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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벤보리 간증1(영계에서 만난 루터·멜랑히톤(루터의 동역자)·칼빈,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https://youtu.be/07wiaERqlrM
스데벤보리 간증2(영계에서 만난 루터·멜랑히톤(루터의 동역자)·칼빈, 유튜브 교회 #활공교회)
https://youtu.be/SoPG-Hw_Ejs
찬송가: 205 주 예수 크신 사랑
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벧전3
6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8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4
(이 구절에도 천주교의 영옥은 아니더라도 중간계를 인정하지 않은건 문제, 카톨릭과 전쟁으로 개신교는 무조건 거의 다 부정하던 사회 분위기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명확한 악인과 명확한 선인은 바로 천국과 지옥을 가르나 애매한 자는 중간계에 머물러 천사의 교육이나 감평에 따라 갈린다는 스테벤보리의 간증은 신빙성이 있어 보인다. 또, 사랑의 삶의 중요성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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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는 중간 영계를 말하는 스테벤보리에 대하여 논란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서양 신학계에서의 권위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스웨덴의 왕가에서도 그의 권위와 그의 기적과 능력은 18세기 매우 유명세를 타고 인증 받았던 인물이다. 그는 뉴턴의 친구이며 동급의 과학자 였으며 영계를 체험하고 27년간 그 간증을 통해 많은 서적을 집필하였다. 그의 권위와 칭송과 인증은 스웨덴 왕가 뿐 아니라 뉴턴, 존 웨슬리 후대는 헬렌켈러, 19c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등 수많은 유명인물이 그를 인정하며
현대 한국은 정통보수 신학의 요람 총신대 총장 신성종 목사님이 그에게 많은 영감을 받았으며 저 또한 그가 본 빛을 나도 체험 하였기에 스테벤보리의 간증을 인정하는 바 이다. 그럼 그가 말하는 중간 영계는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천주교의 영옥과는 다른 것이다.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벧전3 19
우리가 쓰는 성경에는 옥이라 씌였지만 원어 퓔라케는 첫 번째 뜻이 중간계이다. 천국과 지옥의 경계선상에 있는 중간계인 것이다.
*(a) 퓔라케는 '경계, 감시, 보호'를 의미한다. 눅 2:8에서 양 떼에 대한 목자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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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옥이라 하면 개신교에서는 인정도 하지도 않고 백프로 이단시하는게 일반 적이나 이미 성경에서도 중간계는 정의를 하고 있으니 중간계를 반대하는 것이 실은 이단이다. 다만 개신교에서 신학적으로 정의 하지 않은 것은 성경에서 신학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곳에서 정의 해야 하는데 신약에서 이 중간계가 두 번? 밖에 나오지 않는 거 같아 아예 무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성경 한구절이라도 무시하는 것이 성경적 사고인지는 돌아봐야 한다.
또 천주교의 영옥이 아닌 성경 원어대로 중간계라면 신학적 검증을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먼저, 읽기 전 이 중간계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알아야 본문을 읽기 편할 것이다. 그가 말하는 간증은 기본 영계는 7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3층천(바울이 갔다온 최고의 천국), 2층천, 1층천, 중간계(천국 지옥 보내기 애매한 사람들), 1지옥, 2지옥, 지하3층 지옥 순이다. 그가 서적에서 밝히는 내용은 상당수 중간계에서의 활동이므로 중간계를 더 알아야 한다. 중간계를 오기전 3층천, 2층천은 안봐도 확실히 하나님의 사람들은 중간계를 거의 거치지 않고 바로 천국을 가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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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애매한 사람들이 많다. 겉으로 착하고 믿음이 좋으나 속은 심히 타락한 사람, 또는 겉으로 매우 악하나 속은 비단보다 고은 사람들이다. 또 복음을 전혀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가령 이순신, 세종대왕의 현인과 조선의 순수한 아낙들이 복음을 접할 기회도 없었는데 무조건 지옥 보낼 수 있는가) 무조건 지옥을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또, 복음을 전할 기회도 없이 강제로 타종교를 따라야 했던 노예같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천사들의 감시와 복음을 위한 설득과 경계를 통해 지켜보게 된다. 