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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2021년 11월 28일 주일 설교
제목 : (Revival With COVID19)4. 그래! 교회는 진짜 ‘빛과 소금’이었어!
본문 : 마태복음 5장 13~14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 데에도 쓸데없어 밖에 내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마태복음 5장 13~14절, 공동번역>
샬롬! 한 주 간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건강하고 평안하게 보내셨습니까? 어느덧 11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제 2021년도도 열한달이 지나가고 며칠 후면 마지막 12월을 맞이합니다. ‘벌써 열한달이 지나갔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 2021년도가 한 달이나 남았습니다. 오늘 주일부터 한 달 남짓 남은 이 2021년도를 하나님 안에서 의미 있고, 멋지게 마무리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은 11월부터 시작된 단계적 일상 회복과 함께 교회의 회복, 교회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Revival With COVID19’를 표어로 하는 마지막 시간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시간은 ‘무관심증후군에서 벗어납시다’, 두 번째 시간에는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하는 걱정은?’ 에 이어 세 번째 시간에는 ‘오히려 축복해주고! 기도해주고!’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네 번째 시간에 나눌 말씀 제목은 “그래! 교회는 진짜 ‘빛과 소금’이었어!” 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공동번역으로 준비된 마태복음 5장 13~14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만들겠느냐? 그런 소금은 아무 데에도 쓸데없어 밖에 내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마을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마태복음 5장 13~14절, 공동번역>
혹시 여러분은 그런 순간이 있으셨습니까? 성경을 읽고 있었는데 어떤 구절이 가슴에 날아와 비수처럼 꽂히는 순간 말입니다. 아니면 그 성경구절을 외우려고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떠오르는 경험 말입니다. 진짜 말씀이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시는, 소위 ‘말씀이 운행하시는’ 체험 말입니다.
저도 오랜만에 얼마 전 주일 오후에 그런 경험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주일 예배를 힘 써 드리고 동역자들과 교제를 나눈 후 집에 돌아와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읽다가 저도 모르게 정말 제 스스로 이마를 탁 치게 만든, 그것도 제법 강하게 치게 만든 한 구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마태복음 5장 13절입니다. 그것도 늘 읽어 왔던 앞부분의 구절이 아닌 사실 평소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뒷부분의 구절에서 제 이마를 제 손으로 탁 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곧이어 누군가에게 뒤통수도 한 대 탁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 구절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밖에 내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 <마태복음 5장 13절C, 공동번역>
한참을 이 구절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런데 읽을수록 참 아픈 구절입니다. 왜냐하면 말씀대로 된 것처럼 느껴지는 오늘날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교회를 향한 세상의 발길질은 이 구절처럼 느껴지게 하기 충분합니다. 세상의 소금으로 짠 맛 제대로 발휘하며 부패를 막고 더 맛깔나게 만들어지도록 세워진 교회들이, 그 짠 맛을 잃어버리고 나니 정말 아무데에도 쓸데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질책도 해왔습니다. 질책과 동시에 변하는 모습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변함없이 똑같은 모습을 보이자 사람들은 외면하기 시작했고, 이윽고 밖에 내버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무관심의 영역에 들어선 것입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귀하게 여긴 적이 언제였는지 잊어버리고는 짓밟고 다니는 순간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정말 짓밟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짓밟고 있는 현실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이마를 세게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모습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피할 수 없는 평가입니다.
