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열리는 명품 등산로
가야산 만물상(2010년 6월 개방예정)
오랜 기다림에 가슴태웠던 유혹의 바위 능선
심장을 격동케 하는 거친 말발굽 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바람처럼 거침없이 달려드는 세계 최강 몽골의 기마병들이 두려움에 쌓인 고려땅을 무참히 짓밟았다. 화급한 그날에도 칼이 아닌 영혼의 힘으로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려 했던 고려인들은 전란의 참화 속에서도 인고의 세월을 견뎌내며 16년에 걸쳐 부처님의 84000개 법문을 새겨 넣은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5천만여 개의 구양순체 글자가 판각된 81240장의 경판, 가야산은 법보종찰 해인사를 품에 안고 천년의 세월 팔만대장경에 담긴 민족정신을 굳건히 지켜왔다.
이런 가야산에서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칠불봉의 전설이 전해진다. 또한 가야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에게정신적인 안식처를 제공하며 신성시되어 왔고 해동의 10승지, 혹은 조선팔경의 하나로도 손꼽혀 왔다. 그리 높지도 크지도 않지만 유순한 산길이 산행의 부담을 덜어주고 호연지기를 키워주는데 기운차게 일어선 암봉들은 절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네다섯 시간이면 산의 동, 서쪽 어디에서 출발해도 정상을 경유하며, 가야산의 진면목을 만끽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등산객들의 발걸음을 가야산으로 향하게 하는 장점이다.
그러나 허용된 산길이 치인리 해인사, 백운동 용기골 딱 두 곳뿐이라는 단순함이 산꾼들에게 아쉬운 대목이었다. 그래서 가야산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는 1972년 가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37년 동안 한 번도 개방하지 않았던 만물상 등산로를 성주군과 협력하여 법정탐방로로 지정하기로 결정했고, 2010년 6월(예정) 개방을 목표로 등산로 정비작업을 시작했다. 이에 창간 20주년을 맞은 <사람과산>이 전격적으로 취재에 나섰다. 소개에 앞서 독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당부의 말씀은 만물상 등산로는 아직까지 개방되지 않은 곳이므로 산행을 하는 것은 불법행위이며 위험한 암릉 구간이 많아 다가오는 겨울철에는 등산객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곳이다. 관리공단에서 등산로를 정비하여 개방을 공식적으로 허용하기까지는 결코 산행을 시도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 기다릴 준비가 되었다면 2010년 초여름이 시작되는 햇볕 고운 어느날, 가야산의 숨겨진 비경을 오르는 행복한 상상을 하며 <사람과산>과 함께 만물상을 올라보자.
백운동 지구의 용기골과 심원골 사이에 있는 만물상 등산로의 들머리는 백운동 탐방지원센터 앞이다. 오른쪽으로 너른 도로를 따라 가면 용기골 방향이고 아직은 펜스로 가려놓아 산길이 있으리라 짐작하기 어려운 왼쪽편의 숲길이 만물상 방향이다. 취재진은 이번 산행의 안내를 맡아준 가야산국립공원의 박종철, 이종희씨와 함께 좁고 가파른 산길로 들어간다. 뜻밖에 너른 길을 따라 오른다. 잠시 오르니 그 이유를 짐작케 하는 잘 손질된 무덤이 있고 길은 계속해서 뚜렷하다. 동네사람들이 오르내렸던 길을 공단에서 정비해 놓았다고 박종철씨가 알려준다. 묵묵히 그의 뒤를 30여분 다라 오르다가 조그만 화강암 바위를 손으로 짚고 올라선다. 왼쪽으로 심원골을 딛고 일어선 헌걸 찬 암봉이 우뚝하여 시원하고 정면으로 아기자기하게 자리잡은 바위들이 만물상에 펼쳐질 바위들의 향연을 기대케 한다. 이제부터는 암릉을 타면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는 점도 마음을 즐겁게 한다.
짧은 내리막을 지나 조금 전 보았던 바위들을 옆으로 돌기도 하고 손과 발을 사용해 기어오르기도 하며 제일 높은 바위 위에 올라선다. 이번에는 오른편으로 칠불봉에서 동성봉 사의 바위능선이 난공불락의 성벽을 세워놓은 듯 장엄하고 왼편으로 기암의 바위들을 짊어진 만물상의 봉우리들이 제각각의 개성으로 힘껏 솟아 서장대까지 이어진 모습이 장관이다. 기대감에 빨라진 발걸음으로 산죽 숲을 지난다. 취재진을 보고 놀란 다람쥐가 바위를 뛰어올라 황급히 달아나고 이름 모를 짐승들의 낯선 체취가 생경하다. 제 세상인 듯 살았을 터인데 이제 곧 등산객들이 다니게 되면 이들의 가냘픈 생존이 크게 위협받으리라. 다른 생명과의 공존을 위한 진지한 성찰까지는 아니더라도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조심히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본격적인 바위능선이 시작되자 뜀바위가 나온다. 한번에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망설여진다. 바위 사이의 시커먼 공간이 상당히 위협적이다. 눈을 질끈 감고 무릎에 힘을 주고 용기를 내서 뛰어 건넌다. 간담이 서늘하다. 곧이어 배불뚝이 바위를 내려가야 한다. 바닥으로 내려서다 배낭이 바위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왼편으로 벼랑이다. 인간이 가장 공포감을 느끼는 정도의 높이다.
