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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요경 무상품 ③
無常品下
1비록 백 년을 산다고 하여도
마침내는 죽어서 사라진다.
늙어서는 핍박당하고
갖가지 병마저 끝까지 따른다.
雖壽百歲,
亦死過去,
爲老所壓,
病條至際。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시면서 천인들과 용과 귀신들의 무리를 위해 널리 설법하셨다.
그때에 이 나라 바사닉왕(波斯匿王)의 어머니는 나이 120세가 지나 갑자기 중병을 얻었는데, 약으로도 고치지 못하고 천지신명도 구원할 수 없어서 며칠이 못 되어 그만 죽고 말았다. 왕과 대신들은 법식을 갖추어 장례를 치르고, 기름과 꽃과 향으로 낱낱이 공양한 뒤에 사당에 안치하여서 하인으로 하여금 돌보게 하였다.
왕은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부처님 계신 곳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는 옛날 왕의 법식대로 다섯 가지 장식을 버리고, 부처님 앞에 나아가 발에 예배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를 앉게 하시고 그에게 물으셨다.
“왕은 어디서 오시기에 옷에는 먼지가 앉고 행색은 이전과 다른 것입니까? 무슨 일이기에 그렇습니까?”
昔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爲天人龍鬼衆生之類,廣演法教。時,國王波斯匿母年過百二十,卒得重病,非醫藥所療,神祇不能救,不經日夜遂便命終。王及大臣如法葬送,油酥花香事事供養,安措神廟給人瞻守。葬送已訖,還過佛所,如故王法除去五飾前禮佛足,佛命令坐而問之曰:“王所從來,衣服塵土、形變色異,何所施設乃至於斯?”
왕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희 나라의 대부인(大夫人)께서는 나이 120세가 넘으셨는데, 마침 중병을 앓아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지금 막 장례를 마치고 성 안으로 돌아가다가 부처님을 뵙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밝은 지혜[三達智]로 그것에 대해 아시고, 그에게 물으셨다.
“어떻습니까, 대왕이여. 사람으로 세상에 나서 죽지 않는 자가 있습니까?”
왕은 대답하였다.
“사람으로 세상에 나서 죽지 않는 자는 없습니다.”
王白佛言:“國大夫人年過百二十,閒得重病奄忽無常。向送靈柩殯葬始訖,今還城池過覲世尊。”佛三達智知而問曰:“云何大王!夫人生世有不死者乎?”王白佛言:“人生於世無有不死。”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옛날부터 다섯 가지 큰 두려움이 있는데, 그것은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첫째는 늙어가는 법칙으로, 늙지 않게 하려고 하여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병이 드는 법칙으로, 병들지 않게 하려고 하여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셋째는 죽어야 하는 법칙으로, 죽지 않게 하려고 하여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넷째는 닳아 없어지는 법칙으로, 닳아 없어지지 않게 하려고 하여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다하여 없어지는 법칙으로, 다하여 없어지지 않게 하려고 하여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대왕이여, 이것이 이른바 다섯 가지의 어찌할 수 없는 법칙으로서 사람과 기약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만물은 모두 덧없어서 오래 존재할 수 없으니, 하루가 지나가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와 같습니다. 또 마치 저 다섯 강물이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는 것처럼 사람 목숨의 빠른 것도 그와 같습니다.”
佛告王曰:“自古迄今,大畏有五不可得避:應老之法欲使不老者,此不可得;應病之法欲使不病,此不可得;應死之法欲使不死,此不可得;應磨滅之法欲使不磨滅,此不可得;應盡之法欲使不盡,此不可得。是謂大王!此五不可得法,不與人期,萬物無常難得久居,一日過去,人命亦然,如五江流晝夜不息,人命駛疾亦復如是。”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바사닉왕을 위해 차례로 미묘한 법을 설하시고, 물러서지 않는 법에 대해 논하셨다.
