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용자 운동의 필요성과 민중가요라는 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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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 미(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 연구위원)
1.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수용자의 중요성 인정을 통해서 대중가요의 앞날을 논하려는 이 포 럼에서 내가 맡은 부분은, 주로 '민중가요'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하 는 이야기들이다. 따라서 이 발제에서는 대중가요에 대한 글치고는 꽤 나 많은 분량을 민중가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초점이 민중가요 자체(사실 민중가요의 존재 자체가 민중가요를 위해 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가요를 포함한 한국의 노래문화 전체와 의 관계 속에서 존재 의의를 가지는 것이지만)가 아니라, 그것이 대중 가요의 발전에 가지는 의의이다.
대중가요의 발전을 이야기함에 있어서 민중가요와의 관련성을 이야 기하는 것은 좀 낡은 듯한 느낌을 준다. 건강한 대중가요 문화를 지향 하고자 함으로써 대중가요(그 긍정성보다는)의 본질적 문제점에 대해 집중적으로 언급할 수밖에 없는 이 발제문에서도, 선악 이분법의 냄새 가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대중가요는 나쁜 것, 민중가요는 좋은 것이라는 단순한 낡은 이분법을 구사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러한 단순 논리가 별로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노래운동을 시작했던 80년대에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았거니와,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단순 논리가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발제자로서 내가 바라는 것은, 민중가요를 좋게 평가하고 있다는 점 에 독자의 초점이 모아지는 것이 아니라, 민중가요의 어떤 점을 자산 이며 가능성이라고 보고 있는지에 독자의 눈이 모아지는 것이다. 글을 쓴 사람으로서는 주제 넘게 듣는 사람, 읽는 사람에게 이런저런 요구 를 하는 것은, 우리가 모두 80년대 한국 사회를 거쳐온 지식층으로 민 중가요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정서적 민감함을 드러내기가 쉬우며, 그 런 점에서 나의 발제가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다른 방향으로 읽힐 수 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2. 대중가요란?
우리 나라에서 대중가요는 단순한 파퓰러송이 아니라, 일정한 작품 관행을 지닌 매스미디어송을 지칭한다. 따라서 대중가요는 특정한 상 류층이나 지식계층의 문화가 아니라는 점에서 크게 보아 파퓰러송 즉 서민노래문화의 한 부분으로 포함되지만, 엄연히 서민노래문화에 속하 는 구전가요나 민중가요를 대중가요라고 지칭하지는 않으므로 대중가 요는 서민노래문화 중 대중매체를 통해 유통되는 노래문화만을 일컫는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따라서 대중가요는 근대 대중매체의 탄생 이후의 산물이다.
매스미디어송이라는 규정 앞에 '일정한 작품 관행을 지닌다'는 단서 를 붙인 것은, 음반화된 예술가곡이나 판소리 등을 제외하기 위해서이 다. 애초에는 공연이 주요한 전달방식이었던 이른바 클래식이라고 불 리는 고급음악계의 노래문화들도 매스미디어가 발달한 지금은 대중매 체에 의해 전달되는 측면이 강한데 이러한 전통 속에 있는 노래문화는 대중가요에서 제외하는 대신, 음반매체의 수입 초기였던 일제시대에는 대중가요의 전달방식 중 공연이 매우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는 대중가요에 포함시킨다.(1910년대와 1920년대까지 식민 지 조선에서는 대중가요 음반보다는 판소리 등 국악음반이 더 많이 제 작되었다) 즉 이러한 분류는, 노래문화는 한 사회 안에서의 존재방식의 관행과 더불어 작품 내적 관행을 지니며 그 관행이 나름의 맥을 따라 계승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이때 대중가요에 대하여는 단형의 서 정적인 노래로, 개화기 이래 서양과 일본으로부터 이입된 대중적 노래 문화의 전통 속에 있거나 이와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는 작품들이라는 특징을 지적할 수 있다.
단형의 서정적이며 당대의 대중들에게 대중적인 노래로서 대중매체 에 의해 전달되는 대중가요는, 우리 사회 대중매체의 존재방식에서 비 롯되는 특성을 지니게 된다.
1990년대 음반과 전파매체는 우리 나라 전 계층, 전 지역, 전 세대 에 대중적인 매체이다. 대중들은 누구나 상업적 음반시장을 통해 대중 가요 음반을 그리 비싸지 않은 값으로 구입할 수 있으며,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을 통해 노래문화 중 대중가요를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다. 단지 도시뿐 아니라 시골 어디에서건 사람들은 대중가요를 그저 청각 적 환경처럼 만날 수 있다. 한 인간이 일생 동안 만나게 되는 여러 노 래문화 중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가장 지배적인 것이 대중가요이다.
3. 대중가요의 경제적 특성
그러한 대중가요가 경제적으로 상업주의적 특성을 지니며, 세상에 대한 보수적 태도를 지니고 있다는 지적은, 너무 많이 지적되어서 진 부한 말이지만 여전히 진실일 뿐만 아니라, 여전히 강조될 만한 의의 가 있다.
대중가요의 생산과 유통은 그에 투여된 자본의 이윤 추구 동기에 의 해 움직인다. 생산의 결정은 물론 작품의 창작에서도 이윤성 고려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이를 위해 유통과정에서 스타 만들기, 언론 플레 이, 팬 클럽의 이용 등 매우 전문적인 상업적 매니지먼트가 이루어진 다. 이른바 대히트를 두드러지게 과시할 수 있는 주류 대중가요일수록 (공중파 텔레비전을 통해 대세를 만들어가는) 심하다. 그러나 이른바 우리 나라에서 언더그라운드라고 불리는(그러나 실제로는 '언더TV브 로드캐스팅'인) 대중음악인들도 근본적으로는 이 원칙에 의해 움직인 다. 단지 텔레비전 가요에 비해 단기적으로 대자본을 투여하여 대히트 를 노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뿐이며, 그러한 행보가 자 본의 부족이 아닌, 텔레비전의 논리에 의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바 를 크게 방해받는다는 예술 내적인 이유가 표면으로 내세워진다는 점 에서 상대적으로 '비상업적'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일 뿐이다.
대중가요의 생산·유통의 경제적 구조는 수용자에게 일상적으로 감 지되지 않는다. 물론 고도의 자본주의사회에서 사는 지금의 수용자들 은 인간의 모든 직업적 행위가 이윤 추구의 상행위일 수 있다는 사실 에 대해 일반적이며 체질화된 이해를 하고 있고 따라서 대중가요에서 계산된 매니지먼트를 성공적으로 해내는 것은 때때로 '유능함, 능력 있 음'이란 긍정성으로 부각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인간의 마음이 돈으로 사고팔아 이익을 남기는 대상일 수 없다는 생각 역시 지배적이며, 인 간의 마음 깊숙한 곳을 울리는 예술이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하는 것이 라는 점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보통이다. 이윤 추구가 주 요한 존재 의의인 대중가요는 본질적으로 상업주의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업주의'란 단어는 예술가의 타락이라는 도덕적 평가와 연결된다. 따라서 수용자들이 대중가요를 수용하면서, 스타나 작품의 특정 관행이 안정된 이윤을 위한 장치임을 이성적으로 생각하기는 힘들다.
