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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황노파(黃老派)의 역학
한나라 초에는 오늘날 도가(道家)라 일컬어지는 황제(黃帝) 노자(老子)의 사상이 존중받았으며, 그러한 영향으로 {역}을 해석하는데 있어서도 황노의 도가사상이 드러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회남자}는 그대표적인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도 하나의 흐름을 이루어서한(西漢), 동한(東漢)을 거치고 다시 위진(魏晋) 이후로 이어진다.
가.
서한 시대 엄군평(嚴君平){{ 년대는 알 수 없다. 서한 말기 성제(成帝) 무렵 사람으로서 촉 지방 성도(成都)에 숨어 살면서 『도덕경지귀(道德經指歸)』를 썼다.}}의 『도덕경지귀(道德經指歸)』에서도 노자의 사상을 밝히는 과정에서 『주역』 경전의 뜻을 많이 이끌어 씀으로써황노학과 역학을 결합시키고 있다.
나.
엄군평의 제자인 양웅(楊雄){{ 기원전 53-기원 후18. 서한시대 촉 지방 성도(成都) 사람으로서 자는 자운(子雲). 저서로는 『태현(太玄)』, 『법언(法言)』, 『훈찬(訓纂)』, 『주잠(州箴)』 등이 있다.}}도 이러한 경향을 이어받아서 『태현(太玄)』을 지었다. 『태현』은 그체재에 있어서도 『주역』을 모방하여 64 괘에 해당하는 81 수(首)를 설명하고 있는데, 1 수는 9 찬(贊)으로 되어 있다.
『역』에는 음 양 2 획이 있는데, 『태현』에는 1,2,3 획이 있으며 『역』에는 6 자리가 있는데, 『태현』에는 4 겹이 있어서 가장 위의 방(方)으로부터 차례로 주(州), 부(部), 가(家)로 내려온다. 이 밖에도 「단전(彖傳)」을 모방한「현수(玄首)」, 「상전(象傳)」을 모방한 「현측(玄測)」, 「{서괘(序卦)」를 모방한 「현형(玄衡)」, 「잡괘」를 모방한 「현착(玄錯)」,「설괘(說卦)」를 모방한 「현수(玄數)」, 「문언(文言)」을 모방한 「현문(玄文)」, 「계사(繫辭)」를 모방한 「현도(玄圖)」,「현고(玄告)」 등이 있다.
『태현』은 노자의 우주관 내지 음양 변천의사상과 『역경전』의 사상을 결합하여 우주의 이루어짐과 변화하는 체계를 뭉뚱그려 설명하려는 책이다.
"현(玄)"이란 하늘과 땅과 사람의 뒤에으늑하게 숨어서 보이지 않으면서도 그것들의 이루어짐과 변화함의 근본이 되고 있는 최고의 어떤 개념이다. 노자의 "도(道)"와 『계사』의 "태극"을 합친 뜻으로 이해된다.
다.
동한 시대의 위백양(魏伯陽){{ 동한 말기 회계(會稽) 상우(上虞)(현재 浙江省 上虞) 사람이나 생애와 사적을 알 수 없다. 저서로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가 있다.}}은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에서역시 노자의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주역』의 몇 가지 원리를 빌려 가지고 인간이 신선으로 되는 단(丹)을 수련하는 원리와 방법을 설명하고있다.
그는 건, 곤, 감, 이 4 괘를 기본 괘로 보고 진, 태, 손, 간 4 괘는기본 괘의 운행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암 수의 현상이라고 본다. 건과곤은 역이 생겨 나오는 문(門)이고 모든 괘의 어버이인데, 감과 이는 건과 곤의 작용으로서 굴러가는 수레바퀴의 바퀴축과 바퀴통 같은 것이며그 안에서 음과 양이 끊임없이 두루 흘러 돌아갈 수 있는 크고 휑하니빈 성곽과 같은 것이고 하늘과 땅 사이에서 운행하는 해와 달 같은 것이라고 한다. 결국 역이란 감과 이의 운행 변화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수화광곽도(水火匡廓圖)라는 그림과 같이 표현될 수 있겠는데, 이 그림은 팽효(彭曉)의 구본(舊本) 『참동계』에 실려있다.
그는 또한 경방과 우번의 납갑설이나 괘기설과 같은 내용의 납갑설과괘기설을 빌려다가 단을 수련할 때 나타나는 불의 운행 변화하는 모습을암시하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주역참동계』에서는 "임(壬)과 계(癸)는갑(甲)과 을(乙)에 짝하고 건과 곤이 시작과 끝을 모아 쥐고 있다"고말하여, 건괘에는 갑과 임이 들어가고 곤괘에는 을과 계가 들어감을 분명하게 하였다.