이른바 보시와 계율과 천상에 태어나는 것에 대한 논(論)이었다. 또한 탐욕은 더러우며 번뇌는 큰 근심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대왕은 이것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또한 말씀하셨다.
“사람이 나면 곧 늙게 되고 병이 들면 얼굴에 윤기가 없으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사의 이치입니다. 마치 번개가 눈앞을 스쳐 지나가 돌을 내리치면 불이 나는 것처럼 사람의 목숨도 그와 같이 빠릅니다. 거기에 어떤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쇠퇴하고 변하는 법은 아무리 오래 머물러 있게 하려고 해도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인연법으로써 그 처음과 끝을 살피시고는 미래의 중생들을 위해 큰 광명을 나타내고, 또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대중 가운데서 바사닉왕을 위해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爾時世尊漸與波斯匿王說微妙法,論講不退轉要,所謂論者,施論戒論生天之論,欲不淨想,漏爲大患。大王當知:“生則老至,病無光澤,合會必離,是世常法,如電歷目擊石現火,人命劇是,有何可樂?衰變之法,欲使久存者,此事不然。”爾時世尊以此因緣尋究本末,爲後衆生示現大明,亦使正法久存於世。爾時世尊在大衆中,與波斯匿王而說斯偈:
비록 백 년을 산다고 하여도
마침내는 죽어서 사라진다.
늙어서는 핍박당하고
갖가지 병마저 끝까지 따른다.
雖壽百歲,
亦死過去,
爲老所壓,
病條至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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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왕에게 말씀하셨다.
“세상 일은 모두 이와 같아서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 없고 모두 다 사라지니, 이를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옛날의 국왕이나 모든 부처나 아라한[眞人]이나 5신통을 가진 선인[仙士]들도 모두 다 죽었으며, 살아 있는 이는 없습니다.
부질없이 슬퍼하거나 그리워하지 말고, 죽은 자를 위해 복을 짓되, 게으르지 않으면, 복이 그 혼령을 따를 것이니, 마치 농부에게 양식과도 같은 것입니다. 왕이 이러한 인연법으로 널리 복의 업을 지으시면, 그 복이 사람들을 돕게 되니, 마치 굳건한 지팡이에 의지하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왕과 사부 대중을 비롯한 모든 대중들은 모두 기뻐하여 근심과 걱정을 잊고 밝게 깨우쳤다. 그래서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세 번 돈 다음 예배하고 물러갔다.
佛告大王:“世皆有是,無長存者,皆當歸死無有脫者。古者國王、諸佛眞人、五通仙士,亦皆過去無能住者;空爲悲戀亡者,爲福不惓,福追魂靈如餉田夫。王由此緣廣設福業,福祜助人如憑强杖。”佛說此已,王及四輩諸來會者,莫不歡喜,忘憂除患㸌然啓悟,尋從坐起繞佛三帀,作禮而去。
2오늘도 이미 지나가서
이 목숨도 따라 줄어드니
마치 옹달샘의 물고기와 같이
거기에 어떤 즐거움이 있겠는가.
是日已過,
命則隨減,
如少水魚,
斯有何樂。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남쪽 바다의 큰 바닷물이 갑자기 세차게 솟아올랐다. 그 바다의 경계 너머에는 세 마리의 큰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상류(上流)를 따라 올라가 얕은 물에 살고 있었는데, 저희들끼리 이것에 대해 서로 의논하였다.
“우리는 지금 위험한 곳에 살고 있다. 이 물이 마르기 전에 거슬러올라가 저 바다로 돌아가자.”
그러나 물길을 가로막고 있는 고깃배가 있어서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첫 번째 물고기는 있는 힘을 다해 그 배를 뛰어서 넘어갔고, 두 번째 물고기는 수풀에 의지해서 빠져 나갔다. 그러나 세 번째 물고기는 옹달샘에서 기운이 다해 어부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어부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昔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時,南大海卒涌大洮,越海境界有三大魚,隨上流處在淺水,自相謂言:“我等三魚處在厄地漫水未減,宜可逆上還歸大海。”有礙水舟不得越過,第一魚者盡其力勢跳舟越過,第二魚者復得憑草越度,第三魚者氣力消竭爲獵者所得。時,獵者便說此偈:
반드시 죽게 될 것 같던
첫 번째 물고기는 이미 깊이 헤아렸고
상황을 헤아려서 수풀에 의지한
두 번째 물고기는 죽음에서 벗어났다.
