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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례 : 학암 김학봉 교화부장
- 청 수 봉 전 - 개 식 심 고 - 주 문 삼 회 병 송 - 경 전 봉 독 --------- 義菴聖師法說 以身換性說(1)(2) (646~652) ------- 무암 신우택 교훈 - 천 덕 송 합 창 ---------------------------- 제2장 교훈가(기2) (경8쪽, 해18쪽, 1~2절) - 설 교 ------------ 부창마을, 후천개벽을 말씀하신 곳 ----------- 덕암 성강현 종학실장 - 천 덕 송 합 창 --------------------------- 송가, 대학생단가 (경98쪽, 해166쪽, 1~2절) - 폐 식 심 고 * 음악준비 : 김영수 학생동덕(2)
■ 한 여류 철학교수의 삶과 인생에 대한 자전적인 에세이와 시선집. 무심코 지나가는 일상적인 일을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일반인들이 쉽게 철학을 이해하도록 했다. 0시에서부터 24시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지금껏 살아온 시간들을 시간마다 회상한다. 또한 여덟 개의 시를 통해 시간에 대한 의미를 되새긴다. 베르그송의 철학을 전공한 저자는 베르그송의 시간 철학을 기본 삼아 시간을 통해 자기성찰은 물론 삶의 의미를 되짚는다. ■ 서지사항 * 지은이 : 홍경실 * 출판사 : 모시는사람들 * 출판년도 : 2008년 * 쪽수 : 192쪽 * 가격 : 9,000원
부창마을, 후천개벽을 말씀하신 곳
덕암 성강현 종학실장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지난주는 추석명절이었습니다. 다들 고향에 다녀오셨는지요. 저는 전라도 구례에 새로 보금자리를 마련한 부모님을 뵙고 왔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음식을 장만하며 그간의 소원함을 좁히는 좋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동덕님들도 좋은 시간을 보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지난번 설교에 이어 성지 순례담을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충북 진천군 금성마을은 용산리의 큰길에서 안쪽으로 약 1km 정도 들어와 있어서 사람의 이목을 쉽게 받지 않은 곳입니다. 그리고 용산리 산을 넘으면 초평과 증평 쪽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어서 관군들이 체포를 하고자 할 때에도 쉽게 도주로를 만들 수 있는 곳입니다. 해월신사께서 주로 계시던 전형적인 피난처의 모습을 갖춘 곳이 금성동입니다. 포덕32(1891)년 조병식이라는 인물이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합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동학 탄압에 열을 올립니다. 이듬해인 포덕33(1892)년 1월부터는 그 강도가 더욱 심해집니다. 조병식은 1876년 충청도관찰사로 있을 때의 부정으로 전라도 나주 지도라는 섬에 1년간 유배되기도 했었다. 1883년 형조 판서로 복직하였으나 포악하게 죄인을 처형한 책임을 지고 다시 유배되었다.1885년 다시 복직하여 경기감사로 있다가 다시 충청도 관찰사가 되었다. 그는 문과에 급제한 유학자로서 성리학적 세계관에 도전하는 동학은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여기고 동학 탄압에 열을 올렸다. 이선근교수는 《민족의 섬광》에서 “1892년 2월(양) 이래로 조병식이 충청감사로 부임하여 동학교문에 대한 탄압과 기찰을 강화하고 그에 따라 이속, 포교와 영졸배의 발호가 심해져서 교인 신도들의 신변과 재산을 위협당하게 되니 한때는 최해월 자신도 진천, 상주 등지로 본거를 이동하며 피신할 수밖에 없었던 터이다.”라고 그의 가혹한 동학 탄압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조병식의 동학 탄압이 심해지자 충주 외서촌 보뜰에 계시던 해월신사께서는 포덕33(1892)년 1월(음) 손병희가 주선한 진천군 부창리로 피신을 하게 됩니다. 부창리로 이주한 후인 1월 19일 해월신사께서는 도인들에게 건실한 생활자세로 수행할 것을 권면(勸勉)하는 통유문(通諭文)을 띄웁니다. 특히 해월신사께서는 수운대신사의 글을 재해석하기에 힘쓰기를 권면합니다. “대전과 가사는 곧 우리 스승님께서 수도하여 참되게 깨달아 천명을 받고 천리를 공경하는 심오한 도리가 담긴 요지의 글이다. 