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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문예연감'에서>총론선택과 치유의 문학 이민호 (시인, 문학평론가) 1. 머리말선택의 기로에 선 인간에게는 두 가지 길이 열려 있다. 환희와 좌절이다. 뜻한 바를 이루고 누리는 기쁨은 세상을 다 얻은 듯하다. 하지만 좌절은 상대적으로 더 큰 상처를 남긴다.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이 간극을 메우고 치유하려는 의지가 바탕에 자리하기 때문이다. 2012년은 선택과 변화의 해였다. 한국은 물론 여러 나라에서 정권이 교체되었다. 미국은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였고 중국은 13억 인민을 이끌고 갈 시진핑 시대가 열렸다. 북한정권이 교체기에 들어섰고 한국 역시 최초 여성 대통령을 뽑았다. 정치의 변화는 선택의 순간만을 향해 치달은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유로존 위기는 유럽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를 공황상태에 직면하게 했다. 유럽 재정위기가 심화되어 우리나라를 비롯해 각국의 수출증가율을 하락시키며 서민 경제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경제적 공황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처럼 정신적 공황상태가 사람들을 어둡게 지배하고 있을 때 ‘힐링(healing)’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정치적 선택이 한국 사회의 불안과 공포를 거두게 할 것이라는 적극적 행위를 유도했다면 ‘힐링’바람은 사람들의 시선을 쉽게 이끌었다. 그것은 대통령을 누구로 뽑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였다. 내 자신의 주인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였기 때문이다. 긍정의 힘을 강조하는 기존의 자기계발식 몰아세움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되돌아보게 하는 새로운 흐름이었다. 여기저기서 치유를 바탕으로 새로운 삶과 새로운 정치를 주창했다. 혜민 스님과 정치인 안철수가 대표적이다. 2012년 출판계와 사회적 네트워크(SNS)를 선도했던 혜민 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통해 세속의 언어로 일상의 고통을 어루만지려 했다. 그는 저술뿐만이 아니라 32만 명에 이르는 팔로어와 함께 새로운 소통방식을 실현하였다. 더불어 일부 정치인들이 출판을 통해 대중에게 다가서는 동시에 대화방식의 직접 소통을 시도하였다. 이처럼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물론 정치인들도 ‘힐링’을 구호화했다. 선택의 시대에 문학도 새로운 대응을 모색했다. 픽션의 세계에서 나와 논픽션의 방식을 택한 것이다. 상상력으로 치유할 수 없는 인간 내면의 그림자가 너무 짙게 드리웠기 때문이다. 문학이 인간 상처를 직접 치료하기에 역부족이지만 치유의 손길은 어느 때보다도 뜨거웠다. 2012년 다른 어떤 문학 장르보다 시의 역할이 눈에 띈 것에 확인할 수 있었다. 상실과 상처의 시대에 인간의 선택은 희망의 열쇠와도 같다. 선택은 반드시 치유의 과정이 따르는 행위여야 한다. 문학이 그런 장치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2. 2012년 주요 현황1) 시2012년은 정치의 계절이었다. 시인 역시 현실 정치의 구성원으로 합류하였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시인들의 정치적 움직임이 있었다. 안도현 시인이 대선후보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데 이어 신경림, 김용택 시인 등이 멘토단에 들었다. 특히 김지하 시인의 특정 대선 후보 지지는 구정치와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라는 측면에서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이처럼 적극적 정치 참여와 더불어 정치권으로부터 직접적인 견제도 잇달았다. 대표적으로 도종환 시인의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하려는 움직임이었다. 유야무야되기는 했지만 한동안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중립성 사이에서 논란이 일었다. 이와 다른 형태의 현실 참여가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작가행동1219’라는 이름으로 현실 참여를 선언하였다. 트위터 등 사회적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정치적 의견을 문장화하여 자발적으로 표명하였고, 오프라인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자 가족과 북콘서트를 열기도 하고 제주 강정마을에 평화도서관을 짓고자 선언하기도 했다. 2012년 가장 두드러진 시단의 움직임은 ‘시의 귀환’이라 일컫는 현상이다. 