第一慮未然,
必當被傷害,
憑草計現在,
彼命得脫死。
이리하여 그 두 마리 물고기는
다 같이 가냘픈 목숨을 건졌지만
어리석은 옹달샘 속의 물고기는
마침내 어부에게 붙잡히고 마네.
二魚俱得免,
以濟危脆命,
愚守少水池,
受困於獵者。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티없는 맑은 천안(天眼)으로 관찰하셔서 그 세 마리의 물고기가 물결을 가로질러 뛰어 올라갔으나 두 마리는 살아 남고 한 마리는 붙잡힌 것을 보셨다. 또 어부가 게송을 짓는 것도 보셨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인연법으로써 그 처음과 끝을 살피시고는 미래의 중생들을 위하여 큰 광명을 나타내고, 또 바른 법을 이 세상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대중들을 모아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爾時世尊以天眼觀淸淨無瑕穢,見彼三魚逐洮波,二魚得濟、一魚受困,復見獵者而作斯頌。因此緣本尋究根原,爲後衆生示現大明,亦使正法久存於世,卽集大衆,說斯頌曰:
오늘도 이미 지나가서
이 목숨도 따라 줄어드니
마치 옹달샘의 물고기와 같이
거기에 어떤 즐거움이 있겠는가.
是日已過,
命則隨減,
如少水魚,
斯有何樂?
이른바, “오늘도 이미 지나가서”란 무슨 뜻인가?
찰리(刹利)나 바라문이나 장자나 거사들이나, 또는 청년이나 중년이나 노인들은 모두 ‘오늘’이 지나간 만큼 목숨이 줄어드는데, 이것은 밤낮으로 지나가서 쉼이 없다. 그래서 목숨에 변화가 있게 되고, 몸은 여위어서 기력이 쇠약해지는 것이니, 그것보다도 빠르다.
“마치 옹달샘의 물고기와 같이”란 무슨 뜻인가?
그 물고기는 허공을 나는 새나 꿩이나 강물의 흰 송골매나 황새나 푸른 학이나 물까마귀나, 혹은 검은 닭에게 잡아먹힌다. 또 세상 남녀나 어부들의 그물에 걸리고 낚시에 낚이기 때문에 얕은 물에 살고 있으면 하나의 목숨에 만 가지 걱정이 있게 되는 것이다. 물에서 몸을 받아 물에서 목숨을 잃으면서 온갖 고통을 헤아리기 어려우니, 거기에 어떤 즐거움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마치 옹달샘의 물고기와 같이, 거기에 어떤 즐거움이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所謂是日已過者,或剎利婆羅門長者居士,若復少壯盛年老邁,俱同此日共有損減之逝,晝夜不停,命變形羸氣衰力竭,速迅於彼。如少水魚者,或爲虛空飛鳥 ((壽*鳥)) 河白鶻鸛雀靑鶴水烏黑鷄,亦爲世人男女獵師,羅網捕取鉤餌懸弶,處在淺水一命萬慮,受形於水喪命在水,衆苦難尋有何可樂?是故說曰,如少水魚,斯有何樂?
3.한번 가면 돌아올 수 없으니
밤낮으로 부지런히 힘써야 한다.
아니면 물고기처럼 처절하게
생사의 고통과 액운을 당하게 된다.
逝者不還,
晝夜懃力,
魚被熾然,
生苦死厄。
옛날 부처님께서는 마갈국(摩竭國) 국경 근처의 선승도량(善勝道場)에 계시면서 여러 수행하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셨다.