그들 중 진심 선한 자들은 그 선한 맘이 점점 강해져 천국 가기 합당한 자가 되어 1층 천국(중간계에 있던 애매한 사람은 1층천까지 밖에 못 온다)에 천사의 이끔으로 오게 되고 본심이 악한 자는 점점 더 악해져 복음도 무시하고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중간계의 삶은 지구는 아니지만 지구와 비슷한 환경으로 자신의 집이 있고 자신이 영의 존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 정도로 지구 삶과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야 자신의 본심이 나오고 또 죽은 뒤 영계라는 것과 천사의 복음 전파 설득을 알려 주는 힌트요소가 있기에 더욱 천국에 갈 기회를 주는 하나님의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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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해야 할 것은 스테벤보리가 마치 타종교도 구원이 있는 다원주의나 혼합주의가 아닌가 라는 오해이다. 분명 그는 말하고 있다. 중간계의 사람도 천사를 통해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여야 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니 천하 인간에 구원 받을 이름이 예수님 밖에 없다는 성경의 보수정통의 원리는 그의 신학에 부합하는 것이다. 중간계는 완전한 하나님의 공평의 장이 되는 것이다. 복음도 접하지 못하고 강제로 불신과 타종교에 노예로 사는 자들이 중간계에서 맘껏 기회를 갖는 것이다. 그러나 그 기회는 무한한 것이 아니다. 짧게는 수개월에서 수십년만 기회를 주다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천사의 판정이 있을 것이다. 그 판정 기간은 나도 사실 모른다 오직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이제 배경을 어느정도 아실거 같아 본문에 들어가고 마지막은 그의 말이 맞다는 주품이 저의 성경 분석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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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영계에서 만난 루터·멜랑히톤(루터의 동역자)·칼빈
796. 나는 자주 기독교의 이 세 지도적 개혁자들과 대화를 했으며, 그들의 오늘날까지의 생활에서 모든 것들을 배웠다.
루터(Luther)
그는 영계에 처음 들어오면서부터 자기의 독단교리의 극렬한 창조자였고, 변론자였다. 그리고 그 입장에서 그와 의견을 같이 하는 자들이 오는 수에 따라 그 열정이 더해갔다. 그는 세상에 있을 때, 아이슬레벤(Eisleben)이 가지고 있었던 것과 같은 집 한 채가 주어졌고, 거기서 추종자들이 와서 그의 의견과 일치하는 정도에 따라, 자기 자리에 가깝게 또는 멀리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는 줄곧 이야기를 계속했으나, 간혹 그는 자기의 설교자로서의 인기에 의해서 청중들에게 마법을 거는 기술을 습득했다. 이 술법은 고대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아주 강력해서 영계에서는 모든 반대를 물리칠 수 있었다. 그것은 자아애로부터 발생하고 발언자로 하여금 그의 반대자의 의견뿐 아니라, 그 인격까지 공격하도록 강요된다. 그러므로 이 술법을 쓰는 것이 금지되었으므로, 그의 청중들의 이성에 호소하는 그의 예전 방법으로 바꾸었다. 이것이 1757년에 영계에서 행해진 최후심판의 때까지, 루터가 살아온 생활 상태였다. 그 이듬해에 그는 처음 집에서 다른 집으로 옮겨졌으며, 따라서 동시에 그의 심정상태도 변해졌다. 그리고 내가 자연계에 있으면서 영계 안에 있는 자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을 듣고, 여러 번 추종자(從者)들을 거느리고 나를 만나러 왔다. 몇몇의 질문들을 하고 내 대답들을 듣고는, 그가 지금 옛 교회의 종말과 다니엘서와 복음서들 안에서 하신 주님의 말씀에 의하여 예언된 새 교회의 시작이라는 것을 지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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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한 이 새 교회(주품이 주: 스테벤 보리가 말하는 새교회는 이 구절을 의미 하는거 같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 2)가 계시록에 새 예루살렘에 의하여 표상되었음과, 또 천국 한가운데를 나는 천사가 지상에 살고 있는 자들에게 전파한 영원한 복음으로 표상되었음도 지각했다(계시록 14:6). 처음에는 그는 격분해서 폭언을 퍼부었다. 그러나 곧 새 하늘이 마태복음(28:18)의 주님의 말씀에 의하여 주님만을 하늘과 땅의 하나님으로 시인하는 자들로써 형성되고 있음을 보았다. 그 때 그는 욕설을 중지하고 나 있는 곳을 찾았으며, 나와 전보다 친숙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기의 믿음만으로 의롭게 된(justification by faith alone)다는 독단교리가 말씀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총명에서 창안한 것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됐을 때, 주님·인애·참 믿음·자유의지 그리고 구속에 관해서 말씀에 의하여 교육받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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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새 교회가 기초를 놓아야 할 진리들에 찬성하며, 점진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이때 날마다 나와 함께 있었으며, 그가 새 교회의 진리들을 받아들임에 따라, 가끔 자기의 옛 견해가 말씀에 직접 반대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 자신이 했던 일들에 대해서 자신을 비웃었다(自嘲). 