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을의 영화축제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10월12일 개막작 <가을로>를 시작으로 10월20일까지 아흐레 동안 열린다. 전세계 63개국에서 온 245편의 영화가 선보이는 이번 부산영화제의 가장 큰 특징은 월드 프리미어 작품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대니얼 고든 감독의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을 비롯해 린킨 파크의 조 한이 만든 단편영화 <시드>, 한국영화 <열혈남아> <폭력서클> <경의선>까지 모두 64편이 부산에서 첫 상영을 맞게 된다. 프리미어 작품이 아니더라도 바흐만 고바디, 고레에다 히로카즈, 차이밍량, 왕차오, 가린 누그로호, 모흐센 마흐말바프,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마뇰 드 올리베이라, 라스 폰 트리에, 난니 모레티, 브루노 뒤몽, 아키 카우리스마키, 마이클 윈터보텀 같은 감독들의 신작을 만날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시네필들은 즐거움에 겨울 것이다. 심사위원장인 이스트반 자보, 브루노 뒤몽, 유덕화, 아오이 유우, 윌 윤 리 등 영화제 기간 중 부산을 찾는 화려한 게스트의 라인업 또한 영화팬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 만하다.
열한 번째 부산영화제가 특별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아시안필름마켓 2006 등 영화산업 관련 행사 또한 주목할 만하다. 세계의 156개 업체가 차릴 131개의 세일즈·전시 부스를 비롯해 아시아 배우들을 소개하는 ‘스타 서밋 아시아’, 사전제작지원제도인 부산프로모션플랜(PPP), 영화촬영 관련 전시회인 BIFCOM 등은 그야말로 ‘영화 원스톱 서비스’를 가능케 할 것이다. 또 아시아영화아카데미, 아시아다큐멘터리네트워크 또한 부산을 아시아 영화산업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하게 할 행사들이다.
결국, 이 성대한 축제를 즐기려면 부지런해져야 한다. 개막작 <가을로>가 2분45초 만에 매진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9월26일부터 부산국제영화제 홈페이지(www.piff.org)와 피프캐시 홈페이지(ticket.piff.org)를 통해 시작될 일반 상영작 인터넷 예매 또한 이른 매진사태를 빚을 전망이다. 예매는 부산은행 전국 지점과 해운대와 남포동의 임시매표소에서도 가능하다. 특히 10월16∼19일 1, 2회 상영작은 3천원에 볼 수 있다니, 부산영화제에서는 좌우간 부지런하고 볼 일이다. |
지도1. 놓치기 아까운 거장들의 신작 8편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마흐말바프, 차이밍량…
<관타나모로 가는 길> The Road To Guantanamo
마이클 윈터보텀/ 2006년/ 영국/ 91분/ 월드 시네마
다섯명의 영국 모슬렘 소년들이 친구의 결혼에 참석하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향한다. 그들은 미군의 폭격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저 어떤 동네인지 궁금하다’는 이유만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향하고, 미군의 본격적인 침공이 시작되자 소년들은 탈레반으로 몰려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에 수용된다. 그리고 2년 동안의 또 다른 지옥이 시작된다. 미군은 소년들에게 알카에다라는 거짓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끔찍한 학대를 자행하고, 소년들은 축생처럼 좁은 우리에 갇혀 미군의 학대를 2년 동안 견뎌낸 뒤에야 마침내 석방된다. 마이클 윈터보텀은 전작인 <인 디스 월드>와 마찬가지로 다큐멘터리와 허구를 뒤섞어 <관타나모로 가는 길>을 만들어냈다. 전문배우들과 함께 만들어낸 픽션 사이사이에 실재 인물들의 인터뷰가 삽입되고, 그 경계는 종종 허물어진다. 그래서 관객은 마이클 윈터보텀의 솜씨 좋은 요리법에 탄복하는 동시에 의문을 품을 것이다. 과연 <관타나모로 가는 길>의 강력하고 직접적인 프로파간다는 옳은 방식인가? 질문의 해답은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영국 <채널4>에서 방영되어 160만명의 시청자를 동원한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영국의 여론을 움직였고, 토니 블레어 정부가 부시 정부에 관타나모 기지 폐쇄를 촉구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관타나모에는 여전히 500여명의 수감자들이 매일매일 고문과 인권유린에 시달리고 있으며, 대부분은 테러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모슬렘들이다. 현실은 여전히 지옥이다. 지옥이 현존하는 이상 <관타나모로 가는 길>의 프로파간다는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2006년 베를린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개미의 통곡> Scream of the Ants
