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식 작가 ‘망우역사문화공원 101인, 그와 나 사이를 걷다’ 출간 /BreakNews 2023.7.8자 기사
유홍준이 추천한 망우리공원 이야기 “망우리공원 101인 인물사, 4번에 걸쳐 개정 ‘증보판’으로 만들다”
망우리공원은 작년 4월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이름을 새로 바꾸고 서울의 대표적인 역사문화공원으로 탈바꿈했다. 또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주변 환경과 적극적으로 교감하는 ‘중랑망우공간’이라는 공공건축물이 들어서서 역사와 문화를 품은, 아름다운 공원으로 단장했다.
기억의 공간이자 도심 속 휴양공간이며, 땅과 하늘, 자연과 도시가 한데 어우러진 풍경으로 거듭났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과정에서 김영식 작가가 지난 2009년 <그와 나 사이를 걷다>라는 저서를 출간해 망우리공원에 안치된 역사인물을 꾸준히 발굴하고 조명해 온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책 초판 발행 이후 망우리공원은 2012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선정 ‘꼭 지키고 싶은 우리의 문화유산’, 2013년 서울시 선정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고, 2016년에는 서울시가 예산을 들여 인문학 ‘사잇길’ 조성 사업을 펼쳐 묘를 찾는 이정표와 안내판까지 설치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망우역사문화공원’으로 발전해 왔다. 김영식 작가는 판을 거듭할 때마다 새로 발굴하거나 자료 부족으로 다루지 못했던 사실과 인물을 추가하면서 망우리 인물열전의 내용을 증보해 왔다. 최종 완결판에 해당하는 이번 개정 4판 <망우역사문화공원 101인, 그와 나 사이를 걷다>에서는 기존 내용을 수정 및 보완하고 23명의 인물을 추가했다.
그렇다면 이곳에는 얼마나 많은 역사 인물이 있을까? “지난 2006년 시점에서는 17명이 관리사무소의 리스트에 있었다. 2009년 처음 초판을 내며 40명, 2015년 개정 2판 때 50명, 2018년 개정 3판 때 60명을 소개했다.”라며 다시“2021년 서울 중랑구청 용역으로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망우리분과위원회가 7,000기에 가까운 묘역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41인의 유명인사(비석 9인 포함)를 추가로 밝혀냈다.”라고 했다. 결국 망우리에는 100명을 훨씬 웃도는 유명인사가 존재한다.
지난 3월 KBS 공영방송 50주년 기념 ‘예썰의 전당’ 프로그램에서는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명지대 교수와 함께 ‘기억을 걷는 시간–망우역사문화공원’편을 방송했다. 방송에서는 특히 우리나라 근현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잊힌 예술가 가운데 비극적인 생을 마치고 망우리공원에서 친구가 된 두 천재 예술가 ‘이인성’과 ‘권진규’를 소개했다.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한국의 고갱’ 이인성은 24살 어린 나이에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최고상을 수상하는 등 온갖 상을 휩쓸었고, 고향 대구에는 “달리기는 손기정, 춤은 최승희, 그림은 이인성”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아이콘이었다.
〈지원의 얼굴〉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조각가 권진규는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교 개교 80주년 기념으로 “졸업생 중 가장 예술적으로 성공한 작가”를 선정해 회고전을 열었을 때 그 주인공으로 선정될 정도로 우리 근대조각의 선구자였다. 방송에서는 방탄소년단의 RM 역시 권진규의 〈말〉이라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내용도 소개됐다.
그러나 이렇게 천재적인 두 예술가는 당시의 명성과 달리 현재 우리에게 낯설다. 어떤 이유로 그들의 명성은 이어지지 않았을까. 한편 ‘어린이들의 영원한 친구’이자, 살아서도 죽어서도 단짝이었던 두 예술가가 있다. 바로 ‘방정환’과 ‘강소천’이다.
방정환은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최초의 아동잡지 《어린이》를 발간하는 등 어린이의 인권 신장에 힘썼던 인물이고, 비교적 생소한 이름의 강소천은 〈코끼리 아저씨〉, 〈스승의 은혜〉 등 수많은 동요의 작사자로서 ‘어린이헌장’을 만든 인물이다.
유홍준 교수가 꼭 소개하고 싶은 특별한 분으로 언급한 묘는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다 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라는 묘비명과 묘 옆에 팔각백자항아리 조각이 있는 특이한 묘였다. 이 무덤의 주인공인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가 망우리공원에 잠들게 된 사연도 흥미롭다.