그리고 “나는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내가 믿음만으로 구원받는다는(得意) 독단교리들, 즉 영적인 것들에 있어서의 자유의지의 부정, 인애의 영적 본질의 부정, 등을 설교했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오. 왜냐하면 내 목적은 로마 가톨릭으로부터의 분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고는 그 목적이 관철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히려 내가 오류를 범했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한 미친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미치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상하며, 그들이 이 독단교리들 안에 내포된 명확한 성경 말씀과의 모순들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요.” 여기서 그는 자기 옆에 서 있는 약간의 유명한 교리학자들을 향해서 경멸의 눈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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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검문하는 천사(the examining angel)들에게 루터가 믿음만으로 구원받는 “이신득의 교리”로 자신들의 믿음을 굳힌 많은 다른 자들보다, 훨씬 전에 회심하였다고 알려주었다. 왜냐하면 그는 젊어서 기독교 개혁이 시작되기 전에, 인애의 중요성에 관한 교리에 정통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글로나 설교로 인애를 훌륭하게 가르칠 수 있었던 이유다. 즉 믿음만이라는 교리가 그의 겉 사람에게 심겨졌으나, 그의 내적 영적 속사람(영혼) 속에는 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어서부터 믿음 만에 의한 이신득의에 찬동하는 교리로 인애의 영적 특성에 반대하고, 스스로를 그 교리에 굳어진 자들의 경우는 다르다.
나는 삭소니(Saxony) 후작과 대화한 적이 있는데, 그는 루터와 세상에서 사귄 사람이었다. 그는 루터가 특히 인애를 믿음으로부터 분리한 것을 비난했다고 내게 알려 주었다. 왜냐하면 루터는 인애를 믿음과 분리시켰고, 인애가 아니라 믿음이 구원하는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둘을 결합하는 것이 구원의 방편이라고 제시한다. 바울은 인애를 믿음 위에 놓고 말하기를,
“믿음·소망·사랑(仁愛·charity)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고린도 전서 13:13).”라고 했다. 그러나 루터는 로마 가톨릭 신도들 때문에 다르게 할 수 없었고, 일반적인 대답을 했다고 부언했다. 이 후작은 축복받은 자들 가운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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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크톤(Melancthon)-루터의 열렬 추종자
797. 나는 멜랑크톤에 관해서는 천사들로부터 뿐만 아니라, 그 자신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루터와 이야기한 것같이, 자주 또는 친숙하게는 아니지만, 꽤 자주 그와 대화했다. 그것은 루터처럼, 그는 내게 가까이 올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인애를 제외한 믿음만의 구원(得意)에 대해서 매우 열렬했기 때문이며, 또 내가 천사 영들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어서, 그들은 나에게 접근하는 것이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영계에 들어오자 곧 그가 이 세상에서 살고 있던 집과 유사한 집이 주어졌다(이것은 영계에 도착하자 처음에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것으로서, 이것 때문에 그들은 아직도 자연계 안에 있다고 생각하며, 또 그들의 죽은 이후로 시간이 잠 속에서 지나가 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의 방 안에서 되는 모든 것들은 그가 이전에 경험했던 것들과 유사하다. 즉 식탁, 서랍이 달려 있는 책상과 도서들이 그대로 있으며, 그가 새 집에서 깨어나자, 그는 식탁에 앉고 통상하던 대로 믿음만의 구원(得意)에 관하여 저술하기 시작하고, 인애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쓰지 않고 여러 날 동안을 보냈다. 이것이 천사들에게 지각되었으므로 그가 인애에 관해서 아무것도 쓰지 않는 이유를 묻기 위하여 천사들이 사자들을 보냈다. 그가 대답했다. “인애 안에는 교회에 속한 것이 아무것도 없소. 왜냐하면 만일 인애가 교회의 요소라고 받아들인다면, 사람은 자신에게로 의롭게 되는 것과 구원의 공로를 돌리게 될 것이며, 믿음의 영적 본질을 부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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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계에는 모든 신참자와 사귀는 천사들이 있는데, 멜랑크톤과 사귀는 천사들이 이 말을 듣고서 그를 떠나갔다.