"겨울에 눈이라도 내려 얼어버리면 지나기가 불가능하겠죠? 이곳에 나무데크를 설치할 겁니다. 배낭 조심하세요."
이종희씨가 주의를 준다. 공단에서 이미 사전답사를 마무리하여 정비계획이 완료되었지만 박종철씨와 이종희씨는 등산로를 살뜰하게 살피며 지나간다.
연이어 봉우리를 오르내린다. 짧은 오르막과 내리막이라 별로 힘들지 않다. 봉우리에 올라서면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부처가 되고 동물의 형상이 되고 신라시대 토우의 얼굴이 되기도 하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신비롭다. 가야산의 품에서 용맹정진 하신 성철스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보이는 것은 관음이요 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 보고 듣는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다"는 그 말씀이 머리로 이해되는 듯도 하지만 마음에 머물지를 못한다. 세월은 달려가고 욕심은 쌓여만 가는데 어느 날이 되어야 그 생각을 붙잡아 반듯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보이지 않는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싶다.
나들은 점점 가을을 닮아가고 칠불봉이 성큼 다가오나 싶더니 푸근한 흙길이 나오고 곧 서장대다. 상아덤이라 불리던 이곳은 하늘신이 가야산의 여신과 부부가 되어 옥동자를 낳았는데, 형은 대가야국의 첫 임금 '이진아시왕'이 되었고 아우는 금관가야국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서장대에서 법정탐로인 용기골이 끝나는 서성재까지는 3분 거리, 고즈넉한 숲길을 걸어 만물상으로 가는 산행로를 막아 놓은 울타리를 넘어서면 다리쉼을 할 수 있는 나무의자가 놓여있고 이곳부터 칠불봉까지는 탄탄대로다. 경사가 급하고 아찔한 철계단이 기운을 빼지만 거친 만물상을 지나온 터라 잘 정비된 등산로가 마음의 긴장을 풀어준다. 야생의 자연을 찾아왔으면서도 사람의 손길이 닿은 곳이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칠불봉에 올라선다. 서쪽으로 가야산의 주봉 상왕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남동쪽으로는 방금 올라온 만물상의 능선이 제 본래의 모습을 무성한 나무들로 가리고 유순하게 도열해 있다. 날씨는 맑고 하늘은 푸른 날이지만 안타깝게도 구름이 태양을 가렸다. 주민욱 사진기자가 캄캄한 밤에 빛나는 별빛처럼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만물상의 바위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에, 구름이 물러나길 기다리면서 시간이 늦어졌다. 가을산의 어둠은 순식간에 온다. 상왕봉을 가지 않고 왔던 길을 되짚어 서성재에서 용기골로 하산한다.
보통 계단 크기의 나무 4개를 붙여 발 디딤이 편하게 설치해 놓은 나무계단이 인상적이다. 가파른 내리막도 특별한 위험도 없는 구간, 이야기를 나누며 편하게 내려갈 수 있는 길이다. 나지막하게 어둠이 내려앉고 행복한 기분에 젖어든다. 내년 6월(예정)이면 독자 여러분도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니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가야산국립공원관리공단 시설탐방과장 장봉식
"가야 문화권에서 신성시 했던 가야산은 불교문화의 성지입니다. 등산로가 험준하지 않고 아기자기한 풍광과 바위산의 특징인 웅장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위로 형성된 정상에 올라서면 한껏 성취감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근무 16년째인 장봉식 과장의 기야산에 대한 일목요연한 설명이다. 37년 만에 개방되는 만물상 등산로의 시설 책임을 맡고 있는 그의 계속되는 설명에 따르면 공사는 1,2차에 걸쳐서 진행된다. 올해 편셩된 2억원의 예산으로 12월까지 1차 공사가 마무리 된다. 내년에는 3억원의 예산을 배정받아 4월까지 2차 공사가 마무리 된다. 5월에는 최종 점검을 하고 6월에 개방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처음 취재를 요청했을 때 그는 상당히 난색을 표명했었다. 그 이유는 만물상 등산로가 나름대로 난이도가 있는 곳이라 등산로가 정비되기 전에 <사람과산>에 소개되면 혹 이를 보고 찾아올지 모르는 등산객들의 안전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등산로 시설 작업이 완료되고 입산을 허가하기 전까지는 만물상 등산로로 산행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려달라고 수 차례 부탁해 왔다.
