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에게 듣는 산 이야기] 이해인 수녀
스산한 가을 가장 생각나는 사람 “자연, 보고만 있어도 시적 감상 넘쳐…취미는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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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지암 성분도 복지관 인근 숲에서 포즈를 취한 이해인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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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이 가을, 무엇을 느끼고, 누가 생각나십니까? 스산한 가을에 가장 생각나는 사람으로 꼽는 대표적인 인물이 이해인(李海仁·본명은 명숙·63) 수녀다. 종교를 떠나 누구나 이해인 수녀를 찾는다. 왜일까? 정확한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가능성은 추론해 볼 수 있다.
가을이 되면 누구나 쓸쓸함을 느낀다. 추워진 날씨 탓일 수 있다. 현상적으로만 보면 그렇다. 내용과 본질을 조금 들여다보며 사색의 시간을 한번 가져보자. 세월의 흐름에 대한 아쉬움이나 나이가 한 살 더 든다는 사실에 무상함을 느껴서는 아닐까. 나아가 내재된 무의식 속에 인간 스스로의 나약함을 표출하는 한 방법이지는 아닐까. 인간은 누구나 쓸쓸함에 대한 위로의 대상을 찾는다. 인간들 간의 관계에 있어서는 강하고 약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자연이나 신 앞에서의 인간은 나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다. 나약한 인간을 시로써, 산문으로써 가장 잘 표현해내 인간을 위로하는 사람이 바로 이해인 수녀인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녀를 찾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수녀는 맑고 순수한 감성을 그대로 시로 표현하는 따뜻한 감성의 소유자다. 난해한 시어나 시적인 기교도 없다. 보고 느끼는 그대로를 솔직하게 글로써 표현했을 뿐이다.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아무나 할 수 없다. 수녀의 시를 통해 한번 느껴보자. 가을에 관한 시, ‘가을 편지’다.
늦가을, 산 위에 올라 /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 깊이 사랑할수록 / 죽음 또한 아름다운 것이라고 / 노래하며 사라지는 나뭇잎들 / 춤추며 사라지는 무희들의 / 마지막 공연을 보듯이 / 조금은 서운한 마음으로 / 떨어지는 나뭇잎들을 바라봅니다. / 매일 조금씩 떨어져나가는 / 나의 시간들을 지켜보듯이.
일상의 자연을 소재로 수도자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사색을 조화시키며 친근하고 소박한 시적 언어로 인간의 심성, 즉 순수를 그대로 이끌어내고 있다. 이를 통해 수녀는 80년대부터 시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사람들의 감성에 가장 근접한 시들이니 가능하지 않았을까.
여고 3년 때 전국 백일장에서 시 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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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7년 성지순례로 이탈리아 아시시 프란체스코 성당에 갔다 인근 밀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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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는 언제부터 시를, 자연을 사랑했을까? 시인이 된 수녀일까? 수녀가 된 시인일까? 수녀의 삶을 살펴보며 판단해 보기로 하자. 어릴 때부터 호기심은 누구 못지 않았다. 태어난 지 3일만에 가톨릭 세례를 받은 수녀는 초등학교 입학도 하기 전, 라디오에서 사람소리가 나오는 게 신기해 골방에 숨어 라디오를 분해하기도 했다.
글 솜씨는 초등생 시절부터 발휘됐다.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안현숙씨(배우 최민수의 장모)의 이야기를 ‘튤립꽃 같은 친구’란 제목으로 ‘사랑할 땐 별이 되고’란 글을 써 전달했고, ‘학교 가는 길’이란 글짓기로 상을 받기도 했다. 겨울 길의 플라타너스와 어린 해인이 주고받은 내용을 그린 순수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일찌감치 감성이 풍부한 문학소녀로서 자질을 드러냈던 것이다. 당시 어린 해인은 수녀원에 들어간 언니를 만나러 방학 때만 되면 놀러가곤 했었다. 수녀님들의 모습과 숲에서 들려오는 새 소리가 너무 정답고 사랑스러워 이 때부터 수녀 이미지가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중학 시절에 본격적으로 글쓰기 작업에 들어갔다. 풍문여중 문예반에서 활동할 때 쓴 시 ‘들국화’는 아직까지 널리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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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잃고 숨져간 / 어느 소녀의 넋이 다시 피어난 것일까 / 흙냄새 풍겨오는 / 외로운 들길에 / 웃음 잃고 피어난 연보랏빛 꽃…중략…오늘은 어느 누구의 새하얀 마음을 울려 주었나 / 또 다시 바람이 일면 / 조그만 소망에 / 스스로 몸부림치는 꽃….
