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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현 순례사적지 사랑♥
 
 
 
카페 게시글
……―수도회소개 스크랩 예수의 꽃동네형제회, 자매회
레몬트리 추천 0 조회 200 12.10.08 10:2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웃을 주님처럼 섬기며 사랑의 영성 꽃피워...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이들에게 사랑 베풀어
음성 사랑의 집 시작으로 국내외 12곳서 꽃동네 운영
사랑의 연수원 등 통해 행복, 교육사도직에도 심혈


사랑의 집에 들어섰다. 음성 꽃동네 부랑인 요양원 가운데 하나다. 사랑의 집은 단순히 요양원만은 아니다. 꽃동네의 정체성을 이루는 시설이어서다.

 거동이 가능한 어르신들이 사는 사랑의 집을 시작으로 지적 장애인과 와상환자들의 보금자리 요한의 집, 여성 부랑인시설 애덕의 집, 부랑인 일시 보호시설 아나빔의 집, 재활이 가능한 부랑인들이 사는 신ㆍ구 평화의 집과 소망의 집 등이 차례차례 세워졌다. 아직도 음성 꽃동네 가족 2150여 명 가운데 800여 명(37%)이 부랑인 요양원에 둥지를 틀고 있다.

 

▲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 자매회 상징문양. 흰색 바탕은 성부를, 가운데 큰 별은 성자를, 빛은 성령을, 작은 별 4개는 꽃동네회원과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 예수의 꽃동네 자매회, 예수의 꽃동네 재속회원이라는 인적 구조와 함께 복지ㆍ행복ㆍ교육ㆍ사랑 사도직을 각각 의미한다.


 
 7개 부랑인 요양원을 모두 관장하는 박동열(필립보) 수사는 마침 사랑의 집 복도에서 장맛비처럼 거센 빗방울을 피해 나른한 오후의 권태를 즐긴다. 활짝 웃으며 꽃동네 가족들과 팔씨름을 하기도 하고, 부랑인 출신 형제가 듣던 mp3 이어폰 한 쪽을 빼 자신의 귀에 가져다 대고 70ㆍ80년대 가요를 함께 들으며 공감한다.

 "부랑인하면 게으르고 나태하고 술만 좋아한다는 세상의 편견을 깨는 게 가장 힘들어요. 이분들을 한 분 한 분씩 치료해야 하는데 생활지도원은 고작 50명당 1명씩 지원될 뿐이지요. 나머지는 수도회에서 충당하지요. 국고지원은 늘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우리 수도회는 부랑인 요양원을 결코 포기할 수 없어요. 이분들이 바로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들 가운데 중환자는 인곡자애병원으로 이송한다.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 원장이자 인곡자애병원 의무원장인 신상현(야고보) 수사와 함께 신장투석실에 들어서자 거동을 하지 못하는 하반신 마비 환자 오희열(아녜스, 56)씨는 묵주를 들고 열심히 기도를 바친다. 꽃동네 가족들과 의료진, 수도자들을 지향으로 바치는 기도란다. 곁에는 사지가 마비된 오리노(14)군이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8년째 투병 중이다. 병실 입구엔 신 수사만 보면 서울역으로 데려다달라고 조르는 이병렬(아우구스티노, 65)씨가 휠체어를 탄 채 길을 막고 있다.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부랑인들을 섬기는 건 수도자들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꽃동네는 한 사람도 버려지는 사람이 없는 세상, 모든 사람이 하느님같이 우러름을 받는 세상,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세상을 꿈꾼다.

 

▲ 인곡자애병원 의무원장 신상현(왼쪽) 수사가 안정현 수녀와 함께 전립선암으로 방사선 치료를 받고 있는 배복수 루스티코씨를 보살피고 있다.


▲ 부랑인 요양원장 박동열(오른쪽) 수사가 꽃동네 가족들이 팔씨름을 하자 즉석에서 심판을 보고 있다.



 발길을 노인전문요양원으로 돌렸다. 이언주(요한) 수녀는 어르신 요양환자들 가운데서도 중증환자들이 몰려 있는 3ㆍ4층 담당이다. 거동이 불편해 누워만 있는 와상 환자들, 식사를 하지 못해 튜브로 코를 통해 유동식을 넣어줘야 하는 환자들을 주로 보살핀다. 힘겨울 법도 한데 웬걸, 이 수녀는 아주 즐겁다고 전한다. 차를 타고 꽃동네를 한 번 돌아보거나 깨끗한 환자복 한 벌 갈아 입혀주는 작은 일에도 행복해하는 요양환자들과 함께 살다보면 행복 바이러스가 자신에게도 번져오는 느낌이란다.

 28년째 꽃동네에 사는 뇌성마비 장애인 김인자(체칠리아, 72) 할머니는 노인전문요양원 4층 병동의 스타. 이 수녀와 함께 병실에 들어서니 김 할머니는 노트북을 평상에 올려놓은 채 발가락으로 마우스를 움직여 인터넷 카드 게임을 즐기고 있다. 게임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머쓱한 표정을 짓던 김 할머니는 배시시 웃으며 반가워한다.

 "할머니, PC 게임 너무 오래 하지 마시고 하루에 두 시간만 하세요."

 "알았어. 하지만 재미있으니까 시간 가는 줄을 몰라!"

