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도 강산에라는 가수를 보았습니다. 경희대학교 한의학과를 입학하고
처음엔 연극을 하고 싶어서, 학교를 접고 나왔다가 성대에 이상이 있어서
포기하고 이율배반적으로 가수가된 강산에(강영걸)을 만났습니다.
저의 재수 시절이었죠. 형, 누나를 통해서 민중가요를 접해왔던 나로서는
긴 머리를 묶은 거의 LP판의 표지를 보고 그냥 웃고 넘어갔답니다.
92년도의 재수생활을 마치고, 93년 대학을 입학하고 난 뒤 아무런 고민없이(형과 누나가 가입해서 활동 했기때문에) 민중가요를 부르는 학교의 노래패에 가입을 하고 활동을 막 시작 할 무렵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친구집에 갔는데 92년도에 봤던 그의 레코드 판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타이틀 곡은 "할아버지와 수박", 그 다음 곡이 바로 이렇게
그에 대한 글을 쓰게 된 "라구요"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젖는 뱃사공은......(중략)......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중략).......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더 군요. 집에가서 그의 노래를 수 없이 많이
들으면서 기타를 손에 쥐고 "라구요"의 코드를 짚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동아리에서는 통일 관련된 민중가요(자주 민주 통일가, 백두산, 백두에서 한라로 등)들을 불렀던 시절이었습니다. 80년대 선배님들처럼 그렇게
힘들지 않고 캠퍼스에서, 때론 집회와 관련된 시내 곳곳에 설치된 가설 무대에서 통일 관련된 민중가요를 열심히 부를 수 있던 시기 였습니다. 왜냐구요 문민정부(?) 시대였기 때문이죠.
하여간에 난 강산에의 노래가, 나중에 알았지만, 실향민이신 그의 아버지를
소재로 하여 만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함경도 출신의 아버지가 한국전쟁
발생 시, 부산에 오셔서 지금의 강산에 어머니와 만나 사시게 된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혼을 한게 아니라, 같이 살게 되었다는 게 더욱 더 정확한 표현인 듯)
전 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통일은 왜 되어야 하나?"라는 질문에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외에는 그다지 뾰족한 답이 없다고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라구요"를 듣고 난 후에, 저의 느낌은 우리가 지금 부르고 있는
통일노래 관련된 민중가요들이 이다지도 민족의 대의(大義)를 생각 하는지를 말입니다.
우리 어르신들이 새해벽두만 되면, 임진각에 가셔서 차례상을 차려놓고 북녘 산하를 바라보시면서, 말라도 진작 말랐어야할 당신들의 눈물을 9시 뉴스를 통해서 보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진정한 통일, 아니 잘려진 우리의 현실을 논리적으로 풀어나갈 순 없는 부분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이성에 호소할 문제가 아니다 이건 감성에 호소해야할 부분이다.
강산에의 사상과 생각은 잘 모릅니다. 노래는 노래의 가치로써 인정하고 바라보아야 하는 관점입니다. "꼭 한번만이라도"라는 부분에서 어느 누가 노래를 부르던간에 목의 힘줄과 핏줄이 붉어져 나와야 합니다. 때론 목소리가
갈라지기도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의 간절함을 나타내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의 라이브 콘서트에서 "라구요"를 들어보면 "꼭 한번만이라도"를 여러번
반복하면서 내질러는 창법(Shouting 창법)으로 5~6번은 반복합니다. 절규하듯 외치는 그의 목소리 저도 따라 부르다가 저의 목은 쉬어 버리죠. 하지만
그는 이내 다른 곳을 부릅니다. 트림을 한 번 하고선 말이죠. 역시 노래가
직업임에는 틀림없더라구요.
그의 노래에는 록발라드이기때문에 힘이 실려 있는 것도 있지만, 그의 노래에는 아버지에 대한 강한 느낌을 그대로 나타내는 생활 속에서의 곡으로 성화되고 있나 봅니다.
그의 노래가 비록 OO레코드 사를 통해서 나온 상업주의적인 음반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노래가 비록 대 자본의 힘을 입은 대중가요라고 할지라도 저는 그 노래를 사랑합니다.
왜냐구요? 그 노래는 논리와 이성에 호소하라고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이
시대 실향 어르신(부모님)들의 목소리를 대신하여, 음에 붙여서 불러지기
때문입니다.
요즘 북한 송금 문제때문에 많은 말들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도 우리나라(남한과 북한을 모두 포함)를 조아가고 있습니다. 치사하게 그것도 "무디스"라는 무식하게 생긴 이름을 가진 회사를 통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북과 남 또는 남과 북에는 김정일과 김대중은 7천만 인민(people)들 중 2명일 뿐입니다. 그들의 고향은 평양과 목포입니다. 몇 해만 지나면
북에서 온 남쪽 분들 남에서 간 북쪽 분들 그리고 그들의 형제 부모들이 살아가실 날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두만강 푸른물에" 발을 담그고 싶습니다. "바람찬 흥남부두에"서 회를 한
접시 먹고 싶습니다. 이 역시 보기 좋은 껍데기일 수도 있습니다. 이 글에
마침표를 찍고 등록을 하는 순간 이 기분이 덜 해질테니까요.
"강산에"의 "라구요"를 가지고 여러 가지 많은 생각들을 해 보았습니다. 21세기가 되었습니다. 민중가요라고 했던 노래들도 이제는 상업적 음반을 통해서든, 인디(독립) 음반을 통해서든,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대중가요든
민중가요든 하나의 대중문화 속에서 상업적이냐 약간 진보적이냐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멀티미디어"라는 도구를 통해서 전해진다는 명제는 같습니다.
그야 말로 어떤 관심분야를 어떻게 소화하느냐는 저를 포함한 소비주체(수용자)들의 몫입니다. 노래방에서 조차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광야에서" 등의 번호를 통해서 부를 수 있는 시대가 왔습니다.(노래방에서 이런
노래 부르는 사람 거의 못 봤지만)
예전에 김민기라는 평범한 포크송 가수를 시대가 민중가수로 바꾸었지만,
이젠 대중(불특정 다수)들이 바꾸어 가야할 시대입니다. 아름다운 노래를
향한 참된 노래를 향한 발전으로 말입니다.
박 진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