몇 주가 지난 후에 그가 방에서 쓰고 있던 것들이 색이 바래고 사라져서, 마침내는 책상과 종이와 잉크병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었으며, 더구나 그 벽들은 석회로 덮여 있고, 마룻바닥은 누런색 옻칠로 덮였고, 그 자신은 더더욱 조잡한 옷을 입은 듯 보였다. 이 변화를 의아하게 여겨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것은 교회의 중심인 인애를 교회로부터 박탈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그는 믿음에 관하여 그것이 교회의 유일한 요소이며, 구원의 방법이라고 쓰기를 계속했다. 그가 계속 인애를 제거하기 위하여 쓰고 있을 때, 그는 돌연 지하에 그와 동료들이 있는 작업장 같은데로 옮겨졌다. 그는 자기 의사와 반대되게 억류되었으며, 교회로부터 인애와 선행을 배척하는 자들을 기다리는 운명이, 그 이외의 것일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교회의 개혁자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주님의 명에 의해서 그의 책상과 종이 그리고 잉크병이 있는 예전 방으로 돌려보내졌다. 그러나 그의 다져진 설득력 때문에 동일한 오류를 다시 썼기 때문에, 억류된 그의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려지고, 또다시 돌아오는 경험을 반복했다. 그가 되돌려 보내졌을 때, 그는 모피로 싸여 있는 듯 보였으니, 그 이유는 인애가 없는 믿음은 냉랭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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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기 집 뒤와 자기 방 옆에 방이 하나 있었고, 거기에는 책상 셋이 있어서, 자기와 같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모두가 교회에서 인애를 쫓아 버린 자들이었다고 내게 알려 주었다. 또 때로는 넷째 번 책상이 있었으며, 그 위에서 무서운 요괴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그들로부터 자기의 믿음의 확신을 날마다 받았다고 했다. 얼마가 지난 후에 공포에 휩싸여서 인애에 관한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했으나, 그가 한때 쓴 것을 다음 날에는 알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은 겉 사람에 의해 글을 쓰고, 속사람에 의해서 쓰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생기는 것으로서, 그는 강요에 의한 행동이고, 자유롭게 행동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가 쓴 것은 그 자체가 소실되어 버렸다. 그러나 주님에 의하여 새 천국이 형성되기 시작했을 때, 그 천국의 빛이 멜랑크톤으로 하여금, 그가 오류를 범했다고 생각하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그 때 자기의 미래 운명에 대한 불안이 그로 하여금 인애의 보다 깊은 견해를 갖도록 해 주었다. 이 상태에서 그는 말씀에 물었을 때 그의 눈들이 열렸으므로, 말씀 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충만한 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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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두 계명들 위에 율법과 예언서의 모든 것이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지금 남서쪽에 있는 다른 집으로 옮겨져 있다. 거기서 그는 나와 대화를 했으며, “인애에 관해서 그가 쓴 것이 전처럼 사라지지는 않았고, 다만 다음 날에 조금 희미하게만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걸을 때는 포장된 거리를 쇠로 지은 구두를 신고 가듯, 그의 발자국은 요란스러운 소리를 냈다. 신참자들이 그를 방문했을 때, 그는 늘 마술사를 불러들여서 그의 방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곤 했다. 그러나 방문자가 떠나면, 곧 이 장식들이 사라지고 예전 색깔의 공허함이 남아 있게 되었다. 이것은 그의 예전 상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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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Calvin)
798. (1) 칼빈이 처음 영계에 들어왔을 때는, 그가 태어났던 세상에 그대로 있는 줄로 생각했었다. 그는 처음 그와 사귀었던 천사들로부터 그가 지금 그들의 세계에 와 있다고 들었지만, 그는 “나는 동일한 몸을 가지고 있고, 손도 동일하고, 또 감각도 전과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천사들은 그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 주었다. 즉 그가 그 때는 물질적인 몸을 입고 있던 실질적인 몸 안에 있었지만, 물질적인 몸을 벗은 후엔 그것 대신 실질적인 몸이 남아 있어서, 그 덕으로 사람이 사람 된다고 말해 주었다. 이 말을 칼빈이 처음에는 이해했었으나 다음 날에는 그의 예전 신념으로 되돌아가서, 그가 아직도 그가 태어났던 세상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 까닭은 그가 감각적인 사람이었으므로 육체적 감각에 의해서 배운 것들 이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그가 말씀에 의해서 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이해성에 의해서 그의 믿음의 모든 독단교리들을 취했던 이유였다. 그는 사람들의 합의를 얻어내기 위해서만 말씀을 인용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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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후에 그는 천사들을 떠나서 옛날 예정론(predestination)을 믿는 자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그 사람들이 지하 동굴 안에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 지하 동굴에는 뒷길로 들어가는 문 이외에 다른 입구가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고트샬크(Gotschalk)의 제자들은 아직도 자유롭게 방황하고 있으며, 영적인 언어로 피리스(Pyris)라고 하는 곳에서 때때로 모임을 가진다고 하였다. 그 때 그의 요구에 의해서 그들의 모임 장소로 인도되었다. 그가 그들 중에 왔을 때, 그는 기쁨에 차서 그들의 친밀한 친구가 되었다.
