帝 以是欲迎去 聖母不許之 又有呼韓邪夢見慕漱帝 我子在東海 當為大单于 乃遣駝十匹 又有北鞨夜観東海上 有光成五彩 以為聖人出 遣使献土物 如是来賀者 連絡常不絶
네 살에(BC55년) 활을 잘 쏘아, 100보 밖의 옥반지를 맞추어 떨어뜨렸고, 솥뚜껑만 한 큰 게를 잡았으나 먹지 않고 놓아주었다. 猉麟(기린) 같은 영묘한 짐승을 잡아 타고, 때때로 강변을 달리거나, 높은 언덕에 올랐다 돌아오곤 하였다. 그 짐승의 사슴 같은 뿔은 떨어지면 다시 돋아났고, 향기로운 발굽도 새로 돋아나며 떨어졌는데, 이를 가져다 선약을 만들면 수명을 늘릴 수 있었다.
성모께서 觧弗(해불)을 낳고, 이 뿔과 발굽을 달여 마시니, 정신이 갑절로 맑아졌고, 용모도 날로 좋아졌다. 帶伯(대백)이 이를 빼앗으려 하자, 짐승은 홀연히 사라졌고, 봉황 역시 날아가 버렸다.
(부여의 서제) 觧存(해존)이 사신을 보내와서, 芻牟(추모)를 모셔 가고자 하였다. 사신이 廟(묘)에 들어가려고 하자, 묘의 신령이 "芻牟(추모)는 제왕(帝)이 될 상이다"라고 말하니, 이 때문에 맞이해 가고자 한 것이었다.
聖母(성모)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동흉노의) 呼韓邪(호한야) 선우가 꿈속에서 慕漱帝(해모수제)를 뵈었는데, 내 아들이 동해에 있으니, 마땅히 대선우가 될 것이다하며 낙타 10필을 보내왔다.
北鞨(북갈)에서도 밤에 동해 하늘에 오색구름이 영롱한 것을 보고, 성인이 나신 줄로 여겨, 사신을 보내 토산물을 바치니, 이처럼 찾아와 축하하는 자들이 끊이지 않았다.
五歲 至貝陵 掘貝得神釼 釼上有五字 聖主得此釼 又有黃玉璽 藏在翠玉鼎 聖母秘藏之 勿使外人知 是歲槐里死 郅支破呼韓 能言稽侯立 又占豪全匈 末曷侵奧万 斗辰徃救之 柴吉稱楽浪 卒本幷鯤淵 松讓與奧犍相爭故國原
다섯 살에(BC54년) 貝陵(패릉)에 이르러 조개무지를 파내다가, 신검을 얻었는데, 그 검 위에는 聖主得此釼(성주득차검)이라는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또한 비취 솥 안에 감춰진 황옥새를 얻으니, 성모께서 이를 깊이 숨겨 외인들이 알지 못하게 하셨다.
이해에 槐里(괴리)가 죽고, 郅支(질지)가 呼韓(호한야)를 깨뜨렸는데, 芻牟(추모)는 능히 稽侯(계후)가 보위에 오를 것이라 말하였고, 또 豪全(호전)은 흉할 것이라고 점을 쳤다.
한편 末曷(말갈)이 奧万(오만)을 침략하자, 斗辰(두진)이 가서 구원하였다. 柴吉(시길)은 楽浪(낙랑)을 자처하였다. 卒本(졸본)은 鯤淵(곤연)을 병합하였다. 松讓(송양)과 奧犍(오건)은 故國原(고국원)을 두고 서로 다투었다.
