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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雉岳山) 남대봉(1180m)을 가다.
글 쓴 이 棹 一 高 枓 永
10월24일, 가을비가 추~적 추~적 소리없이 나린다! 산행지(山行地)에는 괜찮아야 할 텐데... 차에 오르니 그래도 많은 회원님들이 참석 하셨다.(44명) 차례 차례 인사를 드리니 처음 오신분들도 많고, 오랜만에 참석한 분들도 많이 계신다.
동명(東明) 휴게소에서 간단히 조반(朝飯)을 들고는 잠시 안산(案山)을 바라보니, 높은산에는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어 나리고, 도로 주변(周邊)에도 제법 황엽(黃葉)으로 진행(進行)중이다!
의성, 안동을 지나니 날씨는 개이고, 단양에 이르러서는 아예 비가 오지도 않았다! 이리도 넓은 땅을 좁다니...? 원주에 가까워 질수록 멀리 다가오는 山川들은 황엽(黃葉)의 기운이 짙어서... 울~긋 불~긋 아름답기 그지 없다!
판부면(板富面) 금대리(金垈里) 입구를 지나 출발기점에 도착하니, 시계는 거의 11시가 다 되었다. 푸른 잔디밭에서 간단한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고 줄지어 오르니, 오늘은 산행 참석률이 많이도 저조하다.
“산악회(山岳會)”는 등산을 열심히 해야지! 관광(觀光)으로 온 것이 아닐진대... 모두들 산행 횟수가 더해갈수록 힘든 산행을 기피하는 것 같으이... 이것도 세월(歲月)의 연륜(年輪) 탓인가...?
따사로운 가을 햇볕을 받으며 영원골(鴒騵谷)로 접어드니, 개울에는 가을 가뭄에 물이 말라 크고 작은 돌들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다 부신다! 山川은 오색(五色)으로 물들어 화려하고, 개울에 돌들은 흰속살을 드러내고 허드러지게 웃는구나!
계곡이 깊어질수록 산 기슭의 여유로운 땅에는 어김없이 식당, 모텔, 전원주택, 까페 등이 들어 서 있어 보는눈이 심심치 않구나! 오늘도 선두는 최대장(6-1)이, 중간은 정국진 부대장(6-2)이, 후미에는 황재덕 수석부회장님(6-3)이 진행을 도우신다.
20여 분을 올랐을까? 후미에 서부장(서경철님)님께서 좀 전에 구경하시던 “꽃밭에 지팡이를 두고 왔다”면서 다시 내려 가신다. 2개의 가방을 메고 20여 분을 올랐을까? 뒤에서 소리치며 숨가쁘게 올라 오신다.
그는 노장님(74세)으로 초창기부터 우리 남산에 많은 협조를 해 주신분이라, 그 고마움을 잊을 수 없는 분이시다! 아직도 건강하시고 잘도 걸으셔서 일주일에 2번 정도는 산행을 하신단다.
“소변 볼 시간에 10리를 간다”드니... 그 새 회원님들은 얼마를 갔는지... 부지런히 걸어 영원사와 남대봉으로 가는 갈림길에서야 우리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남대봉으로 오르는 “영원골”은 계곡이 깊어서 여름철에는 피서객들로 넘쳐나는 곳이며, 낙엽수(落葉樹)도 울창하여 가을 단풍도 아름다운 곳이다. 얼마를 걸었을까? 유난히도 숲이 많은 마을에 하늘높이 솟은 나무가 ‘선홍색’의 단풍으로 물들어 있어, 가까이서 보니 150여 년이나 됀 “박달나무”다!
이렇게 큰 박달나무는 처음 보는일이며, “강원도 보호수(강원-원주-65)”로 지정되어 있다. 그 옆에는 “가람마을”이라는 돌비석이 세워져 있고, 그 뒤로는 “ㄱ"자로 됀 기와집 한 채와 일자로 됀 시멘트 건물들이 2동(棟)이나 보인다.
이 곳이 옛 “소쩍새 마을”이제! 지금은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인수하여 경기도 부근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인수 이전에는 “개인법인”으로 등록되어 독지가(篤志家)들의 후원금과 정부지원금으로 운영되었으며, 그 후원금과 정부지원금이 잘못 사용되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독지가들의 후원금과 국민들의 혈세인 정부지원금을 소중하게 아껴서 잘 쓰야지... 착복하면 안되지요! 그래야 아름다운 세상이 안 되겄심니꺼...?
“영원산성” 입구에서 후미의 회원님들과 합류하여 잠시 휴식하면서 안내판을 보니, 영원산성(사적 제447호)은 신라 문무왕때 축조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근거는 없으며, 1291년(충렬왕 17년) 원나라 합단군(哈丹軍)이 침입했을 때 향공진사(鄕貢進士)인 원충갑(元沖甲)이 원주 백성들과 이 산성에서 적군을 크게 물리쳤다.