4) 위(魏), 진(晋), 수(隋), 당(唐) 때의 역학
위 나라 초기에는 한편으로 동한 시대 정현의 역학 곧 상수역학이 이어지면서 동시에 한편으로 황노파의 현학을 이어받고 『노자』,『장자(莊子)』의 철학사상에 입각해서 『역경전』의 의리를 해석해내는 현가(玄家) 내지 도가(道家) 의리역학의 경향이 차차로 뚜렸해지기 시작했다. 남북조 시대에 이르러서는 왕필(王弼){{ 226-249. 삼국시대 위나라 산양(山陽) 고평(高平)(현재 山東省 鄒懸)사람으로서 자는 보사(輔嗣). 저서로는 『노자주(老子注)』, 『주역주(周易注)』, 『주역약례(周易略例)』, 『주역궁미론(周易窮微論)』, 『역변(易辨)』, 『주역대연론(周易大衍論)』 등이 있다.}}이 의리역학을 확고하게 하였다.
왕필 역학의 주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득의망상설(得意忘象說)
괘사나 효사는 괘의 상징적 모습을 말해 주기 위한 언어일 뿐이고 괘의 상징적 모습은 괘의 뜻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니, 괘사나 효사라는 언어에 집착하면 그 괘의 참다운 상징적 모습을 찾아내지 못하고 상징적 모습에 집착하면 참다운 뜻을 얻어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뜻을 얻어냈으면 그 상징적 모습을 잊어버리기를 마치 물고기를 잡았으면 통발을 잊어버리듯 해야 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상수역학은 지나치게 상징적 모습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판단되므로 배척하게된다.
나. 대연수(大衍數)의 뜻 풀이
『계사전』에 나오는 "대연의 수가 50인데 그 쓰는 것은 49이다"라는 말을 해석함에 있어서, 50-49=1의 1을 쓰지 않는 이유를 어떻게풀이하는가의 문제이다. 경방으로부터 정현에 이르기까지 상수학자들은위에서 살핀바와 같이 그 때의 천문학적 지식과 괘기설을 이용하여 여러가지를 갖다 붙이는 경향이 있었다.
왕필은 노장철학 곧 현학에 입각하여, 쓰지 않는 1이 바로 『노자』에 나오는 "도"와 같은 것으로서 『계사전』에서 이른바 태극에 해당하여 천지 만물의 본 바탕으로 되는 것인데, 볼 수도 이름 붙일 수도 말로 할 수도 없고 "무(無)"라 할 수 있는어떤 것이라고 풀이한다. 이로써 왕필은 그 때까지의 상수역학을 밀쳐버리고 『계사전』의 태극과 『노자』, 『장자』의 도와 허무를 한 솥에녹여서 현가의 의리역학을 확립하고 새로운 철학 사상을 내놓게 된다.
다. 취의설(取義說)
『주역』 괘사나 효사를 언제나 그 괘나 글에 담겨진 이치와 뜻을 가지고 해석하였고 상징적 모습이나 수는 말하지 않았다. 그 담겨진이치와 뜻은 『노자』, 『장자』에 담겨 있는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라. 효위설(爻位說)
괘에 담긴 이치와 뜻은 그 괘에 들어 있는 어떤 하나의 효에 담긴 이치와 뜻에 의하여 주로 결정된다. 일반적으로는 두째 효와 다섯째효 곧 가운데 효가 그것인데, 음 효나 양 효가 다섯인 괘에서는 나머지하나의 양 또는 음 효가 그것이다. 이로써 왕필은 상수역학의 주요 내용인 취상(取象), 호체(互體), 괘변(卦變), 납갑(納甲) 등의 설명을 밀어내버렸다.
왕필이 나타나서 『주역』을 현학의 울타리 안으로 끌어 들이고 한나라 시대의 상수역학을 밀쳐버리면서 현가의 의리역학을 확립하게 된 뒤로 그것이 오래 동안 주되는 흐름이 되었다.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또 한편 불교가 들어와서 지식인들 사이에 크게전파되었는가 하면 도교도 크게 유행하게 되었는데, 이들은 각각 그 교리를 역학을 이용하여 풀이하거나 『역』을 그들의 교리에 입각하여 해석하는 방법을 키웠다. 역학은 이 시대의 불교나 도교에 의하여 그 때까지대립관계에 있던 상수역학과 의리역학이 서로 합쳐져서 한 덩어리로 되는경향을 갖는다. 이러한 흐름 외에도 역학은 이 시대에 발달하는 자연과학적 지식에 의하여도 영향을 받는다.
