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우리딸 때문이다.
고1인 딸아이의 독서동아리에서 선정한 책이 "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라고 해서
동부도서관에 가서 부리나케 빌려주었다.
학교에서 온 딸에게 책 빌려났으니까 열심히 읽으라는 말을 함과 동시에 책이 변경되어서
요산 김정한 작가의 "모래톱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한편으론 허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작가가 내가 좋아하는 중동철학교사 안광복선생이고 그분 책들을 재미있게
읽은 나로서는 이참에 나라도 읽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가 읽고나서는 마음이 흡족해서
인터넷에서 바로 구매하고야 말았다.
소크라테스와 관련한 책이 집에 몇권 있지만 이 책은 그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소크라테스의 <변명>
에 대한 해설이 함께 실려 있어서 편안하게 읽을 수 있었고, 부록에는 전문만 따로 첨부되어 있어서
책을 읽고 나서 다시한번 복습하는 효과를 주기도 했다.
소크라테스는 나이 70이 되어 멜레토스에 의해 고발을 당한다. 죄목은 "젊은 이를 타락시키고
신을 믿지 않는다"였다. 501명의 재판관과 많은 방청객앞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죄에 대해서
변론을 펼치지만 끝내는 사형선고를 받고 스스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당시 사형선고는 반드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쪽같은 성품을 지닌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조국을 떠날 것을 거부했고, 죽음이란 육신을 벗어나는 자유라고 생각했기에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죽음을 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의문, 그렇다면 아테네인들은 왜 가장 지혜로운 자에게 사형을 언도했는가?이다.
이에 대해서 <변명>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첫째, 사회의 편견
아테네인들이 소크라테스에게 가지고 있는 그릇된 편견 때문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부도덕하며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땅과 하늘의 일을
탐구하고 약한 논증을 강한 논증보다 더 강하게 만들며, 남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시킨다."라는
사회적 편견에 대해 변론을 시작한다.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이름만 자신일 뿐 그 모습은 신을 믿지 않는
아낙사고라스라는 점 그리고 자신의 유명세와 편견을 불러일으킨 것은 델피신탁의 뜻 즉 "소크라테스
보다 현명한 사람은 없다"라는 신의 뜻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아테네에서 내노라하는 정치인,
시인, 장인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지혜를 탐색했고 그결과 그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최고라는 오만과
교만으로 가득차 있음을 알았으며 자신은 그들과 달리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테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는 신탁의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과정에서
수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무지를 밝힌 소크라테스에게 적개심을 품게 되었고 자신은 신이 자신에게 맞긴
과업에 따라 거리를 헤매며 현자라고 생각되는 이들을 찾아 물음을 던지느라 국가의 일에 참여하거나
가정을 다스릴 여유조차 없었다고 변론한다.
둘째, 밀레토스의 고발
밀레토스의 고발은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언도받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는데, "소크라테스는 젊은
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인정한 신을 믿지 않고 새로운 영적 존재들을 믿는 죄를 저지르고 있다."
는 죄명에 대해 밀레토스를 법정에 세워 직접 반박을 시도한다. 자신이 젊은 이를 타락시킴으로써
자신도 해악을 입게 되는데 그런일을 의도적으로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 그리고 밀레토스의
입을 빌려 소크라테스 본인이 신을 믿지않는다는 말을 유도하며 그렇다면 신을 전혀 믿지 않는 자신이
어떻게 영적인 존재(다이몬)들은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해 고발자체의 모순을 반박한다.
셋째, 재판정에서의 당당함과 죽음에 대한 자세
자신은 "살찐 말을 깨우는 등애"와 같은 존재로 아테네시민들에게 꼭 필요하며, 죽음을 두려워하는
어리석은 인물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자신은 몇번을 거듭 죽는다 해도 절대로 행동을 바꾸지는 않을
거라는 점을 강조한다.
결론적으로 소크라테스가 법정에 서게 된 원인은 밀레토스와 그 배후세력인 아니토스 때문이며
이들은 소크라테스가 산파술로 자신들의 무지와 잘못을 꼬집고 있는 것이 불편했던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원인으로 작용한 것은 그당시의 아테네의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스의 최고 강자였던 아테네가 펠레폰네소스전쟁에 패배하게 되자 아테네인들은 자존심에
큰 타격을 받았고 또한 스파르타를 등에 업은 30인 참주정의 독재를 막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다시
되찾은 아테네인들에게 '민주주의'를 중우정치로 비판하는 소크라테스는 무엇보다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펠레폰네소스전쟁을 패배로 이끈 장본이기도 한 알키비아데스
(페리클레스가 외숙이자 후견인)와 참주정의 독재를 이끈 크리티아스, 카르미테스 등이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다는 것도 아테네인들에게는 큰 분노를 불러왔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자신들의 민주정을 비판하고 스파르타식의 정치체제를 옹호하는 스승과 제자들이 민주주의를 다시
되찾은 '민주투사' 아니토스에게는 가장 위험한 존재로 여겨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이러한 그 당시의 아테네의 정치상황이 관용적인 아테네인들의 마음에 냉소를 가져왔고, 또한
소크라테스의 신념은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하게 만들었다.
재판관들이여! 그대들은 죽음에 대해 희망찬 기대를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이 점을 명심해 주십시오, 선한 사람에게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결코 악한일이 일어나지 않으며,
신 또한 그네들과 관련된 일을 소홀히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지금 제게 닥친 일이 저절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지금 죽어서 골칫거리들에서 벗어나게 되어 저는 오히려 더 잘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렇기에 그 영적인 신호가 저를 방해하지 않았고, 저 또한 유죄판결을 내리고 저를 고발한 사람들에 대해
전혀 화가 나지 않는 것이겠지요, 물론 그들이 이런 의도로 저에게 유죄판결을 내리고 고소한 것은 아닙
니다. 그들은 오히려 저를 해친다고 생각했지요, 이 점에서 그들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여러분!
저의 아들들이 자라 성인이 되면 제가 그대들을 성가시게 한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제 자식들에게 복수
하십시오, 그들이 덕보다 돈이나 그 밖의 다른 것에 더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렇게 하십시오,
그리고 제 아들들이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마치 자신들이 뭐나 되는 듯이 생각한다면, 제가 그대들을
비난한 것같이 제 자식을 비난하십시오, 그들이 해야 할 것에 신경 쓰지 않을뿐더러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뭐라도 되는 듯이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 주신다면 저와 제 아들들은 그대들한테
정당한 대접을 받은 셈이 되겠지요.
하지만 이제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저는 죽음으로, 그대들은 삶으로, 우리 중 누가 더 나은 처지인지는
신만이 아십니다.
특히 <변명>을 읽다보면 플라톤이 왜 민주정을 '중우정치'로 여겼는지 그리고 자신의 위대한 저서
'국가'에서 철인통치를 강조한 것이 십분이해가 되었다.
가장 현명한 아테네의 현자이자 자신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를 우매한 501인의 배심원들이 이성이 아닌
그들의 감정에 치우쳐 사형을 언도하는 과정을 지켜본 플라톤에게는 이와같은 여론몰이를 가져오는
민주주의체제가 무엇보다 큰 해악으로 여겨졌을 것이라 추정할 수 있게 만든다.
또한 현대 민주주의에서도 강조되고 있는 '다수결의 원칙' '보통과 평등의 선거원칙'등이 중우정치와
포풀리즘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