생각해보니 '빛'이라는 말과 '교회'라는 말이 주는 어울림은 이제 옛 추억으로 사라지고 있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세월이 흐를수록 드러나야 마땅한 교회의 Identity는 이제 더 이상 드러나지 않고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차라리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도록 어둠과 손잡은 것은 아닌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빛과 교회’, ‘빛의 교회’, ‘빛된 교회’, ‘빛을 발하는 교회’, ‘어둠을 사라지게 만드는 빛나는 교회’ 등의 단어는 더 이상 사람들의 뇌리 속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가 아닐까 깊은 고민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빛이 아니라 어둠에 더 가까워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둠과 교회’ 정말 생각하기도 싫은 조합이 바로 이 단어의 조합임에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조합이 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빛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모든 어두움을 몰아내시고 우리 가운데 영원히 지지 않을 빛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그 빛을 계속해서 이 세상에 비추기 위해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부터인가 그 빛을 특정인에게만, 특정한 곳에만 비추기 시작했고, 결국 교회 스스로에게만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온 세상을 밝히던 등대는 이제 스스로를 겨우 밝히는 아주 작은 촛불이 되어 그저 말 아래 있는 등불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네. 인정하기 어렵지만 인정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더 이상 교회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그렇다고 교회가 빛과 소금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교회만 비추는’ 빛이 되고, ‘짓밟힌’ 소금이 되어 있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만 비추고 있는 빛이기에 빛이라고 우리는 부르고 싶진 않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빛이라 말씀하십니다. 짓밟힌 소금은 쓸데가 없어서 우리도 외면하고 싶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가치를 지닌 소금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빛을 거두어 가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여전히 빛입니다. 빛이 비추고 있는 방향이 등경 위가 아닌 말 아래이기 때문에 제대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빛을 비추어야 하는 방향을 잃어버린 빛입니다. 우리들은 여전히 소금입니다. 하지만 짠 맛을 잃어버리고 아무 쓸모가 없어진 것 뿐입니다. 혹시라도 왜 짓밟는가? 화 낼 필요가 없습니다. 이건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소금이 그 역할을 못하면 짓밟히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짓밟히는 이유는 소금으로서 그 역할을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정하기 어렵지만 인정해야 합니다.
이미 사람들은 교회에 대해서 실망할 대로 실망한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단순히 이번 '코로나19'라는 긴 고통의 시간을 보내는 시기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화평하며, 화목하며, 손잡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가장 첫 번째 단체인 교회가 번번이 부딪히는 모습을 보입니다. 번번이 이기적인 결단을 내립니다. 그리고 '핍박'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계속 빛과 소금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교회가 말입니다. 일부의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짓밟고, 어둠의 시대가 되어가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있는 교회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빛의 방향성을 회복하고, 다시 소금으로 사용되어 질 수 있을까요? 함께 골로새서 4장 6절이 들려주는 말씀에 한번 귀 기울여 보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말은 소금으로 맛을 내어 언제나 은혜가 넘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마땅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4장 6절, 새번역>
과연 교회가 말에서부터 맛을 내어 언제나 은혜가 넘치게 하고 있는지부터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부터 돌아보아야 합니다. 은혜와 축복의 말, 위로와 소망의 말, 사랑의 언어가 아니라면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느새 부터인가 모르게 침투한 세상의 언어로 표현하지 말아야 합니다.
남을 해치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마십시오. 오히려 기회 있는 대로 남에게 이로운 말을 하여 도움을 주고 듣는 사람에게 기쁨을 주도록 하십시오. <에베소서 4장 29절, 공동번역>
예수님처럼 세상이 더욱 사랑으로 살만한 세상이라는 말을 선포해야 합니다. 소외와 외로움이 사라져야 한다고 외쳐야 합니다. 더불어 함께 은혜가 넘치게 하는 세상으로 만들어가자고 소리를 내야 할 몫이 우리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혹여라도 쓴 맛을 내게 하고, 분노를 자아내도록 만드는 ‘언어’로부터 먼저 부딪히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사람의 모든 말과 천사의 말을 할 수 있을지라도, 내게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될 뿐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 1절, 새번역>
그런데 이렇게 해야 할 대단한 이유는 없습니다. 무슨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단지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무슨 이유가 필요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빌립보서 2장 5절, 공동번역>
정말 중요한 것을 하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짓밟힘 당한 것도 아프지만 사실 더 아픈 사실이 있습니다. 밖에 버려져 짓밟힘 당할 때까지도 우리가 맛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무감각 했던 모습 말입니다. 우리는 이 무감각에 대해서 진심으로 더 아파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고, 교회라고 하지만 왜 그리스도인답게, 왜 교회답게 행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슬픔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 <골로새서 3장 12절, 새번역>
이어서 이 말씀에도 한 번 귀 기울여 보시고 주목해 보시겠습니까?