출판계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주요 출판사에서 70권에 달하는 시집이 출간되었다. 김기택, 신용목, 이원, 이근화 등의 시집 14권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백무산, 곽재구, 문태준 등의 시집 15권이 ‘창비’에서, 이기철, 최문자 등의 시집 8권이 ‘민음사’에서 나왔다. 더불어 ‘문학동네’와 ‘문예중’이 시인선을 꾸준히 발간했다. 특히 젊은 시인의 등장이 두드러졌다. 김승일의 『에듀케이션』, 이우성의 『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 김선재의 『얼룩의 탄생』, 박성준의 『아껴 쓴 일기』, 백상웅의 『거인을 보았다』, 이병일의 『옆구리의 발견』, 이은규의 『다정한 호칭』, 김이강의 『당신 집에서 잘 수 있나요』, 서대경의 『백치는 대가를 느낀다』 등이 첫시집으로 선보였다. 인터뷰와 산문, 시작노트 등의 방식으로 이들 젊은 시인들의 면모를 파악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졌다. 미래파의 흐름과의 비교 속에서 미래파 이후의 가능성 등을 가늠하는 내용이 주조를 이루었다. 정치와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라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낭송 모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모든 독자가 모든 작가로 전환되는 시대에 걸맞게 시는 시인의 손을 떠나 대중 속으로 들어간 듯하다.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사업이 5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되었다. 한국도서관협회 주관으로 수행된 ‘도서관, 문학관 문학작가 파견’ 사업이었다. 이 사업을 통해 70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전국의 공공도서관과 문학관에서 시낭송음악회가 열렸다. 2) 소설2012년 소설계는 박완서의 타계 이후 그의 업적을 기리며 상실감을 다독이는 한 해였다. 1월 서울대 인문대는 작가 박완서가 남긴 사재로 기금을 조성하여 인문학 분야의 ‘박사후 연구자’들에게 지원하기로 했다. 같은 달 도서출판 세계사에서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이 출간되었다. 장편, 연작소설 15편이 전체 22권에 담겼다. 5월 4일 타계 1주기를 맞아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전기회가 열렸다. 작가의 결혼식 동영상, 조각가 이영학이 제작한 청동 두상, 이상문학상 수상소감을 쓴 육필 원고, 고인의 생전 일상이 공개되었다. 7월에는 경기 구리시에서 박완서 문학자료관 건립을 위한 보고회가 있었다. 이 문학자료관은 2015년 1월 개관 예정이다. 이와 더불어 작고 문인들의 작품집 발간이 줄을 이었다. 1월에 박경리가 1960년대 신문에 연재한 장편소설 『녹지대』가 47년 만에 단행본으로 묶여 현대문학 출판사에서 나왔다. 8월에 박경리의 『토지』 결정판이 마로니에북스에서 출간됐다. 10월에는 소설가이자 번역가였던 이윤기의 첫 장편소설 『하늘의 문』이 작고 2주기를 맞아 재출간됐다. 한편 소설 『증묘』, 『만취당기』를 쓴 소설가 김문수가 11월 5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였다. 2012년에도 신경숙의 엄마 열풍이 지속되었다. 신경숙의 장편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4월 들어 국내 판매 200만 부 기록을 달성했다. 2009년 출간 10개월 만에 100만 부를 돌파한 데 이은 결과다. 또한 이 작품으로 한국 작가 최초로 아시아 최고의 문학에 주어지는 ‘맨 아시아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 문학의 세계화 경향과 맞물려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2012년의 소설계 경향 중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현상이 두드러졌다. 드라마와 영화화되었던 소설들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정은궐의 『해를 품은 달』과 박범신의 『은교』가 대표적이다. 이들 작품들은 드라마나 영화의 인기에 힘입어 2012년에 재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일종의 장르 소설이라 할 수 있는 『해를 품은 달』의 인기는 치유를 원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작품들이 보이는 해피엔딩의 흐름이 공감과 위로가 되었다 할 것이다. 특히 『은교』는 전자책으로 만들어져 2012년 한 해 가장 많이 찾은 책으로 선정되었다. 