책에서는 방송에서 소개된 인물들의 삶과 사랑, 죽음과 관련된 더 자세한 내용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 독립운동가를 만나볼 수 있다. 망우리공원에는 화가 이중섭, 시인 박인환, 소설가 계용묵, 조각가 권진규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잠들어 있다.
특히 박인환 시인은 추모객이 많이 찾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유족의 참석 하에 해마다 추모제를 지내고 고인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헌신, 사랑을 되새긴다. 이번 <망우역사문화공원 101인, 그와 나 사이를 걷다>에는 박인환 시인이 종로에 열었던 책방 마리서사를 열었을 무렵 책방 앞에서 임호권 시인과 나란히 찍은 사진을 실었다.
임호권 시인은 해방기에 박인환과 함께 모더니즘 시 운동을 전개한 문인이다. 또 1950년대 명동 휘가로 다방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도 추가했다. ‘휘가로’는 조병화, 김수영, 박태진, 김광주, 전봉래 등 당시 문인들이 애환과 낭만을 나눴던 다방이다.
1930년 조선어학회의 맞춤법통일안 작성위원 신명균은 조선어학회의 중심인물로서 스승 주시경의 사망 후 대종교에 입교했다가 시인 조지훈에 따르면 교주 나철의 사진을 품은 채 자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글의 보급과 연구에 많은 일을 했음에도, 망우리공원에서도 파손된 비석만 남아 있어 비석만으로는 고인이 누군지 쉽게 알 수 없다.
애기똥풀, 금낭화, 바람꽃 등 식물에 우리말 이름을 붙인, 한국식물학의 선구자 장형두 선생. 일제강점기 우리 고유 식물의 학명은 일본이 독점하다시피 지었다. 장형두는 일본인 중심의 조선박물학회와 별도로 조선박물연구회를 조직하고 주체적인 연구에 나서서 우리 동식물에 우리말 이름을 붙인 인물이다.
애기똥풀, 금낭화, 바람꽃, 괴불주머니 등이 그가 새로 명명한 이름이다. 1936년에는 조선일보의 백두산탐험단에 식물학자로 참여해 새로운 종을 채집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방 후 서울사대 식물과 교수로 재직할 때 어이없게도 좌익혐의로 고문치사를 당했다.
우리나라 제2대 관상대장, 국내 최초 기상학박사 국채표.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기상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한 우리나라의 기반을 만든 선구자 국채표가 망우리 가족묘에 부모와 함께 있다. 1963년 12월 19일 한국기상학회를 발족해 회장에 취임하고 1964년 7월에는 「한국에 올 가능성이 있는 태풍의 중심시도와 진로의 예보법」이라는 논문으로 일본 교토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기상학으로는 국내 최초 박사였다.
조선말 외교의 중추적 인물이자 한성판윤에 5회 제수된 역관 변원규은 은둔의 나라 조선에 19세기 이후 외국의 문물을 소개하며 나라를 개화의 방향으로 이끈 주역 가운데 외교현장에서 활약한 역관들의 활약을 빼놓을 수 없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의 무덤은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음을 생각하는 공간이다. 이제는 더없이 중요한 역사의 공간이 된 망우리공원을 우리는 하나의 문화재로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청순한 산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날 때 이곳을 거닐다 보면,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아들임을 떠올리며 멀리 한강을 처연한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몇 차례 학생들과 여기를 답사 다녀왔고, 또 어느 해 봄엔 여기를 찾아갈 것이다.” 유홍준(전 문화재청장)
<망우역사문화공원 101인, 그와 나 사이를 걷다>의 저자인 김영식 작가는 번역가이며, 망우인문학자다. 지난 2002년 계간 ‘리토피아’수필부문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역서는 기러기(모리 오가이), 라쇼몽(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무사시노 외(구니키다 돗포), 조선(다카하마 교시), 산월기(나카지마 아쓰시), 쓘킨 이야기(다니자키 준이치로) 등이 있다. daipapa@hanmail.net
*필자/김수종
김수종 작가는 1968년생으로 대학에서 종가학문인 철학을 공부한 덕에 같은 줄기인 문학과 역사에도 관심이 많다. 주로 역사, 문화와 관련된 유물 유적과 지역을 둘러보면서 연구도 하고 글도 쓰고 있다. 서울 성북구에서 사진 찍는 아내와 대학생인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그동안 <열정과 집념으로 승부한다> <영주를 걷다> <역사 그리고 문화, 그 삶의 흔적을 거닐다> <지방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산다> 등을 집필하여 책으로 출간했다. 현재 민간 문화재청+환경부 역할을 하고 있는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NT)에서 문화유산위원회 위원, 망우리 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