(3) 그러나 고트샬크의 신도들이 다음의 그 이유를 제시하겠지만, 동굴 안으로 그들의 형제들에게 보내진 후에는 그는 삶이 지겨운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마침내는 단순한 마음의 종교인들로 구성된 어떤 사회로 피난처를 구해 갔다. 그러나 그가 그들이 예정론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고, 또 도무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그 사회 변두리로 나가서 종교적인 주제에 관해서는 함구하고 있었다. 이렇게 섭리된 것은 그가 예정론에 관한 오류를 시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과, 도르트 종교회의 이후 그 혐오스러운 이단설에 자신들을 고정시켜 온 자들의 높은 지위의 사람들의 수가 채워지게 하기 위함에서였다. 상술한 바와 같이 이런 자들이 서서히 이 지하 동굴 안에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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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침내 현대 예정론자들 사이에서 아우성이 일어났다. “칼빈은 어디 있느냐?” 하고. 그리고 그가 그 사회 변두리에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자신도 예정론의 해독에 감염된 어떤 장관 앞에 인도되었고, 그 장관은 그를 자기 집에 받아들여서, 주님에 의한 새 천국이 형성될 때까지 보호하였다, 그러나 그의 보호자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쫓겨났을 때, 칼빈은 자신이 어떤 평판이 좋지 않은 집으로 가서 한동안 거기 머물렀다.
(5) 그가 여기저기 배회할 수 있는 자유를 가졌기 때문에 그는 나에게 와서 나와 이야기를 하였다. 우리는 처음에 주님의 말씀(마태 28:18)에 의거하여 주님만을 하늘과 땅의 하나님으로 시인하는 자들로 지금 형성되고 있는, 새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나는 이 사람들이 주님과 아버지(聖父)를 한 분으로(요한 10:30) 믿고, 또 주님께서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는 주님 안에 계심을 믿으며, 주님을 보고 안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고 또 안다(요한 14:6-11)고 하신 것과 같이 교회와 천국에는 하나의 하나님(주품이 주: 두날개 신앙13 삼위일체 참조바람)이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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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 그는 처음에는 통상적인 침묵을 유지했으나, 약 반 시간 후에 갑자기 “그리스도는 사람이요. 요셉과 혼인한 마리아의 아들이 아닙니까?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으로 예배 받을 수 있습니까?”라고 말했다. 내가 대답했다.(주품이 주: 이 논박은 굉장히 중요한 논쟁이다. 저는 두날개신앙13에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시고 말씀이 육신되서 오신 하나님이시며 마리아의 문만 이용 할 뿐 그의 탯줄로 잉태되지 않고 이분법으로 마리아는 인간이요 예수님은 홀로 성령님 힘으로 육신을 가진 하나님이라 했다 그러나 칼빈은 마리아의 피로 예수님을 잉태 되었다 하기에 칼빈은 예수님을 인간으로 아는 것이다. 이는 이슬람의 모독과 얼마나 유사한가 또 이로 인해 카톨릭은 마리아를 하나님으로 여긴다. 마리아와 탯줄이 연결 되었다면 두분 다 인간이거나 두분 다 하나님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성경은 연결되지 않은 분리된 다른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오직 마리아는 인간,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이 되실 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속주와 구주 되시는 분은 하나님이며 사람이 아닙니까?” 이 말에 그는 응대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고 사람입니다. 그러나 신성은 주님에게 속해 있지 않고, 성부에게만 속합니다.”라고 했다. 나는 반문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어디 있습니까?” 그가 말했다. “천국의 가장 낮은 곳에 있습니다. 이것은 성부 앞에서 가진 그분의 겸손과 당신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시게 한 고난에 의해서 증명됩니다.” 그리고 그는 세상에서 그의 기억에 저장되었던 환상들로 그리스도 예배를 논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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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들이 의미하는 바는, 그러한 예배는 우상숭배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그리스도 예배를 모독하려고 했으므로 나와 함께 있던 천사들이 그의 입술을 닫아 버렸다. 그를 회개시키려는 내 열정 때문에, 나는 주 우리 구주께서 하나님과 사람이실 뿐 아니라, 주님 안에서 하나님이 사람이시고, 사람이 하나님이시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것을 바울의 말 즉 “주님 안에 신성의 충만함이 육체로 거하신다(골로새 2:9).”
