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워커 레드 24달러
조니워커 블랙 50달러
조니워커 블루 160달러
차이가 보이나?
아뇨.
다 같은 회사에서 만든 위스키지.
레드는 좀 허접하고,
블랙은 덜 허접하고,
블루는 좋지.
근데 블루는 비싸서 사는 사람이 적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취하고 싶을 뿐이거든.
네 커리어 대부분동안 너의 책은 블루였어.
훌륭하고, 심오했지만, 대중적이진 않았지.
왜냐면 사람들은 더 쉬운 걸 원하니까.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야. 네가 레드 같은 책을 쓴 건.
단순하고, 자극적이고, 훌륭한 문학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지.
그리고 그건 가치가 있어.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네가 레드를 했다고 해서,
블루를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거야.
넌 둘 다 해낼 수 있어.
- American Fiction 中
관계의 경중
심리학에서는 관계의 경중을 구분합니다.
강한 연결(Strong Ties : 이하 S/T)과 약한 연결(Weak Ties : 이하 W/T)로 말이죠.
흥미로운 점은 조니워커 레드를 찾는 사람의 수가
조니워커 블루를 찾는 사람의 수보다 훨씬 많은 것처럼,
우리가 평소에 더 많이 찾고,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바로 W/T에 속하는 사람들이란 겁니다.
직장 동료들과의 담화, 술자리
동호회 사람들과의 온라인, 오프라인 소모임
SNS 지인들과의 온라인 소통 등등.
현대인들은 에너지를 쓸 일이 많습니다.
먹고 살기도 바쁘고, 주변 사람들도 케어해야 하고,
살면서 별의별 거지 같은 일들도 겪게 되죠.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즐기고 리프레쉬하고 싶을 땐,
그에 걸맞는 대상을 찾게 됩니다.
서로 싫은 소리도 안하고,
진지하고 무거운 이야기 없이,
궁금하지도 않은 각자의 TMI를 늘어놓지도 않는,
그냥 시시껄렁한 이야기 주고 받으며,
아무런 부담 없이, 제약 없이, 그저 잠깐의 도파민을 즐기며,
꿀꿀했던 기분을 날려 보내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은 거죠.
취하고 싶을 땐 조니워커 레드를 찾듯이,
기분이 처지고 꿀꿀할 땐 사소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며 단순하게 기분을 업시키는 겁니다.
우스갯소리로,
고모, 이모, 삼촌, 외삼촌의 조카 사랑은 "책임 없는 쾌락"이라고들 하죠.
어쩌다 한 번 만나 조카와 놀아주는 건 정서적 비용보다 이득이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직접 조카를 맡아 키우는 경우라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죠.
책임감의 무게가 비약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들의 관계는 W/T → S/T로 옮겨가게 됩니다.
조카를 키우며 더 깊은 애정과 연결감을 느끼는 동시에,
더 힘든 하루 일상과 조카의 생계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감을 떠안게 되니까요.
성인이 되고 나이를 먹을수록 강한 연결의 수는 많아지고,
그러한 와중에 책임감과 부담감의 무게는 점점 더 늘어나니,
그러한 압박감에서 벗어나 어쩌다 하루만이라도 부담 없이 즐기며 기분 전환을 하고 싶어하는 건
인지상정일 겁니다.
팍팍한 현실살이에서 숨 쉴 구멍 몇 개 뚫어놓는 것.
그것이 바로 내 사소한 지인들, 즉, Weak Ties가 지니는 가치입니다.
살다 보면,
'나는 진심이었는데, 그 애에게 나는 시절 인연에 불과했구나'
라는 경험을 할 때도 있을 겁니다.
그건 서로의 스파크가 맞지 않았던 것일 뿐,
배신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 건 인지상정이겠지만,
나도 그 시절에 그 친구와 재밌게 지냈으니 그걸로 됐다란 마인드로
우리는 우리만의 강한 연결을 찾아 나서면 되는 겁니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가족을 포함해서 Strong Ties는 평생 다섯 명을 넘기기 힘듭니다.
대부분의 사회적 네트워크 연구들에서
정서적 지지가 유효하게 작동하는 관계는 5명 이하
라고 보고되고 있어요.
가령, 인류학자이자 진화심리학자인 로빈 던바(Robin Dunbar)는
사회적 관계망에 대한 그의 연구에서,
시간적 제한과 인지적/정서적 용량의 문제로 인해
현대인이 최대치로 유지할 수 있는 관계의 상한선은
S/T가 5명,
S/T와 W/T 사이, Mid-level 관계가 15명,
W/T가 150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죠.
결국, 우리의 삶은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인연들에게서 에너지를 얻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몇 명(자신 포함)에게 그 에너지를 집중 투입하는 시스템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시절 인연이라고 해서 아쉬워할 거 없이,
그 때 그 시절,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줬던 소중한 인연이라고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좀 더 어릴때는 ‘왜 인연이 지속되지 못할까?’ 속상했던것 같은데.. 그때의 저와 지금의 제가 많이 다른걸 저 자체도 느끼거든요. 그때의 관심사, 그때의 시각, 그때와 지금의 받아들임의 농도가 다른걸 아니까.. 나이가 들면들수록 시절인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는것 같아요. 이제는 함께하지 않지만, 그때의 시간을 함께 나누었던 소중했던 사람들 정도로 기억한다고 할까요? ㅎㅎ 좋은기억이든 나쁜기억이든 시절인연이었지... 하고 넘기니 또 새로운 ‘시절인연’들로 채워지더라고요. 오늘도 좋은 글 감사해요!
아 이거 쉽지 않죠.
늘 생각하게 하는 글을 써주셔서 감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