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주요 부품 중에 승차감과 핸들링 특성에 영향을 미치는 부품인 서스펜션은 그 종류와 역할이 매우 다양하다. 섀시 분야의 꽃으로 불리기도 하는 서스펜션은 각 메이커마다 다양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형상과 종류, 부품 구성에 따라 나뉘는 서스펜션은 타이어와 휠 등 다른 부품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서스펜션(suspension)은 자동차 차체의 무게를 받쳐 주는 장치로 해석할 수 있다. 댐퍼(쇼크업소버)와 스프링을 기본으로 형식에 따라 멀티링크, 더블 위시본, 맥퍼슨, 스트럿 등등으로 구분되지만 서스펜션의 기본 역할은 간단하다. 서스펜션은 사람으로 따지면 허리 아래 하체의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서스펜션의 역할과 기능
서스펜션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사전에 설명된 것처럼 차체를 떠받치는 일이다. 차체를 땅바닥에서 들어 올려 타이어가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옛날 가마에서는 가마꾼이 서스펜션 역할을 했다. 수레에서 바퀴와 차축, 차축을 차체에 고정하는 기구가 서스펜션이다.
가장 기본적인 역할 다음 기능은 승차감을 좋게 하는 것이다. 바퀴를 차체에 직접 고정했더니 땅바닥의 돌부리나 파인 곳이 그대로 충격으로 전달되어서 승객이 불편하고 쉽게 피곤해졌다. 다시 가마로 예를 들자. 가마는 길이 울퉁불퉁하면 가마꾼이 알아서 조심스럽게 간다. 가마를 받치고 있는 가마꾼은 발목이나 무릎, 허리, 팔 등 관절과 근육 전체를 이용하여 충격을 흡수한다. 마님에게 혼날 수 있으니까.
초창기 바퀴 달린 수레에는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장치가 없고 바퀴를 수레에 고정하는 역할만 했다. 그래서 바퀴에 가죽을 입히거나 (타이어의 원조), 차축 고정부에 가죽이나 부드러운 나무를 끼웠다 (부싱의 원조). 그러다가 나중에는 활처럼 탄성이 있는 나무 또는 쇠판을 가로로 놓아 충격을 흡수하게 했다. 이것이 오늘날 트럭 등 대형차에 많이 사용되는 판스프링의 시작이다.
그런데, 스프링에 올려놓으니 꼭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차체가 출렁거려 멀미가 났다. 스프링이 충격을 흡수한 다음에 다시 반대로 내뱉는 반작용이 문제였다. 게다가 이 반작용이 반복되는 스프링 진자 운동은 차체를 (반대로 보면 바퀴를) 계속 왕복 운동시키면서 흔드는 것이었다. 가장 좋기는 충격을 흡수만 하고 반작용이 없는 것이겠지만, 이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지금은 꼭 그렇지도 않지만). 그래서, 이 진동의 크기를 줄이고 횟수도 줄여보자 하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 댐퍼다.
댐퍼는 진동을 줄이는 기구라는 기계의 입장에서 쓰는 용어이고, 승객 입장에서 본 말은 쇼크업소버라는 충격을 흡수하는 장치이다. 필자는 댐퍼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 충격을 흡수하는 것은 스프링이나 부싱, 타이어, 심지어는 시트도 하기 때문이다.
댐퍼는 초창기에는 마찰을 이용한 마찰 댐퍼(friction damper)였는데, 작동이 부드럽지 못하고 마찰열이 발생해 심한 경우에는 불이 나기도 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마찰 댐퍼의 마찰면에 윤활유를 바르기 시작하다가 아예 오일을 실린더에 채워서 저항체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오일 봉입식 댐퍼, 유압식 쇼크 업소버의 시작이다.
주행 안정성의 핵심
자동차의 주행 안정성은 접지력에서 나오며, 접지력은 바퀴와 노면 사이의 마찰력에서 나온다. 만일 바퀴가 어떤 이유에서든 노면에서 떠오르면, 접지력은 0이 되며, 주행 안정성도 완전히 사라진다. 좀 전에 달리던 방향으로 ‘날아갈’ 뿐 방향을 바꿀 수도, 가속이나 제동도 불가능해진다.
서스펜션의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가 ‘바퀴를 땅에 잘 붙어있게 하는 것’으로 접지력을 최대한 일정하게 유지해 주행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요즘의 자동차 서스펜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 영역이다.
1980년대까지 서스펜션의 발전을 이끌어왔던 첫 번째 영역은 기계적 구조의 발전이다. 서스펜션의 형상과 작동 메커니즘을 분석, 설계함으로써 바퀴가 오르내리더라도 주행 안정성을 해치는 휠 얼라인먼트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서스펜션 구조는 단순한 차축식부터 복잡한 멀티 링크로 발전한다.
두 번째 영역은 댐퍼의 성능 향상이다. 처음에는 유압 오일로 저항을 일으켜서 스프링의 바운싱과 진동을 흡수하는 오일 봉입식 댐퍼가 주종이었으나, 급격한 운동시 저압측에 오일에 기포가 발생하는 캐비테이션 현상으로 그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문제가 발견되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댐퍼 안에 고압의 질소 가스를 충전해 오일에서 기포가 발생하는 현상을 방지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가스식 쇼크업소버이다. 구조적으로 다양한 형태가 선보인 이후 전자 기술이 발전하면서 서스펜션 역시 급격한 변화를 맞는다. 하드웨어에 의존했던 시대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의 시대가 온 것이다.