모흐센 마흐말바프/ 2006년/ 인도, 프랑스/ 91분/ 아시아영화의 창
구원은 어디 있는가. 종교는 무엇인가. 모흐센 마흐말바프의 <개미의 통곡>은 인도를 여행하는 남녀의 행로를 따라가며 끊임없이 질문한다. 한 여자가 철로 가운데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녀의 두눈 위에는 장갑이 놓여 있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기차를 세우고 기차에 탄다. 기차에 탄 두 사람은 신과 종교에 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다. 시간이 오래 지나지 않아 인도를 여행 중인 이 이란 커플이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진다. 남자는 신의 존재에 회의적이지만 여자는 신의 존재를 굳게 믿는다. 그들이 인도를 여행하는 이유는 여자가 만나고 싶어하는 ‘전능한 이’를 찾아서였다. 두 사람은 여행을 하면서 기적을 일으킨다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눈으로 기차를 세우는 능력을 가졌다는 바바를 찾아간 두 사람은, 바바가 눈으로 기차를 세우는 게 아니라 철길 위에 있는 바바를 치지 않기 위해 기차 운전사가 기차를 멈추는 것임을 알게 된다. 기차가 멈출 때마다 기차 승객에게 구걸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바바를 인질처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바바의 존재를 알려준 인도의 기자는 ‘전능한 이’를 찾는다는 여자의 말에 “외국인들은 잘못된 것을 찾아 인도로 온다”며 웃어버린다. 얼마나 많은 신이 있느냐고 묻는 남자의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300만”이다. 흙길을 걸을 때 밟혀 죽는 개미들의 외침에도 우리는 구원받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의 존재만으로 다른 존재에 대한 살상이 이루어지고, 갠지스강에서 화장을 하는 최후의 순간에도 빈부의 격차는 존재하는 현실을 바꾸거나 극복할 수 있을까. 그렇게 <개미의 통곡>은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한편의 우화가 되었다.
<홀로 잠들고 싶지 않아> I Don’t Want to Sleep Alone
차이밍량/ 2006년/ 대만, 오스트리아, 프랑스/ 115분/ 아시아영화의 창
샤오캉은 홈리스다. 깡패들에게 얻어맞고 한길에 쓰러졌던 그는 낯선 남자 라왕의 극진한 간호를 받는다. 라왕은 샤오캉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지만 샤오캉은 찻집에서 일하는 아가씨 치이에게 관심이 있다. 치이는 짓궂게 호감을 표해오는 샤오캉에게 확실한 입장을 보여주지 않는다. 일상에 짙게 밴 고독과 소외를 은유적인 영상어법으로 전달해온 차이밍량은 이번 작품에서 예술적 실험의 깊이를 보여준다. 대사가 ‘아예 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침묵을 지키는 인물들, 의미의 의도로 빽빽한 그림 같은 미장센들, 넘실대는 감정을 외면화하는 말레이시아의 옛 가요들. 식물인간처럼 누운 젊은이와 샤오캉에게서 겹치는 이강생의 1인2역까지. <홀로 잠들고 싶지 않아>는 차이밍량의 이전 작품들에 비해 훨씬 농축적인 감정을 고도로 계산된 화법으로 전달하는 영화다. 감독이 처음 고국 말레이시아에서 찍은 만큼 개인적인 태도도 짙다. 모두가 갈채를 날릴 순 없겠지만, 차이밍량을 사랑하는 관객에겐 최고의 선물이 될 신작.
<세브린느, 38년 후> Belle Toujours
마뇰 드 올리베이라/ 2006년/ 포르투갈, 프랑스/ 70분/ 월드 시네마
마뇰 드 올리베이라가 만든 미니멀한 이 신작은 루이스 브뉘엘의 1967년작 <세브린느>(Belle De Jour)로부터 38년 뒤의 시간을 잇는 영화다. 브뉘엘의 영화 속에서 세브린느는 의사 남편을 둔 경제적 평탄함 속에 삶의 무료함을 느끼고 일탈을 시도했던 여자다. 남편의 친구 잇송에게 소개받은 고급 요정에서 그녀는 성적 사도마도히즘의 세계를 경험한다. 윤리적 압박 속에 일상으로 돌아온 그녀. 그런데 잇송이 찾아온다. 할 얘기가 있다면서 그는 남편의 방으로 들어간다. <세브린느, 38년 후>는 세브린느와 잇송의 재회담이다. 마지못해 함께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세브린느는 과거를 곱씹고 부정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되묻는다. 원제인 ‘벨 투주르’는 프랑스어로 ‘변함없이 아름답다’는 의미이자, 잇송이 세브린느와 재회했을 때 처음 던진 인사다. 올리베이라는 브뉘엘식 문법으로 브뉘엘의 영화를 회상한다. “브뉘엘에 대한 오마주가 아니라 브뉘엘의 인물들에 대한 영화”로서, 이 작품은 올해 98살이 된 거장이 또 한명의 거장에 대해 품어왔던 오묘한 기억이다.