4. 대중가요의 보수적 사회의식의 구조
대중가요의 정치적 보수성은 이를 유지하고자 하는 지배권력의 간섭 이 제도화되어 드러난 사전심의제도의 존재를 근거로 흔히 이야기되어 왔다. 여태까지 이것은 옳았다고 할 수 있다. 지배권력의 간섭으로 사 전심의제도가 유일한 것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슬픈 사랑노래와 기쁜 건전가요라는 획일적 구도를 꾸 준히 유지시켜 노래를 통해 표현하는 세상살이를 한정지은 것에는 분 명 검열성 사전심의제도가 지배적 역할을 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사회는 대중가요의 사전심의제도가 없는 시대로 들어서려 하고 있다. 1995년 가을 국회에서 통과한 새로운 음반법이 올 6월에 발효된다. 그러나 사전심의가 사라진다 해도 그간 70여년 동안 쌓아온 대중가요에 대한 내면화된 금기는 창작자에게나 수용자에게나 상당 기 간 남아있을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과거 사전심의가 존속했던 시절 에 만들어져 축적된 의식 때문이면서, 사회의 다른 부분의 민주주의적 진전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대중이 쉽사리 청산할 수 없는 순응적·보수적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의 성인 수용자들은 공윤의 사전심의의 기준을 이미 충분히 내 면화하고 있다. 대학생 이상의 성인들에게 노래 가사를 주고 그 노래 의 어느 부분이 공윤의 심의에서 수정 지시를 받았겠냐는 질문을 던지 면, 그들은 거의 정확하게 그 부분을 알아맞힌다.(그 대목이 국헌을 문 란케 하거나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뿐만 아니라, 그 기준의 정당성 여부와 무관하게, 그로부터 벗어난 작품에 대해서 '대중가요 같지 않다', '대중가요로서는 좀 낯설 고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진다. 즉 '대중가요 같다'라는 말로 표현되는, 일반적인 대중가요에 대한 기대의 내용 중 중요 부분을 과거의 심의기 준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70년대 김민기, 80년대 후반 대중가요권 에 진입한 민중가요와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과 몇몇 언더그라운드 가수·그룹들의 노래가 보여준 과감한 일탈은, 대중가요에 대한 이러 한 고정관념을 깨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사전심의 철폐 이후 이러 한 일탈은 늘어나겠지만, 이전의 사전심의 시절에 축적된 이러한 영향 은 꽤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말할 것도 없이 대부분의 수용자들은 대중가요에 대한 자신 의 고정관념이나 기대가 정부의 간섭과 통제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감 지하지는 못한다. 서민노래문화에 속하는 다른 노래문화, 즉 민요나 구 전가요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는 그 활달하고 과감한 표현에 비해 대중 가요가 얼마나 답답하고 뻔한 구획 안에서 놀고 있는지에 대해 자각하 지 못할 뿐 아니라, 그러한 폭 좁음과 그에 적응해 있는 자신들의 의 식과 취향이 정치권력의 간섭과 통제에 의해 형성된 것임을 깨닫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사전심의에 의한 관의 직접적 통제 원칙은 창작자와 수용자 에게 이미 내면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사전심의가 폐지되면 이전보다는 상대적으로 폭넓고 다양한 할 말이 노래로 표출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 관의 통제 원칙이 이미 내면화되어 있고 표면적 통제가 사라지게 되므로, 창작자와 수용자들은 자신들의 예술행위에 대한 정 치적 간섭을 거의 느끼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앞으로 창 작자와 수용자의 불만이 정치적 간섭보다는 상업주의적인 메카니즘으 로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여태까지 우리 나라에서 비상업적 음반, 진 정한 의미의 언더그라운드 음반이 정치적 성격을 강하게 띤 민중가요 진영의 비합법 음반이었다는 사실은, 여태까지 우리 대중가요에 부과 되는 정치적 통제가 경제적 메카니즘의 틀보다 훨씬 더 직접적이고 경 직되게 이루어져 왔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전심의라는 표면적인 정 치적 통제가 사라진 후에는 대중가요산업의 상업주의의 구속을 벗어나 고자 하는 서양적 의미의 언더그라운드가 출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대중가요에 대한 직접적인 정치적 통제는 사라진다 할지라 도, 대중가요가 정치적 보수성을 지니지 않는 것은 아니다. 대중가요의 보수성은, 몇몇 표현의 금기 관행에서도 드러나는 것이지만, 보다 근본 적으로는 대중들의 경험·인식·정서·욕망 등을 보수적 방향으로 재 편한다는 점에 있다. 대중들의 여러 욕망 중, 보수적, 안정희구적인 욕 망, 계층상승적인 욕망, 혼자서 지금 당장 좀더 편안하게 좀더 자극적 이고 큰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욕망 등이 집약되고 증폭되어 드러나는 대중문화의 속성을 대중가요도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민중문화, 민족예술이라 불리는 진보적 예술문화가 대중의 여러 욕망 중 진보적, 개혁지향적 욕망,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은 욕망, 자신의 모든 생각과 행위를 도덕과 공리성에 비추어 통제하여 보다 선하고 바람직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욕망 등이 집약되고 증폭되어 드러나는 것에 비해) 따라서 대중 의식의 변화에 따라 대중가요가 세상을 보는 태도는 크게 달라지고 점차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그것은 대 중 의식의 진보성에 앞서가지 못하고 뒤따라가는 경향을 나타낸다.
5. 대중가요의 이식성과 표절의 구조적 이해
우리의 대중가요 양식은, 국악가요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으로부터 이입되어 형성된 것이다. 트로트는 일본으로부터, 이지리스닝, 포크, 록 등은 미국으로부터 받아들였고, 심지어 신민요조차도 일본의 신민요의 영향을 받은 바 있다. 외국으로부터 이입된 양식들을 바탕으로 국내에 서의 해체와 조합, 변형이 이루어졌으나, 이러한 이입이 대중가요사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그 정도가 줄어들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식성은 우리 대중가요의 본질적 특성 중의 하나임이 분명하 다.
대중가요의 이식적 성격에 대한 문제는, 그것의 태생이 어디냐를 따 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80년대 '뽕짝 논쟁'에서 어느 논자가 쓴, 우리는 언제까지 낳은 정, 기른 정을 따져야 하느냐는 식의 이야기는 대중가요의 이식적 성격 논의를 태생을 따지는 문제로 잘못 이해한 데 에서 기인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대중가요가 이식예술사적 성격은 본질적으로 그것이 우리 사회 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느냐의 문제이다. 이식 성은 비단 대중가요 분야만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우리 나라 근현 대의 지배예술문화는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을 막론하고 함께 지니고 있 는 본질적 특성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식성의 문제는 그간 다른 분야에서도 심심치 않게 지적되어온 바이다. 앞에서 이식성 의 문제가 단지 태생을 따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님을 지적하였지만, 연구가 꽤 진행되어 있는 국문학계에서조차 '이식'이라는 말에 마치 의 붓자식 취급을 당하는 불쾌함을 표시하는 단순한 태도를 흔히 보여왔 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 근대예술사의 이식성을 처음 지 적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하여 지탄의 표적이 되어왔던, 일제시대 의 유명한 시인이자 평론가였던 임화조차도 이식의 논리는 그리 단순 하지 않다. 임화는 우리 근대문학사가 이식의 역사라고 못박으면서, 그 이식을 통하여 서구의 근대적 이념을 담지한 문학양식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이식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즉 임화의 이식문학사관은, 서구 근대문학 양식의 이식이 자생적인 근대 이행에 실패한 우리 문학이 근대성, 근대적 이념(상승하는 부르조아지의 근대 적 시민정신)을 획득하는 중요한 방법이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임화의 이식문학사는 일면적 타당성을 지니고 있으나, 몇 가지 점에 서 여전히 일면적이다. 우선 식민지적 근대가 시작된 이래 우리 예술 사에서 이식은 전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며, 이를 통해 이입된 예술(혹은 예술양식)들이, 모두 서구의 상승하는 부르조아지의 근대적 이념을 담지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대중가요에서 트로트양식이, 연극에서 신파양식이, 음악에서 상 당수의 유럽 민요들이 과연 근대적 이념을 양식적으로 담지한 것이라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 근대예술사의 이식 성을 일종의 근대지향성으로 해석하는 것은 부분적 타당성만을 가지고 있을 뿐 보편타당한 설명이 되지 못하는 것이며, 우리 근대예술사의 이식 동인을 설명하는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둘째는 이렇게 들어온 서구의 근대예술양식들이, 서구의 근대 초기 의 사회에서 그 양식이 지녔던 것과 같은 질의 근대적 이념을, 식민지 조선에서도 여전히 지니고 있겠냐는 문제이다. 이 문제는 (이미 다른 글에서 언급한 바 있는데) 과연 특정 예술양식이 이념을 담지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로 가능할 것인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형식적 규정 성이 강조되는 예술양식이 어떤 문화적 맥락에서도 그 자체로 지니고 있는 내용적 측면은, 정치이념이나 사상 같은 체계화된 인지적 인식이 기 힘들다. 그것은 오히려 정조나 분위기, 세상을 대하는 태도, 질감 같은 차원의 것이다. 예를 들어 4박자의 행진곡이란 노래양식이 그 자 체로 지니고 있는 내용성은 이념이라고까지 부르기 힘든, 강하고 박진 감 있고 인간들이 어느 곳엔가로 향하여 집단적이고 조직적으로 움직 이는 분위기 같은 것일 터이다. 따라서 이러한 질의 내용이란 다른 시 공간, 다른 사회의 다른 역사적·문화적 맥락에서는 전혀 다른 이념과 결합할 수 있다. 근대 서양의 시민혁명 시기의 산물인 모차르트나 베 에토벤의 음악들 혹은 그들 시기에 완성된 모습을 지니는 교향악이나 협주곡 양식들이, 일본을 거쳐 식민지 조선으로 이입되고 20세기 후반 의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아 있으면서 상승하는 부르조아지의 근대적이 고 진보적 이념을 지니고 있다고 하기는 힘들며 설사 지니고 있다 하 더라도 소수의 전문가를 제외한 일반 수용자 대중에게는 감지되지 않 는다. 오히려 그런 우리와 같은 후진국 대중에게 그런 예술들은 선망 의 대상으로서의 서양의 질감, 엘리트주의적 절제감, 상류층적 분위기 등의 의미로 다가온다고 보는 편이 옳다.