그리고 요한이 말한 바에 의해서 “주님이 참 하나님이시고 영원한 생명이시라는 것(요한1서 5:20).”
그리고 주님께서 친히 하신 말씀 즉 “주님을 믿는 자 모두가 영생을 얻고, 믿지 않는 자는 누구나 생명을 모르며,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게 되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것(요한 6:39, 30;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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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더 나아가서 아타나시우스 신조에서 언급되어 있는 바에 의해서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과 사람이 둘이 아니고 하나이며, 이들은 한 인격의 사람 안에 영혼과 육체가 있는 것처럼 계신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말을 듣고 그는 대꾸했다. “그 모든 말씀의 인용들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요. 말씀의 인용들은 바람이 부는 대로 돌아가는 풍차와 같아서, 이단들도 모두 말씀을 인용하며 지탱하고 있으며, 예정론만이 다른 모든 교리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정론은 회중들의 장막과 같고, 의롭게 되는(得意) 것과 구원을 산출하는 믿음이 그 성소이며 안치소요. 사람은 영적인 것에 있어서 자유의지가 없고, 구원은 자유로운 은사요. 예정론에 대한 반론은, 내 귀에는 배에서 올라오는 트림 소리 같고, 설사라도 일으킨 것같이 들리오. 예정론 이외의 교리로 가르쳐지는 교회의 회중들은 양과 이리들의 혼합과 같아서, 이리들이 율법으로 통제되어서 양들을 공격할 수 없게 해야 하오. 나는 양들을 예정된 자들이라 의미하고 있소. 그리고 그런 교회의 설교를 아무리 웅변적이라고 해도 딸꾹질 이상으로 여기지 않소. 그러나 내게 내 자신의 믿음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게 해 주시오. ‘하나님 한 분이 계시며, 그분은 전능하다. 하나님 아버지에 의하여 선택되고 예정된 자가 아니고는 누구에게도 구원은 없다. 그 모든 다른 자들은 자기들의 운명을 감내해야 한다.’고 말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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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듣고서 나는 매우 격분해서 말했다. “가버려라. 이 악한 영아! 너는 주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고 있다. 네 믿음은 어떤 자는 천국으로 예정되고, 어떤 자는 지옥으로 예정되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너는 하나님이 폭군이며 자기가 좋아하는 자들만을 자기 도성에 들이고, 그 밖의 사람들은 고문하는 집에 넘겨준다고 믿고 있구나. 부끄러운 줄 알라!” 그리고 일치신조(Formula Concordia)에서 다음과 같이 발췌해 읽어 주었다. “만일 마음의 신뢰와 믿음이 주님의 신성에 의해서 뿐 아니라, 주님의 인간 속성에 의거해서 그리스도에게 두어진다면 또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이 두 가지의 것에 향한다면, 그것은 저주받아야 할 우상숭배다.” 그리고 또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죽지 않으시고 오로지 선택된 자들만을 위하여 죽으셨다면, 하나님은 대다수의 사람들을 영벌을 위하여 창조하셨으며, 그들이 회심하고 살기를 원하시지 않으며. 사람들이 큰 죄들을 범하고 각종의 범행을 저지른다고 하더라도 선택받은 자와 거듭난 자들은 믿음과 성령을 상실하지 않으나, 선택되지 않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정죄되어 첫 번 세례를 받고 날마다 성찬에 참여하며, 그들의 능력껏 거룩하고 비난받을 일이 없게 산다고 해도 구원을 얻을 수 없다.”(라이프지히 판, 1756년, 837·838 쪽)는 이 발췌한 글을 읽고서 이것이 정확하게 그의 교리를 서술했는가를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는 그 낱말들 자체에 대하여 책임을 질 수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주님의 사자들은 모두 그를 떠났고, 그는 급히 가증스러운 예정론으로 자신들을 믿게 한 자들의 동굴로 향했다. 나는 후에 이들 중 몇과 그들의 상태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생계를 위하여 노동을 강요당하고 또 서로가 미워하고 있었다.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서로를 해치려고 했는데, 그것이 그들 생활에 기쁨이었다(485-388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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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9. 