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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대림절기 설교 (3) / 12월 14일 주일예배
+ 제 목 : “예수님은 대속물이 되시려고 오셨습니다.”
+ 본 문 : 마태복음 20장 25절 - 28절 (신약성경 34쪽)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멘!
서로 인사하겠습니다. / “예수님 오셨습니다.” “예수님 다시 오십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왜 오셨나요?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자신의 입으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다섯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셨습니다.
둘째로,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모든 사람들을 섬기러 오셨습니다.
셋째로, 우리 예수님은 내가 지은 대속물이 되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넷째로, 우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풍성하게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다섯째로, 우리 예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사랑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오늘은 예수님 오심을 기다리며 보내는, 2025년 대림절 세 번째 주일입니다.
주제 말씀은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하는 말씀입니다.(마 20;28)
오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대속물법칙이 지배합니다. 모든 행동, 모든 물건에는 대속물이 필요합니다.
시계를 사려면 시계 값을 지불하여야만 합니다. 이것이 대속물 법칙입니다.
심으면 번드시 거두게 됩니다. 거두기 위하여서는, 대속물이 있어야 합니다.
대속물이란 헬라어로 “뤼트론 - 해방하다. 결박에서 풀다.” 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죄인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속물인,
짐승을 대신 죽임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대신 죽이는 동물을 대속물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대속물로 오셨다고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점은 대속물을 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자기가 대속물이라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의 대속물” 온 인류의 대속물, 즉 온 인류의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은 모든 것에 대가가 있습니다. “대속물의 법칙” 이 세상을 지배합니다.
예수님의 목숨은 우리를 구원시켜주는, 대속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을 가지고 오셔서, 대속물로 우리를 위하여 지불하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기 전 구약에서 대속물은 소, 양, 염소,
비둘기였습니다. 흠 없는 수컷이 대속물입니다. 수건 벗고 보면 예수님입니다.
구약은 짐승이 대속물로 죽고, 신약은 예수님께서 대속물로 죽으십니다.
누군가가 죽어야 누군가가 살기 때문입니다. 노르웨이의 어느 교회 종탑에는,
양과 십자가를 같이 조각하여 놓았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습니다.
그 교회를 지을 때에 건축비가 부족하였습니다. 기술자들을 모두 돌려보내고,
교인들이 몸으로 봉사하며 짓고 있었습니다. 기술이 없는 한 사람이 종탑위에서,
일하다가 떨어졌습니다. 모두가 죽은 줄 알고 달려가 보았더니 살아 있었습니다.
마침 양떼들이 종탑 밑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양위에 떨어져서,
그 양이 죽고, 떨어진 그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아! 양이 죽어야 사람이 사는구나!” 그래서 종탑 끝에 십자가와 양을 조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입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약의 대속 제물은 양이지만 신약의 대속제물은 예수님이십니다.
어떤 목사님이, 목에 십자가가 걸려 있는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교회 다니시나요?”
“아니요.” “그런데 왜 십자가를 목에 걸었나요?” “예뻐서요.” “십자가는 목에 거는,
것이 아니라 등에 지는 것이에요.” “가끔 십자가가 등쪽으로 갈 때도 있어요.”
우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므로, 네 가지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네 가지 면에서 대속물이 되셨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 그가 상함을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아멘!(사 53;5) 히브리서를 신약 속에 구약이라고 한다면,
이사야서는 구약 속에 신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중에서도 특별히,
53장은 구약 중에 신약이요. 십자가를 지실 예수님에 대한 예언 중에 예언입니다.
신학자 켐벨 몰간은 말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다.”
신학자인 델리취는 말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골고다 십자가의 현장이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말했습니다. “이사야 53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력서다.”
사람들은 평안을 좋아하는데, 우리 예수님은 고난을 스스로 자초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밝게 살려고 하는데, 우리 예수님은 어둠속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은 받으려고 하는데, 우리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다 주셨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더 살려고 하는데, 우리 예수님은 그만 사시고 죽으셨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위에 있기를 바라는데, 우리 예수님을 친히 낮아 지셨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섬김을 받기를 원하는데, 우리 예수님은 친히 섬기셨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쌓아 놓으려고만 하는데, 우리 예수님은 모두 없애셨습니다.
바로 이런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네 가지 대속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첫째는, 허물의 대속물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그러면 허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모르고 지은 죄를 허물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모르고 지은 우리의 죄까지도, 다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허물이라는 되를 위하여 창에 찔림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종종 이렇게 기도합니다. “알고 지은 죄, 모르고 지은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아멘!
그렇습니다. 모르고 지은 죄가 허물인데, 허물을 위하여 예수님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모르고 지은 죄, 허물까지도 짊어지시고 죽으신 대속물이십니다.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의 허물 때문에 찔리지 않으시고, 우리의 허물을 사하시려고,
옆구리를 창에 찔리고, 가시에 머리를 찔리시면서 십자가에서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시골에서 목회하시던 어느 목사님이 한 농부를 전도하려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예수님을 믿지 않았고, 그의 부인은 남편 구원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예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농부에게 설명할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농부가 목사님을 부르더니 닭장에 같이 가보자고 하였습니다.