六歲 能騎馬 乘降如飛電 雖有悍惡馬 制之如小兒 一日必三射 三日必遠騎 種梪又種菜 捕魚又捕雉 早起謁聖母 暮夜省好人 時徃漢館裏 尋訪医与薬 勤儉又溫詳 甚得蛙王心 好人生蛙女 名曰禮公主 宝齡雖少一 夙逹如芻牟
6살에(BC53년) 능히 말을 타고, 오르내리기를 번개처럼 하니, 비록 사납고 나쁜 말이 있을지라도 이를 제어하기에 어린아이 다루 듯 하였다. 하루에 반드시 세 번 활을 쏘았고, 사흘에 한 번은 반드시 멀리 말을 타고 나갔다. 콩을 심고 또 채소를 심었으며, 물고기를 잡고 또 꿩을 잡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聖母(성모)를 뵙고, 저문 밤에는 好人(호인)을 살폈다. 때때로 漢館(한관, 한나라 객관) 안에 가서, 의원과 약을 찾아 방문하였으며,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또 온화하고 자상하여, 蛙王(금와왕)의 마음을 크게 얻었다. 好人(호인)이 금와왕의 딸을 낳으니, 이름을 禮公主(예공주)라 하였다. 나이는 비록 한 살 적었으나, 일찍 철이 들고 통달함이 芻牟(추모)와 같았다.
七歲 好擊釼 烏伊不敢當 沈重有大度 恤貧與孤獨 敬老以禮 賓不以皇子驕 每事問於善 察理周且密 恕人以寬厚 英表偉且奇 皃如已成人 聖母生觧花 斗辰伐松讓 好陵送錦囊 備香百二精 葦花多疾病 芻牟求神薬 三入西罽山
7살에(BC52년) 칼싸움을 좋아하니, 烏伊(오이)도 감당하지 못하였다. 성품이 침착하고 무거우며 도량이 컸다. 가난한 자와 외로운 자를 구휼하고, 노인을 예로써 공경하였으며, 손님을 대접할 때 皇子(황자)라 하여 교만하지 않았다. 매사를 선한 이에게 물었으며, 이치를 살핌이 주밀하고도 정밀하였다. 사람을 관대하고 후하게 용서하였으며, 영특한 풍채가 위대하고 기이하여, 용모가 이미 성인과 같았다.
聖母(성모)께서 觧花(해화)를 낳으셨다.
斗辰(두진)이 松讓(송양)을 정벌하였다. 好陵(호릉)이 비단 주머니를 보내어, 102 가지의 정밀한 향을 갖추어 주었다. 葦花(위화)가 질병이 많자, 芻牟(추모)가 신령한 약을 구하기 위해 西罽山(서계산)에 세 번 들어갔다.
庚午八歲 加元服 身長已五尺 每徃漢人家習冶 又造船 敀来 與摩離牧馬十余匹 萱花諫勿勞 自云勞是福 柒公王盖馬遣使献甘草 芻牟以為酒 每夜献好人 好人稟賦好 四十如少婦 又飮甘草酒 好用黃駝精 斗辰不能當 蛙王亦常敗 旺弗以胡括與厚川
稽候入長安 病已厚待之 旺弗伐柒公 黃竜救柒公 荇人襲卑离 旺弗逃紫蒙 宿於慕容家 慕容掛漱象 数罪将欲殺 旺弗自知罪 誓作夫余臣 荇人奪卑离 遂与黃竜爭 荇人迎觧存 納女為天后 新築天帝宮 大興神仙敎 欲以制天下 莞氏殺厚川 而立廣公
경오년(BC51년) 8살에 성인식을 치르니, 키가 이미 5척에 달했다. 매번 한인(漢人)의 집에 가서 야금술을 익혔고, 또 배를 만들기도 했다. 돌아와서는 마려(摩離)와 함께 말 10여 필을 기르니, 선화(萱花)가 너무 고되게 하지 말라고 간청하였으나, 추모는 스스로 "노동이야말로 복이다" 라고 말했다.
칠공(柒公)과 개마왕(盖馬王)이 사신을 보내 감초를 바치자, 추모는 이것으로 술을 만들었다. 그리고 매일 밤 好人(호인)에게 바쳤는데, 호인은 타고난 자질이 훌륭하여 나이 마흔에도 젊은 부인 같았다. 또한 감초술을 마시고 황타정(黃駝精, 낙타 보양재)을 즐겨 쓰니, 두진(斗辰)도 감당하지 못했고, 蛙王(금와왕) 역시 항상 패하였다.
