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노래,
수필
박미령(朴美玲)
가수
김광석이 부른 "나의
노래"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
이라는
가사로 시작된다.
"나의
작가노트"라는
제목으로 글을 시작하려 하니 김광석의 "나의
노래"를
듣고 싶어진다.
나에게
있어 수필은 내가 부르는 삶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내
안에는 항상 삶을 향한 나의 노래가 있었다.
때로는
아픔으로 때로는 환희로 때로는 갈등으로 내 마음의 소리가 울려 올 때 사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적이 많았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보다는 삶의 현장에서 주어진 일을 하느라 마음에 울려퍼지는 노래를 애써 외면한 적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아버지는 문학하는 사람은 배고프다고 하시며 열심히 공부해서 출세하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일찌감치 나는 문학에의 꿈을 접어야 했다.
실향민이었던
아버지는 평생 이북에 두고 온 가족을 마음에 담고 사셨다.
전쟁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지도 못 한 채 가장으로서의 버거운 책임을 져야했던 아버지에게 중요한 것은 현실이고 "전쟁이
나도 먹고 살 수 있게 해주는 자격증"
같은
것이었다.
중학교
때 국어선생님은 자기가 좋아하는 제목을 붙여서 개인문집을 만들어오라고 하셨다.
그
문집에 자신의 글을 써서 모으면 그것이 바로 자신만의 문집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빈 종이를 묶어 철을 해서<실개천>이라는
제목으로 개인문집을 만들어갔는데 선생님은 그 문집에 내가 처음 쓴 글을 잘 썼다고 칭찬하시며 친구들 앞에서 읽어 주셨다.
나는
선생님이 내 글을 읽어주시는 내내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
마치
친구들 앞에서 발가벗은 듯 너무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어서였다.
사춘기
소녀의 여린 감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이후 국어선생님은 친구들 앞에서 다시는 내 글을 읽어주지 않았다.
문학은
그렇게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소설
읽기를 즐겼고 남몰래 일기를 썼지만 문학에의 꿈은 접었다.
내가
다시 글쓰기와 만난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아마
2000년쯤이었을
것이다.
여고
동창 게시판에 내가 올린 글을 눈 여겨 본 선배님이 계셨다.
따로
수필 공부를 하지 못한 나를 위해 선배님은 내가 쓴 글을 애정을 가지고 면밀히 검토해 주셨다.
분에
넘치도록 개인 지도를 받은 셈이 되겠는데 이 분이 수필가 유선진 선배님이시다.
이후
2004년
에세이 문학 가을호에 수필가로 등단하여 어릴 적 접었던 문학에의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수필가로
등단하는 등단식에서 인사말을 하면서 나는 수필을 쓴다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가장 맑은 거울을 가지는 것이고 그 맑은
거울을 통해 정직한 내 모습과 따뜻한 세상을 볼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과연
그랬다.
수필을
쓰면서 나는 심사가 복잡할 때는 글이 써지지 않는 것을 경험했다.
거울이
흐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필을 쓸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것은
나의 삶이 내 안에서 정화되어 맑은 거울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마치
거울 앞에 선 것처럼 나의 삶을 바라보고 글을 쓰면서 나는 비로소 내 마음속에 수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연주되어야 하는 노래가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
노래를 잘 표현해 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
사람 속에 내재되어있는 마음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아름답게 연주하는 것이 바로 수필이고,
그래서
수필은 애써 배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나오는 나만의 노래가 아닐까.
수필을
쓸 때 나는 제목부터 정하고 쓰는 버릇이 있다.
마음에
감동이 오면서 글을 쓰고 싶어지면 며칠이고 생각을 공들이면서 내가 쓰고 싶은 수필을 한마디로 표현해 줄 제목을 정한다.
그렇게
제목을 정한 후에야 비로소 글이 시작 되는데 막상 글을 쓰다보면 애초에 생각했던 방향과는 다르게 글이 진행되는 경우도 있어,
제목을
바꿀까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이미 써 놓은 글을 버리고 글의 내용을 제목에 맞추어 다시 쓸지언정 제목을 바꾸지 않는다.
그만큼
나에게 제목은 내가 글을 써 나갈 수 있는 중요한 모티브를 제공한다.
반면
글의 내용을 전개해 나갈 때는 퇴고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일단은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 나가지만,
글의
순서를 여러 차례 바꾸어 가면서 글이 박진감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내용상
버리기 아까운 글이라도 전체적인 글의 흐름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삭제한다.
수필을
쓸 때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부분이다.
문단을
나누고,
문단과
문단사이의 유기적인 연결이 잘 되어 있는지를 세밀하게 살피면서 그 모든 글들이 내가 정한 제목인 주제를 향해 일관성 있게 나가고 있는가를 글을
쓰면서 지속적으로 점검한다.
그래서
12매
정도의 짧은 글이지만 시작과 끝이 정확하게 맞물리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했는지,
그래서
내 마음속에 있는 노래를 잘 불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수필을
노래라고 친다면 내 마음속 노래의 제목과 가사쓰기에 대한 이야기는 대강 한 것 같다.
그러나
목소리에 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목소리를
아름답게 내려고 하는 노력에 대한 나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상황에 맞는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고 맛깔스러운 표현을 하는 부분에 있어 나는 많이 모자라는 것 같다. 동일한
단어를 연속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가급적 다양한 표현을 하려고 애쓰지만 문학수업이 부족해서인지 문학적 어휘력이나 표현력에 있어 한계를 느끼곤
한다.
앞으로
이 한계를 극복해서 나의 글에도 문학적 향취가 좀 더 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수필을
마무리할 때는 써 놓은 글을 며칠쯤 내버려두고 내가 쓴 글에서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 후에 다시 읽는다.
시간을
두고 나서 읽어보면 내가 쓴 글이 조금은 객관적으로 보이면서 전에는 보이지 않던 흠결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
부분들을 수정한 후에,
나는
독자의 시각에서 내 글을 다시 한 번 점검한다.
물론
내가 쓴 글의 독자가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내 글을 읽고 과연 독자가 어떤 것을 느끼고 생각할까를 미루어 짐작 해보려고 애쓴다.
내
글이 혹시 나 혼자 잘난 척하며 내 흥에 겨워 부른 노래가 된 것은 아닌가를 살핀다.
그런
글이라면 수필이 아니라 일기장에 써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수필을 쓰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이 정화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쓰는 수필이 독자와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수필이 아니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문학은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
그래서
내가 쓴 글을 통해 독자와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내가 수필가로써 문단 한구석에 자리하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기는 이유이다. 내가
오랫동안 귀 기울여 듣지 못했던 내 마음속의 이야기를 수필로 풀어낼 수 있어 행복하다.
특별히
늦은 나이에,
세파에
시달려 찢기고 부서져서 내가 많이 가난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던 때에 수필을 만난 것이 감사하다.
그렇게
수필을 만났기에,
수필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의 애?은 양식이 되어 나처럼 가난한 누군가와 풍요로운 소통과 나눔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