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의 양영자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중국의 ‘만리장성’을 하나하나 넘어 결승까지 진출해 한국탁구 사상 최초의 세계선수권 개인단식 은메달을 땄고 다시 87년 뉴델리세계선수권에서 후배 현정화와 함께 개인복식 우승, 개인단식 준우승의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그리고 88서울올림픽에서 현정화를 파트너로 해 복식 금메달을 따낸
후 89년 2월 정상에서 은퇴했습니다. 그러한 양영자 선수가 지금은 몽골의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한국국가 탁구선수를 꿈꾸던 그녀에게 중학교 2년 때 ‘테니스 엘보’가 찾아왔습니다.
탁구를 하면서 6년간 진통제를 맞았고 나중에는 진통제도 듣지 않아 사실은 83년 세계대회가 마지막 대회라 생각하고 출전했지만 귀국 후 기도원에서 기도로 고침을 받고 목사님 설교를 들으며 감격하고 회개하면서 탁구를 그만두고 ‘하나님의 종’이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꽃 피우는 것이 중요한 사명이란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탁구를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승승장구 하던 그녀에게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은퇴와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우환이 겹치며 우울증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에겐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우울증도 극복할 수 있게 되었으며 운명처럼 남편을 만났고 남편을 따라 그녀도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탁구선수가 아닌 선교사의 새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1995년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배우던 몽골어가 입에 익숙해지자 1999년 7월 그곳을 떠나 고비사막 지역인 생샨드로 향했습니다. 그녀는 탁구를 통한 전도를 하기로 하고 교육청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을 모집, 탁구교실을 여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이들의 관심은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섭씨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날씨에도 강당의 난방은 제대로 되지 않았고 라켓·공 등 물품들도 턱없이 부족해 어려움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한국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열악한 자연환경과 싸우면서도 선교사의 사명과 자신만의 재능을 가지고 7년을 사역했습니다.
그녀의 탁구 실력은 몽골에서 복음을 담는 귀한 그릇이 됐습니다.
현지 교회를 세우는 한편 몽골의 3개 탁구 클럽을 이틀씩 순회하면서 탁구를 가르치고 토요일에는 한자리에 모아 예배를 드리고 팀별 시합을 벌였습니다. 물론 푸짐한 선물도 준비해서 양 선교사도 즐겁게 사역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매달 한국정부로부터 받는 100여만 원의 체육연금을 어느 노목사 앞으로 돌려놓았습니다. "연금에 의지하게 되면 기도가 약해지고 오히려 사역에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양영자 선교사는 그의 삶에 일어난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며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누렸던 탁구선수로서의 영광스러운 삶 때문이 아니라 버림받은 듯 고통 속에서 헤매는 수많은 몽골 인들에게 베푸는 자기희생 때문입니다.
줄 때 얻는 행복이 받을 대 얻는 행복보다 더 값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개정 눅 6:38] |
첫댓글 감동스토리네요...주라 그리하면 너희엑 줄 것이니..난 꼭 쥐고 있는게 너무 많은데..애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