왕불(旺弗)은 호괄(胡括)을 厚川(후천)에게 주었다.
계후(稽候, 흉노의 질지선우)가 장안(長安)에 들어가니, 병이(病已, 한나라 선제)가 그를 두텁게 대우하였다. 왕불이 칠공을 치자 황룡(黃竜)이 칠공을 구원하였다. 행인(荇人)이 비리(卑离)를 습격하자, 왕불은 자몽(紫蒙)으로 도망쳐 모용(慕容)의 집에 묵었다. 모용은 모수(慕漱)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왕불의 죄를 헤아려 장차 죽이려 하니, 왕불은 스스로 죄를 깨닫고 夫余(부여)의 신하가 되겠다고 맹세하였다.
행인이 비리를 빼앗고, 마침내 황룡과 다투었다. 행인은 해존(觧存)을 맞이하고 딸을 들여 천후(天后)로 삼았으며, 새로이 天帝宮(천제궁)을 짓고, 신선교(神仙敎)를 크게 일으켜 천하를 통제하고자 했다. 완씨(莞氏)가 厚川(후천)을 죽이고, 광공(廣公)을 세웠다.
辛未九歲 通連山 鑄鏡 用漢字 丹公携書來 敎之以王伯 黃竜尊昷公 崇文抗荇人 文章与仙道 孰為天下福 芻牟皆不許 非武不可定 丹公敎兵書 攻守因三才 芻牟評孫吳 以為誤人書 万事隨機應 何可型而膠 丹公大奇之 只得授古書
辛未(신미, BC50년) 9살에 <연산(連山)> 역학을 통달하였고, 거울을 주조하였으며, 한자를 사용했다. 단공(丹公)이 책을 가지고 와서 왕도(王道)와 패도(覇道)에 대해 가르치며 말하기를, "황룡(黃竜)은 온공(昷公)을 존경하고, 문치를 숭상하고, 행인(荇人)에 대항하고 있다. 문장과 선도(仙道) 중 어느 것이 천하의 복이 되겠는가?" 라고 하며, 추모가 모두 받아들이지 않으며, "무력(武)이 아니면 천하를 안정시킬 수 없다" 라고 하였다.
丹公(단공)이 천지인 삼재(三才)에 근거한 공수(攻守)의 병서를 가르치자, 추모는 <손자병법>과 <오자병법>(孫吳)을 평하여 "사람을 그르치는 책"이라 여겼다. 그리고 "만사는 기틀에 따라 임기응변해야 하거늘, 어찌 틀에 박힌 듯 고집(胶)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니, 丹公(단공)이 이를 크게 기이하게 여겨, 단지 古書(고서)만을 전해 주었을 뿐이다.
壬申 十歲 通敀藏能成八陣法 烏伊為左幕 摩离為右幕 将兵三千人習戦 又習屯 斗辰相十年 東余已大治 于山与藻那沃沮又楽浪涉羅加羅等爭来 献土物 蛙王重其功 加封七千戶 聖母生觧朱 立府置僚屬 七子皆驕傲 芻牟獨愛民
임신년 10살에(BC49년) 귀장을 통달하고 팔진법을 이룰 수 있었다. 오이가 좌막이 되고, 마리가 우막이 되어, 장병 3천 명이 싸움을 익히며 또 둔전을 익혔다. 斗辰(두진)이 정승이 된 지 10년 만에 東余(동여)가 이미 크게 다스려졌으며, 우산과 조나, 옥저와 또 낙랑, 섭라, 가라 등이 다투어 와서 토산물을 바쳤다. 금와왕이 그 공을 무겁게 여겨 7천 호를 더 봉해 주었다. 성모께서 觧朱(해주)를 낳으시니, 부를 세우고 관속을 두었다. 일곱 아들은 모두 교만하였으나, 추모 홀로 백성을 사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