대중가요의 이식성을 이야기함에 있어서도 이러한 몇 가지 사항을 염두에 두고, 주로 어느 나라의 대중문화가, 어떤 힘에 의해 우리 나라 대중들에게 영향을 미치며 이식되는지, 이식의 구체적인 영향은 어떤 것들인지를 좀더 현실적으로 설명해내야 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대중가요는 당시에 정치·경제적 영향력을 강하게 미치 고 있던 나라의 대중문화를 받아들여 일제시대에는 일본 대중가요, 해 방 후에는 미국 팝음악의 영향을 지배적으로 받는 형태가 나타나고 있 다. 이는 이 현상이 단지 예술문화 내적인 범주 내에서 이루어지는 현 상이 아님을 말해주면서, 여러 외래 문화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정 상적인 문화교류와는 다른 일방적이고 편향적 양상을 띠고 있음을 의 미한다. 또한 우리 나라 도시 상류층 혹은 지식인층이 강대국 예술문 화 이입의 주역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식된 양식이 토착화되어 하층으로 하강하면 또 지식인층과 상류층은 또 새로운 양식을 이식하 여 하층의 대중들과 차별화를 이룬다.
적극적인 이입의 주체들은 (임화의 논리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근대 성, 선진성, 때로는 진보성이나 저항성 등에 이르는 정신적 가치를 이 에 부여하며, 이러한 가치 부여는 이입된 문화를 받아들이는 대중들에 게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대중들에게 이러한 가치는 이입의 적극적 주체들에 비해 훨씬 덜 중요한데, 오히려 대중들이 이입된 대 중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동력은 그들의 계층상승 욕망이 라고 보는 편이 옳다. 말하자면 상류층의 문화를 세련되고 선진적인 것이며 좋은 것으로 가치부여를 하여 받아들임으로써 그들과 동질화되 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인데, 일본이나 미국의 문화 역시 국내 의 상류층보다 더 부유하고 풍요롭게 사는 나라의 문화라는 점에서 같 은 원리가 적용된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에서 한국으로, 서울에서 지방으로, 상류 내지는 지식인층에서 하층으로 내려가는 중심과 주변의 위계질서가 생겨난다. 각 항에서 전자의 문화는 후자의 문화에 비해 우월하고 수준 높고 좋 은 문화로 후자의 문화에 영향을 미치며 군림하며, 후자의 창작자와 대중들은 이를 빨리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당연히 후자의 문화는 후진적이며 수준 낮으며 촌스러운('村스럽다'는 낱말은 우리에 게 얼마나 많은 것을 말해주는가) 문화로, 그래서 빨리 극복되어야 한 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선진국과 후진국,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 람,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서울과 시골이라는 위계적 구분이 바탕 이 되어 있다. 후자의 구질구질한 동네를 벗어나 전자의 풍요로운 세 상으로 가고 싶은 대중의 계층상승적 욕망이 문화에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거기에 속도 경쟁에 지면 안된다는 '빨리 빨리'의 경쟁적 태도 가 토착적인 것을 과거의 것으로, 낡은 것으로, 빨리 폐기해야 할 것으 로 치부하고, 강대국으로부터 들어온 새로운 것을 완성품으로 빨리 받 아들이는 태도를 당연시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식성에 배어있는 계층상승적 태도는 이데올로기적 보수성 과 조응하며, '빨리 빨리' 낡은 것을 버리고 새 것으로 갈아치우고 싶 어하는 태도는 신제품 판매를 위해 구형의 상품을 빨리 노후화시키는 자본주의적 시장 논리와 조응한다. 즉 이 이식성의 문제는, 앞서 지적 한 정치·경제적 체제순응성과 조응하며 결합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그 양식의 태생이 외국이라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이식된 특정 양식이 영원히 선진적이고 수준 높은 양식으로 군림할 수 없다. 이입된 후 하층민에게까지 충분히 전파되어 변형되고 토착화된 예술은, 그것이 이전에는 세련된 이식문화였을지라도 '촌스러 운' 문화로 낙인찍힌다. 상층의 지식인들은 과거에 이입된 양식이 충분 히 대중화되어 토착화되는 동안, 또 다른 새로운 양식을 수준 높고 세 련되고 선진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트로트가 요 즉 뽕짝이다. 젊은 세대와 지식층의 트로트가요에 대한 심정적 거 부감은 꽤나 크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지식층들은 왜색, 일제 식민지 잔재라는 이성적인 이유를 제시한다. 그러나 실제로 젊은 세대와 지식 층들이 트로트가요에 대하여 느끼는 거부감의 실체는 왜색성이 아니 라, 트로트가요의 구세대 분위기와 하층민적 분위기이다. 70년대 이후 들어온 미국식 일본 가요에 대해서는 트로트가요만큼 즉각적인 거부감 을 표시하지 않으며, 지금의 미국 팝음악의 영향력에 대한 거부감도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은 이를 말해준다. 일제시대에는 민요에 비해 개화된 세련된 문화로 받아들여졌을 것이 분명한 트로트는 50, 60년대 를 거치면서 하층민과 시골 사람들까지 일상적으로 향유하는 '촌스러 운' 문화로 하강하였다.
그에 비해 미국적 록음악이나 랩송 등에 대한 호감 역시, (<서태지 와 아이들> 1집 출반 직후 흔히 이야기되었던 것처럼) 그것의 저항성 에만 기인한다고 볼 수 없다. 록음악이나 랩 등이 미국에서 지니고 있 었던 저항성은 분명 우리 나라 대중가요 창작자와 수용자들에게 적잖 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한편 그 인기는 록과 랩의 미국성에 기인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들의 저항적 몸짓 과 질감은 분명 한국의 저항적 젊은이들의 그것이 아니라 미국의 그것 이며, 우리 나라의 대중들에게는 그러한 미국적인 것을 남보다 빠르게 배워올 수 있는 고학력 고소득층의 질감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 나라 대중들에게 흑인적 질감에 대한 느낌 역시 저학력 하층민의 느낌보다는, 미국적이라는 느낌이 훨씬 강하다.
이렇게 스스로를 후진적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고 그 선진성의 모델 을 강대국으로 설정하는 태도는, 그 강대국의 문화를 완성품으로 받아 들이게 한다. 변질과 왜곡이 이루어지지 않은 '본토'의 수준 높고 선진 적인 문화를 '정통'으로 배우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질적인 문 화를 받아들이고 배워 새로운 창조를 해내는 과정에서 모방은 필연적 이며 게다가 빨리 받아들여야 하니 모방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된 다. 그래서 강대국 예술의 표절은 매우 너그럽게 용인되거나 심지어 자랑스럽게 내세워지기도 하였고, 외국 작품의 표절은 우리 근대예술 사 전 시대 전 분야에서(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을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비근한 예만 보아도 연극에서 미국과 영국의 유명 뮤지컬을 거의 연 출까지 그대로 베껴오는 것이 다반사인데, 그에 대한 대중들은 미국과 영국의 유명 뮤지컬의 복사품이 나왔다는 것을 오히려 기뻐할 뿐 그것 의 표절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는 것이 그런 예이다. 이러한 표절 문 제는 형식과 양식의 중요성이 큰 음악과 같은 예술에서 더욱 심하게 드러났다.
단지 일본 작품에 대한 표절에 관해서만 해방 후에 민족감정상 민감 한 반응을 하게 되었으며, 일본 예술의 영향에 대하여서는 (심지어 일 제시대의 작품에 대해서조차) 그 영향관계가 제대로 언급되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외국 작품 표절현상은 단순한 도의적 문 제로 치부할 수 없는, 우리 예술의 이식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우리 대중가요 문화의 강대국 의존성은 단지 이러한 작품 내적인 문 제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대중가요의 경우, 그 시작부터 일본 음반 산업의 조선 진출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며 출발하였고, 지금도 외국 대중음악 음반 수입은 (영화처럼 심각한 역전현상을 보이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만만치 않은 정도이다.
그리고 작품 경향의 강대국 의존성은, 이러한 유통의 측면에 있어서 의 강대국 음반 수입 현상을 지속시킨다. 국내 대중가요의 선진적 흐 름이 외국의 특정 경향을 받아들인 것임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은, 한 편 그 대중가요의 권위를 높여주는 것인 동시에 그가 이입해온 외국의 특정 경향의 작품들의 권위를 인정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통'을 향한 대중의 상향적 욕구를 부추기게 됨으로써, 결국 외국 대중음악의 소비 촉진 결과를 빚는다.
