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추석 연휴

2012년 추석 연휴를 맞아 29일 6시에 집을 나섰는데 고속도로가 모두 막혀서, 북진천IC에서 국도로 나가 9시간이나 걸려서 상주의 형님댁에 닿았다.
수십년에 걸쳐서 구정과 추석때 마다 거의 매번 자동차를 운전해 귀향한 까닭에 나름대로 노하우가 생겨서 자신이 있었다.
예전에는 경부고속도로 옆의 393번 지방도로를 이용하여 용인까지 간 뒤 17번 국도와 3번 국도를 이용하거나 괴산-상주간의 지방도를 이용하면 밀리지 않았다. 아침 일찍 나서서 용인을 벗어나기만 하면, 그 아래로는 정겨운 시골 풍경을 감상하면서 룰루랄라였다.
고속도로 사정이 좋아진 최근에는 과천-봉담간 고속화도로를 이용하여 봉담까지만 가면 남북축인 화성-평택간고속도로를 이용하고, 다시 동서축인 평택-음성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진천까지 가서 중부고속도로를 만나 남쪽으로 달린 뒤, 청원JC에서 동서로 뻗은 청원-상주간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진천-청원간이 밀릴 뿐, 별 무리없이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추석이 일요일이라 연휴인 토요일의 교통사정이 엉망이 된 것이다. 평소에는 차량이 없어서 날아다니던 고속도로인데, 너무나 밀려서 이들 고속도로도 주차장을 방불케 하였다.
안성맞춤휴게소에서 식구들에게 간단하게 요기를 시키고 다시 운전대를 잡았으나 고속도로에 갇혀서 오전을 다 보내고 보니 졸리고 힘들어서 할 수 없이 북진천IC에서 빠져 나와 17번 국도와 지방도를 이용하기로 했다.
내가 맛집으로 인정한 백봉사거리의 '할머니순두부집'에 들어서니 "두부가 다 떨어졌다"고 문을 닫는데 옆 집도 그렇고... 나중에 길건너로 찾아들었던 '보릿고개집'도 우리일행이 두부전골로 점심을 먹고 나오니 뒷사람들은 두부가 떨어져서 식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화양계곡을 지나, 괴산의 삼송리 옥양폭포 부근을 지날 때는 지난번 태풍(블라덴)에 쓰러져 화재가 된 왕소나무(龍松)의 보호시설 모습이 보여 안타까왔다.
이 날은 정체되고 혼잡한 도로 사정에다 장거리 운전에 피곤하여 일찍 골아 떨어졌다. 이곳저곳에서 문자도 여럿 왔는데 답장도 보내지 못 한 채로… 그래도 큰 형님이 준비해 주신 능이와 송이 버섯 맛은 보고 잤다.

추석날인 30일에는 상주 큰집에서 여러 형제의 가족이 모여서 차례를 올린 뒤, 고향 농암으로 가서 높다란 소백산맥이 둘러싸고 있는 남녘의 야산 자락인 선산에 성묘를 했다. 성묘를 마치고 뒷산 줄기를 둘러보자니 알밤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 주웠다.
그후 바로 예천 - 영주로 가서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 원주까지 간 뒤, 다시 영동고속도를 이용하여 강원도 양양으로 갔다. 그 이유는 처가의 선산이 강릉의 소금강 입구인 연곡에 있는 까닭에, 처가 식구들이 낙산의 에어포트콘도에 모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강릉에 닿은 시간이 늦어서 어두워지므로 산소 참배는 다음날로 미루고 바로 양양으로 향했다. 낮에 장모님을 모시고 내려온 처남들이 성묘를 마치고 주문진시장에 가서 싱싱한 생선회와 찌게꺼리를 준비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오징어가 흉년이라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비싸더라고 했다. 그놈의 지구온난화 ... 명태도 없애더니 오징어 마저...
다음날인 10월 1일 아침에는 숙소 침실에서 동해일출의 장관을 구경할 수 있었다. 얼른 카메라를 꺼내 베란다로 나가서 여러 장면을 찍다가 보니, 함께 해수탕으로 목욕을 가자는 처남들 보다 나중에야 해수탕을 다녀왔다. 휴가 나온 처조카는 국군의 날인 이날이 병장으로 진급하는 날이라고 하여 진급을 축하해 주었다. 막내 처남이 양양공항앞의 섭국집에서 날라온 홍합국(섭국)으로 맛있게 해장을 했다. 정구지(부추)를 많이 넣어서 마치 시골에서 끓여 먹던 골뱅이국 같은 맛이었다.

양양남대천이 동해와 합류하는 곳에서 솟아 오르는 동해 일출의 장관을 보았다.
처가 식구들이 모두 상경길을 재촉해 떠난 뒤에, 안사람과 둘이서 뒤늦게 장인어른 산소에 다녀오는 길에 대명콘도(솔비치) 맞은 편에 있는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http://osm.go.kr)을 관람하였고, 현남면 광진리의 휴휴암(休休庵)도 둘러보고 왔다.

뒤쪽에 멀리 보이는 건물들은 솔비치 (대명콘도)

오산리 출토, 신석기인들의 인면 조각상


오른쪽 끝에 있는 흑요석 몸돌이 볼 만 했다.