 이 수녀와 김 할머니의 대화는 게임얘기에서 일상사로 흘러간다.
 
 음성 꽃동네엔 이뿐만 아니라 정신요양원, 심신장애인요양원, 아동복지시설, 입양기관, 인곡자애병원 등이 몰려 있다. 전국적으로도 옥천과 청주, 가평, 강화, 서울 등에 요양원과 부랑인 시설 등을 운영한다. 해외에서도 필리핀과 미국, 방글라데시, 우간다, 인도, 아이티 등에 진출해 가난의 영성을 꽃피운다.

 그렇지만 이같은 사회복지 사도직은 '사후약방문' 격이다. 그래서 한 사람도 버려지지 않도록 사랑의 결핍을 치유하는 '행복 사도직'을 시작했다. 1996년에 설립한 '사랑의 연수원'을 통해서다. 해마다 15만 명이 찾아와 개인과 가정, 국가, 인류의 행복을 배운다. 특히 꽃동네 가족들과의 만남을 통한 사랑 체험, 시ㆍ청각, 하반신마비를 직접 실연해보는 장애체험 등은 눈물바다를 이룰 정도로 폭발적 호응을 얻고 있다.

 현미영(야고보) 수녀는 "일주일에 2박 3일씩 1400여 명이 다녀가는데 최근엔 자살을 하려던 한 학생이 가족에게조차 버려진 꽃동네 가족들을 보고 장애체험을 하고 난 뒤 자신이 가진 게 너무 많다고 눈물로 고백하는 걸 보며 모두 운 적도 있다"고 전한다.

 

▲ 2박 3일 일정으로 사랑의 연수원을 찾아 연수를 한 하남 신장고, 전주 한국전통문화고 학생들이 수도자들에게서 최귀동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다.



 행복 사도직과 함께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ㆍ자매회는 꽃동네대학교와 꽃동네학교를 통해 그리스도 사회복지 전문가를 길러내고 학령기가 됐는데도 교육을 받지 못하는 꽃동네 아동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 아울러 피정의 집인 '꽃동네 사랑의 영성원'을 통해 사랑 사도직을 펴고 있다. 하느님 사랑을 연구하고, 가르쳐 주며, 사랑을 체험하는 장이다. 나아가 지난해 5월 일주일 과정 '행동하는 사랑 학교(Love in Action School)'를 개설,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사랑 체험교육을 실시했다.

 신상현 원장수사는 "우리를 위해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흘리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 성심을 따라 세상에서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이들의 고통과 죽음을 대신하는 가난의 영성을 사는 게 바로 우리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ㆍ자매회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 자매회 역사와 영성

 

▲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 자매회 설립자 오웅진 신부.



1976년 9월 12일. 청주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은 지 4개월 만에 무극(현 금왕)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오웅진 신부는 최귀동(호적명 경락, 베드로) 할아버지와 운명적 '만남'을 갖는다. 자신 또한 걸인이면서도, 병들어 구걸조차 하지 못한 채 무극천 다리 밑에서 죽어가는 걸인 18명을 먹여 살리는 최 할아버지에게서 오 신부는 진한 감동을 받는다. 이에 1976년 11월 무극성당 뒤 용담산 기슭에 사랑의 집을 짓고 이들을 데려오면서 꽃동네가 시작된다.

 오 신부가 설립한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ㆍ자매회의 영성은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마태 25,40)이라는 말씀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는 말씀에 주춧돌을 둔다. 또 오 신부가 1978년 8월 16일 증평 반탄교 다리 위에서 만난 걸인을 자신의 차에 싣고 달려가던 중에 겪은 특별한 신앙 체험에서 비롯된 하느님과의 '새로운 계약'을 머릿돌로 삼는다. 그 새로운 계약은 신앙 체험 중에 오 신부가 들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내 이름으로 맞아들이면 나머지 것은 모두 책임져 주겠다"는 말씀에 압축돼 있다.

 오 신부는 이 새로운 계약에 따라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자신의 사제관 단칸방 침실에 모셔 돌봤다. 이어 1979년 말 무극성당 뒤 가옥을 구입해 애덕의 집을 설립하고 여성환자들을 돌봤다. 그러던 중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위해 삶을 투신하겠다는 일꾼들이 하나둘 생겨나 공동체 기초를 놓게 됐다.

 1980년 꽃동네가 공식 설립돼 사도직 기반이 마련됐고, 꽃동네 영성에 공감한 봉사자들을 중심으로 1986년 12월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와 자매회가 설립됐다. 남녀 지원자 8명으로 시작된 형제회와 자매회는 현재 형제회원이 종신서원자 57명을 포함 총 85명, 자매회원이 종신서원자 179명을 포함 총 225명인 교구 소속 수도회로 성장했다. 재속3회원도 800여 명이나 된다.

※성소모임(www.kkotbs.or.kr)

 ▲매달 셋째 주 토요일 오후 7시~주일 오후 4시 꽃동네(충북 음성군 맹동면 인곡리 산 2의29)
 ▲문의 : 예수의 꽃동네 형제회 043-879-0280( 담당 김태완 야고보 수사), 예수의 꽃동네 자매회 043-879-0283(담당 소신동 안드레아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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