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흥남부두 철수작전>
--- 굳세어라, 금순아 ---
박시춘 작곡 강사랑 작사 현인 노래
(1)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 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드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홀로 왔다.
(2)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이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꿈도 그리워 진다
영도다리 난간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3) 철의장막 모진설음 받고서 살어를 간들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 다오 북진통일 그 날이 오면
손을 잡고 웃어 보자 얼싸 안고 춤도 춰 보자
노래는 역사를 말한다. 굳세어라 금순아는 흥남부두에서 미국 군함을 타고 부산(거제도)으로 철수한 피란민들의 한이 얽힌 노래이다.
1950년 12월, -3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 백만 중공군의 개입으로 압록강까지 북진을 하던 국군과 UN군이 후퇴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였다. 흥남북부 고원지대 장진호 부근에서는 미군과 중공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미군 해병대 제1사단은 마지막 보루 장진호에서 약 10여일간 최후의 사투를 벌리며 지연작전을 전개 하여야 했다. 왜냐하면 이 때에 흥남부두에서는 193척의 대소 선박이 총동원 돼서 10만여명의 군인과 9만여명의 피란민과 군대의 중장비등 철수작전을 벌리는 아비규환의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에 장진호전투에서 미 해병의 지연작전이 무너지면 모두가 중공군의 밥이 되는 아주 긴박한 시간이었다. 이 장진호 사투에서 미군 약 4,000명, 그리고 중공군은 45,000명이 전사하였다. 그 전투는 피차간에 정말로 피의 바다였다.
당시 미10군단장 알몬드 장군의 통역관인 현봉학 박사는 메러디스 빅토리아 호의 Leonard La Rue 선장을 설득하여, 한명이라도 더 피란민을 태우기 위하여, 배에 실었든 모든 무기들을 바다에 다 버리고, 14,000여명의 피란민을 구제함으로 많은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선장 Leonard La Rue는 인류애의 상징적 인물이 된 것이다. 이후 메러디스 빅토리아호는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배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였다.
그 193척의 배들 가운데 미국의 <Lane Victoria>호는 피란민 7,000여명을 빡빡히 태우고 거제도를 향하고 있었다. 이 흥남부두 철수선박들에 탔던 사람들이 훗날 부산의 국제시장에 몰려들어 자갈치 시장을 이루었다. 이들이 바로 이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를 애창하며 헤여진 연인과 가족들에게 굳세게 살어 줄 것을 소원하던 주인공들이었다.
비록 노래는 희망적 미래를 기약하는 씩씩한 곡조이지마는, 가사는 내용 그대로, 그들은 거의 모두가 가족과 연인들이 분산되는 비극을 가슴에 안고 살아야 했다. 일부는 아직도 북한에 있고, 남한으로 피란을 왔다 하여도 서로의 생사도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오늘날까지도 서로를 찾아야 하는 이산가족이 되여 있는 것이다. 이제는 다시 만날 기약도 없이 노래로 실향의 한을 푸는 이들이지만, 어느덧 세월이 흘러, 연세가 들어 한 두 사람씩 세상을 떠나가니 그지 없는 그 안타까움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가 있으랴!
60여년이 지난 지금 그 메리더스 빅토리아호는 없어젔고, <lane Victoria>호는 미국 LA인근 San Pedro항에 정박해 있다. 흥남철수 작전의 상징인 이 <Lane Victoria>호는 현재 관광객들을 상대로 선상 박물관-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경남 거제시에서는 이 배를 장승포항으로 가져와, 흥남철수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거기에 전시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흥남철수작전에서 배에 싫었든 모든 무기를 바다속에 던저 버리고 피란민 14,000명을 태운 미해병대 대령 Leonard La Rue 선장의 인류애적이고 인도적인 작전은 너무도 아름답고 위대한 결심의 일이었기에 현재 그 스토리를 영화화하고 있다. 그 영화가 완성되면 아마도 “타이타닠” 영화에 못지 않은 대작이 될 것이라고 벌서 부터 인기가 부상하고 있다. 우리는 이 위대한 레오나드 선장에게 뜨거운 감사의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부두에는 아직도 배에 오르지 못한 100,000여명이 울부짖고 있었다. 빈 공간만 있으면 배가 뒤집힐 정도로 배는 인산인해를 이루어 승선을 하였다. 배 안은 사람이 포개 앉아야 했다. 그러는 속에서 한 쪽에서 “응애 응애!”하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났다. 새로 태여나는 이 새 생명 앞에서 모두는 거절하지 아니하고 자리를 내어 주면서 숙연해 하였다. 이틀후에 부산에서 하선을 할 때에 Lane Victoria호에는 한 식구가 더 늘어나서 7,010이 되었다. 세월은 흘러 어디에 살고 있을 그 아이의 나이도 이제 한갑이 넘었다. 너무도 긴 세월이 아프게만 흘러 갔다.
여기에 한 에피소드가 있다. 2012년 12월 9일, 대한민국 대통령선거 때의 일이다. 제 18대 대통령후보 문재인, 그의 부모님들이 이 흥남부두에서 빜토리아호를 타고 거제도로 피란을 왔다는 사실이 알려젔다. 그리고 부산에 와서 아들 문재인을 출산하였다. 그 피나는 철수작전이 아니었던들 문재인은 아마도 북한에 태여 났을 것이다. 헌데 문재인은 자기 부모를 구제한 미국의 은혜를 부정하고 친북인사로 전향하였다. 대통령 선거유세 때에 문제인은 자기의 부모를 구제한 미국에게 배은망덕을 하더라고 많은 사람들이 뒷전에서 맹비난을 하였다. 그가 낙선을 한 작은 이유중의 하나일 것이다.
<굳세어라 금순아>와 또 다른 실향민의 노래가 있다. <타향살이>가 그것이다.. 이 두 노래는 지난 60년동안 이산가족들이 모이는 곳에 어데던지 가슴속에 뭉쳐진 한을 풀어 주는 십팔번지의 애창곡이 되였다. 여기에서 아울러 <타향살이>의 가사를 소개해 드린다. 험밍으로 불러 보면서 이산가족들의 그 찢어지는 아픔에 동참해 주시기 바란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년에 청춘만 늙어
부평같은 내 신세가 혼자로 기막혀서/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 쪽
고향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렸만/ 호들기를 꺽어 불던 그 때는 옛날
타향이라 정이 들면 내 고향 되는 것을/ 가도 그만 와도 그만 언제나 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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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사랑캐나다포럼 강 신 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