수 나라 때에는 왕필의 역학이 주되는 흐름으로 된다.
당 나라 때에는 그 때까지의 역학이 총 결산 되어서 송 나라의 역학으로 넘어가는 발판을 이루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상수역학, 의리역학, 불교의 역학, 도교의 역학이 이어 받아져서 조금씩 발전정리되는가 하면 천문학, 수학, 약학, 의학, 지리학 등이 발전하면서 이루어낸 성과에 의하여도 영향을 받되 크게 새롭게 이루어진 것은 드문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저서로는 공영달(孔穎達){{574-648. 당 나라 기주(冀州) 형수(衡水)(현재 河北省 衡水) 사람으로서 자는 중달(仲達) 또는 충원(沖遠).}}의 『주역정의(周易正義)』와 이정조(李鼎祚){{당 나라 자주(資州) 반석(盤石)(현재 資中懸의 서북) 사람이다.}}의 『주역집해(周易集解)』가 있다.
『주역정의』는 현가 의리역학을 이어받아 왕필의 『주역주』를 구절마다 다시 해설하고 있는데, 동시에 그 외 여러 학자들이 붙인 주(注)도가려 뽑아서 받아 들이고 있다.
『주역집해』는 한 나라 시대의 역학 가운데에서 상수역학자들인 경방, 마융, 순상, 정현, 우번, 간보(干寶){{ 동진(東晋) 시대신채(新蔡)(현재 河南省 新蔡) 사람으로서 자는 영승(令升)이다.
『역주(易注)』, 『주역효의(周易爻義)』, 『주역문난(周易問難)』, 『주역현품(周易玄品)』 등을 썼다는 기록이 있다.}} 등이 해석한 주(注)들을 주로하여 널리 모아 놓음으로써 그것들을 유지 보존시키고 뒷 시대로전해 줄 수 있게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의리역학자인 왕필, 하안(何晏){{ 190-249. 삼국시대 위 나라 남양(南陽)(현재 河南省 南陽) 사람으로서 자는 평숙(平叔).『주역사기(周易私記)』, 『주역강설(周易講說)』을 썼다는 기록이 있고, 『논어집해(論語集解)』는 전해진다.}},
한백(韓伯){{ 322-380. 진(晋) 나라 영천(潁川) 장사(長社)(현재 河南省 長葛 동북) 사람으로서 자는 강백(康伯). 『계사주(繫辭注)』, 『설괘(說卦), 서괘(序卦), 잡괘(雜卦)』의 합주(合注)가 있다.}},공영달의 주해(注解)도 아주 밀쳐버리지는 않았다.
『주역정의』와 『주역집해』는 주되는 내용이 위와 같이 서로 대립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의리역학과 상수역학을 한 솥에 녹여 놓고 살핀 듯한 내용도 담고 있어서, 두 역학이 이미 서로 사이에 영향을 주고 받고있었슴도 드러내고 있다.
뒷 날 두 역학이 서로를 비추어 보고 합쳐질 수 있게 되는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고도 볼 수 있다.
5) 송(宋) 시대의 역학
송 나라 때의 역학도 역시 상수역학과 의리역학이라는 두 큰 줄기로나뉘어 발전한다고 볼 수 있으나, 어느 경우에도 모두 철학적인 근본원리 내지는 우주의 생성 변화의 근원, 사람의 본질 등을 찾거나 인식(認識)에 관한 연구를 하는데 주로 노력을 기울인다는 점을 특색으로 하고있다. 그래서 한역(漢易)에 대하여 송역(宋易)이라 부른다.
이러한 경향은 이 시대에 치열해진 유, 불, 도 세 종교 사이의 교리 우열 다툼과 함께 다시 일어난 유학 곧 신유학(新儒學)의 영향일 뿐만 아니라 천문학, 지학 기타 자연과학적 지식의 발전의 영향이기도 하다고 분석된다.
북송에서 먼저 일어난 것은 상수역학자들이 하도(河圖) 낙서(洛書)를높이 받들며 이루어 놓은 역학이었는데, 주돈이(周敦 ) 소옹(邵雍)에 이르러 괘의 상징적 모습이나 수를 철학상의 이(理)라는 개념과 연결하게되어서 마침내 참으로 송 나라 시대의 특색을 지닌 상수역학을 이루게 된다.
장재(張載) 특히 정이(程 )는 이 시대 의리역학을 이루어낸 대표적학자라고 볼 수 있으며 이들 뒤로 의리역학이 점점 지배적인 자리를 찾이하게 된다. 특히 이들은 유가의 입장에서 {주역}의 원리를 해석하는 역학 체계를 세움으로써 송 나라 성리학 체계가 짜여질 수 있는 터전을 만든다. 이에 따라서 현가의 역학은 뒤로 물러나게 되고 남송에 이르러서는마침내 송역이 확립된다.
