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준비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는 가기 전 책읽기를 시작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연해주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연구를 해온 박환교수님의 책을 읽었다.
“박환교수와 함께 걷다 블라디보스토크”
간신히 한 번 읽고 갔으니 내용은 생각나지만 장소와 내용을 관련짓지 못했다.
현장에서 설명을 들으니 내용이 생각나고 책을 읽으며 느꼈던 뜨거움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 내용은 다른 장소에 겹쳐져 헷갈리기만 했다. 그리고 지명이나 용어가 입에 붙지 않아 머릿속 이미지로만 남아있고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나는 이제 옹알이를 배우는 아이처럼 반복하여 되새기고,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다. 잘 외우지 못하는 것을 탓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서 노력하는 방법 말고는 알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번 여행에서 본 것을 중심으로 현재와 과거를 알려나가는 것이다. 올해가 꼭 100주년이어서 뿐 아니라 지속해서 관심을 갖고 앞서간 분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것, 그 분들을 기억하는 것 등이 해야 할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고합그룹 장치혁회장이 연해주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며 발해의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진 부친 장도빈을 기념하기 위하여 대학을 설립하고 기증한 사실에 놀라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총리 이동휘선생에 대해 너무 몰랐던 사실에 죄송스러웠다.
특히 이상설선생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던 북간도 용정에 세운 서전서숙과 고종의 헤이그밀사사건에서 나아가 1908년 연해주로 망명한 뒤 독립운동을 펼친 것에 뜨거운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조명희시인과 해조신문의 주필로 일했던 장지연선생등을 알게 되었다.
애칭이 페치카인 최재형선생과 안중근의사의 관계를 알고나니 단편적으로만 이해한 역사에 좀 더 깊숙이 들어가는 기쁨도 맛보았다.
책에 실려있는 기록사진속에 한인의 모습에서는 다시 눈물이 났다.
그들이 입은 옷때문이었다. 우리가 한복이라고 부르는 그 옷은 한민족을 나타내는 정체성이었다. 그 옷을 입었기 때문에 고향땅을 떠나야만 했고, 그 옷을 입었기 때문에 추위와 배고픔속에서도 거주공간과 음식을 내어주었으며 결국 그 옷을 입은 사람이라 열차에 실려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당했기 때문이다.
난 그 사실을 상기하면서 온 몸의 전율을 느꼈고,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내 몸속에 흐르는 한민족의 피가 그들의 서러움과 고통, 한스러움과 섞이더니 순간순간 독립을 위해 뿜어낸 광채에 녹아드는 것 같았다.
2018년부터 수원시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 추진위원회에 속하여 활동하면서 수원지역의 독립운동가에 대해 관심이 깊어지고, 그런 내용을 미래세대에게 어떻게 전해줄 것인가의 고민을 함께 해오고 있다.
수원의 만세운동이 있었던 방화수류정과 행궁앞, 만세운동을 벌였던 현장은 그만큼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준다.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인 김세환, 수원의 유관순 이선경, 의로운 기생 김향화 등이다.
어찌 그뿐일까. 한반도 곳곳에서, 국경을 넘어 그 낯선 곳에서 수많은 분들의 참여와 한마음으로 모여 일제의 총칼에 맞선 것을 헤아려본다. 그래서 우리는 100주년을 맞이하여 전국에서 그분들을 찾아내고, 기억하고, 뜻을 이어가는 현재의 시간은 앞으로의 100년을 맞이하는 단단함이 될 것이다.
그 역사의 현장을 찾고,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일회성 답사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연해주 지역의 시민단체와 지속적인 교류를 할 예정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분들이 가려고 했던 그 길,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까지도 걸었던 그 길 위에서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를 찾는 것이 의미가 있겠다.
우리는 문화재지킴이로서 독립운동 현장의 상태를 조사하고, 앞서간 분들의 뜻을 기리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기 위한 희망을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