또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는 원주목사(原州牧使) 김제갑(金悌甲)이 주민들과 끝까지 싸우다 전사한 곳이며, 전체 둘레는 약 2.4Km 정도라 적혀있고, 철조망으로 막아놓아 접근은 불가능하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해 즐거운 마음으로 쉬~엄 쉬~엄 오르니, 오를수록 경사는 더욱 가파르고, 등산개념도(登山槪念圖) 상에는 “아들바위”가 기록돼 있으나 어느 바위를 지칭하는지 모르겠도다!
산세(山勢)는 험하고, 명성에 걸맞게 과연 “치악산”이로구나! 하는 느낌이 들며, 오르는 계단마다 겨울철의 눈, 얼음에 대비하여 바닥에는 ‘폐타이어’를 잘게 썰어서 “짚 덕석”을 엮듯이 꼼꼼히 박아놓았다. 관계 당국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훗날 다시 오고픈 마음이 다 일어난다.
오르다 쉬다를 반복하며 7~8부 능선까지 오르니, 단풍은 이미 절정을 넘어서 달려있는 잎들보다 떨어져 쌓인 낙엽이 더 많도다! 자세히 보니... 노란색, 붉은색, 샛노란색, 빨간색, 회갈색 등 형형색색(形形色色)이 어우러져 온 산이 칼라풀(Color-ful)하다!
얼마를 올랐을까? 9부능선에 이르러서는 처음오신 안순경(안경순)님이 어찌나 힘들어 하시는지 더는 진행치 못하고, 휴식도 할겸 적당한 곳에서 후미에 8명(필자를 비롯하여 서부장님, 황부회장님, 최영수님, 무량덕보살님, 진여심보살님, 안순경님 등)은 가져온 도시락으로 점심을 드심니다.
게중에는 훌륭한 요리사가 두분이나 있어 어찌나 반찬이 맛있는지... 코다리찜, 월남쌈밥, 멸치볶음, 풋고추, 배추금치. 김무침 등 다 셀수도 없구나! 최영수님은 하도 맛있어 추가밥을 더 드신다!
식후 디저트로 사과, 배, 감, 커피, 코코아차 까지 드시니 늘 오늘만 같았으면... 얼마를 쉬다 다시 오르니 잘도 가신다. 10여 분을 더 올라 “상원사와 남대봉” 갈림길에서 서부장님과 안순경님은 상원사로 내려 가시고, 나머지 분들은 정상으로 향합니다.
정상에는 남산회원 10여명이 계셔서 “정상팻말과 산불감시초소”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잠시 사방을 둘러 봄니다.
남대봉(망경봉 1,180m)은 백두대간의 오대산 부근에서 서쪽으로 한강기맥(漢江氣脈)을 따라 계방산, 운무산, 대학산, 삼계봉에 이르러 다시 남쪽으로 태기산, 죽림산, 봉화산, 매화산을 거쳐 치악산 비로봉에 이르고, 다시 남동쪽으로 향로봉을 거쳐 남대봉(망경봉)에 이르며, 이어서 감악봉, 석기암을 지나 영월 부근의 태화산(1,027m)에서 그 맥을 남한강에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영월지맥이라 한다.
또한,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講林面)에는 고려말에 “운곡 원천석(耘谷 元天錫)”선생이 고려정치의 문란함을 보고 이곳 치악산에 들어 농사를 지으며 부모를 봉양하는 한편 목은 이색(牧隱 李穡) 등과 사귀면서 후학을 가르친 곳이다.
조선 태종(太宗)의 어린시절 가르친바 있어, 그가 즉위하자 자주 불렀으나 응하지 않아 직접 찾아갔으나 피하는지라 계석(溪石)에 올라 집지키는 할머니를 불러 선물(膳物)을 후(厚)히 주고 돌아가 아들 형(泂)을 현감(縣監)에 임명했다고 한다.
후세인(後世人)들은 그 “계석(溪石)”을 일러 “태종대(太宗臺)”라고 하였으며, 지금도 치악산(雉岳山) 각림사(覺林寺) 곁에 있다. 야사(野史) 6권(卷)을 저술(著述)하였으나 전(傳)하지 않는다.
이 외에도 치악산의 품은 넓고도 커서 북쪽으로는 구룡사(九龍寺), 남쪽에는 상원사, 서쪽으로는 영원사 등이 있어 천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을 사바세계의 전법도량(傳法道場)으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으니... 어찌 필설로 다하리요! 남으로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아련한 풍광을 바라보면서... 다시 상원사로 하산합니다.