이러한 대중음악의 강대국 의존성은, 대중들의 생활 감각을 변화시 킴으로써 일상의 생활 소비재의 수입, 강대국에 대한 정서적 친밀감의 증대 등의 부수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여태까지 이식성의 문제를 다소 장황하게 설명하였는바, 요컨대 이 식성 문제의 핵심은 단지 외국의 문화의 단순 이입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식성 극복의 실마리도 역시 외국으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문 화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것, 이식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 가는 것으로부터 풀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강대국의 대중음악을 어 떤 태도로 받아들이고 소화하여 우리 대중예술의 자산으로 만들 것인 가의 문제인 것이다. 대중적 소화와 토착화를 통한 재창조를 거부하고 새로운 것의 이입에 창조성의 의존하여 배타적 계층상승 욕망을 충족 시키는 태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문제 해결의 핵심이기 때문이 다.
6. 90년대의 변화와 대중가요의 사회구조적 문제점
여태까지 설명한 우리 대중가요의 문제점은 창작자들의 성향이나 도 덕성에 국한되지 않는 사회구조적이고 역사적인 성질의 것이다. 물론 대중가요의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한다는 것이, 대중가요의 평 민문화적 긍정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의 다수 대중의 향유로 유지되는 대중가요는 다른 어떤 노래문화보다도 대중의 경험과 욕망, 인식과 정서를 풍부하고 세밀하게 받아내고 있다. 바로 그 때문 에 대중가요는 대중들에게 '사랑'받으며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 나 대중가요는 대중의 경험과 욕망, 인식과 정서를 받아들이되, 그것을 앞에서 이야기한 특성의 한계 안에서 보수적으로 거르고 재편하여 받 아들인다. 평민문화가 당시 지배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문화에서나 나타나는 일반적인 특징이지만, 특히 우리 시대의 대중가요는 다른 평민문화에 비해 상대적 보수성을 강하 게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야말로 평민문화이면서 지배문화인 대중가요 의 특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대중가요의 이러한 본질적 특성은 90년대에도 크게 변화하거나 약화 되지 않았다고 판단된다. 대중문화 전반의 양적 성장으로 대중가요의 양적 지배력이 크게 강화되었다. 또한 이삼십년 전과 달리, 민요를 경 험한 세대가 사라지고 대중가요 수용 첫 세대가 노년층을 차지함에 따 라 대중가요는 유아로부터 노년층까지를 전부 아우르는 문화가 되었으 며, 텔레비전과 카세트녹음기의 보급으로 지역이나 계층적으로도 거의 전 영역의 대중들을 모두 장악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양적 성장 이야말로 대중가요의 다양성을 보장해주는 기초이다. 70년대 청년문화 로부터 배태되어온 주류 대중가요로부터 비껴난 이른바 언더그라운드 권은 80년대에 자기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여 90년대에는 주류 대중가 요의 인기를 능가할 정도로 성장함으로써, 90년대 대중가요의 다양성 은 더욱 확실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이른바 언더그라운드는, 단지 텔레비전의 주류 대중가요로부 터 비껴나 있을 뿐 언더그라운드적인 생산 유통구조를 확보하지 못했 을 뿐 아니라 사전심의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언더그라운드의 존 재는 대중음악의 다양화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대중가요의 본질적 특 성을 벗어난 노래문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90년대의 대중가요 중 진보성을 띤 작품이 존재하는 것은, 한편으로 는 이러한 90년대 대중음악 다양화의 한 양상이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 로는 신세대문화의 긍정적 측면의 발현이기도 하다. 70년대의 신세대 문화였던 이른바 청년문화의 바람에서도 확인했듯이, 대중문화에서의 급격한 세대교체 바람은 기성의 대중문화에 대한 반성과 저항을 수반 하게 되기 때문이다. 70년대에는 청년문화의 진보성과 역동성은 대마 초사건이라는 정부의 강압적 사건으로 급격히 위축되면서 한편으로 민 중문화 쪽으로 그 역량을 이양하였으나, 70년대 유신정권 시절보다는 상대적으로 다양성이 보장되는 시기인 이 90년대에는 그런 급격한 몰 락이 드러나리라고는 예상되지 않는다. 단 신세대문화 바람으로 인한 과도기의 역동적 분위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어 새로운 안정기에 들 어선 90년대 후반에는, 90년대 전반보다는 주류 대중가요의 보수성이 더 두드러지며(적어도 주류 대중가요 흐름에서 <서태지와 아이들>과 같은 진보적 실험이 나타나지는 않을 듯하다), 그에 따라 언더그라운드 권의 자기 목소리가 정돈된 모습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짐작한다.
요컨대 앞으로의 언더그라운드권의 변화를 주목할 만하지만, 90년대 의 큰 변화 속에서도 위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은 대중가요의 본질적 문제점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리라 생각한다.
노래방 문화는 한편으로 듣기만 했던 대중가요 문화에 대하여, 노래 를 부르고 싶다는 대중의 적극적 의지가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대중가요 문화가 지니는, 상대적으로 수동적인 수 용 양상이 극복된 징후로 보기는 힘들다.(물론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대중예술문화의 수용이란 완벽하게 수동적일 수 없으며 어느 정도까지 의 적극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를 큰 시야로 조망할 때 우리 시대의 대중가요는 민요나 민중가요, 구전가요 등 구비전승을 기 본으로 하여 대중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나가는 문화와는 달리, 대중 의 향유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복잡한 구조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럼 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수용자 대중의 충분한 이해와 경계의 태도를 갖지 않은 채 양적으로 퍼부어지는 것을 수용하게 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른 노래문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용의 수동성이 강하다고 할 수 있 다.) 노래방 문화는 술자리에서의 집단적 고성방가 문화를 전자오락실 시스템의 노래방으로 옮겨놓음으로써 기계가 제시하는 대중가요 레퍼 토리와 반주음악에 대중의 노래 부르기를 묶어놓아 결과적으로는 노래 부르기 문화까지 모두 대중가요의 영향력 안으로 흡수했다고 할 수 있 다.
또한 대중가요 문화의 다양화에도 불구하고 주류 대중가요의 영향 력, 10대 중심의 수용 양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색다른 대중가요에 대한 요구의 주체도 새로운 문화에 대한 욕구와 에너지가 풍부한 10대와 20대 초반이 중심이 될 것이며, 성인층은 주류 대중가 요와는 다른 자신의 취향의 대중가요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가꾸어 나가기 힘들 것이다. 이는 우리 나라 국민의 생활이 매우 여유 없기 때문이다. 끊임 없는 경쟁, 형편 없이 낮은 수준의 사회보장, 실업수당 으로 먹고 산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사회, 파트 타임의 일로는 생 활을 유지할 수 없는 사회, 직업에 자신의 모든 힘을 다 쏟도록 요구 받는 풍토, 정신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일들, 여전히 여지가 있어 보이는 계층상승의 가능성과 그 때문에 더욱더 전력을 다할 수밖에 없 는 사회 풍토 등은 성인에게 여가에 속하는 예술문화에서 좀더 새롭고 의미 있는 것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가능하게 하지 않는다. 성인층은 단지 너무도 빨리 변해가는 신세대 대중가요의 취향을 따라잡지 못하 기 때문에 그들과 다른 문화를 향유하는 것일 뿐이므로, 여전히 자신 의 10대 내지는 20 초반이었을 때의 노래만을 좋아한다. 최근 {열린 음악회}와 같은 30대 취향의 노래 프로그램의 대성황에도 불구하고 김 창완과 양희은의 신작 음반의 판매가 예상 외로 저조했던 것은 그러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들은 옛날 노래나 혹은 {열린 음악회}가 만들 어주는 부유하고 여유 있는 고급문화적 분위기를 바랄 뿐, 자신들의 이야기와 체험을 담은 진짜 30대, 40대의 새로운 노래의 수용에는 적 극적이지 않은 것이다. 김창완과 양희은의 신작들은, 적어도 {열린 음 악회}만큼 아주 편안하고 계층상승적 욕망을 만족시켜주지 않으며, 그 렇다고 그 여유 없는 삶을 쪼개서 적극적으로 레코드가게에서 구입해 들을 만큼 실용적인 유익함을 지니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러한 현상은 현재의 중장년층의 모습이므로 달라질 수는 있다. 80년대 말 언더그라운드권의 팬이었던 지금의 20대 말, 30대 초반들이 과연 자신들 취향을 담은 새로운 작품들을 수용할 만큼의 새로운 수용자층 으로 유지되어 나갈 것인가의 귀추가 주목된다.