따라서 경전을 취급할 때 경건하게 다루도록 하라”는 당부를 하십니다. “도인들은 대전과 가사를 읽을 때 혹은 누워서 보거나 혹은 삐뚜루 앉아 읽거나 혹은 허리춤에 가로지르거나 혹은 먼지 쌓인 더러운 첨상에 던져두어 예에 어긋나는 불경스러움이 이를 데 없으니 어찌 송구스럽지 않으랴. … 대전과 가사를 사사로이 출판하거나 임의로 필사 발행하여 도인들에게 판매한다면 이를 도의 질서를 문란케 하는 짓이다. … 우리 도는 후천개벽의 운수이며 무극하며 참된 도이다. 그 종통과 도의 근원이 신령스럽게 비추어 감히 터럭 하나라도 문란치 말아야 한다. … 스승이나 친구 사이에는 원래부터 가난을 도와주는 도가 있지만 이밖에 진기한 음식이나 색다른 물품을 사사로이 싸가지고 다니는 것은 군자의 행실이 아니니 한결같이 거절해야 한다. … 도인 집 부녀들은 혹 불순천리하여 함부로 어린아이를 치면 놀랍고 황송한 일이 아니랴. 어린아이 치는 것은 곧 한울님을 치는 것이니 함부로 치지 말라.” 통유문의 몇 구절입니다. 스승님의 수도의 요체가 담겨 있는 경전을 중시여기고 사사로운 경전의 출판을 금하여 난법난도를 막으려는 해월신사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진기한 물건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는 당부, 어린아이를 함부로 때리지 말라는 가르침은 생활 속에서 지켜야할 수도의 요목들입니다. 그리고 이글에서 해월신사께서 처음으로‘후천개벽(後天開闢)’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후천이란 앞으로 오게 될 세상을 의미합니다. 수운대신사께서 말씀하신 ‘다시 개벽’과 통하는 용어로 보입니다. 그리고 뒷날 이 후천개벽이라는 말을 분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선천개벽(先天開闢)’이라는 용어도 사용합니다. 선천개벽이 이전 시대의 문명을 여는 시점이었다는 의미이고 후천개벽은 수운대신사를 통한 무극대도의 대운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며칠 뒤인 1월 25일 신사께서는 다시 도인들의 생활자세에 대한 요목을 적어 통유합니다. 글의 시작을 “사람은 하늘 사람이요, 도는 스승님의 무극대도이다.”라고 하여 우리 도의 요체를 밝힙니다. 그 내용은 우리 도는 한울님을 공경하고 스승님을 높이는 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인들이 삼가야 할 음식과 신발과 의복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한달 뒤인 2월 26일 각 포에 기도하라는 통유문을 내리는데 3월 1일부터 100일간 매일 저녁 해시(亥時:밤9시~11시)에 집의 후원 정결한 장소에 청수(淸水) 한 그릇을 봉전하고 광제창생을 축원하는 내용으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교단에 처음으로 청수를 봉전했다는 기록은 1884년 공주 가섭사 특별기도 때였다고 합니다. 종전에는 음식이나 쌀을 떠다 놓고 기도를 하는 것이 통례였는데 이를 청수 한 그릇으로 간소화해 도인들이 편안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꾼 것입니다. 이어 29일 지목이 심해지자 육임제를 잠시 중지한다는 통유를 내립니다. 해월신사께서는 부창리에 은거했으나 진천관아와 그리 멀리 않은 곳이라 마음이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충청감사 조병식이 동학을 다시 지목하자 다른 은신처를 물색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김주원에게 옮겨갈 곳을 찾아보도록 당부하였다고 합니다. 해월신사께서는 5월 15일경 상주군 공성면 효곡리 윗왕실이라는 깊은 산중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김주원의 부탁으로 권병일이 주선해 옮긴 것으로 보이는데 윗왕실에는 아직도 안동 권씨들이 여러집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답사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8월 7일 오전에 의암성사 생가와 금성동을 돌아보고 우리 일행은 금성동을 왼쪽으로 끼고 산을 돌아 얼마안가 34번 국도를 만나 초평 방향으로 접어들었습니다. 한 10분쯤 달리니 왼편으로 초평저수지가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마치 영화 ‘섬’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넓은 저수지에 낚시를 위한 집들이 물위에 수십 개가 펼쳐진 전경이 장관이었습니다. 