빛은 모든 선과 정의와 진실을 열매 맺습니다. <에베소서 5장 9절, 공동번역>
과연 교회가 선과 정의와 진실이라는 열매를 맺고 있는지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저는 요즘 들어 '빛의 사자들이여' 라는 찬송가를 부를 때마다 자꾸 고개가 숙여지고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정말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정말 빛의 사자가 되고 싶습니다. 악으로 가득 찬 세상을 밝게 비추어 ‘선’이라는 열매를 맺고, 불의가 가득한 이 땅을 비추어 ‘정의’라는 열매를 맺고, 거짓과 불신이 가득 찬 세상 속에서 ‘진실’이라는 열매를 맺는 그런 교회,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꿈꿔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이미 악이 있고, 우리 안에 이미 불의가 가득하고, 우리 안에 이미 거짓과 불신이 가득하다면 우리가 심고 있는 것이 빛이 아니라 어둠이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심는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교회여! 그리스도인이여! 이제부터라도,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진짜 교회가 빛과 소금이라는 것을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맛을 잃긴 했어도, 말 아래 두긴 했어도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빛과 소금’입니다. 부디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서는 흔들리지 마시길 소망합니다. 절대 흔들리실 필요 없습니다. 나는 빛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는 소금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빛과 소금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그렇게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우리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세상도 우리가 그런 빛과 소금이라는 존재임을 알게 해야 하는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 숙제를 통과하는 방법은 딱 하나, 바로 예수님이 명하신 그 이름대로 살아내는 ‘삶’ 그것뿐입니다. 진짜 빛이 되어, 진짜 소금이 되어, 빛과 소금으로 살아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지레 겁먹고 어렵다고 생각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의외로 간단합니다. 말 아래를 비추던 빛을 등경 위로 올리면 됩니다. 교회만을 비추던 빛을 세상으로 돌리면 됩니다. 특정인, 특정 지역이 아닌 다시금 전 세계를 비추는 빛이 되도록 빛의 방향을 수정하면 됩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돌릴 수 있습니다.
아주 쉬운 일입니다. 소금은 빛보다 더욱 더 간단합니다. 짓밟혔던 과거는 과감히 버리십시오. 지금부터 맛을 내면 됩니다. 소금답게 짜지면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본분대로 말씀을 실천하면 짜게 변합니다. 가장 하나님의 소금다운 삶은 하나님이 말씀하셨던 것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누군가는 성경을 읽는 일로부터 소금기가 돋아나기 시작할 것이고, 누군가는 옆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부터, 누군가는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손을 내미는 것부터, 누군가는 주일예배를 회복하는 것부터, 누군가는 잘못한 이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부터, 누군가는 오늘을 감사하는 기도를 하는 것으로부터, 각자 소금기가 돋아나는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소금기가 돋아나기 시작하여 다시금 우리 동네, 우리 지역, 우리 도시 나아가 이 땅 '대한민국'을 맛깔나게 하는 '국'으로 만들 소금이 되어 주십시오. 그래서 그 상에 둘러앉은 모든 이들에게 은혜가 넘쳐나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할 수 있는 ‘빛과 소금’이 바로 당신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바로 당신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13절과 14절을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우리에게도 오늘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래! 교회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짜 ‘빛과 소금’이었어!” 새삼스럽게 한 번 외쳐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선포합니다.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고,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명하신 세상의 소금이고,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세상의 빛입니다.
그러니 소금답게, 빛답게 살아주십시오. 왜 교회가 어둠이라고 하는지 화내는데 시간을 뺏기실 필요가 없습니다. 왜 교회를 자꾸 짓밟느냐고 화내는데 시간을 빼앗길 필요가 없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다시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때 말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저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시작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교회여! 그리스도인들이여! 이제 진짜 빛과 소금이라는 것을 알게 할 때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많은 이들에게 이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래! 진짜 교회는 이 땅의 ‘빛과 소금’ 이었어!”
마지막으로 오늘은 특별히 유니즌의 ‘맛 잃은 소금’이라는 찬양 영상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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