7. 수용자의 중요성과 민중가요라는 자산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대중가요의 문제점은 이처럼 사회구조 적이고 역사적인 것이어서, 몇몇 창작자들의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다. 그렇다고 상업주의와 보수성을 지닌 매스미디어 가요문화의 전면 적 폐기와 시장경제 체제의 전면적 부정을 주장할 수도 없다. 인류가 만들어낸 편안한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대중매체를 포기하지 않으면 서 대중가요 문화를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길은 틀이 짜여진 생산·유 통의 영역의 개혁에서 나타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수용자 대 중의 변화로부터 대중가요 문화의 발전을 유도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 이고 튼튼한 발전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즉 수용자들의 성숙한 수용 태도로 대중가요의 본질적 보수성이 견제되도록 하는 것인데, 이를 위 하여 성숙한 수용자를 키워내는 수용자 운동, 수용자 교육이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주류 대중가요로부터 벗어난 작품들에 대한 수집가적인 태도로부터 시작하는 매니어나 이미 상업적 매니지먼트의 한 부분으로 기능하는 팬클럽과는 다른, 대중가요 내지는 대중문화의 상업주의와 보수성을 경계하는 비판적 수용 태도를 견지하는 수용자층을 광범위하 게 키워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성숙한 수용층의 성장이야말로, 좀더 풍요롭고 건강한 대중가요 문화를 바라는 창의력 있고 진보적인 대중가요 창작자들이 상업주의와 보수성의 틀 안에서 고사하지 않고 살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그야말로 근본적인 해결방법인데, 이 방법의 난점은 대중의 이 성적이고 자발적인 태도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대중가요는 대중예술 중에서도 가장 편안하게 수용하며 취향(이것이야말로 이성적으로 객관 화하기 힘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단적이고 자발적인 이성적 토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성숙 한 수용태도의 배양이 그리 쉽지 않은 것이다.
바로 이 점이 20년 동안 대중가요와 맞서온 대안적 저항문화로서의 민중가요 문화가 부딪치는 가장 큰 어려움이기도 하면서, 역설적으로 민중가요 문화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집단적이고 자발적 태 도로 대중가요에 대한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배양하고 대중들의 생각과 정서의 변화를 작품 경향으로 통해 보여줌으로써 가장 대중가 요의 변화에 일정한 자극을 주는 문화가 바로 민중가요 문화이기 때문 이다.
대중가요와 함께 민중가요를 생각함에 이르러, 우리는 과연 우리에 게 민중가요란 무엇인가를, 우리 사회 노래문화 전체를 조망하는 넓은 시야로 다시 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민중가요란 무엇인가, 데모 노 래 즉 시위 때의 실용적 요구에 기능하는 노래인가, 운동권들의 폐쇄 적인 자기 확인의 노래인가, 단지 사회비판적 내용을 지닌 노래인가, 이미 철지난 이념과 경직된 구닥다리 음악적 성향을 고집하는 낡은 노 래인가? 우리 사회의 노래문화 전체를 생각하는 넓은 시야로 민중가요의 특 성을 찬찬히 되짚어 보면, 핵심적인 것은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7.1. 금기 극복과 다양성 획득
첫째, 인간과 세상에 대한 건강한 진보적 관심을 표현하고 대중적으 로 소통하는 노래문화이라는 점이다. 사전심의와 상업주의의 틀에 묶 여 있는 대중가요에서 충족시켜주지 못했던 노래에 대한 욕구, 그래서 오랫동안 그런 욕구가 자신에게 있는지도 자각하지 못했던 그런 욕구 를 충족시켜 주었다. 대중들은 슬픈 사랑노래가 아닌, 그렇다고 구전가 요와 같은 단순 일탈적인 노래와는 다른, 세상과 나 자신과 그 미래에 대하여 생각하고 느끼게 하는 꽤나 의미 있고 진지한 가사와 그에 걸 맞는 음악을 향유하면서 노래를 통해 사회와 세상과 교섭하고 노래를 가지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경험을 하면서 '과연 노래가 이럴 수 있구 나'라는 놀라움과 충격을 받는다. 그럼으로써 민중가요 문화는 대중가 요는 물론, 음순수주의와 음악을 위한 음악, 사회로부터 절연된 음악이 라는 음악관, 음악을 통한 소통 가능성을 홀시하는 태도 등에 대한 문 제의식을 지니고 있던 고급음악인들에게도 꽤나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대중가요가 강하게 지니고 있었던 사적 공간에의 침잠과 사회 적 현실에 대한 무관심의 태도, 불만족한 상황에 대하여 좌절과 체념, 자학이나 관조, 슬픔의 미화와 과장된 슬픔의 소비를 주요한 특성으로 삼아왔던 태도를 지양하고, 사회적 현실을 포함한 세상에 대한 반성과 비판, 역동적인 울분과 좌절 극복을 위한 적극성, 미래에 대한 낙관과 적극적 다짐 등을 과감히 드러냄으로써 대중가요와 차별화하였다.
이러한 새롭고 다양한 작품 경향이, 대중가요의 발전에 기여한 가장 직접적인 측면은 아마 심의 기준의 현격한 완화일 것이다. 민중가요의 대중가요권 진출로, 당시 대중가요계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표현들 이 버젓히 심의를 통과한 합법적 음반에 실리는 성과를 만들어내었다. 90년대 대중가요의 탈사랑타령의 노래들이 합법적 음반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 이러한 흐름이 급기야 심의의 철폐로 이어지는 것은 (정치 적 변화의 측면과 함께) 이러한 민중가요의 작품 경향으로부터 비롯된 다.
또한 연애가 아닌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노래로 담는 작품 경향 은, 이 시기에 청소년기를 거쳐온 대중가요 창작자와 수용자에게는 노 래에 대한 그간의 내면적 금기의 일부를 스스로 해제하도록 하는 결과 를 빚었다. 특히 수용자의 변화는 다음에서 지적할 내용과 함께 주목 할 만하다.
그런 반면 민중가요의 작품 경향은 적잖은 정서적 반발을 일으키기 도 했다. 특히 집회나 시위 공간에서 민중가요가 불려졌던 80년대에는, 수천 곡에 달하는 민중가요 중 '투쟁가'라 불리던 행진곡풍의 노래들이 표면적 주류 경향으로 보이게 됨으로써(민중가요의 수용층이 아닌 사 람들이 민중가요를 들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기회가 바로 집회나 시 위 공간이었기 때문에), 군대식 획일화와 육체적으로 에너지를 발산하 는 외향적 태도에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지식인들이나 그러한 투쟁성이 자신의 생계에 위해를 끼칠 것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더더 욱 강력한 정서적 반발을 하도록 만들었다. 다른 한편 20년 동안 제도 교육과 대중가요 수용을 통해 내면화된 금기도 그러한 정서적 반발에 적잖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군가와 건전가요, 교가, 응원가의 학습이 이러한 투쟁가를 빠르게 수용하는 데에 한 몫을 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이러한 반발의 핵심적 표적이 되었던 투쟁가는 실상 작품 수로 볼 때 민중가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크지 않으며, 20년 민중가 요사 중 절반 정도의 기간에는 투쟁가가 주류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기 억할 만하다. 심지어 투쟁가조차도 투쟁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스 스로 정치적 금기와 예술문화적 내면적 금기를 넘어서서 자신의 생각 과 느낌을 예술로 표현하고 전달했다는 점에서는, 분명 우리 노래문화 가 자유로움과 다양성을 향하여 발전한 모습임에는 분명하다.
실제로 민중가요의 수용자들도 매우 다양한 민중가요를 수용하고 있 다. 91년 말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에서 민중가요의 수용자 1천명에게 노래 수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즐겨 듣는 노래와 즐겨 부르는 노래를 적으라는 항목에서 수백곡에 이르는 매우 다양한 민중가요 작품의 제 목이 쏟아져 나왔으며, 80년대 말의 설문에서도 깜짝 놀랄 만큼 다양 한 작품들이 거론되었다. 또한 이런 애창곡 반열에는 포함시키지 않는, 장난기 넘치는 구전가요류와 개사곡류 역시 민중가요의 다양성의 일면 을 보여준다. 민중가요의 이러한 작품적 다양성은 (투쟁가·서정가요· 일상가요 등으로 이야기되는 주류 경향의 강력한 흡인력과 함께) 민중 가요를 살아남게 한 중요한 특성이다.
