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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족이란 개념을 잘 모르겠어여,,,
호족이 6두품 그거랑 비슷한건가여??
< 답 변>
호족과 6두품은 신라 하대에 반신라적 태도를 취하고 고려 사회를 건설하는 주체라는 점에서는 비슷한 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세력이지요.
1. 6두품은 골품제가 확립될 당시 족장 가운데 세력이 큰 대족장 출신입니다. 골품제는 법흥왕(6세기 전반) 때, 중앙집권체제 확립 과정에서, 지방의 족장을 왕 밑에 있는 중앙의 귀족으로 편제한 신분 제도이지요. 따라서 6두품, 5두품, 4두품 모두 신라의 귀족입니다. 다만 신라에는 진골이란 귀족이 있어서 신라 하대에 이 진골이 권력을 독점했기 때문에 소외된 6두품 귀족이 반신라적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지요.
2. 호족은 다양한 출신이 있는데 첫째, 통일신라의 말단 촌에서 세금 징수 등의 행정을 보조하던 촌주(민정문서를 작성하던 사람. 지방관이 아님.) 출신이 가장 많고, 둘째, 신라 하대에 중앙의 정치 싸움에서 밀려난 진골이나 6두품 가운데 일부가 지방으로 내려와서 지방에서 기반을 굳혀서 호족이 되기도 하고, 셋째, 중앙 정부가 군사적 요충 지대에 군사 세력인 군진을 배치하는데, 이런 군진 세력이 호족으로 성장한 경우도 있고요(장보고가 대표적인 예이지요), 넷째, 예성강과 서해를 무대로 장사를 하던 왕건 집안이나 영산강과 서해를 무대로 장사를 하던 나주 오씨(테레비 드라마 왕건에서 왕건의 둘째 부인인 염정아 네 집안)처럼 해상 무역 세력도 있고요, 다섯째로 도적 대장 출신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세력들이,신라 하대에 중앙에서 진골 귀족이 왕위 계승 다툼을 벌이면서 신라 중앙 정부의 지방 통제력이 약화되자, 경제력을 바탕으로 지방의 군사권, 징세권을 장악한 뒤 성주, 장군을 자칭하며 반(半)독립적 세력으로 성장한 것이 호족이지요.
결론적으로
6두품은 원래 신라의 <<중앙 귀족>>이고요, 호족은 대부분이 귀족이 아닌 평민 출신으로서 신라 말에 세력을 갖게 된 <<지방 세력>>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