교보문고가 집계한 ‘교보문고 2012 전자책 판매 동향’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2012년 눈에 띄는 작가는 『원더보이』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등 두 편의 장편소설을 낸 김연수였다. 소설 출판의 침체에도 김연수의 일곱 번째 장편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주목할 만하였다. 입양아가 친부모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소통과 공감을 화두로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진실이 무엇인가를 보여줌으로써 상처받은 사람들의 치유의 또 다른 양식을 보여주었다. 김연수 특유의 감성적이며 감각적인 문체가 돋보였고, 시점의 자유로운 구사와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이 넘쳤다. 소설 출판 시장의 불황에도 장편소설 출판이 연이었다. 등단 50년을 맞은 황석영이 『여울물 소리』를, 성석제가 『위풍당당』과 『단 한 번의 연애』를, 은희경이 『태연한 인생』을 출간했다. 『여울물 소리』는 황석영 자신의 삶을 투영한 작품으로 조선 후기 서얼로 태어난 주인공이 동학혁명에 투신하게 되는 일대기를 그렸다. 봉건 패권주의로부터 벗어나 근대로 접어든 한국 사회의 일면을 작가의 시선을 통해 목도할 수 있다. 『위풍당당』은 성석제의 위트 있는 문체를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작품으로 웃음과 해학 속에 자리하고 있는 비판 정신을 새삼 만끽할 수 있다. 또 다른 작품 『단 한 번의 연애』는 성석제의 보기 드문 연애소설로 평가 받았다.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고래잡이의 딸에게 매혹 당한 어린 소년이 중년의 남성이 되기까지 사랑과 치유, 구원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또한 2012년의 서사 형식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은희경의 『태연한 인생』은 거처할 수 없는 사랑의 현주소를 드러냈다는 평을 들었다. 혼돈의 시대에 사람들은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 때문에 방황하는지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작품이다.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위악을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일종의 치유의 방식이라면 충분히 2012년의 풍경을 드러냈다 할 것이다. 주목할 만한 새 장편도 이어졌다.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 전경린의 『최소한의 사랑』, 하일지의 『손님』, 심윤경의 『사랑이 달리다』, 편혜영의 『서쪽 숲에 갔다』, 이인화의 『지옥 설계도』, 백영옥의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정찬의 『유랑자』, 안보윤의 『우선 멈춤』, 이응준의 『내 연애의 모든 것』, 김사과의 『테러의 시』, 천명관의 『나의 삼촌 브루스리 1, 2』, 백가흠의 『나프탈렌』, 이신조의 『우선권은 밤에게』, 김선우의 『물의 연인들』, 김미진의 『랭보의 바람구두를 신다』 등이다. 그 외 윤후명의 『꽃의 말을 듣다』, 이혜경의 『너 없는 그 자리』, 최수철의 『망각의 대가』, 박성원의 『하루』, 김애란의 『비행운』, 김중혁의 『일층, 지하 일층』, 황정은의 『파씨의 입문』, 손홍규의 『톰은 톰과 잤다』, 김숨의 『그 밤의 경숙』과 같은 작품집이 출판되었다. 2012년 독자들은 한국 소설을 많이 선택하지 않았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권에 이름을 올린 한국 소설 새 책은 이정명의 『별을 스치는 바람』, 정이현과 알랭 드 보통이 기획한 『사랑의 기초』 2권뿐이었다. 이러한 선택은 모두 비극적 현실에 대해 사람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가를 잘 대변해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사랑에 기초한 삶의 온전한 회복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을 잘 읽고 치유했던 소설만이 대중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3) 평론ㆍ번역ㆍ기타2012년 평론계는 좀비 비평의 오명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탄이 지배적이었다. 문학 외적인 대선정국과 맞물려 문학의 위기를 정치의 계절 속으로 밀어 넣은 격이라 판단된다. 좀비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문학 속에서 운위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문학의 오늘』이 실은 「기획 논단 : 2012 대선 진단 특집」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특집에는 고성국의 「대통령과 그의 동업자들-동업관계 청산해야 정권이 성공한다!」