나는 다른 많은 이단자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그들 중 몇은 이 세 지도자들의 신도들이었다. 인애의 삶을 살고 진리 그 자체를 위하여 사랑한 모든 자들은 새 교회의 교리들로써 교육받기를 기뻐한다. 그러나 거짓된 종교로 자신들을 다지고 악한 생활을 한 자들은, 그 교리에 의해서 교육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새 천국을 피하고, 지옥에 있는 자기들의 동료들과 사귄다. 그곳에서는 주님 예배를 거부하고 예수의 이름을 듣기를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주님을 그들의 하나님으로 시인하는 데에서만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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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어떤 영국인들과의 만남
809. 사후에 대부분의 영국인들이 들어오는 영계에는 런던과 같은 두 큰 도시들이 있다. 나는 그 두 도시 중의 하나에 들어가 답사하는 것이 허락된 적이 있다. 그 도시의 중앙에는 상인들이 만나는 런던 거래소 같은 것이 있었으며, 거기에는 통치자들이 살고 있었다. 그 거래소의 앞과 위는 동쪽이고, 그 오른편은 남쪽이었고, 그 왼편이 북쪽이었다. 동쪽 영역에는 남들보다 인애의 삶을 더 산 자들이 살고 있었으며, 거기에는 장엄한 궁전들이 있었다. 남쪽 영역에는 슬기로운 자들이 살고 있었으며, 그들 중에는 화려함이 있었다. 북쪽 영역에는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사랑한 자들이 살았고, 서쪽 영역에는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교리를 위한 열성적인 자들이 살고 있었다. 이 영역에는 오른쪽에 그 도시의 입구가 있었고, 또 출구도 있었다. 악하게 산 자들이 이 문들을 통해서 쫓겨난다. 서쪽에 살며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唯依信得義:justificatio by faith alone) 교리를 가르치는 성직자는 이 주요 도로를 통할 의사가 없고, 다만 좁은 골목길로만 다니려고 했다. 나는 서쪽에 있는 설교자들이 이런 불평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즉 그들이 그렇게 훌륭한 기술로 그들의 설교문을 작성하고, 그 설교의 내용에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교리를 혼합했으므로, 그들의 청중들이 선을 행해야 할 것인지 아닌지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그들은 믿음을 자동적인 선이라고 설교한다. 그리고 인애의 선이 공로추구이며, 하나님께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해서 믿음을 인애의 선과 구별한다. 그러나 그 도시의 동쪽 영역과 남쪽 영역에 사는 자들이 그러한 설교를 들었을 때, 그들은 교회를 떠났으며, 설교자들은 후에 그 교직이 박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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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0. 후에 나는 그 설교자들의 직책이 박탈당한 여러 가지 이유를 듣게 되었다. 그 주된 이유는 그들이 말씀과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설교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영의 합리적 빛에 의해서 설교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들은 그들의 설교 본문을 시작할 때는 말씀으로부터 인용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가볍게 스치고 지나갔고, 맛없는 것처럼 내버렸다. 그리고는 그들의 교훈의 주제로 침을 발라 만들어 입맛을 돋우는 어떤 맛을 자신들의 지성에 의해서 소개했다. 이 결과로서 그들의 강론은 새소리와 같이 영적 의미가 없는 것이 되었다. 그 설교들은 머리 빠진 새 위의 분칠한 가발 같은 인간적인 계시였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신비스러운 언급들은 수천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게 한 메추리들과 같다(민수기 11:33). 그러나 인애와 믿음이 결합된 신학은 하늘에서 내린 만나와 같다. 나는 한번 이 성직자들 중 몇몇과 “믿음만이라는 교리에 관해서”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이 교리를 표상한 어떤 신상을 보았다. 그들의 자만심의 빛으로는 한 거인처럼 나타났다. 그러나 천국으로부터의 빛이 그 위에 드리워졌을 때, 위로는 괴물 같고 아래로는 뱀같이 나타났다. 이 광경을 보고 성직자들은 물러났고, 거기 섰던 관객들은 그것을 물웅덩이 속에 내던졌다.