중학생이 쓴 시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사려 깊고 상상력과 감성이 뛰어난 작품이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친구 중 한 명이 널리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던 가수 박인희다. 이어 먼저 수녀가 된 언니의 소개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김천 성의여고에 입학한다. 수녀로서, 시인으로서 자질을 키운 시기가 바로 이 때였다.
63년 여고 3년 시절 전국 고교생 백일장에서 ‘산맥’이라는 시로 장원을 수상했다. 심사위원이 시인 유치환 선생이었다. 이 시는 수녀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에 수록돼 있다. 수녀원 기숙사에서 생활하던 해인은 문학소녀로서의 자질뿐 아니라 수녀가 될 소망을 키워갔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가 궁금했던 어린 시절 해인의 호기심이 이 때는 ‘사람은 왜 죽는가?’ ‘삶의 끝은 어디일까?’ ‘사랑하는 이들끼리도 왜 헤어져 사는 날들이 많은 걸까?’ 등 인간 존재에 대한 호기심으로 바뀌어 갔다.
한국전쟁 때 납북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이후 어려운 생활로 인한 기숙사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 등으로 수녀는 자연을 보면서도 이별의 슬픔과 쓸쓸함으로 연상작용을 일으켰다. 내면의 성찰은 더욱 깊어갔다.
64년 김천 성의여고를 졸업한 해인은 그 해 수녀가 되기로 최종 결심하고 부산 성베네딕도 수녀원에 입회했다. 68년에 첫 서원도 했다. 천주교 중앙협의회로 파견되어 경리과 보조일을 하면서 틈틈이 시작(詩作)도 겸했다. 드디어 70년 ‘소년’지에 ‘하늘’ ‘아침’ ‘내 안에서 크는 산’ 등 동시 3편을 발표했다. 지난 10월19일 곤지암 성분도복지관 20주년 기념행사에서 그 시들을 낭송할 기회를 가졌다.
그 날 ‘나의 하늘은’에 이어 낭송한 시 ‘내 안에서 크는 산’을 보자.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 산은 조금씩 더 / 내 안에서 크고 있다. / 엄마 / 한 번 불러보고 / 하느님 / 한 번 불러보고 / 친구의 이름도 더러 부르면서 / 산에 오르는 날이 / 많아질수록 / 나는 조금씩 / 산을 닮아가는 것일까? (후략)
수녀의 시엔 처음부터 자연과 신이 등장하며 동경의 대상을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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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풍문여중 2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맨 왼쪽이 가수 박인희. 바로 옆이 이해인 수녀(이해인 수녀 제공) 2)수원성지 북수동 성당의 로사리오 정원에서(〃) 3)울산 염포초등학교 5학년생들과 함께(〃) 4)대담을 발간하고 오른쪽부터 이인호, 박완서, 방혜자 선생 등과 함께(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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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필리핀 성루이스 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수녀는 76년 종신 서원과 더불어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출간했다. 이후 8권의 시집과 7권의 번역서와 수필·산문집 10권 가까이 냈다.