남송 시대에는 상수역학과 의리역학이 서로 흡수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데, 주희(朱熹)처럼 의리역학의 입장에서 상수역학을 받아들이는 학자들과 주진(朱震)처럼 상수역학의 입장에서 의리역학을 함께하는 학자들이 나타난다. 특히 주희는 정이의 역학을 정통으로 이어받으면서 동시에 주돈이, 소옹, 장재, 주진 등 중요한 역학자들의 관점을 비판하여받아 들여 북송 시대로부터 그에 이르기까지의 역학을 통틀어 정리하게된다.
원 나라 때의 역학은 송역을 이어받아서 그 연구 방법이나 내용이 송나라 때의 학자들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정이와 주희의 역학이 주되는 흐름인데, 특히 주희의 것이 높임을 받았으므로 더욱 뚜렸하게 의리역학과 상수역학이 합쳐지는 쪽으로 흐른다.
한 편으로는 소옹 계통의 상수역학과 도교의 역학이 한 걸음 더 발전하기도 한다.
(1) 북송의 상수역학
가. 진단(陳 ), 유목(劉牧), 이지재(李之才)의 역학
(가) 진단이 그린 『주역』 관계 그림들
진단은 역학사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몇 가지 그림을 그려서 『주역』에 담긴 원리를 해석하고 나아가서 단을 수련하는 원리와 방법을 설명한 점에서 『주역참동계』의 전통을 다시 이어받아서 송대의 도서상수역학(圖書象數易學)을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천지자연지도(天地自然之圖)」는 「태극도(太極圖)」 또는 「선천태극도(先天太極圖)」라고도 부른다.
이 그림에서 위쪽은 건괘, 아래쪽은 곤괘, 왼쪽은 이괘, 오른쪽은 태괘에 해당하며 흰 점은 음 가운데 있는 하나의 양이고 검은 점은 양 가운데 있는 하나의 음이다. 이 그림은 음과 양 두 기가 끊임 없이 변화하면서 번 갈아 늘고 주는 관계를 설명하는 것으로서, 『주역참동계』에 들어 있는 내단 수련의 이치를 더욱 보기 좋게 나타낸 것이다.
역학의 입장에서는 괘기설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무극도(無極圖)」도 역시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내단 수련의과정을 단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서, 『주역참동계』의 영향을받아 그려졌다고 생각된다. 이 그림은 그 뒤로 도교 역학과 신유가 역학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주돈이의 「태극도」가 나온 모체냐 아니냐하는 점에 대하여는 의논이 나누어지고 있는 것이다. 진단은 이 그림을통하여 무극(無極)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가장 근본이며 최고인 어떤 범주라는 철학적 사상을 나타내고 있기도 한데, 이는 역학의 형이상학화 철학화라는 송역의 특징을 뚜렷이 드러내고 있는 하나의 예이기도 하다.
「역용도(易龍圖)」는 「용도역(龍圖易)」이라고도 하며 모두 21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나, 전해지지 않는다. 『송문감(宋文鑑)』에 실려있는 그 서문 부분인 「용도서(龍圖序)」에 다음과 같은 「용도삼변도(龍圖三變圖)」가 들어 있는데, 그에 의하면 『계사전』에 나오는 하늘 수와 땅 수가 세 차례 변하여 [용도]를 이루게 된다고 한다. 하도 낙서를 근본으로 하는 도서역학이 이 그림으로부터 출발하게 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인정된다.