10여 분을 걸어나려 상원사에 도착하니 “종각(鐘閣)”의 모습이 우뚝하고, 그 앞에 한그루의 장송(長松)이 무한(無限) 장광설(長廣說)을 하고 있다. “뜰 앞의 잣나무라”드니... 선(禪)세계의 진수(眞髓)를 보여 주심니다 그려!
일주문을 지나 산신각(山神閣)에 오르니 천하(天下)가 한눈에 다 내려다 뵈고, 전각(殿閣)앞에는 단단한 암반(巖盤)이 뭉쳐있어 그 기운(氣運)을 가늠할 수 없도다! 바로 아래는 계곡을 메워 심검당(尋劒堂)이 자리하고, 도량(道場)의 中心에는 대웅전이 정면3칸 측면2칸의 다포개팔작지붕형태로 지어져 있다.
그 우측으로 독성각(獨聖閣)이 자리하며, 마당(명당) 가운데에는 좌우로 적당한 거리를 두고 3층석탑이 있으며, 두석탑 가운데는 불상(佛像)뒤를 장식하던 광배(光背)와 받침석(石)인 대좌(臺座)가 모셔져 있다.
대웅전 왼쪽으로는 심우당(尋牛堂)이 있어 마음밭을 일구고, 소(眞如)를 찾는 도량(道場)이다.
안내판에 상원사(上院寺)는 신라 문무왕때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지었다는 설과 경순왕의 왕사(王師)였던 무착선사(無着禪師)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그 후 여러차례 중창(重創)을 거듭하였으나 한국전쟁(韓國戰爭)때 소실된 것을 1988년에 현재의 위치로 중창되었다고 적혀있다.
절 뒤에 거대한 암반으로 용맥(龍脈)이 들어와 적당한 곳에 대웅전이 세워져 있으며, 도량(道場)끝 부분에 거대한 종각이 있어 불법(佛法)의 진수(眞髓)를 사바세계에 널리 전(傳)하고 있슴이요!
게다가 종각 아래에는 도량 전체의 기운을 잘 받쳐주는 거대한 암반(巖盤)이 뭉쳐있어, 천하의 도량이요! 천하의 길지(吉地)로다! 연(連)하여 안산(案山)과 조산(朝山)격으로 백두대간의 연맥(連脈)들이 끝없이 펼쳐지시니... 과시(果是) 대장부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갈고 닦을만 하지 아니한가!
오고 가는 저 구름은 실체가 없슴이요
나고 죽는 인생사도 저 구름과 같아서
이내몸 저 형상들이 모두 헛것일 진데
오도 가도 않는 진여의 세계로 가리다!
법당에 들어 예배(禮拜)를 드리니... 불단(佛壇)위에 가불(假拂)이 진불(眞佛)을 보고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微笑)를 짓는다!
2시간여를 부지런히 걸어서 상원골(上院谷)을 나려오니, 계곡 좌 우측으로는 민박촌(民泊村)과 전원주택, 식당, 까페들이 즐비하다.
그 중에 “다그라스 민박”이라고 앙증스런 간판도 보이며, 또 귀한 “취나물”이 밭떼기로 심어져 있는 곳도 보이고, 심지어는 낙엽활엽교목(落葉闊葉喬木)인 “다릅나무”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넓은 주차장에 이르니... 광명한 밝음은 가을 어스름으로 스러지고, 낙엽 뒹구는 소리에 나그네는 소스라치게 놀람니다!
단기 4343년(서기 2010년) 10월 24일
원주시 치악산 남대봉(1,180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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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도 치악산 가을단풍이 보고싶어 산행신청을 했는데
시어머님이 별세 하셔서 상 중이라 가고싶어도 갈수가 없었습니다
회장님의 훌륭한 산행기를 보고 많은 위안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님! 시어머님 상(喪)에 상심함을 위로드리며,늘 건강하시고 다음산행 때 뵙겠슴니다.
남대봉 옆 사진이 아들바위라고 한다고 합니다...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에도 산행 후기를 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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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억이 나도록 상세히 적어 놓았으니 고맙기 끝이 없지요..
황까페지기님! '아들바위' 알려주셔 감사드리며, 보이지않는 수고에 깊은 감사를 드림니다.
궂은 날씨로 출발했지만 예상외로 좋은 날씨로 산행하기에 안성맞춤 이었습니다.
온통 단풍의 터널속으로 푹 빠져버린 지리산 남대봉...
향로봉을 기대는 했지만 못가서 한편으로는 섭섭한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영원사를 거쳐 남대봉 옆의 입석대가 장엄하게 자리잡고 상원사의 청정약수 맛 또한 장관 이었습니다.
산행후기를 다시보니 감회가 기쁩니다.
수고 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취산님의 산행실력이면 그날의 산행이 좀 부족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언제나 남산의 버팀목이 돼주셔서 고맙슴니다. 늘 건강하시고 많은 지도를 바람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