그 중에는 높은 산이나 깊은 굴 속에 살면서 몸을 숨기고 나오지 않는 이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때를 따라 도를 행하되, 절기를 자세히 살폈다. 봄이 오면 갖가지 나무들이 모두 수정과 같은 꽃봉오리를 맺고 차츰 꽃으로 피어나는 것을 보거나, 혹은 개울에 나가 흐르는 물이 맑고 고요하여 아무런 소리가 없음을 관찰하였다. 그래서 그는 마음속으로 ‘시절에 어김없이 만물은 모두 살아난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산을 내려와 마을로 가서 집집마다 걸식하며 다니다가 마침 여러 남녀들이 잔치를 베풀고 서로 즐기는 것을 보았다.
昔佛在摩竭國界善勝道場,集諸修行之士。處高山者,或在深窟隱形不出,然彼行人隨時行道瞻相時氣,春節以至觀諸樹木悉皆蓓蕾,色如水精漸轉敷花,復見㵎水流澄淸靜無聲響。時彼行人心則念言:“時不假借,萬物竝生。”爾時行人下山詣村家家乞食,見諸男女飮食歡宴共相娛樂,
그는 물었다.
“당신들은 어떤 사람인가?”
앞에 있던 사람이 대답하였다.
“아무 마을, 아무 집, 아무개의 아들인데, 그 성명은 아무개입니다.”
그러자 수행하는 사람은 다시 생각하였다.
‘지금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어미가 품어서 태어난 자들이다. 이것으로 만물은 날로 불어나고 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다시 깊은 산으로 들어가 고요히 수행하였다.
行人問曰:“斯是何人?”前人對曰:“某村某家姓號如是,某家子者某父所生。”時修行人復自念曰:“今此內物悉皆孚乳。”知其萬物日滋日長,還入深山靜默自修。
다시 가을이 되자, 그는 산에서 내려와 마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걸식을 하였다. 그는 모든 나뭇잎이 시들어 떨어지고 또 서리와 눈이 내려서 떨어진 잎들이 얼어 붙은 것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개울가로 갔는데, 물이 말라서 손가락으로 저어 보아도 부드러운 기운이 전혀 없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지금 바깥에 있는 이 모든 것들은 다 시들어 떨어졌다.〈사람은 다시 젊어질 수 없고 꽃은 거듭 만발해질 수 없다〉는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그는 다시 세상 사람이 사는 마을과 도시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남녀노소들이 서로 껴안고 머리를 풀어 헤친 채 가슴을 치고 쥐어뜯으며 큰 소리로 울면서 그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 물었다.
“저들은 어떤 사람이기에 저토록 슬피 울며 부르짖는가?”
“아무 마을, 아무 집의 아들이 죽고, 딸이 죽고, 혹은 그 부모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에서 이처럼 울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였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도 역시 다 죽겠구나. 나는 이미 쇠퇴해 없어지는 법이 안팎에 이른 것을 알았다.’
復至秋節,下山詣村人閒乞食,見諸樹木漸皆凋落,霜雪加被葉落凝凍,復見溝㵎水竭枯涸指刺不耎。時,修行人內自忖度:“今外萬物皆悉凋落,時不再鮮花不重茂,誠哉斯言!”復見人閒村落城郭,男女大小共相攜抱,散頭垂髮椎胸自摑,高聲啼哭不能自止。時修行人問彼人曰:“此是何人,哀號啼哭乃至於斯?”“某村某家,兒亡女死或父母終,是故村落號悲如是。”行人聞已而自思惟:“今此內物亦復凋落。”已知內外衰耗法至,
그는 곧 산으로 돌아가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채 스스로 깊이 생각하였다. 또 혹은 침상이나 나무 밑에 앉아서 마음을 단정히 하고 뜻을 고요히 하여 난잡한 생각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리고 안팎의 성질이 진실로 모두 덧없음을 관찰하고는, 모든 것은 날로 변하여서 잠시도 머무르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어찌하여 ‘날로 변한다’고 생각하였는가?