이 그림들도 역시 도교 역학의 입장에서, 정현의 오행설이나 『건착도』의 구궁설 등을 함께 녹여 가지고 하늘과 땅의 수로부터 8 괘가 이루어진 과정과 원리를 보기 좋게 그려낸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용도삼변도(제1변)>...생략
<용도삼변도(제2변)>...생략
<용도삼변도(제3변)>...생략
(나) 유목이 그린 「역수구은도(易數鉤隱圖)」
「역수구은도」는 『도장(道藏)』과 『사고전서(四庫全書)』 속에 실려 있는데, 태극, 태극생양의, 천지수 15, 양의생사상, 사상생팔괘, 하도, 낙서오행생수, 낙서오행성수 등 55 폭의 그림을 포함하고 있다. 유목의 역학은 진단으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으나, 진단은 역에 관한 그림으로써 단을 수련하는 과정과 원리를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음에 대하여 유목의 목적은 우주 만물의 생겨나고 이루어지고 변화하는 모습이나 원리 내지 구조를 설명하는데 있었으며 또한 흰 점으로 하늘 수를 나타내고 검은 점으로 땅 수 를 나타내면서 "낙서"와 "하도"에관한 원리적 설명을 처음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유목이 참다운 의미의 도서역학(圖書易學)을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계사전』에 나오는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유목은 용도(龍圖)와구서(龜書)라 불렀다. 낙서는 『상서(尙書)』에 나오는 홍범(洪範)에 해당되는 것인데, 홍범의 아홉 범주는 오행 수에서 나왔고 오행 수는 생기는 수 5개와 이루어진 수 5개를 포함하여 10개의 수를 말하며 그것을 합하면 55가 된다고 한다. 결국 진단의 「용도」의 「오행생성도(五行生成圖)」와 같은 모습을 유목은 낙서라고 생각하였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하도는 오행과 함께 사상(四象)에 관하여도 말하고 있는 것인데, 그 사상으로부터는 8 괘가 생겨나오고 8 괘 나아가서 64 괘는 하늘과 땅의 생기고 이루어지는 수 곧 음과 양의 늘고 주는 관계에 따라서 그 상징적 모습을 이루게 된다.
이 경우, 하늘과 땅의 생기고 이루어지는 수는 결국 가로, 세로 또는빗겨서 세 수를 더하여 어느 경우나 15가 되게 자리잡는다는 입장에서 유목은 진단의 「용도」의 「구궁도(九宮圖)」와 같은 「하도」의 그림을그렸다. 위와 같은 설명을 한마디로 "도구서십설(圖9書10說)"이라고 하는데, 뒤에 나오는 소옹의 주장과는 반대이다.
이 외에도 유목은 하도 낙서의 근원에 태극이 있는데, 태극은 스스로움직이거나 움직이지 않거나 하는 최고의 근본원리이지, 왕필로부터 인정되어 온 바와 같이 허무(虛無)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공영달 등에 의하여 획립되어 내려오던 "유(有)가 무(無)에서 생긴다"는철학적 명제를 버려버린다.
(다) 이지재의 괘변설(卦變說)
이지재도 역시 진단 역학의 영향을 받은 후배인데, 그 내용은 「변괘반대도(變卦反對圖)」와 「육십사괘상생도(六十四卦相生圖)」를 그려서 주로 우번의 괘변설을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이그림에 의하면, 건괘와 곤괘가 모든 괘의 어버이로서 위에 있고 그로부터 하나의 효가 음과 양을 변하므로써 이루어지는 괘가 6, 그것을 반대쪽에서 볼 때 이루어지는 괘가 6이고 두 효가 변하므로써 이루어지는 괘가 12, 그것을 반대쪽에서 볼 때 이루어지는 괘가 12이며 세 효가 변하므로써 이루어지는 괘가 12, 그것을 반대쪽에서 볼 때 이루어지는 괘가12이고 바로 보거나 반대쪽에서 보거나 괘의 모습이 바뀌지 않는 것이6이다.
그러면 모두 68 괘가 되는데, 그 가운데에는 기제(旣濟)와 미제(未濟), 부(否)와 태(泰)괘가 거듭 들어 있게 된다. 뒷 날 주희가 『역학계몽』의 끝 부분에 그려놓은 괘변도는 이 그림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나. 주돈이(周敦 )의 역학
주돈이의 역학에 관한 저술로는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통서(通書)』가 있다.
『태극도설』은 그림과 그림을 풀이한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그내용은 『계사전』의 사상을 이어받아 우주가 생겨나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말하고 나아가 인간의 본질과 성인으로 되기 위한 방법을 내 놓고 있다. 그림 풀이의 맨 처음에 무극과 태극을 말하므로써 철학적 근본원리를 역학으로 접근하겠다는 송역의 특징을 분명하게 갖추고 있는데, 무극과 태극의관계에 관하여는 뒷날 주희와 육구연 사이에서 큰 논쟁이 일어난다.
주돈이는 무극으로부터 네 계절이 운행하는 데까지 우주가 생겨나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말하고는 다시 거슬러서 "오행은 하나의 음양이고 음양은 하나의 태극이며 태극은 본디 무극이다"라고 말하여 스스로의 우주론을 밝혔는데, 그 속에서 특히 "태극이 움직여서 양을 생기게 하고 ...움직이지 않아서 음을 생기게 한다"고 말하므로써 태극이 능동적 원리임을주장한다.
어떻든 『태극도설』은 태극, 음양, 오행, 건, 곤의 원리를상징적 그림으로 설명하면서도 수는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상수역학 가운데에서도 상역학(象易學)으로 분류된다.