저수지를 지나 초평을 오른쪽으로 끼고 진천방향으로 길을 틀어 얼마안가니 ‘부창’이라는 이정표가 나타났고 우리 일행은 마을버스 정류장 옆에 차를 세웠습니다. 진천 쪽으로 가는 큰 길에서 바로 부창 마을로 들어가는 제법 넓은 진입로가 있었습니다. 마을입구에 서 보니 이곳에 오래 머무를 수 없었던 해월신사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약 20호 정도의 부창 마을은 작은 동산 밑에 포근하게 자리잡은 전형적인 시골이었습니다. 마을 진입로를 경계로 두 쪽으로 갈라져 있는 부창 마을은 단정하게 가꾸어져 있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정겨움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마을 전경을 사진으로 담으며 이 마을의 어느 곳에서 해월신사께서 지내셨을까 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이곳도 역시 해월신사께서 은거하셨던 곳이라는 아무런 표식도 없어 안타까웠습니다. 한 10여분 마을을 둘러보고 해월신사의 기운을 남겨두고 일행은 다음 목적지로 움직였습니다. 차를 타고 떠나오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부창 마을로 고개가 돌려지는 것은 아마 그곳에 해월신사의 기운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창 마을을 보고 우리들은 초정약수와 보은 장내리를 답사하고 부산으로 차를 달렸습니다. 스승님의 행적을 찾는 우리들의 성지순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박인준 교장, 김대권 교감 경주 용담정에서 취임 봉고식 가져(9/20) : 우리교구 교구장인 박인준 신임 교장선생님과 김대권 신임 교감선생님의 취임 봉고식을 9월 21일(토) 오후 3시 경주 용담정에서 가졌다. 이날 봉고식에는 성강현 종학실장, 김학봉 교화부장 등이 동행했다. 두 분 교장, 교감선생님의 앞날에 한울님과 스승님의 감응이 함께하시기를 심고 드립니다. ☞ 9월 가족합동시일식 특성금 내역(9/21) : 김대권(30,000원),최만식(30,000원), 신원기(100,000원) ▶ 총 특성금(160,000원) 당일 점심식사 준비는 숙원당 정숙례, 신성당 구옥주 두 분 내수도가 수고해 주셨습니다. 특성하신 분들과 점심식사 준비를 위해 애쓰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포덕영우회 9월 모임(9/24) : 수련과 경전공부 및 동덕 간 도담 나누기를 목적으로 하는 부산지역 공부모임인 포덕영우회의 9월 모임이 오는 24일(수) 저녁 대연교구에서 열린다. 이날 공부는 6시~7시까지 1시간 수련을 하고, 저녁식사를 한 뒤 당일의 경전공부 과제인 해월신사법설 <허와실>편에 대한 공부를 덕암 성강현 종학실장의 진행으로 실시한다. ☞ 205차 천도교 부산시 연합간담회(9/28) 개최 : 오는 9월 28일(일) 오후 2시 우리교구에서 제205차 천도교 부산시 연합간담회가 열린다. 이날 회의는 다가오는 10월 12일(일)에 있을 합동야외일식 일정 점검을 비롯한 현안을 의논한다. 원주직 여러분들의 많은 참석바랍니다. ☞ 안찬복공 추모식(10/7) : 천도교 도사, 애국지사 안찬복공의 추모식이 내외 귀빈들과 1, 2학년 학생들이 참여한 가운데 오는 10월 7일(화) 오전 11시 30분 본교 교정에서 열린다. 님의 나라 위한 충정과 애국심, 천도교 교단을 위한 불굴의 의지를 우리 후학들이 이어갈 수 있도록 한울님과 스승님의 특별한 감응이 있으시기를 심고 드립니다. ☞ 천도교 부산시연합 합동야외시일식(10/12) 안내 : 지난 204차 동부산교구에서 열린 연합간담회 결과, 오는 10월 12일(일) 천도교 부산시연합 합동시일식을 충북 청주 의암성사 생가에서 갖기로 했다. 당일 집결시간은 오전 6시까지 시민회관 앞에 집결하여야 한다. 점심식사와 다과 등은 일체 교구에서 준비하고, 돌아오는 길에 초정약수와 서택순 생가 등으로 성지순례를 할 계획이다. 동덕님들의 많은 참석바랍니다.
* 집례 : 덕암 성강현 종학실장 * 경전봉독 : 조준환 학생동덕(의암성사법설 성령출세설, 653~660쪽) * 천덕송 합창 (1) 제3장 안심가 (10쪽, 1~2절) (2) 송가, 우리는 하나 (99쪽, 1~2절) * 설교 : 준암 박인준 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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