민중가요가 이렇게 기존 대중가요권의 작품 경향으로부터 비교적 자 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민중가요 창작자들의 개인적 탁월성 때문이 아 니라), 검열성 사전심의라는 제도 바깥, 상업적 시장구조의 바깥에 있 는 노래문화이기 때문이다. 절차상의 사전심의를 거치지 않을 뿐 아니 라, 애초부터 그런 절차와는 무관하다는 생각이 창작자와 수용자 모두 에게 인식되어 있음으로써, 스스로의 내면적 금기를 떨쳐버릴 수 있었 으며, 이것을 만들어서 많이 팔아야 한다는 생각으로부터도 자유롭기 때문이다. 특히 구전가요와 개사곡류의 장난기는 구전(口傳)이라는 독 특한 전달 방식과 (흔히 작자 미상이라고 이야기하는 특성인) 집단 성 원의 누적적 창작이라는 창작 방식에서만 발휘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민중가요의 독특하고 다양한 작품 경향은, 대중가요의 생산 ·유통·수용 구조의 바깥에 존재한다는 점, 대중가요와 사회 전체에 대한 비판적 의식(그 수준의 고하를 막론하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는 점에서 기인하며, 여기에 이른바 운동권과 그 주변 사람들의 특정 경험이 결합되어 주류적 흐름을 형성하게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7.2. 대중가요권 바깥의 생산·유통·수용 구조
둘째, 고급음악과는 물론 대중가요와는 전혀 다른 생산·유통·수용 구조를 확보한 대중적 노래문화이라는 점이다. 이 점은 흔히 민중가요 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놓치지 쉬운 특성이나 가장 중요한 본질적 특성 이므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민중가요의 대안문화적 성격은 본질적으 로는 작품 내적 특성에서보다 이러한 생산·유통·수용 구조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독특한 작품 내적 특성 역시 이러한 생산 ·유통·수용 구조의 독자성으로부터 가능해지는 것이다.)
민중가요는 고급음악처럼 제도교육을 통해 유지되지 않으며 그렇다 고 공개된 음반시장을 통한 기업적 생산체계와 유통을 통해 유지되지 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지배적인 두 음악문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성격을 지니게 된다. 민중가요는 상업적 음반이나 제도교육이 아닌, 순 수하게 대중들의 자발성에 의해 유지된다. 초기에는 작품의 창작 혹은 기존 노래문화로부터의 민중가요로의 선택이 그 향유 대중들의 집단적 힘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졌으며, 80년대 중반 이후 노래운동 이라는 이름으로 민중가요 작품을 창작하고 보급하는 전문인 집단이 만들어진 후에도 그것이 민중가요 문화로 살아남는 것은 순전히 대중 들 스스로의 구전을 통한 선택에 의해서이다. 상업적 광고나 여론몰이 식 보급 혹은 교육의 힘은 없거나 비교적 미미하다. 한 노래가 특정 시기에 인기 있는 민중가요가 되는가 아닌가 혹은 그다지 인기 있지는 않지만 민중가요의 하나로 대중들에게 기억되는가 아닌가는 (그 결과 가 바람직한가 여부를 차치하고) 순전히 향유 대중들의 선택에 달려있 다.
그런 점에서 민중가요가 정치적 선동을 위해 만들어져 보급된 노래 라는 통념은 틀린 것이다. 민중가요의 태생 자체가 전문 노래운동집단 (혹은 다른 운동집단)의 조직적인 창작 활동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 닐 뿐더러, 한 시기 민중가요의 인기와 애창 경향은 철저히 수용자 대 중의 선택에 따른다. 심지어 흔히 가장 선동적이라 생각하는 투쟁가조 차도 정치적 선동성 때문이 아니라, 수용자 대중은 그 작품이 지니는 인식과 정서에 대한 동의와 그에 대한 감동 때문에 선택한다. 민중가 요가 수용자들의 정서 변화에 따라 시기별로 주요 작품 경향이 민감하 게 변화하며 오랫동안 살아남는 애창곡이 형성되기도 하는 것은 그 때 문이다. 그만큼 민중가요는 수용자 대중의 힘으로 만들어지고 발전하 는 노래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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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가요가 양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노래책이나 비합법 음반 등 복 제가능한 매체를 사용하였지만, 그 성격은 대중가요의 경우와 다르다. 비합법 음반의 제작은 비교적 소자본이 투여되며 상업적 광고나 방송 을 통한 홍보 효과 노리기와 같은 대중가요적 매니지먼트가 이루어지 지 않으므로, 이윤 추구가 본질적인 존재 의의라고 하기 힘들다. 노래 운동 초기에는 매체를 통해 작품이 처음 발표되는 경우는 적었고, 당 시 많이 불려지는 민중가요를 더욱 확산시키기 위한 정리와 보급을 위 해 비합법 음반을 제작하였으며, 민중가요를 전문적으로 창작하고 보 급하는 집단이 꽤 발전한 후(대략 88년 이후)에야 비합법테이프를 통 한 신작 노래의 발표가 중요해졌고 이를 통한 노래 보급이 중요한 위 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민중가요는 여전히 구전이나 공연을 통한 전파방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89년 이후 민중가요의 대중가요권 진출이 이루어지고 몇몇 합법 음 반이 출반되었고 그러한 합법 음반 출반 경향은 심의 기준이 어느 정 도 완화된 92년 이후 더욱 많아졌다. 민중가요의 합법음반 진출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처럼 민중가요권 의 대중가요권 진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노동가요 공식음반>처럼 민중가요 음반의 단순한 합법화의 의미를 지니는 경우 이다. 후자의 경우는 단지 합법성을 지니고 출발되는 음반일 뿐 대중 가요권의 작품 경향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거나 영향을 받는 바가 거의 없이 이전의 비합법 음반의 유통 통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경우이므 로, 그 합법 음반 출반 자체가 민중가요의 관행을 크게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비합법음반으로 제작되어도 그 판매 부수가 합법 음반 생산의 손익분기점을 넘을 정도의 부수라면 구태여 비합법 음반을 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음반들은 다른 대중가요 음반들과 달리 이 른바 사회과학 서점이나 대중조직을 통해, 혹은 공연 때의 가판을 통 해 판매하는 방식의 비중이 높다. 그에 비해 전자의 경우는 후자에 비 해서는 상대적으로 대중가요권의 진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각 가수나 그룹 간의 편차는 있을지라도) 대중가요만을 수용해온 대 중들의 감수성과 취향을 고려하여 음반을 만들게 되며, 그 노래들이 때때로 대중가요권 인기챠트에 올라가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대중 가요권에 진출한 민중가요들도 대중가요권 밖의 민중가요 수용층의 존 재에 의해 대중가요권의 진출과 거기에서의 세 몰이가 가능해지는 것 이고, 이들의 대중가요권 진출이 민중가요의 지지층 확대의 의미를 강 하게 지니게 되므로, 역시 민중가요의 범주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 물 론 모든 분류가 그러하듯, 민중가요와 대중가요 사이에 위치하는 대중 음악인이 존재할 수 있으며, 이들은 다양한 성향과 활동방식을 지니며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합법 음반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민 중가요가 대중가요와의 별도의 생산·유통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본질 적 특성은 여전히 타당하다.
요컨대 대중가요와는 별도의 독자적인 생산·유통 구조를 지니고 있 다는 것이 민중가요의 중요한 특성이자 요건 중의 하나인데, 바로 이 독자적 유통구조 덕분에 민중가요는 앞에서 이야기한 대중가요와는 다 른 작품 경향을 유지하며 나름의 흐름을 이루며 발전해나갈 수 있다. 사전심의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 슬픈 사랑타령 일변도에서 벗어날 수 있음은 말할 것도 없으며, 한꺼번에 많이 팔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 으므로 이미 형성된 주류 대중가요의 상업적 획일성과 작품의 얄팍함, 불필요하게 과다한 자극의 첨가 등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대중 들은 민중가요를 대중가요와는 다른 방식으로 만나기 때문에 그에 대 한 다른 기대를 하게 되고, 따라서 대중가요의 경우와는 다른 태도로 향유하며 그것을 나름의 독자적인 노래의 흐름으로 주목하게 되는 것 이다. 만약 그런 노래가 대중가요로 발표되었으면 그냥 대중가요의 대 세에 묻혀버릴 테지만, 민중가요의 독자적 구조 속에서 그것은 민중가 요의 하나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완전히 개방된 음반시장을 통해 유통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민중가요 의 유통과 수용은 집단적·공동체적 성격을 띤다. 바로 이 점이 민중 가요를 상업주의적 시장의 힘에 말려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기도 하 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에게나 편안히 열려져 있지 않다는 폐쇄성 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구전을 통해 전달되므로 수용자는 집단적이어 야 하며 노래를 유통할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해야 하며, 같은 시기에 같은 노래를 향유할 수 있을 정도로 생각과 느낌, 취향 등의 동질적이 어야 한다. 또한 지배문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 내지는 그에 대한 불만을 가짐으로써 새로운 노래문화를 받아들일 만한 자발성과 적극성 이 있어야 한다.
민중가요가 운동권에서부터 시작되어 대학생과 지식인, 노동자들의 운동조직을 중심으로 발전해 나간 것은 이러한 점에서 당연한 것이다. 특히 같은 시기 전국적으로 비교적 엇비슷한 생각과 정서를 지니고 있 는 운동조직의 존재는, 민중가요가 전국적인 문화현상이 되는 데에 중 요한 토대이며, 민중가요는 이러한 운동조직의 정서적 건강성과 결속 력을 유지시키는 중요한 문화가 된다.