"한 순간의 방심과 안전에 대한 무관심이 사고를 부르는 원인입니다. 자신의 생명에 관계된 일이니 산을 오를 때는 겸손한 마음으로 조금만 주의 깊에 행동해 주시길 거듭 당부 드립니다. 그리하면 더 없이 좋은 경관을 감상하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가져가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스스로가 산행을 즐긴다는 장 과장, 토목을 전공한 대학 졸업반 시절 우연히 가게 된 지리산에 반했고 우연히 신문에서 관리공단의 직원 모집 공고를 보고 운명처럼 관리공단에 근무하게 되었다. 오랫동안 시설관리 부문에서 일해 왔는데 특히 2004년 조성한 태안반도의 '기지포 자연관찰로'는 탐방객도 많고 훌륭하다는 칭찬을 듣고 있어 자부심과 보람이 느껴진다고 한다. 숨어 있는 장소를 이용하는 탐방객들의 안전과 사용의 편리함을 배려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의 말이 든든하다.
"만물상 등산로 개방에 대해 지역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높습니다. 성주군의 협조도 적극적입니다. 손동호소장님를 비롯한 저희 공단 44명의 직원들이 열정을 다할 것입니다. 설악산의 '용아장성'에 못지않은 가야산의 '용아장성'이 될 것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장 과장의 말에 잠 못드는 산꾼들이 많을 듯하다.
*산행길잡이
백운동탐방지원센터-(2시간)-서장대-(3분)-서성재-(1시간10분)-칠불봉-(40분)-서성재-(1시간10분)-백운동탐방지원센터
새로 열리는 가야산의 명품 등산로 '만물상'
37년 만의 개방을 앞두고 등산인들을 설레게 하는 만물상은 가야산의 남동쪽 백운지구의 용기골과 심원골 사이의 바위 능선이다. 지역주민의 10여 년간의 끈질긴 개방 요청을 수렴하여 성주군과의 협력하에 전격적으로 법정탐방구간으로 고시되었다. 2010년 4월까지 1,2차에 걸쳐 등산로 정비가 진행될 예정이며 6월 개방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산행의 들머리인 백운동탐방지원센터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3여분 올라가면 본격적인 암릉산행이 시작된다. 한꺼번에 고도를 올리는 게 아니라 각각의 개성을 지닌 바위 봉우리들이 서장대까지 연결되어 있다. 그 오르내림의 폭이 크지 않아 체력적으로 부담스럽지 않다. 현재 위험한 바위 구간은 옆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고 공사가 진행되면 안전시설이 설치된다. 그렇다 하더라도 상당히 위험구간들이 있으니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 만물상은 웅장함보다는 아기자기한 바위들의 모양새가 색다른 감동을 주는 등산로다. 올라갈 때는 바위들이 숲에 가려 잘 보이지 않으나 여유를 가지고 뒤를 돌아보면 눈부신 바위 숲을 감상할 수 있다. 치인리의 해인사와 백운동 지구 사이의 불편한 교통편 때문에 종주가 부담스러워 용기골 등산로만을 이용해 원점회귀할 수밖에 없었던 등산객들에게 만물상 등산로 개방은 단조로움을 벗어나게 해주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산행거리가 조금 짧게도 느껴지지만 칠불봉을 거쳐 상왕봉을 오르고 해인사로 하산하든지 서성재로 되돌아와 용기골로 하산한다면 하루산행으로 멋진 추억을 담아갈 수 있다.
*교통
서울 출발 승용차는 김천나들목을 기점으로 한다. 경부고속국도~김천나들목~4번(대구방면)국도~59번 국도(금수 방면)~백운동매표소.
부산 출발 승용차는 남해고속국도~칠원나들목~중부내륙고속국도(대구, 창녕방면)~고령JC~88고속국도 해인사나들목로 나와 우회전~가야면 소재지~997번 국도(성주방면)~백운동매표소
*잘 데와 먹을 데
백운동지구 가야산국민호텔(054-931-3500), 해인사지구 해인사관광호텔(055-933-2000) 외에도 숙박시설이 많다. 88고속국도 해인사나들목 톨게이트 바로 맞은편 두진각(055-933-6828)이 스님짜장으로 유명하다. 스님짜장 5,000원, 스님탕수육 20,000원.
*볼거리
해인사 신라 제40대 애장왕 3년(802년)에 창건되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법보종찰로 한국 화엄종의 근본 도량이다. 가양산국립공원공단에서 운영하는 국립공원해설 프로그램을 이용한다면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055-932-7810.
글쓴이:백진국 기자
참고:월간<사람과산> 2009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