참된 기독교. 3 중에서
교보eBook에서 자세히 보기 :
http://m.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Contents.ink?barcode=480116435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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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품이 저의 성경 분석-
믿음과 사랑은 하나이다!
이신득의는 진리인가? 물론 진리이다 성경과 로마서대로 양소제사의 율법을 제하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랑을 포함하면 말이다
하지만 루터가 말하는 이신득의는 안타깝게도 오직 믿음이라는 외침으로 사랑을 인간의 공로로 보고 오직 은혜에도 위배 됨으로 이를 율법주의로 매도하고 이단 시 하고 매도 한다
과연 전자의 이신득의가 맞는가?
후자가 맞는가? 성경대로 살펴보자
이미 스테벤보리가 영계에서 루터를 설득하여 전자가 맞음을 이야기하였다.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갈4
오직 믿음이란 굳이 성경과 연결 시키자면 절기 때 드리는 양소 제사 할례의 율법을 제한 것이다
그러나 루터나 일반 신학교와 개신교에서 말하는 오직 믿음은 사랑을 제거하는 구원을 의미 한다
또, 자기 공로가 포함 되는 구원은 오직 믿음 오직 은혜에서 위배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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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연 성경에서 믿음과 사랑은 분리가 되었으며 내 공로로 사랑을 행하고 있는가? 아니다.
성경을 보자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빌1 19
성령님의 인도로 사랑을 하는것이다
그러기에 내 맘에 인간적이 아닌 하나님 주신 사랑의 맘이라면 다 실천해야하고 성령의 후원이니 이는 내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오직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리고 사랑과 믿음은 분리 되었는가
분명 하나라고 말씀 하신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5 6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딤전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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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확인하자 과연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랑이 폐하여할 율법인가?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5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13 13
사랑과 율법을 엄연히 구분하고 있고 믿음과 사랑은 하나이며 항상 금지하지 않는 사랑없이는 불가능한 동행, 불가능한 구원이라고 한다!
결국 바울은 루터나 신학교 개신교가 말하는 성령님의 사랑을 제하는 이신득의 믿음을 말하지 않는다
믿음소망사랑이 하나 되는 구원을 말한다!
헷갈리게 하는 로마서의 뭔가 분리하고 제하는 유일한 믿음은 양소제사를 제하는 것이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랑을 제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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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성령님의 사랑을 제하는 이신득의! 오직 믿음!은 다 이단 사이비임을 알 수 있다
단, 세가지 부류가 있을 뿐이다
1. 노골적으로 믿음에서 사랑을 완전히 제하는 이단 구원파
2. 평생, 예수님 오실 때까지 왔다갔다
구원에 사랑을 넣었다 뺏다 갈팡지팡하는 수많은 교회
3. 바울의 명확한 신학인 믿음소망사랑은 영원히 하나되는 구원을 말하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깨어 있는 교회이다.
당신은 어떠한 성도 어떠한 교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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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너희가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9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10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11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이 너희 눈에는 도적의 굴혈로 보이느냐 보라 나 곧 내가 그것을 보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렘7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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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스테벤보리의 간증은 성경적으로 매우 신빙성이 있고 그 어떤 기독교 서적과 간증보다도 탁월한 신앙의 유산이 되어짐이 확실합니다. 성경 다음으로 최고의 권위라 여겨집니다. 교회 타성에 젖은 자들은 그의 추종자를 이단이라 할 것입니다. 그는 성경에 기초를 두고 하는 간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하여 구원의 이름을 제함 받지 아니하며 놀라운 간증을 통해 우리 신앙이 오직 하나님의 주신 은혜로 더욱 성령 충만하며 지혜와 사랑으로 더욱 새롭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