『통서』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고, 무극이라는 용어가 나오지 않으며 그에 담긴 철학 사상이 보다 더 순수하게 유가에 속하는 등, 「태극도설」과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통서』의 핵심으로 되고 있는 사상은"성(誠)"인데, 이것은 주돈이가 『주역』과 『중용(中庸)』에 담긴 사상을 결합하여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 주돈이는 『주역』의 여러 괘들에 담겨 있는 뜻을 풀이하면서 괘 효의 상징적 모습이나 수는 언급하지 않았으며 당 나라 이전의 현가 역학자들의 관점도 인용하지않고 주로 『중용』에 나오는 용어로써 역의 원리를 설명하거나 『주역』으로써 인간의 성리(性理)나 도덕을 말하고 있다. 이는 송역의 특징을분명하게 갖추고 있는 의리역학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다.
다. 소옹(邵雍)의 역학
소옹의 저작인 『황극경세서』는 「관물내편(觀物內篇)」과 「관물외편(觀物外篇)」으로 나누어지는데, 원래의 책은 일찍이자취를 감추었고그 주요한 내용을 이루는 많은 그림들과 이론들이 뒷 사람들에 의하여 정리 주석되면서 전해지고 있다. 소백온(邵伯溫)의 『황극계술(皇極系述)』, 『관물내외편해』, 장행성(張行成)의 『주역변통(周易變通)』, 채원정의 『경세지요(經世指要)』, 주희의 『역학계몽』, 『주자어류』 「소자지서(邵子之書)」등에 해설이 실려 있다. 오늘날 전해지는 『황극경세서』에 실려 있는 여러 그림들 가운데는 소백온, 채원정, 주희 및 명청 시대의 학자들이 보충해 놓은 것들이 많이 있다.
소옹의 역학은 북송 상수역학 계통인데 선천역학(先天易學)이라고도 불리운다. 다시말하면 소옹은 복희씨가 그렸다고 하는 역학 관계 그림들에 주로 관심을 가지는 반면 『주역』 경전의 글에 대하여는 관심이 적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역학의 가장 큰 특색은 수(數)에 대한 연구가깊다는 것인데, 그 근원은 진단의 역학이라고 할 수가 있다. 그래서 그는 역학에 관한 많은 그림을 그렸다.
『황극경세서』는 그의 상수역학의 체계를 가지고 우주 안의 모든 것을간추리고 나아가서 앞으로 닥칠 일의 변화를 예측하고자 하는 책이다.
8괘나 64괘의 이루어진 내력과 관련하여 소옹은 산가치의 수나 8괘와64괘의 수나 음6 양9라는 수나 건과 곤이 상징하는 모습 등 모두가 하늘의 바른 수와 땅의 바른 수 곧 홀수와 짝수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산가치를 뽑아 헤아리면서 변화를 추적하여 효를 얻고 결국 하나의괘를 얻는 과정이 바로 8괘와 64괘가 이루어지는 과정이지, 성인께서 사물의 모습을 추상하여 괘를 그린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그는 "태극이 나누어지니 음 양이라는 두 기본이 이루어지고 양은 아래로 음과, 음은 위로 양과 어우러지니 네 모습이 생긴다. 다시 양은 음과 음은 양과 어우러지니 하늘의 네 모습이 생기고 강함이 부드러움과부드러움이 강함과 어우러지니 땅의 네 모습이 생겨서 8괘가 이루어진다.
8괘가 서로 엇갈리게 되어서 만물이 생긴다. 이렇기 때문에 1이 나누어져 2로 되고 2가 나누어져 4로 되며 4가 나누어져 8로 되고 8이 나누어져 16으로 되며 16이 나누어져 32로 되고 32가 나누어져 64로 된다"고말한다.
이러한 설명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 『8괘차서도(8卦次序圖)』와 『64괘차서도(64卦次序圖)』이다. 이러한 생각의 법칙을 정호는 '가일배법(加一倍法)'이라 하였고 주희는 '일분위이법(一分爲二法)'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우번의 '괘변설', 한강백의 '유가 무에서 생긴다'는 설이나 공영달의'태극원기설' 및 '오행설'과도 다른 독특한한 것이었고 그 뒤 수백 년동안 상수역학의 기본원리로 인정받아 수학적 관점에서 역학을 풀이하는새로운 학파를 이루게 되었다.
소옹은 이 밖에도 『복희8괘방위도(伏羲8卦方位圖)』, 『복희64괘방위도(伏羲64卦方位圖)』, 『천근월굴도(天根月窟圖)』, 『괘기도(卦氣圖)』등을 그렸다고 인정된다.