그러나 모든 공동체가 일정한 폐쇄성을 지니고 있듯, 그 공동체의 문화 역시 공동체의 성원들에게는 편안하게 느껴지고 자긍심을 주는 것이지만, 그 바깥의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가까이 할 수 없게 하는 벽 의 구실을 한다. 특히 운동권(물론 여기에 속하는 모임의 수준과 종류 는 매우 다양하지만)을 기반을 삼아 발전해옴으로써, 민중가요는 주로 그 향유층인 운동권 대중들의 관심과 정서, 태도를 주로 반영해왔으며, 그들의 노래에 대한 필요에 따라 민중가요가 발전해 왔다. 그럼으로써 운동권에 대한 일정한 호감과 지지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에 대한 적잖은 경계와 거부감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다른 대중들에게 민중가요 역시 그러한 호감과 지지, 경계와 거부의 태도를 동시에 불 러일으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운동권에 대한 호감과 지지가 커 졌던 시기인 87, 88, 89년 즈음에 민중가요는 운동권 외의 대중들에게 가장 큰 지지를 받았고, 반대로 운동권에 대한 지지가 급격히 하락한 92년 이후 몇 년 간 운동권 외 대중들이 큰 거부감을 느끼게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또한편 민중가요가 운동 조직을 유통과 수용의 기 반으로 삼음으로써, 운동 조직의 약화가 곧바로 민중가요의 유통·수 용기반의 약화로 직결되었던 것도 큰 문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민중가요가 운동권을 중심으로 발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단 지 '운동권가요'라고 폄하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운동권의 자기 확인 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노래문화가 아니라, 우리 나라 노래문화 전체에 대한 문제제기의 소산이며, 실제로 우리 나라 노래문화의 풍토를 변화 시켰기 때문이다. 즉 상업주의적이고 보수적 성격을 띠는 대중가요가 공중파 방송을 통해 개개인 수용자에게 일방적으로 퍼부어지는 구조 속에, 민중가요는 공동체적인 노래 향유 방식을 개입시킴으로써, 대중 적 노래문화의 풍토 전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민중가요의 존재 자체 가 대중들로 하여금 대중가요에 대한 비판적 수용을 가능하게 하고 대 중 스스로의 노력으로 새로운 노래문화를 만들고 변화시키는, 그야말 로 민주주의적 문화체험을 하게 함으로써, 대중가요가 지니는 문제점 을 완화시키거나 극복하게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대중의 문화 민주주 의의 역량을 키우는 데에 민중가요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 다.
민중가요의 가장 중요한 존재 의의는 바로 이것이다. 마치 주민회나 노동조합 등 자발적인 대중조직의 민주주의적 발전이, 혹은 이를 바탕 으로 한 구 의회 등 기초자치단체의 민주주의적 발전이,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 역량을 고양시키며, 대중들로 하여금 이른바 정치권의 전횡 과 여론 조작에 쉽게 말려들지 않게 하는 것처럼, 민중가요는 자발적 으로 선택하고 때로는 창조하는 공동체적 노래문화의 경험을 통해서 대중의 문화 민주주의 역량을 키움으로써 지배문화의 전횡으로 인한 모순들을 대중 스스로 극복하게 한다. 또한 지배문화인 대중문화 중 창의적이고 진보적인 창작자들은 이들 비판적 대중집단의 세를 바탕으 로 진보적 발전의 가능성을 키우게 된다. 90년대 신세대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 진보적인 대학생층의 전폭적 지지를 바탕으로 성장하였고, 이러한 세에 힘입어 주류 대중가요를 선도하고 있었던 <서태지와 아이 들>이 자신의 변화를 추동해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앞서 이야기했던 집단적이고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대중가요의 건강한 수 용자 집단의 육성은, 이 민중가요 문화와 결합함으로써 더욱 효과적으 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여태까지 민중가요 문화는 바로 그러한 역할 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민중가요는 기존의 지배 노래문화들을 폐기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과 공존하면서 전체 노래문화의 향유 양상을 변화시키고 그럼으로써 기존의 노래문화의 작품들을 새로운 태도로 받 아들이도록 만드는 것이다.
7.3. 대중가요 양식의 주체적 변형과 소화
셋째, 대중적 노래문화이면서 지배문화가 아닌 민중가요문화는, 당대 대중의 공통적 노래 어법들을 받아들여 소화해내게 된다. 거기에서 가 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대중가요이며 민중가요는 대중가요 의 양식과 표현법을 받아들여 소화하여 양식의 사회적 의미와 그 관습 을 변화시킨다. 민중가요가 대중가요의 양식과 표현법에 관한 한 이식 된 양식을 바탕으로 하는 셈이다. 그러나 민중가요는 이미 우리 사회 에 대중적으로 정착한 양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 우리 대중들 에게 수용된 그 양식의 진보적 측면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양식의 역 사적 의미를 변화시킨다는 점, 이러한 양식의 수용과 변화는 대중적인 실험으로 통해 완결된다는 점에서, 대중가요와 다르다. 매 시기 강대국의 새로운 양식을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이는 대중가 요에 비해, 이와는 다른 방향의 양식 변화의 모습을 민중가요는 보여 주는 것도 이런 차이 때문이다. 대중가요는 일제시대에 이식한 트로트 에서, 해방 후 40,50년대의 미국 팝음악 유행에 따라 부기우기나 맘보 등을 받아들인 후, 미국적 노래가 정착하는 60년대에는 백인들의 가장 보편적인 대중적 노래어법인 이지리스닝을, 70년대에는 그 후의 미국 의 60년대 유행인 모던 포크를, 70년대 후반 이후에는 록을 중심으로 다른 양식들과 혼합하는 양식 변화를 거쳐왔다. 그에 비해, 민중가요는 대학생과 지식인 중심의 70년대 포크 양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좀더 대 중적인 호소력을 확보하는 80년대에, 대중가요로서는 오히려 구닥다리 이며 더 통속화·대중화된 양식인 60년대풍 이지리스닝과 이를 바탕으 로 한 진중가요(陳中歌謠) 양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특히 그 시 기는 포크는 가지고 있지 않은 격렬한 비극성 등을 표현해야 했기 때 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노동자 대중으로 그 수용층을 넓히는 시기에 이르러 60년대 풍 중에도 이전보다 더 통속적이라 할 만한 경향들을 받아들여 노동가요 중 일상가요라고 불리는 노래들을 성립시킨다. 즉 대중가요의 계층상승적이며 강대국지향적인 양식 변화와는 정반대의 과정을 밟아온 것이다.
이는 외래 양식을 우리의 삶의 표현 방법으로 용해시키는, 민중가요 의 양식 수용의 원칙을 말해주는 것인데, 다른 한편으로 볼 때 바로 이러한 경향이 90년대 이후 민중가요의 중요한 수용층 중의 하나인 대 학생층의 민중가요로부터의 이반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민중가요가 크게 성장한 80년대부터 이미 대중가요와는 다른 양식 변화 방향을 가 지게 되고 80년대 말에 노동가요가 대학생 수용자까지 모두 싸안을 만 큼 크게 주도함으로써, 일반 대학생들의 대중가요 취향이나 감수성과 는 이질적인 경향이 민중가요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는데, 민중가요의 세력이 약화되어 이에 대한 불만이 갑작스레 터져나오는 92년 이후에 대학생층에서 민중가요의 양식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게 된 것이다. 이 러한 불만은 최근 록을 민중가요에서 수용하려는 노력들로 완화되고 있다.
민중가요는 이식성의 문제를 이식이냐 거부이냐는 단순한 양단론이 아닌, 이식된 양식의 대중적 토착화라는 방향으로 해결하는 좋은 실례 를 보여준다. 이는 민중가요권의 전문인인 노래운동의 창작자들의 역 량이라기보다는, 민중가요의 수용공간에서 진보적이고 자발적인 수용 태도를 지니게 된 대중들이 외래 양식을 소화하여 자신의 이야기과 체 취를 담아 토착화해내고 그 양식의 건강한 측면을 적극적으로 발전시 키는, 그 놀랄 만한 힘에 의해서라고 하는 편이 옳다. 그리고 그것은 대중가요 수용층들과는 별도의 대중층이 아닌, 바로 그들이 다른 사회 적·문화적 맥락 속에서 다른 관행으로 다른 노래문화를 향유함으로써 다른 성격의 대중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대중가요의 성숙한 수용자층 의 육성도 바로 이들 대중이 자신의 진보성과 긍정성을 충분히 발현하 고 발전시킬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8. 수용자 운동과 비주류 노래문화 발전을 통한 노래문화의 구조 변화
여태까지 대중가요의 문제점이 사회구조적이고 역사적이라는 점과 그것의 극복을 위해 민중가요 문화가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는 점을 이야기하였다. 누차 강조하듯, 대중가요의 문제점은 몇몇 창작자 나 생산자의 도덕적 각성이나 몇몇 우수한 노래 작품의 생산, 혹은 소 수에 의해 주도되는 캠페인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광범위한 수용자 운동과 비주류 노래문화의 발전을 통하여 근본적인 해결의 토대가 마 련된다고 할 수 있다.
