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강원도 속초 장천마을에서 한 주민이 불에 탄 가옥을 바라보며 망연자실해있다

지난 4일 오후 7시 17분쯤 강원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한 주유소 맞은편 도로변 변압기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이 나 산과 시내로 옮겨붙고 있다

4일 오후 산불이 난 강원 고성군의 야산. 바람에 불티가 날리고 있다

5일 강원 속초시 장사동 영랑호에서 소방헬기가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5일 하늘에서 바라본 강원도의 한 야산이 검게 타버렸다
(부산=IBS중앙방송)윤한석기자= ‘고성 산불’은 4일 오후 7시 17분쯤 강원 고성군 토성면에서 시작됐다. 불은 순간 최대 풍속 초속 26m가 넘는 ‘태풍급 강풍’을 타고 30여 분만에 속초시까지 빠르게 번졌다. 오후 11시 46분쯤엔 강릉시 옥계면에서 불이 났다. 이 불은 한 시간 만에 동해시 망상동까지 번졌다.
4~5일에만 강원도에선 인제, 고성, 속초, 강릉, 동해 등 5개 시·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났다. 더구나 산불이 이례적으로 빠르게 번지면서 주민들은 밤새 ‘화마(火魔) 공포’에 떨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강원 산불’은 습도와 바람, 지역 특성, 시간대 등 4가지가 공교롭게 맞물려 이례적으로 빠르게 규모를 키웠다고 분석했다.
불이 잘 붙는 소나무가 많은 강원 지역에 △건조주의보로 바짝 마른 상태에서 산불이 났고, △봄철 ‘태풍급 강풍’을 타고 산불이 급속히 확산했는데 △야간이라 진화 작업도 어려웠다는 것이다.
①바짝 메마른 대기와 산림…
사흘째 건조 특보
불이 난 고성을 포함해 강원 전역엔 지난 2일부터 사흘째 건조주의보가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3일엔 고성과 속초 일대는 건조경보로 격상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고성·속초는 화재 당시 실효습도(목재 등의 건조 정도를 나타내는 지수)가 22%에 그쳤다.
대기가 건조하면 화재 연료가 되는 물질 속 수분이 말라, 대기가 습할 때보다 불이 훨씬 잘 붙는다.
기상청 관계자는 "실효습도가 50% 이하로 떨어질 경우 화재 발생률이 높아지고, 30% 이하로 떨어지면 자연 발생적으로 불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며 "
고성·속초의 경우 실효습도가 25% 이하인 데다 수일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대기와 산림이 모두 바짝 마른 상태였다"고 말했다.
이렇게 건조한 것은 계절적 이유도 있다. 봄철 한반도를 찾아오는 이동성 고기압이 대기를 건조하게 했고, 겨울 이후 기온이 오르면서 습도를 더 낮췄다.
산림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발생한 산불 58%가 건조한 봄철 발생했다.
②태풍급 ‘강풍’… 삽시간에 불길 번졌다
대기가 바짝 마른 가운데 바람마저 강하게 불었다. 화재 당시 강원도에는 강풍 경보가 내려져 있었다. 고성에선 전날 오후 8~9시 사이 초속 26.1m의 바람이 불었다. 초속 25m 바람은 지붕이나 기왓장을 뜯겨 날려 보낼 수준이다. 불이 시작될 무렵 기상청 미시령 자동관측장비에는
순간 초속 35.6m의 중형 태풍급 강풍이 관측됐다. 이 바람을 타고 불길이 속초까지 빠르게 번졌다..
바람의 특성마저 불을 몰고 온다는 뜻으로 ‘화풍(火風)’으로 불리는 ‘양간지풍’이었다. 양간지풍은 봄철 양양~간성·고성, 양양~강릉 사이에 국지적으로 부는 바람으로 풍속이 매우 빠른 데다 고온 건조한 특성이 있다.
③밤중에 發火… 소방헬기, 화재 11시간 뒤에야 출동
산불 진화의 핵심 전력인 소방헬기가 불이 난 지 약 11시간 뒤에야 출동한 것도 피해를 키웠다. 산불은 소방대원이 발화 지점에 접근하기 힘들고,
소방차 소방용수도 10분이면 소진될 정도로 피해 면적이 넓다는 점에서 다른 화재보다 진화가 어렵다. 소방헬기가 상공에서 주요한 불길을 잡아줘야 하는데 소방헬기는 이날 동이 튼 뒤 오전 6시 10분쯤 처음 투입됐다. 주간비행보다 야간비행 기상 조건이 까다로운데,
화재 당시 강풍까지 불어 소방헬기가 뜰 조건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진수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헬기는 보통 맨눈으로 가시(可視)거리를 확인하면서 비행해야 하기 때문에 주간비행 위주로 운행하고 야간비행은 잘 하지 않는다"며 "
헬기는 바람에 취약한데 이번 화재 때 강풍까지 불면서 산불을 제압할 주전력인 소방헬기가 운영되지 못해, 국가재난사태 정도의 큰 피해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④인화성 강한 소나무, 땔감처럼 작용
강원 일대 야산에 소나무가 많다는 점도 산불이 대형화한 데 영향을 끼쳤다. 소나무는 다른 나무보다 인화성이 강하다.
강원도는 토양이 척박하고 경사가 심해 활엽수보다 소나무와 같은 침엽수가 주로 분포한다.
차준희 국립산림과학원 산불방지과 사무관은 "특히 소나무는 정유(精油) 물질을 함유한 송진을 갖고 있어 산불이 커지는 연료 역할을 하고, 솔방울은 바람을 타고 비화(飛火)하면서 불똥 역할을 해 화재를 확산시켰다" 고 말했다.
이용재 경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제강점기 일본은 석유가 부족하다며 우리나라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해 석유 대용으로 사용했다"며 "기름에 버금갈 정도로 송진은 불에 잘 타는 속성이 있다"고 했다.
또 "우리나라가 산림을 울창하게 잘 관리한 점이 화재 확산 측면에서 오히려 독이 됐다"며 "낙엽이 두껍게 쌓여 불 붙기 좋은 조건이었다"고 말했다.
press01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