이 그림들은 8괘나 64괘가 각각 그에 마땅한 방위를 갖고 있다는 설명인데, 결국은 1년 동안의 계절 변화의 과정을 설명하고 나아가서 사회의흥망성쇠나 나라의 다스려지거나 어지러워지는 관계 및 세계의 시작과 끝을 예측하려는 목적에 이용되었다.
또한 『경세천지시종지수도(經世天地始終之數圖)』를 그렸는데, 이것은그가 우주의 역사에 원(元)ㆍ회(會)ㆍ운(運)ㆍ세(世)라는 어떤 주기(周期)가 있음을 알아내어 그에 맞는 주기표를 만든 것이다. 우주는 이 그림에 나타난 주기를 따라 끝 없이 시작과 끝남을 거듭 거듭한다는 것이다.
끝으로 소옹은 수와 모습의 근원은 결국 1인 태극이라고 말하고 철학에서 말하는 도(道)가 태극에 해당되며 마음이 또한 태극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대대로 이어지는 터널의 광장에 신을 안정시키고 태어 나기 이전의 것을 끌어 모은다.[安神祖竅, 翕聚先天](진리의 수레바퀴가 스스로 도는 것과 용과 범이 어우러짐을 포함함)원시로부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터널의 광장<祖竅>이 정말 어디에있는지 아는 사람이 드믈다. 스승의 전해 줌을 얻지 못하면 정말 어두움속에서 과녘을 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원시로부터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터널의 광장이란 노자께서 이른바현(玄)과 빈(牝)의 문이라는 것이다. 『오진편』에서는 "골짜기의 신이오래 죽지 않고자 한다면 반드시 현빈에 힘입어 뿌리와 터전을 세워야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장자양께서 금단을 닦고 달이는 것이 오로지 현빈에 달려 있다고 말하면서 『사백자서(四百字序)』에서 "현빈으로 통하는하나의 터널의 구멍은 캐어 가지는 일도 여기에서 이루어지고 서로 어우러지는 일도 여기에서 그러하고 삶고 달이는 일도 여기에서 하고 머리 감고 몸 씻는 일도 여기에서 하며 따뜻이 기르는 일도 태아를 맺는 일도 여기에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태를 벗어나서 신과 같이 되는 일도 여기에서 이루지는 등 여기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닦고달이는 일을 배우고 익히는 사람이 참으로 이 하나의 터널 광장을 알 수있다면 금단의 길을 다 간 것이다. 이른바 "?엡을 얻으면 만 가지 일이 끝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단을 설명해 놓은 경전들이 모두 비유하는 말을 썼기 때문에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믿고 의지할 곳이 없게 만들었다. 선배들께서 가리킨 것은 태어나기 이전의 주인, 삼라 만상의 주재, 태극의 꼭지, 소용돌이의 뿌리, 지극히 선한 자리, 엉겨 맺히는 곳, 텅 비고 없는 골짜기, 운행 변화의 근원, 둘 아닌 진리의 문, 깊고 깊은 진리의 세계, 뿌리로 돌아가는 터널의 광장, 생명을 다시하는 관문, 가운데의 궁궐, 희(希)와 이(夷)-{{『도덕경』에 나오는 말로서 희는 들어도 들리지 않는 것이요 이는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큰 진리의 길의 묘함을 나타낸말이다.}}-의 집, 다라니의 문, 극락 나라, 허공을 감추고 있는 곳, 서남쪽 마을, 무와 기의 문, 참으로 ?엡 곳, 누런 할머니의 집, ?엡을 지키는제단, 깨끗한 땅, 서쪽, 가운데의 바른 자리, 이런 것, 신의 방, 참된토, 누런 뜰 등등의 여러 가지 이름들로서 모두 들어 보일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 ?엡 광장을 몸속에서 찾는다면, 입도 아니요 코도 아니요 마음보도 아니요 신장도 아니요 간이나 폐도 위나 지라도 아니요 배꼽도미려도 방광도 항문도 아니요 두 콩팥 사이에 있는 어떤 구멍도 배꼽 아래 한 치 세 푼도 아니요 명당도 니환도 관원도 기해도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어디란 말인가?
순양 큰 스승께서는 "현빈 현빈 참 현빈은 마음보에도 신장에도 있지않도다. 들어 가고 들어 가서 몸이 태어나면서 기를 받던 처음을 잡는다면 하늘의 비밀이 모두 새어 나오는 것도 이상할 것 없네"라고 읊었다.
몸이 태어나는 이치로써 설명한다면, 어버이의 생각이 하나로 어우러지려는 때에는 둥글 둥글하고 번쩍 번쩍하며 하늘보다도 먼저 있은 한 산령한점이 어머니의 아기집으로 뛰어드는데, 마치 ○과 같다.