처음으로 관람한 오산리선사유적박물관은 석호였던 쌍호 주변에서 살았던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집터와 생활도구가 출토되어 그 자리에 움집을 복원하고 출토유물을 보존한 훌륭한 박물관을 건립한 것이었다. 특히 바닷가에서 어로활동을 하던 이들의 낚시도구와 그물과 작살 등 어로장구가 다른 곳과 차별화되어 눈길을 끌었다. 쌍호의 바람에 떠밀려서 움직이는 갈대섬도 이색적이었다.
낙산해변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예전에 TV를 통하여 보았던 현남면 광진리의 휴휴암(休休庵)도 잠시 들러보고 왔다.



그루브가 발달하는 연화대


휴휴암은 너무 늦게 도착하여 자세하게 둘러 볼 수 없었는데 연화대라 명명된 거대한 화강암 암반 주위로 진행되고 있는 바닷물의 침식작용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천수관음상을 모신 묘적전 앞은 절집 마당에 해당되는 것 같은데 동부그룹이 둘러친 펜스가 흉물스러웠다. 불이문 앞에서 내려다 본 검은 바다 위로 보름달이 붉게 떠오르다가 노랗게 변하여 이색적이었다.
낙산으로 돌아와 차를 세워두고 해변을 걸었다. 낙산비치광장 부근에서 오징어순대와 해물탕, 해물칼국수로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해변의 사구 위를 걸으며 젊은이들의 폭죽놀이와 철썩거리는 밤바다를 즐기다가 숙소로 들어와 하루를 더 묵었다.
재량휴업일인 덕분에 쉬게 된 10월 2일 아침에 체크아웃해서는 가까이 솔밭 언덕 가운데 있는 동해신묘(東海神廟)를 둘러보고 2005년의 영동지역 산불이 옮겨 붙은 큰 화재로 소실된 뒤, 목수(木壽) 신영훈 선생이 복원 중수한 낙산사(洛山寺)를 둘러보고 올라 오기로 했다.

낙산사 일주문을 올라가니 전처럼 홍예문앞 주차장으로 가지 않고 대형주차장으로 도로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새로 난 길을 올라 매표소에 닿으니 몇년전에 TV 중계로 생생하게, 불타는 홍예문과 원통보전 일원의 모습을 바라보며 참담했던 마음이 아주 개운해졌다.


원통보전과 범종루 등 새로 건립된 절집 건물들 주변에 더러 화마를 벗어난 벚나무와 소나무가 남아 있는 모습이 너무 고맙게 느껴졌다. 원통보전을 둘러 싼 원장(垣墻)도 복원되었는데 금년 태풍(산바) 때문에 일부 손상을 입었다고 하며 보수를 위하여 비닐로 덮어 놓았다.


낙산사의 본당인 '원통보전'과 7층 석탑

새로 복원한 원통보전의 화려한 공포와 단청


본당인 원통보전구역을 지나 해수관음보살상 구역에서는 발아래의 바다로 부터 멀리 설악산의 울산바위까지 주변 경관을 즐기는데 아내는 마와 연자를 이용해 만들었다는 연꿀빵을 샀다.
해수관음상 주변에서 맑고 청명한 하늘 아래 펼쳐진 드넓은 가을 바다를 즐기다가 관음전에 들어가서 해수관음상을 올려다보니 더욱 감회가 깊었다.

설악산과 울산바위



관음전에서 모시는 해수관음보살상

관음전과 공중부도를 보고 내려와 청기와집인 보타전 구역을 거쳐 의상대사가 처음 이곳에 자리잡고 발원했다는 의상대로 내려 가기로 했다.

의상기념관에서 지난번 화재에 녹은 범종 잔해를 보니 안타깝고 기가 막혔다. 보타전 벽화에서 그려진 한반도모형의 나뭇잎이 인상적이었는데 의상대사의 일대기를 그린 그림에서도 확인되어 호국불교의 모습을 증명하는 듯 하여 반가왔다.



몇 년전의 화재로 우거진 노송이 멋있었던 솔숲이 큰 피해를 보았지만 의상대 주변의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었으며 의상조사가 관음굴에서 현신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였다는 바다위의 홍련암에 이르는 해식애 절벽 도로에도 참배객과 관광객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귀향길에 고속도로에서 워낙 고생을 하였기에 상경길은 아예 한계령을 거쳐 국도로 홍천 - 춘천까지 와서 경춘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로 오려다가 모젠서비스에서 확인해 보니, 영동고속도로가 여주-호법 구간만 막히지 다른 곳은 막히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을 바꾸었다. 양양에서 주유를 한뒤, 하조대IC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왔는데 중부고속도로와 88올림픽대로를 거치다 보니 강남 쪽이 막혀서, 잠실대교를 건너 강변북로를 이용하다가 원효대교를 건너왔다.
집까지 4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맑은 파란 가을 하늘과 바다, 황금 들판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3박4일의 연휴기간에 총 900km를 운전해 왔다.
첫댓글 보람있는 여행이 되었으니 올 가을의 행복이로세 !
고생한 일만 오래 오래 남는데 .......... 수고 하신분들께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