그 닭장에 암탉이 앉아 있는데, 그 날개 밑에서는 병아리들이 삐약삐약 소리내면서,
한 마리씩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농부가 그 암탉을 건드려 보라고 해서,
툭 건드렸더니, 푹 쓰러졌습니다. 죽어 있었습니다. 농부가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저 머리에 난 상처를 보십시오. 족제비란 놈이, 암탉의 피를 다 빨아먹었습니다.
어미 닭은 족제비가 새끼들을 잡아 먹을까봐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죽었습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오. 저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같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짊어지고 죽으시느라고,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었는데, 모진 고통을 다 견디며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믿지 않던 농부가 목사님의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설명하시니, 믿더랍니다.
첫째는, 허물의 대속물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둘째는, 죄악의 대속물입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
예수님은 허물의 대속물이 되셨을 뿐 아니라,죄악의 대속물도 되셨습니다.
허물은 우리가 모르고 지은 죄입니다. 죄악은 우리가 다 알고 지은 죄입니다.
예수님은 온 몸이 고난으로 상하셨습니다. 가시 면류관으로 머리가 상하셨습니다.
채찍으로 온 몸이 다 상하셨습니다. 못 박힘으로 손과 발이 다 상하셨습니다.
로마 병정의 창에 찔림으로, 옆구리가 찢어져 물과 피를 다 흘리도록 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상함은 바로 우리의 죄악을 위함입니다. 죄악의 원어는 원죄입니다.
우리의 원죄 때문에 우리 예수님은 그 모진 십자가의 고난을 다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 죄를 씻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첫째는, 허물의 대속물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둘째는, 죄악의 대속물입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
셋째는, 평화의 대속물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은 우리 허물을 없애는 대속물, 죄악을 씻는 대속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온 인류,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빌라도에게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가야바에게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로마 병정들에게 끌려가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이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평화를 누리게 하기 위하여 자청한 고난이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물로 죽으셨기에, 이 땅에 평화가 왔습니다.
첫째는, 허물의 대속물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둘째는, 죄악의 대속물입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
셋째는, 평화의 대속물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넷째는, 질병의 대속물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은 우리 병을 고치기 위하여 대속물이 되셨다고 이사야는 말씀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약 세 시간동안 채찍에 맞으시고, 약 아홉 시간동안 피 흘렸습니다.
이는 우리의 병 고침을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런 고난을 자초하셨습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에서, 예수님은 병을 짊어 지셨음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아멘! 아멘! 믿습니다.(마 8;17)
예수님은 우리의 병도 짊어지셨습니다. 그래서 채찍에 우리 대신 맞으셨습니다.
덴마크의 윌리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안과 의사였습니다. 눈 병을 고치는 데에는,
그를 따라 올 사람이 세계적으로 없을 정도로, 안과계의 최고 전문 의사였습니다.
윌리 의사는 캐서린 부드의 전기를 읽고 감격하여 복음전도를 위해 헌신할 것을,
결심을 하였습니다. 캐서린 부드는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암 부드의 아내입니다.
사회사업가이며 불붙는 전도자였습니다. 의사 윌리가 의사직을 포기하려고 하자,
주변에서는 모두 말렸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의 결심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돈도, 명예도 버렸습니다. 선교사가 되어 십자가만 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신학교에 들어가 졸업 후 선교부로 가서 선교사로 파송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당신은 어디로 가고 싶은가요?” “세계에서 가장 힘든 곳으로 보내 주십시오.”
마침내 그의 소원대로 인도네시아의 자바 섬으로 파송되었습니다. 그곳은 눈병환자가,
매우 많은 곳이었습니다. 인구의 5분의 1이 눈병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 큰 안과 병원을 설립하고, 전도를 목적으로 토인들의 눈병을 치료하여,
주면서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30년간, 봉사하고 노령으로 은퇴하였습니다.
네델란드 여왕은 그에게 그 나라 최고 훈장을 수여하였습니다. 의술과 주님의 신유가,
겸한 선교는 폭발적이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고침 받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채찍에 맞으심으로, 우리 병을 짊어지셨습니다.
윌리도 예수님처럼 인도네시아 자바 사람들 대신, 병을 짊어지며 살았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예수님의 채찍 때문에 고침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음을 믿으면, 수많은 고침의 역사를 체험할 수가 있습니다.
세 사람이 자동차 사고로 죽었는데, 천국 가는 길에 똑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장례식 때, 친구들이 무엇이라고 말해주면 좋겠습니까?” 한 사람이 먼저 말했습니다.
“그 사람 휼륭한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까운 사람 죽었다.”
마지막 사람이 말했습니다. “나는 장례식에서 이런 말 듣기 원합니다. 앗! 움직인다.”
사람들은 병들어도 모두 고침 받고 살기를 바라며, 영원한 생명을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고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어, 대속물이 되셨습니다. 모든 병에서 나음을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아멘!(마 20;28)
이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 예수님은 네 가지 대속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첫째는, 허물의 대속물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위함이요.”
둘째는, 죄악의 대속물입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위함이라.”
셋째는, 평화의 대속물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넷째는, 질병의 대속물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의 허물의 대속물,
우리의 죄악의 대속물, 우리의 평화의 대속물, 우리의 모든 질병의 대속물,
이 모든 우리의 대속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찔리고, 상하고, 징계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에 감격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