유가에서는 인(仁)이라 하기도 하고 무극이라고도 부르며 불가에서는 구슬이라 하기도 하고 원명(圓明)이라 부르기도 하며 도가에서는 단이라 하기도 하고신령한 빛[靈光]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하늘보다 먼저 있은?엡 기요 소용돌이치던 처음의 지극한 정을 말하는 것으로서 알고 보면 몸이 태어나는 근원이요 기를 받던 처음이며 성품과 목숨의 터전이요 모든 변화의 으뜸인 것이다.
어버이의 어우러짐이 끝나서 정과 피가 바깥을 애워싸면 ○ 과 같게되니 유가에서 이른바 태극이라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오장 육부와 팔다리와 모든 뼈가 생기고 이로 말미암아 보고 듣고 지키고 일을 할 수 있게 되며 이로 말미암아 어질고 의롭고 예절바르고 지혜로울 수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성인도 되고 신으로도 될 수 있고 선비도 되고 호반도 될 수있다. 따지고 보면 몸이 태어난 본디 근원은 모두 태극 속으로부터 이 하나의 싹이 피어 나온 것일 뿐이다.
『참동계』에서는 "사람이 받은 바 몸은 그 바탕이 ?엡도 없음에 근본을두고 으뜸되는 정이 구름처럼 퍼져서 기로 말미암아 처음을 시작한다"고말한다. 기가 한 번 엉겨서 머물면 현빈(玄牝)이 이루어진다.
위로는 신령한 관문이 맺히고 아래로는 기의 바다가 이루어진다. 신령한 관문에는깨우침과 신령과 본성이 감추어지고 기의 바다에는 생명과 기를 감추게된다. 본성과 생명이 비록 용과 범이라는 두 반쪽으로 나누어지지만 그두 가지의 뿌리는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터널의 광장 속에 모아져 있게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께서는 "현빈의 문은 하늘과 땅의뿌리이다"라고 말하였던 것이다.
어째서 현빈의 문을 하늘과 땅의 뿌리라고 하는가?
우리 몸의 하늘과 땅이 어찌 우리 몸의 현빈이 아니겠으며 우리 몸의하늘과 땅의 뿌리가 어찌 우리 몸의 현빈의 뿌리가 아니겠고 우리 몸의현빈의 문이 어찌 우리 몸의 하늘과 땅의 문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하늘과 땅의 문이 생겨 나오게 된 근원이 되는 곳은 짝도 없고 있음에도 속하는 것이 아니어서 이른바 하늘과 땅보다 먼저 생긴 것이니, 하늘과 땅의뿌리로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뿌리란 바로 하늘과땅이 그로부터 말미암아서 하늘과 땅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현빈의 문이생겨 나오게 된 근원이 되는 곳도 또한 짝도 없고 있음에도 속하는 것이아니어서 이른바 현빈보다 먼저 생긴 것이니, 현빈의 뿌리로 되는 것이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현빈의 뿌리란 바로 현빈이 그로부터 말미암아서현빈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어째서 현이라 하는가?
어찌 이름 있는 것의 어미 속에서 피어 나오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어째서 현 속의 또 현이라 이르는가?
어찌 이름 없는 시초 속에서 피어 나오기 때문이 아니겠는가?이름 없는 시초를 석가께서는 둘 아닌 존재의 문이라 가리켰고 자사(子思)께서는 "그 물건 됨은둘이 아니고 그 물건을 생기게 함은 헤아려 볼수가 없다"고 말하고 장자께서는 "어두움 속에서 밝음이 생겨 나오고 모양 없는 속에서 눈에 보이는 것이 생긴다"고 말하였다.
그러니 깨달음의성품을 가지고 본성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밝으면서 눈에 보이는 것에서그것을 찾아야 하는가 아니면 어두운 속에서 모양 없는 것을 찾아야 하는가? 어둡고 모양 없어서 들여다 보아도 낌새를 볼 수 없으니 유가에서 이른바 소리도 냄새도 없다는 것이요 석가께서 이른바 위음왕(威音王) 이전이라는 것이다.
어째서 왕이라고 부르는가? 최초의 때를 주장하는 원인이란 바로 태극인데, 그것이 일을 주장하는 면이 있으므로 왕이라 부르는 것이다. 이에나는 신선이나 부처를 배우는 사람들은 다만 그 왕이 있는 곳을 찾아서높이기만 하면 되고, 이미 그 왕을 높인 뒤에는 또한 그 높임과 함께 그왕이라는 것도 없애버려서 태극을 거슬러 올라가 무극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