와 방민호의 「안철수, 그리고 한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게재함으로써 문학과 정치의 함수관계를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 문학평론가와 정치평론가의 경계가 흐릿해진 듯 보였다.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게재된 이철희의 「대선국면에서의 연합정치와 시민정치」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앞서 『문학의 오늘』은 여름호에 정치와 대중문화의 구조를 문학에 대입하여 눈길을 끌었다. 「한국 사회 어디로 가고 있나」를 특집으로 박현수의 「문재인 vs 안철수: 재인체어냐 철수체어냐」, 임진모의 「SM vs YG vs JYP: SM이냐 YG냐 아니면 JYP냐」, 나민애의 「송경동 vs 진은영: 삶적인 문학이냐, 문학적인 삶이냐」, 방민호의 「봉준호 vs 박찬욱: 그로테스크냐 알레고리냐」, 이경철의 「공지영 vs 신경숙: 무소의 뿔이냐 깊은 슬픔이냐」는 우리 사회의 상호텍스트적 상황을 양항대립의 관계 속에서 파악함으로써 현실을 흥미위주로 이끈 점이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소영현은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서 좀비 비평의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비평의 자율성’을 회복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며 문학이 담으려는 현실을 추종하기보다는 한 발 먼저 가 서 있는 비평 범주와 기능을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2012년의 정치적 선택을 집요하게 파고든 매체가 『실천문학』이었다. 『실천문학』 봄호에서는 ‘99%의 목소리들’이라는 특집에서 자본주의에 짓눌린 2012년의 한국에서 문학의 역할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문제제기하였다. 김원의 「서발턴의 재림」, 김종훈의 「문학이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없는 말」, 서영인의 「문학의 빈곤과 전환의 상상력」, 장성규의 「대중의 심성구조 변화와 전복적 미학의 가능성」은 2012년의 정치적 선택의 문학적 대응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문학적 선택의 지경을 『실천문학』 여름호에서 확장시킨다. 특집 「정치를 넘어선 정치」에서 선거만이 정치는 아니라는 주장 속에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둘러싼 저항, 반월가 시위, 아랍혁명 등 비서구에서의 민주주의 실험, 김진숙과 희망버스, 강정마을로 이어지는 정치를 넘어선 시도에 대해 초점을 맞춘다. 이승원의 「대의제 민주주의, 사육제 혹은 블랙홀」, 이정필의 「후쿠시마 이후의 녹색 정치의 미래」, 김상준의 「비서구 민주주의 : 또 하나의 가능성」, 김상운의 「반란과 해방의 정치」가 그러한 내용을 담았다. 이처럼 정치를 넘어선 정치에 대해 다른 잡지들도 관심을 두었다. 『작가와 사회』 겨울호 특집은 「원전에 대한 위기담론과 실천적 대응의 문제들」을 다루어 김주현의 「핵재앙이 낳은 살림의 상상력」, 강희철의 「후쿠시마의 공포를 되돌아보며」, 서토덕의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고리핵발전소의 미래인가」 등을 실었다. 같은 맥락에서 『리얼리스트』 제6호에는 「후쿠시마 이후, 우리의 삶」을 다뤄 환경, 생태, 삶의 문제를 내면화하여 점검하였다. 이계삼의 「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 윤영수의 「후쿠시마, 그 후 1년」, 김응교의 「일본의 반핵문학」 등에서 원전의 위험성을 단순히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탈핵이 무엇보다 급박하고 절실한 현실의 문제임을 환기시켰다. 『리얼리스트』 제7호는 「방송파업, 그 후」를 특집으로 다뤄 정권 교체의 필요성은 주창할 수 있지만 그것에 얽매여 미래의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 것을 내용으로 담았다. 특히 방송의 파행적 현실은 우리가 그리고자 하는 미래를 상상할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문제로 인식하고 윤성아의 「 이처럼 정치적이건 그렇지 않건 선택의 기로에서 상처에 대해 치유의 담론이 꾸준히 형성되었다. 『오늘의 문예비평』 가을호는 ‘치유의 불가능성’을 특집으로 치유의 가능성을 역설적으로 타진하였다. 오길영의 「치유담론의 빛과 그늘」, 전성욱의 「상처받는 몸들」, 박시성의 「예술은 치유가 아니다」, 조성훈의 「비평을 넘어 치유로서의 영화-예술: 정동과 표현」이 실렸다. 