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대로 산다면서, 교리는 필요 없다고요?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 퍼진 가장 위험한, 진실로 치명적인 착각
오늘날 기독교 안에 퍼진 생각 중 가장 위험하면서도 무책임한 착각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리(Doctrine)와 신앙생활을 별개의 것으로 분리해 놓고, 교리를 마치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액세서리 취급하는 태도입니다. 이런 분들은 종종 비장한 표정으로 이렇게 반문하곤 합니다.
“아니, 성경대로 믿고 성경대로 살면 되지, 그 딱딱하고 골치 아픈 교리가 왜 필요합니까?”
얼핏 들으면 대단히 성경적이고 순수한 열정처럼 들립니다. 하지만 이는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어불성설(語不成說)’이자, 실소(失笑)를 자아내기에 충분한 질문입니다. 마치 “나는 튼튼하고 아름다운 집은 짓겠지만, 복잡한 설계도나 철근 따위는 필요 없다”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교리는 성경의 ‘엑기스’이자 ‘내비게이션’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성경대로 믿는다’는 것과 ‘교리대로 믿는다’는 것이 결국 동전의 양면과 같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은 스스로 그 효용성에 대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teaching)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교훈’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다스칼리아(didaskalia)’가 바로 ‘교리’를 뜻합니다.
즉, 교리란 우리가 믿어야 할 성경의 방대한 진리를 핵심만 뽑아낸 ‘요약본’이자, 삶의 현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든 ‘신앙의 내비게이션’입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 3:14) 는 바울의 권면처럼, 체계적인 교리 없이는 확신에 찬 신앙생활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성경과 교리를 분리하려는 시도는, 사람이 뼈대 없이 살로만으로 서 있기를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발상입니다.
신앙은 ‘D.I.Y’(Do It Yourself)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영원한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엄중한 문제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내 기분이나 내 방식이 아닌,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방식대로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조립하는 ‘D.I.Y 가구’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도가 교리에 따라 살고 싶어도, 성경이 방대하고 깊어서, 개인이 혼자 힘으로 그 모든 진리를 오롯이 깨닫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입니다. 이에, 베드로 사도 역시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private interpretation) 풀 것이 아니니” (벧후 1:20) 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연유로, 성령님께서는 역사 속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을 통해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 (유 1:3) 의 체계를 잡게 하셨고, 교회가 공적으로 인정한 그 깨달음의 정수(精髓)를 ‘정통 교리’라는 선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학문적으로 집대성한 것이 바로 ‘신학’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고 건강한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리를 공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자의적 해석이라는 늪에 빠지기 십상입니다.
이단들의 ‘신박한’ 해석에 맞선 초대교회의 지혜
사실 ‘교리 무용론’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초대교회 시절에도 교회 안팎에는 위기가 가득했습니다. 밖으로는 로마의 칼날이, 안으로는 이단들의 현란한 혀가 교회를 위협했습니다. 특히 당시 영지주의(Gnosticism)를 비롯한 이단들은 성경 외에 직통 계시를 주장하거나, 성경을 자기 입맛대로 요리하여 진리를 어지럽혔습니다.
이에 맞서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사도 바울이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8) 라고 선포한 기준을 따라, 두 가지 강력한 원칙을 천명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오직 성경을 통해서만 당신을 계시하신다. (다른 ‘비밀 통로’는 없다!)
둘째, 성경 해석은 ‘내 맘대로’가 아니라, 사도들로부터 이어져 온 ‘전통적 방식(Regula Fidei, 신앙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
무당의 굿판이 된 교회 강단
하지만, 안타깝게도 "해 아래 새것이 없다" (전 1:9)는 말씀처럼, 오늘날 한국 교회 강단에도 초대교회를 어지럽혔던 자들의 후예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소위 ‘신사도 운동’이라 불리는 흐름이나, 기록된 말씀(Logos)보다 주관적 체험을 바탕으로한 신비주의와 ‘직통 계시’를 앞세우는 이들이 대표적입니다.
성경은 이미 이런 자들에 대해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골 2:18) 라고 엄히 경고했습니다.
이들은 기독교라는 간판만 걸었을 뿐, 그 실상은 무속 신앙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역사’라는 미명 하에 굿판이나 푸닥거리에 가까운 행위를 영적 능력이라 교언영색(巧言令色)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연보와 헌신을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는” (벧후 2:3) '복채'처럼 변질시켜 착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끊임없는 가스라이팅으로 성도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그들을 영적 노예로 전락시키는 작태를 보고 있자면, 참담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더욱 통탄할 일은 이들의 목적입니다. 사도 바울의 탄식처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belly)요 그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 (빌 3:19) 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자신의 욕망에 사로잡힌 영적 청맹과니들입니다.
이런 병폐는 신천지나 JMS 같은 명백한 이단 사이비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태극기를 두르고 혐오를 쏟아내는 극우 삯꾼 목사들, 그리고 기업화된 일부 대형 조직(교회?)들 또한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교리가 무너진 틈을 타, 거짓 선지자들이 맹위를 떨치며 성도들을 오도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무너진 터 위에 다시 세워야 할 ‘거룩한 전통’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앞서 언급한 교부들이 말한 ‘전통’은 단순히 낡은 관습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tradition)을 지키라” (살후 2:15) 는 말씀처럼, 검증된 해석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고백하는 '사도신경'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같은 신조들은 바로 그러한 치열한 영적 전투 속에서 탄생한 전리품들입니다.
백번 천번을 강조하거니와, 광기 어린 거짓 가르침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는 말씀의 반석위에 신앙의 뼈대를 다시 세우는 작업이 절실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반드시 붙들어야 할, 이토록 중요한 교리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다음과 같이 크게 8가지 기둥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뼈대를 세우는 8가지 기둥
1. 성경론: 우리의 유일한 기준은 무엇인가? (딤후 3:16)
2. 신 론: 하나님은 누구신가? (출 3:14)
3. 인간론: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창 1:27, 롬 3:23)
4. 기독론: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마 16:16)
5. 성령론: 성령님은 어떻게 일하시는가? (요 14:26)
6. 구원론: 우리는 어떻게 구원받는가? (엡 2:8)
7. 교회론: 교회란 무엇인가? (엡 1:22-23)
8. 종말론: 역사의 끝은 어떻게 되는가? (계 21:1-4)
이 8가지 교리는 파편화된 지식이 아닙니다. 이것을 하나로 꿰어 구속사(Heilsgeschichte)적 관점에서 보면, ‘창조 - 타락 - 구속 – 완성’이라는 웅장한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롬 11:36) 는 고백이 바로 이 드라마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인간의 비극적 타락, 그리스도의 초림을 통한 구원의 시작, 그리고 재림으로 완성될 구원의 클라이맥스. 이처럼 성령님께서 인도하여 주신 성경의 전통 교리는, 단순히 머리를 채우는 지식이 아닙니다. 혼탁한 이 세상과 나 자신, 그리고 역사를 바라보는 가장 풍요롭고 정확한 안목을 제공하는, 안경이자 반석입니다.
이제 “교리는 필요 없다”는 치명적인 순진함에서 벗어납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엡 4:13-14)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튼튼한 교리의 뼈대 위에 믿음의 살을 입힐 때, 우리의 신앙은 거짓 선지자들의 가스라이팅에 흔들리지 않는 건강하고 강인한 모습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
.'Sola Scriptura' is 'My Only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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