수용자 운동은 대중가요 수용자들이 대중가요에 대한 반성적이고 주 체적 수용을 집단적으로 해냄으로써, 대중가요의 전횡적 유통방식에 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수용자 모임을 통하여, 개인적 수용에 따른 대중가요의 무비판적 내면화를 경계하고 극복함으로써 좀더 질 높은 좋은 대중가요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이와 함께 대중 가요에 대한 수용자의 집단적 의견 제시의 가능성을 열어놓음으로써, 대중가요에 대한 수용자의 요구를 개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반성적이고 주체적 수용을 위한 이러한 수용자 운동은, 수용 자 자신들이 다른 노래문화에 대한 요구를 예술적으로 해결하게 해주 지는 않는다. 따라서 수용자 운동은 새로운 작품, 새로운 생산·유통· 수용 구조과 결합해야 한다. 즉 반성적이고 주체적인 수용자가, 주류 대중가요와는 다른 노래문화를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노래가 발표되고 유통될 수 있어야 하며, 그와 함께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것을 노래로 표현하여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고 대중의 주체성과 창조력이 고양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언더그라운드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 러나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우리 나라는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빈약할 뿐 아니라, 이른바 언더그라운드라고 불리는 부류 역시 상업적 음반과 공중파 라디오방송을 주 유통구조로 삼는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 90년대에 들어선 대중문화에 대한 인식 변화과 대중음악 산업의 성장, 거기에 덧붙여진 검열성 사전심의의 폐지는 90년대 중반 이후 언더그라운드 대중음악의 성장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이 되어줄 것이 며, 따라서 앞으로 언더그라운드의 자기 변화는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전국적으로 존재하며 20여년의 생명력을 지니고 유지해오는 대중문화의 구조 바깥의 노래문화의 존재야말로, 우리에게 는 큰 자산이 아닐 수 없다. 그 노래문화를 민중가요라 부르든, 진보적 노래문화 혹은 진정한 언더그라운드 노래문화라 부르든, 또 앞으로의 작품 경향이 지금까지의 민중가요의 흐름과 연속적이든 아니든 간에, 이러한 독자적 생산·유통·수용의 구조와 독자적 작품 경향의 맥을 지닌 노래문화는 대중가요를 포함한 우리 사회 노래문화의 건강함을 위해 유지되고 발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른바 언더그라 운드 대중가요와 연대하면서 비주류 노래문화의 세를 강화하고 그 질 을 높여가야 한다. 주류 대중가요의 전횡을 막는 견제세력으로서의 이 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결국 한국의 대중적 노래문화의 구조 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해결해야 할 문제점은 많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대중운동적 으로 이루어지는 수용자 운동, 민중가요 운동은, 대중의 집단성과 자발 성, 이성적 반성을 통한 통제와 자기 변화의 노력 등을 요구하는데, 여 태껏 대중가요의 수용 태도는 편안하고 비이성적이었으므로 그 격차가 매우 크다는 점은 근본적인 문제 중에 하나이다. 특히 성인들의 경우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문화 영역에서 자신을 변화시킬 만한 여유 나 태도가 갖추어지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심각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발성과 적극성을 갖추고 있는 집단들에게 우선 이러한 수용자 운동 과 민중가요 운동을 확산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앞서 강조했듯이, 민중가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나의 주장은, 민중 가요만이 한국 대중가요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 며, 기존의 민중가요의 몇몇 주류 작품 경향을 지속하자는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작품의 경향이야 행진곡이 사라지든 비장한 서정가요 가 사라지든, 록이 주류가 되든 (그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그다 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또한 지금의 노래운동 집단이 그대로 유지되 어야 한다는 것 역시 아니며,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노래 창작집단이 성장하여 지금의 노래운동집단을 몰락시킬 수도 있다.
민중가요의 현재 작품 경향보다 중요한 것은 대중가요의 생산·유통 ·수용의 구조 밖에서 수용자 대중의 힘으로 만들어지거나 선택되며 유지되어 나가는 노래문화의 존재이다. 수용자 운동이 또다른 귀족주 의의 위험이 있는 매니어 모임이 되어버리거나 대중가요권의 적극적 구매자로 팬클럽처럼 이용당하지 않고, 대중들의 자유로운 문화창조력 을 고양하고 문화적 민주주의의 향유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대중가요권 바깥에서 대중가요와는 완전히 다른 작품 경향과 다른 방식으로 존립 하고 발전해 나가는 새로운 노래문화가 필요한 것이다. 농촌공동체가 사라진 이후, 대중가요의 양적 발전에 따라 구전가요조차 거의 자취를 감추고 있는 이 시대에, 이렇게 대중문화권 바깥에서 수용자들의 주체 적 선택으로 살아서 움직이는 노래문화가 20년 동안이나 존재해왔다는 사실, 그 문화의 성과와 대중들의 저력에 주목하자는 것이다.
민중가요가 여태까지처럼 운동권을 중심적 대중으로 선택할 것인가 아닌가는 더 두고 볼 일이지만, 대중가요권 바깥의 노래문화라는 민중 가요적 특성이 유지된다면 어떤 쪽이든 나쁘지 않다. 단 농촌공동체가 사라진 지금, 마치 민요처럼 수용자의 선택으로만 존립하는 노래문화 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꽤나 의식적인 노력을 하는 수용자 집단이 광범 위하게 퍼져 있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예술문화의 여론주도층인 중간층이 자신의 생활 과 취향, 문화를 변화시킬 만한 역량, 태도와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는 점은, 우리 나라 대중가요의 큰 문제 중에 하나이다. 여태껏 민중가 요 문화가 대학생과 노동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유도 바로 그것이 었는데, 말할 것도 없이 이는 민중가요가 운동권의 범주를 뛰어넘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시민운동, 여 성운동, 환경운동 등에서 민중가요가 뿌리박지 못했던 것은, 노래운동 의 경직성의 탓이 아니다. 대학생과 노동자층에서는 노래운동 창작자 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민중가요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에 비해, 이들 의 경우에는 몇몇 활동가들의 노력이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러한 운동을 주도하는 성인 중간층이 이러한 활동 속에서도 삶을 함께 하면 서 생활 패턴이나 자신의 취향 등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머리 로만의 합의가 아닌 몸으로의 집단성을 확보하는 것 등을 해낼 능력이 없거나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보인다.
이러한 문제점의 극복을 위해서 무작정 민중가요를 수용하는 것이 아닌, 대중가요를 비롯한 대중문화의 비판적 수용 능력 향상을 위한 노력을 우선적으로 해내는 것이 필요하며, 앞서 말했듯이 이것이야말 로 올바른 해결이다. 수용자에 대한 교육은 어떤 한 방향으로의 지시 가 아니라, 대중문화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몸과 마음과 머리에 족쇄 를 채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머리뿐 아니라 몸과 마음에 서까지) 풀고 문화의 주체로서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표현하고 마음에 들고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지하고, 이를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타인과 의견을 모아 전문인에게 비판과 요구를 적극적으로 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중간층들에게 이는 우선 머리로 변 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하도록 할 것인데, 이후 이러한 변화가 지속 화되려면 머리의 변화만이 아닌 마음과 몸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마음과 몸의 만남과 동화로 유지되는 민중가요 문 화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런 노래문화의 이름 이 민중가요이든 아니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노래문화가 필요한 것일 뿐이다.
만약 언더그라운드 대중가요와 민중가요가 모두 상업화되거나 체제 의 중심으로 흡수된다면? 글쎄, 그런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솔아, 푸 르른 솔아]가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리고, 음악 시험공부를 위해 [그것만이 내 세상]을 공부해야 하며, 강산에가 텔레비전 인기가요 순 위의 최고를 달리는 때가 온다면? 아니,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미국 의 예에서 보이듯이 이들이 끊임 없이 주류의 상업주의적 대중가요권 의 중심으로 편입된다면? 그렇게 된다는 것은, 이미 지금의 비주류 음 악들의 세력이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 성장했음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 들이 주류가 되더라도 또다른 창작자와 수용자가 밑바닥에서 또다른 경향을 언더그라운드 가요와 민중가요를 생산하고 유통시키며 발전시 키고 있다면, 만약 그 구조가 살아있다면, 그럼 되는 것이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우리의 대중적 노래문화의 구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