이외에도 『애지』 겨울호에 김선주의 「시의 그림자, 영혼을 치유하다」, 오윤정의 「숫자공화국과 치유의 언어」, 『수필과 비평』 5월호에 김성희의 「백마강 달밤에-시공 넘나들기와 치유의 ‘엑스타틱트랜스(ecstatictrance)’」, 『시인세계』 봄호에 김진희의 「치유와 희망을 찾아가는 언어」, 『작가세계』 가을호에 방민호의 「현대적 불행의 증세들과 그 치유의 방법」, 『미네르바』 여름호에 설태수의 「통찰과 치유」, 『실천문학』 겨울호에 심주형의 「상처, 실천적 치유의 시도」, 『작가세계』 봄호에 어수웅의 「위로나 치유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 등이 실렸다. 디지털 정보 환경은 2012년에도 문학을 문화의 주변부로 밀어내고 있다. 경제 제일주의 앞에 문학은 철지난 이야기처럼 왜소하다. 그런데 수필만큼은 새로운 영역을 찾아 나선 듯하다. 2012년에도 수필 전문 문예지, 수필 동인지, 각종 수필창작 강좌가 우후죽순 늘었다. 생활 글쓰기 바람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은퇴기에 들어선 베이비 붐 세대들이 자신의 과거를 형상화하기 위해 문학판을 기웃거리고 문학소녀의 꿈을 다시금 실현하고자 애쓰고 있다 한다. 그런 측면에서 수필은 이들에게 가장 적확한 장르라 할 수 있다. 생활 글쓰기의 부상에도 여러 문제점을 낳고 있다. 수필 전문지를 중심으로 한 분파주의와 지역마다 활동 중인 소규모 동인 그룹의 폐쇄성이 그렇다. 2012년에도 수필의 분파주의나 지역주의가 갈수록 경색된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작품은 한국 수필문학을 재정립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고 거명되었다. 곽흥렬의 「귀지 파는 아내」(『월간문학』 3월호), 권신자의 「깐깐이를 갈아엎은 무덤덤이」(『비평문학』 4월호), 김정화의 「바다에서 강물을 만나다」(『에세이포레』 겨울호), 박정희의 「책상에 오른 뱀」(『에세이스트』 5,6월호), 이고운의 「물의 느낌」(『수필과 비평』 6월호), 정경희의 「불안과 나는 한통속」(『한국산문』 11월호), 허창옥의 「꽃이 피거나 지거나」(『수필과 비평』 12월호) 등이다. 11월 26일 스페인어로 출간된 ‘김수영 시선’(Arranca esa foto y usala para limpiarte el culo)과 김기택 시인의 시집 ‘껌’(El chicle)을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현지 문인들이 소개하고 비평하고, 27일에는 소설가 한강과 김영하가 과달라하라대학 등지에서 스페인어권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국 문학 강연과 낭독회를 열었다. 2012년 한국 문학 번역이 일궈낸 풍경이다. 이처럼 ‘한국문학번역원’은 해외 도서전에 참가하는 것은 물론 10월 29일 국내외 문인들이 교감하는 장을 열었다. ‘서울작가축제’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0월 15일 김혜순 시인의 영역 시집 『전세계 쓰레기여 단결하라』를 영역한 번역가 최돈미가 미국 루시앙 스트뤽 아시아문학 번역상을 수상했다. 새 번역자들에 힘입어 12월 3일 고은 시인의 시집이 3개 나라 언어로 새롭게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대산문화재단이 주관하는 2012년도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대상 작품 21편이 선정됐다. 대상작으로는 고은의 『히말라야 시편』, 김훈의 『남한산성』, 박완서의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은희경의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 이승우의 『한 낮의 시선』, 임철우의 『이별하는 골짜기』 등이다. 언어권 별로는 영어 6건, 불어 4건, 독어 2건, 일어 3건, 중국어 2건, 러시아어 1건, 터키어 1건, 불가리아어 1건, 몽골어 1건 등이다. 2012년 출판계 역시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이다. 그럼에도 출판 시장의 흐름은 한국 사회에 노정된 갈등과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는 바람이었다. 좀비의 삶을 어떻게 살아있는 인간의 생으로 바꿔놓을 것인가가 화두였다. 이런 흐름에 가장 어울리는 장르가 수필을 비롯한 에세이류였다. 그만큼 상대적으로 순수문학은 열세를 면치 못하였다. 소위 ‘힐링 열풍’ 속에 100만 부 이상을 판매한 에세이가 나왔다.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150만 부를 판매했고,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지난해에 이어 상승세를 꾸준히 타고 있다. 외면당한 소설에 비해 시 분야는 주류 출판사에서 다투어 시집 출판에 나서 오랜만에 시의 시대를 구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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