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과정은 죽는 날까지 미완성인 나를 온전히 만들어간다. 즉 여행하는 매 순간은 진정한 내가 되어가는 일이며 온전한 나를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계절마다 어디든 꽃은 있었지만 잠깐 해찰부리는 순간 단 한 번도 꽃피워본 적 없었던 것처럼 세상의 색깔은 세월과 함께 변해가는 것을 실감한다. 텃밭에 고추며 가지를 모종해야 할 시기에 적절한 비가 필요한 시기라지만 주일에 여행을 준비한 마음은 주말에 이어 비라도 내리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뿌연 안개비를 품고 전라북도 완주로 향한다. 지금 쯤 진안 꽃잔디가 무리지어 피었다는 기별을 뒤로하고 철쭉에 마음을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오늘의 첫 여행지는 완주 화산 꽃동산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화산 참 붕어찜이 유명하다기에 그 곳의 맛 투어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일이라 점심부터 챙기고 계획된 노선대로 꽃동산으로 향했다. 이곳은 사유지라 그런지 별다른 안내 표시가 없어 임시 주차장을 보면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임도를 따라 이동하였다. 꽃동산이라는 이름대로 임도 따라 이동한 입구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금낭화와 금빛 겹 황매화인 죽단화 그리고 홍색과 흰색 철쭉까지 온통 꽃이다. 잘 정돈된 데크 길이 남녀노소 편리하게 관람할 수 있을 뿐더러 멋진 조경수와 선홍빛 철쭉의 조화로움에 모든 일상을 멈추고 다만 지금이 최고의 행복한 순간이라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꽃동산이라 꽃이 아니라도 싱그러운 숲과 조용한 숲길이 그냥 좋으며 마냥 좋은 걸음걸음이다. 선홍빛 철쭉의 자태에 가슴은 뜨거워지며 금낭화는 지천이다. 죽단화 군락지 홍도화와 철쭉의 밀집도가 높아 봄의 색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다른 봄꽃들이 지천이라 꽃동산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곳이다. 소나무와 황매가 어우러진 싱그러운 숲과 그윽한 꽃향기가 잔잔한 평온을 한 폭의 수채화로 담고 우리는 되재성당지로 옮겨가기로 하였다. 되재성당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성당 건물이며 동시에 최초의 한옥 성당이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개인적으로는 한옥성당이라는 점에서 꼭 둘러보고 싶었던 욕심이 있었다. 되재성당은 1895년 한국 천주교회에서 서울 약현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완공된 성당으로 한강 이남에서는 처음 세워진 성당이라 한다, 한식 목구조로 번안한 한옥성당으로서 새로운 문화의 토착화 과정을 보여주는 최초의 한옥성당으로 추정되지만 한국전쟁 때 성당건물이 전소되었고 1954년에 다시 세운 공소건물이라 한다. 되재성당지 뒤편에는 전라도 북부지역에서 사목했던 죠쓰 신부와 라푸르까드 신부의 묘소가 있어서 몇몇 여행객은 그곳에 들러 묵념을 하고 내려오는 모습도 보였다. 특히 이곳은 남녀 유별한 시대에 지어져서 남자 신자석과 여자 신자석이 기둥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주말에 미사를 보는 것으로 적혀있다. 되재성당을 둘러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이정표를 따라 성당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목장들이 가까이 즐비해 있어서 차분해지는 마음과 달리 주변 환경도 좀 더 정비되었으면 하는 욕심을 가져보았다. 되재성당에서 나와 오는 길에 tv 프로그램에도 출연한 바 있으며 몇몇의 방송인들이 찾아 그 흔적이 남아 있다는 화산애빵긋 빵집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완주군 화산면을 사랑한다는 로컬푸드로 만든 빵으로 유명세를 탄 이곳은 한적한 시골에 뜬금없이 자리하고 있는 빵집이지만 아기자기 특색 있는 문화공간이었다. 이곳은 오전에 빵을 생산하고 오후에는 다음날 빵 생산 준비를 하고 있어서 오후 늦은 시간이라 빵은 없고 비워진 빵 바구니에 적힌 빵 이름만 담아왔다. 허망한 발걸음을 완주 경천 저수지의 풍경을 담은 카페 뷰로 향하여 차와 함께 잠시 쉬어가기로 하였다. 젊은이들의 낭만이 비단 북적거리는 도심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행 중에 한적하고 예쁜 카페를 만나 휴식을 갖는 일 또한 피크닉의 일부분이라서 어디를 가든 잠시 쉬어올 수 있는 주변 카페를 경유하는 과정도 빼놓을 수 없다. 사실은 여행이 아니면 남편과 단 둘이 차 한 잔 마시는 여유도 갖지 못하는 일상에서의 빠듯함과 금쪽같은 휴일에 아들과 함께 자연 속에서의 도란거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흔하고 보편적인 이야기 같지만 주변사람들과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는 일보다 어려운 것이 가족모임일 수도 있기에 더욱 더 애틋하고 알뜰한 여행이 되는 것이다. 하루 일정으로 멀리 움직이다 보니 우리는 서둘러 마지막 경유지인 대아수목원으로 향했다. 일제 강점기 중반 독일 기술진이 설계한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랜 된 근대식 댐이 완주의 대아댐이다. 호남평야의 젓줄 역할을 위해 건설되었으며 그 댐으로 하여금 아름다운 대아호수가 조성되어 있다. 드라이브 명소로 잘 알려진 대아호반 길을 따라 가면 대아수목원이 나온다. 호반의 아름다운 풍광과 운암산 절경을 구경하다보니 꽃보다 더 가슴이 벅차오르도록 아름다운 4월의 숲을 처음 보는 듯 초록초록 푸르다. 대아호수를 품고 있는 적벽인 듯 숲인 듯 연이어 감탄사를 보내며 늦은 시간이라 포기할 뻔 했던 이곳에 빠듯한 시간을 할애하여 들러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또한 호반에 위치한 아름다운 수목원이다 보니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의 사랑이 절대적이었다. 산책길과 등산로를 따라 힘들지 않게 걷다보면 빠짐없이 둘러볼 수 있도록 되어있을뿐더러 오르는 줄도 모르게 산중턱까지 올라와 있다. 2000년 1월 8일에 금낭화군락지를 포함하여 150만㎡로 구역면적을 확대하여 2006년 5월에 산림청 제20호 수목원으로 등록되었고 2012년 7월 12일에는 산림유전자원 관리기관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는데 부속시설로 방문자센터와 산림문화전시관 그리고 푸르미쉼터를 비롯하여 여러 다목적시설 등을 갖추고 있었다. 또한 전국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금낭화 자생군락지가 있다는 것이 눈을 끌었다. 특히 산림문화전시실은 약용식물의 유래와 세시풍속 그리고 전라북도의 산림과 임업의 역사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품이 전시되어 있어서 알차고 편안한 힐링의 명소라는 생각으로 대아수목원을 가꾸고 관리해온 정성에 칭찬과 흡족함을 아끼지 않았다. 수중에 돈이 많아서 여행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내게 주어진 금쪽같은 시간이 있고 무엇보다 건강하니 얼마나 좋은가.아직은 모험심과 앎에 대한 집요한 열정이 있으니 가진 것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내 삶과 특히 자연에 대한 에너지가 벅차오른다. 자동차 한 대에 간단한 간식거리라거나 사탕하나 물 한 병 뿐이라도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내게 주어진 자유가 있음은 크나 큰 무기이다.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풍요롭고 부족하면 있는 만큼 재미있게 없으면 없는 대로 자족하면 그만이다. 그것이 여행의 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