<악어> The Caiman
난니 모레티/ 2006년/ 프랑스, 이탈리아/ 112분/ 월드 시네마
언론재벌이자 이탈리아 총리였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를 향한 비판을 담아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흥행에서도 성공했던 작품. 난니 모레티가 <아들의 방> 이후 5년 만에 만든 신작이다. 영화 프로듀서 브루노 보노모는 한때 괜찮았던 적도 있지만 그때가 언제였나 싶게 실패만 거듭하고 있다. 투자를 받지 못해 감독마저 짐을 싸들고 나가자 브루노는 쌓아두었던 시나리오 중에서 젊은 감독 지망생의 스릴러를 발견한다. 브루노는 그녀와 일하기로 결정하지만 제작비를 주겠다던 제작자는 말을 바꾸고, 이혼한 아내와 아이들과의 관계도 순탄하지는 않다. 곤경에 처한 중년 남자의 일상이 정부비판을 담은 영화 속 영화와 얽히는 <악어>는 냉소적인 유머가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난니 모레티는 파산과 고독 속에서 허우적대는 브루노를 연민하기보다 그 상황의 난처함에서 빚어지는 코미디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완성된 브루노의 영화 또한 통렬한 정치적 비판을 담고 있다.
<플랑드르> Flanders
브루노 뒤몽/ 2006년/ 프랑스/ 92분/ 월드 시네마, 특별전-프랑스 동시대 작가들
2006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 드메스테르는 플랑드르에 살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낸 바르브를 좋아하지만 정작 바르브는 드메스테르의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 어느 날 두 남자는 군대에 자원해 전쟁터로 떠나게 되고 바르브는 뒤에 남겨진다. 드메스테르는 고향 플랑드르의 풍성한 녹색 아름다움을 떠나 온통 모래와 사막뿐인 전쟁터에서 잔혹한 전쟁의 현실을 경험한다. <플랑드르>는 전쟁을 겪고 변화하는 인물의 내면을 외면의 풍경으로 치환해 보여준다. 최소한의 표정으로 많은 것을 시사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돋보인다. 브루노 뒤몽은 99년에 만든 두 번째 영화 <휴머니티>로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을 휩쓸었지만 천재라는 극찬과 현학주의라는 비판을 동시에 들은 바 있다. <플랑드르>는 한층 견고해진 브루노 뒤몽의 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인간의 본성과 폭력에 대한 뒤몽의 성찰을 만날 수 있다.
<라이트 인 더 더스크> Lights in the Dusk
아키 카우리스마키/ 2006년/ 핀란드/ 80분/ 월드 시네마
<어둠은 걷히고>와 <과거가 없는 남자>에 이은 핀란드 3부작 마지막 편.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유머감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 코이스테넨은 경비원으로 일한다. 그의 삶은 그보다 더할 수 없을 정도로 단조롭고 외롭다. 그가 매일 밤 들르는 소시지를 파는 노점의 여주인 아일라는 그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지만 내색하는 법이 없고, 코이스테넨은 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리기엔 너무 무디다. 어느 날 코이스테넨은 금발의 미녀 미르자를 만나게 된다. 믿을 수 없는 행운을 의심할 줄 모르는 코이스테넨은 자신도 모르는 새 강도극에 엮이게 된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맺기에 익숙하지 못한 한 남자가 소통을 시도하고 또한 실패하는 과정이 코믹하게 그려지지만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이 남자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따뜻함이 녹아 있다. 티모 살미넨의 촬영은 간결하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2006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켄 로치/ 2006년/ 독일,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아일랜드, 프랑스/ 124분/ 오픈 시네마
런던의 병원으로 떠나려던 젊은 의사 데미안은 영국군이 죄없는 친구를 사살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아일랜드에 남기로 결정한다. 반군이 된 데미안은 형 테디와 친구이자 연인인 시니드 등과 함께 아일랜드의 독립을 얻기 위해 싸운다. 그러나 영국이 아일랜드 일부 지역의 자치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형제와도 같았던 이들은 분열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은 스페인 내전을 다루었던 켄 로치의 영화 <랜드 앤 프리덤>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다.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았던 젊은이들은 어째서 독재나 외세가 아닌, 동지와 싸워야만 했던 것일까.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는 켄 로치는 다만 그들이 그런 선택에 이르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만 보여준다. 전부가 아니면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던 데미안과 당장 손안에 들어온 자치라도 움켜쥐려고 했던 테디. 그들의 삶과 죽음은 90년의 세월을 넘어 바람처럼 우리에게 불어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