지난 25년 동안 한 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이해인 수녀가 11회, 법정 스님이 9회를 기록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해인 수녀가 국내 최정상 베스트셀러 작가인 셈이다. 가장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수상도 무수히 많이 했지만 수녀에게는 다 세속적인 기준이고 중요하지도 않다. 얼마나 벌었을까? 이 세속적인 기준은 그래도 궁금했다. 팔린 책이 500만부를 훌쩍 넘어 1,000만 권 가까이 된다 하면, 권당 만 원에 인세 10%만 쳐도….
역시 수도자다운 대답이 돌아왔다. “내 계좌번호만 알고 있지, 얼마나 벌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전부 수도공동체에서 관리한다. 청빈서원을 할 수도자의 신분으로 굳이 알 필요도 없다고 본다. 때로는 궁금할 때도 있지만 굳이 알아서 뭐 하겠나.”
하지만 수녀는 문화상품권은 좋아한다고 웃으면서 덧붙였다. 쉽게 필요한 사람에게 줄 수 있으니까.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유명세로 인해 오히려 여러 차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기자에게 인터뷰를 못한다고 하니 지원자로 가장해서 들어와 온갖 것 다 물어보고 나가 기사화한다거나, 수인(囚人)과의 면담 후 받은 물품을 우연히 보여줬더니 바로 기사화되어 교도관에 불려갔던 일 등등 갈등과 고민은 수없이 많았다. 이러한 시련의 과정을 무사히 넘겼기에 지금의 수녀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싶다.
- 산은 고고하면서도 누구나 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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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캘커타 중심가의 마더 테레사의 집에서 테레사 수녀와 함께. 이해인 수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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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는 베스트셀러 작가일 뿐 아니라 인기 있는 강사이기도 하다. 어디서든 수백 명의 청강생이 몰린다. 재미있고 정갈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주 내용도 “항상 좋은 말을 쓰자”는 거다. 순화된 언어는 정신을 맑게 한다. 사람들이 운동을 하거나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 등 신체적으로만 웰빙을 하지 말고 순화된 언어를 사용하는 정신적 웰빙 운동을 펼쳐야 이 사회가 더 밝게 변한다고 강조한다.
수녀는 또한 사람을 순하고 선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다. 수녀를 만난 수인들은 그의 순수한 표정과 말에 감동을 받아 “수녀님을 조금 더 일찍 만났다면 내가 이런 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수녀는 이들을 ‘담 안의 형제’라고 부른다. 수녀가 쓰는 말과 글이 인간의 심성을 울리고, 모든 사람의 가슴에 와닿는 것이다. 이러한 순수한 사랑을 전하는 수녀의 시 곳곳에 등장하는 자연은, 산은 수녀에게 어떤 존재이고 어떤 의미를 줄까?
‘산에서 큰다’는 시에 조금 나와 있다. 나는 / 산에서 큰다. / 대답 없는 대답 / 침묵의 말씀.
자연은, 산은 수녀에게 하나의 거대한 성역인 셈이다. 동시에 무엇이나 가리지 않고 품안에 전부 안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수녀는 산책을 통해 자연과, 산과 교감하면서 시적 영감을 얻고, 무한한 신의 존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산, 그 자체가 곧, 큰 말씀이다. 과거엔 등산도 자주 했다. 지금은 산책 정도만 하고 있다. 산을 자주 다니는 사람들도 모르는 사이 이러한 교감을 하고 있을 것이다. 감히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누구나 품는 그런 산. 이것이 바로 수녀가 말하는 산이 주는 교훈이다.
지난 9월 어머니가 95세의 일기로 돌아가셨다. 남들은 호상이라 하지만, 어린 시절 부모 품을 떠나 살아서인지, 사무치는 그리움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지금 그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아 책으로 발간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순의 나이에도 동심을 잃지않은 해인 수녀의 가슴 속에 어머니란 글자가 그리움으로 영원히 각인돼 남아 있는 것이다. 수녀는 그 그리움을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봉사로, 희생으로 승화시켜 살아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마치 산이 주는 교훈처럼.
/ 글/월간산- 박정원 차장대우 jungwon@chosun.com / 사진/월간산- 이상선 차장 ss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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