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4월 4일 김현승이 출생했다. 권영민 저 《한국현대문학대사전》은 〈가을의 기도〉 〈눈물〉 등의 시인 김현승을 “절대자와 고독한 인간과의 대화, 문명적인 시대상황, 사랑‧신앙‧고독 등을 통해 고독을 사회적인 현실과 연관시키고 사회비판적 시 정신의 바탕으로 삼게 한” 시인으로 평가한다.
〈가을의 기도〉와 〈눈물〉 등은 고등학교 국어 또는 문학교과서에 실렸던 작품이라 내용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플라타너스〉도 그 중 한 편이다. 시를 읽어본다. 너무나 아름답고 훌륭한 명작이지만 ‘옥의 티’를 짚고자 한다.
“꿈을 아느냐 네게 물으면
플라타너스
너의 머리는 어느덧 파아란 하늘에 젖어 있다.
너는 사모할 줄을 모르나
플라타너스
너는 네게 있는 것으로 그늘을 늘인다.
먼 길에 오를 제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
(중략)
나는 너를 지켜 오직 이웃이 되고 싶을 뿐
그곳은 아름다운 별과 나의 사랑하는
창이 열린 길이다.”
‘중략’ 부분만 간추려서 다시 읽어본다.
“이제, 너의 뿌리 깊이
나의 영혼을 불어넣고 가도 좋으련만
플라타너스
나는 너와 함께 신神이 아니다!
수고로운 우리의 길이 다하는 어느 날
플라타너스
너를 맞아 줄 검은 흙이 먼 곳에 따로이 있느냐?”
시어를 기준으로 볼 때 ‘중략’ 부분은 글쓴이의 주제 의식이 상대적으로 뚜렷하다. ‘중략’ 아닌 부분에는 비유와 상징의 언어인 ‘길’이 핵심어인데 ‘중략’ 부분은 개념어 ‘신’이 노출되어 있다. 그만큼 비문학적이라는 말이다. 도가道家는 문학적이고 신학神學은 철학적이듯이 ‘길’은 ‘신’보다 훨씬 정겹다.
시에 ‘길’이 나오니 저절로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 떠오른다.
“노랗게 물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네.
(중략)
먼 먼 훗날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 쉬며 이렇게 말하리.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지나간 길을 택했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가지 않은 길〉에는 ‘신’에 해당되는 시어가 없다. 김광섭의 〈성북동 비둘기〉가 흔히
“예전에는 사람을 성자聖者처럼 보고
사람 가까이 / 사람과 같이 사랑하고
사람과 같이 평화를 즐기던
사랑과 평화의 비둘기는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까지
낳지 못하는 쫓기는 새가 되었다.”
라는 3연이 생략된 채 읽히는 사실을 시인들은 기억해야 하리라. 아니, 일반인들도 그렇게 해야 하리라. 말과 글의 뜻은 듣는이와 읽는이가 판단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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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감영'터' 답사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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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 7일 14시부터 대구근대역사관 2층에서 '고지도로 본 대구'(진주박물관 관장) 강의 듣고 나서, 경상감영'터' 답사합니다. 유튜브를 처음으로 제작할 예정입니다. 원고는 정만진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