전자 제어 서스펜션의 시대
이전 서스펜션은 노면의 요철과 차량의 주행 자세의 변화, 그리고 타이어에 가해지는 힘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소극적, 수동적으로 접근했다면, 전자 제어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서스펜션이 적극적,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서스펜션을 아무리 정교하게 설계해도 노면이나 운전 방법이 달라지면 적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자 제어가 개입한 순간부터 차의 수비 범위가 급격하게 넓어졌다. 전자 제어 서스펜션은 세미 액티브 서스펜션과 풀 액티브 서스펜션 등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세미 액티브 서스펜션은 전자 제어식 댐퍼를 이용하여 감쇄력을 능동적으로 조절하는 방식이다. 단, 스프링은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사용한다. 네 바퀴의 감쇄력을 함께 조절해 승차감을 변화시키는 초보적인 단계부터, 코너링 시 부하에 알맞게 네 바퀴의 댐퍼 감쇄력을 모두 제어하는 방식까지 다양하다.
초기에는 댐퍼 오일이 통과하는 밸브의 넓이를 조절하는 방식을 사용하였으나, 21세기 들어서는 댐퍼에 전도성 오일을 사용하여 전기 신호에 따라 오일 자체의 감쇄력을 변화시키는 마그네틱 라이드 방식이 소개되었다. 기존의 밸브 조절식은 저렴하다는 이점은 있으나, 반응 속도가 느리며 가혹한 상황에서는 오일이 과열되어 제어 능력이 저하되는 문제가 있다. 마그네틱 라이드는 거의 즉각적이라 할 수 있는 반응이 가장 큰 장점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하나의 코너를 통과하는 도중에도 연속적으로 감쇄력을 조절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마그네틱 라이드는 감쇄력 조절을 위해 움직이는 기계 부품이 없으므로 신뢰성이 높다는 장점도 있다. 밸브 조절식 세미 액티브 서스펜션을 최초로 도입한 차는 일본 미쓰비시의 1987년형 갤랑이며 마그네틱 라이드는 2006년 아우디 TT가 최초로 선보였다.
풀 액티브 서스펜션은 댐퍼는 물론 스프링까지 함께 능동 제어하는 방식이다. 초기의 액티브 서스펜션은 오프로드 주행을 중심으로 차의 높이를 조절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었다. 그 다음으로는 적재 상태에 관계없이 일정한 높이를 유지할 수 있다면 주행 성능이 한결같다는 점이 액티브 서스펜션의 목적이 되었다. 롤링을 비롯한 자세 변화를 능동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면 코너링이나 가속, 감속시에도 차의 주행 안정성이 비약적으로 향상된다는 점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이를 위하여 조절식 댐퍼 이외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이 에어 스프링이다. 에어 스프링의 가장 큰 장점은 강철 스프링과 같은 진동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비단결 같은 승차감을 만들 수도 있으며, 스포츠카를 능가하는 코너링 성능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안전하지만 조종 성능은 좋지 못하다고 평가되던 구형 볼보 760에 실험적으로 시제품 액티브 서스펜션을 탑재했던 적이 있다. 코너링 시 마치 비행기처럼 안으로 기울어지도록 서스펜션이 설정되어 있는 극단적인 액티브 방식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당대 최고의 스포츠카인 포르쉐 911에게 결코 뒤처지지 않는 코너링 성능을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설정은 사용되지 않는다. 왜냐 하면 운전자가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코너링 시 차체가 바깥으로 기울 것으로 예상한다. 이 예상과 다른 움직임에 맞닥뜨리면?아무리 물리학적으로는 이상적이라도?인간은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액티브 서스펜션이 적용된 차들은 코너링 시 바깥쪽으로 아주 약간의 롤링을 보이는 정도로 타협하고 있다.
서스펜션의 미래는 통합
미래의 자동차가 어떻게 발전할까 알고 싶으면 부품 회사들을 눈여겨보라. 부품 회사들은 미래 자동차를 위한 기술들을 미리 개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답을 미쉐린이 보여주고 있다. 미쉐린은 21세기 초부터 ‘액티브 휠’이라고 하는 통합 제어형 타이어의 컨셉트를 소개했다. 이는 전기차를 전제로 한다. 전기차가 되면 엔진이 중앙에서 동력을 공급할 필요가 없다.
바퀴마다 모터를 달고 직접 구동하면 변속기와 구동계가 사라지므로 효율 향상과 경량화가 비약적으로 이루어진다. 미쉐린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모터의 동력을 직접 제어하면서 트랙션 컨트롤과 에너지 회수 제동 장치를 구동 모터와 일체화하고, 서스펜션 제어용 모터를 장착해 휠 안에서 서스펜션의 액티브화를 끝내도록 고안한 것이다. 멀티링크와 같이 복잡한 서스펜션 기구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미쉐린 액티브 휠을 차체에 달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뜻이다. 이것이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트렌드는 확실하다. 그것은 바로 ‘컴퓨터에 의한 통합 능동 제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