그는 봄을 생각하다가 가을을 생각하고, 가을을 생각하다가 한 해를 생각하고, 한 해를 생각하다가 한 달을 생각하고, 한 달을 생각하다가 반달을 생각하고, 반달을 생각하다가 날[日數]을 생각하고, 날을 생각하다가 시간을 생각하고, 시간을 생각하다가 밤낮을 생각하고, 밤낮을 생각하다가 활동[動轉]에 대해 생각하고, 활동에 대해 생각하다가 드나드는 숨길을 생각하고, 드나드는 숨길을 생각하다가 그것이 아주 없어지는 데까지 생각하였다.
아주 없어짐을 생각하고서는 비로소 모두가 공(空)하여 아무것도 없음을 알게 되었고,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는 생길 것도 없을 뿐 아니라 근본이 멸하면 자취조차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행이 일어나면 자취가 있지만 행이 멸하면 자취도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으며, 다시 부처님께서 “일체는 덧없으며 의지할 바도 없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였다.
또 때로는 이전의 행을 관찰하다가 여러 날을 지낸 뒤에야 그 행을 없애고는, 다시 부처님께서 “덧없는 것은 괴로움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였다.
卽還深山,內自挍計結跏趺坐,或坐繩牀或坐樹下,專心定意不興亂想,觀內外性實皆無常,便興日轉不停住想。云何爲日轉?計春至秋至歲,計歲至月,計月至半月,計半月至日數,計日數至時,計時至晝夜,計晝夜至動轉,計動轉至出入息,計出入息至盡無餘,以至於盡,方知盡空萬物無有。已知無有則知何起本、滅亦無迹。或時行人行起有蹤、滅無有迹,方自覺悟,憶如來一切無常亦無窠窟。有時行人觀察前行,積時累日乃得消滅,復憶佛語,如來亦說無常者苦也。
그리고 다시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생사가 이와 같으니, 누가 이러한 것을 즐기겠는가?’
그는 마음으로 이미 그것을 싫어하고 근심하였기 때문에 4류(流)1)에 집착하지 않았으며, 열반을 구하여 속히 멸도(滅度)하였다. 그는 중간에 수다원(須陀洹), 사다함(斯陀含), 아나함(阿那含)의 과(果)를 얻기도 하였고, 혹은 아라한의 과를 얻기도 하였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티없이 맑은 천안(天眼)으로 관찰하셔서, 한 수행자가 깊은 산 속에 살면서 부지런히 도를 닦아 거룩한 종족이 끊이지 않은 것을 보셨다. 부처님께서는 인연법으로써 그 근원을 살피신 다음 미래의 중생들을 위해 큰 광명을 나타내고, 또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대중들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時,修行人內自忖度:“生死如是,誰肯樂者?”心已厭患不染四流,願於泥洹速取滅度,或於中閒得須陁洹、斯陁含、阿那含果、阿羅漢果。爾時世尊以天眼觀淸淨無瑕穢,見彼行人處在深山,精懃學道不斷聖族,因此緣本尋究根源,爲後衆生示現大明,亦使正法久存於世,卽集大衆而說斯偈:
한번 가면 돌아올 수 없으니
밤낮으로 부지런히 힘써야 한다.
아니면 물고기처럼 처절하게
생사의 고통과 액운을 당하게 된다.
逝者不還,
盡欲懃力,
魚被熾然,
生苦死厄。
4.사람의 목숨은 낮과 밤 같아서
혹은 머무르고 혹은 돌아다니지만
마치 빨리 흐르는 강물 같아서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人命如日夜,
或住或周行,
猶如駃流河,
往而不復反。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는데, 모든 부처님께서 항상 설법하실 때처럼 적당한 시기와 사람들의 뜻을 잘 관찰하셔서 말씀하셨다.
“어떤 중생은 그 몸이 항상 존재한다고 생각하여서 5음(陰)으로 된 어제의 몸이 오늘의 몸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은 그 마음이 어두워서 5음은 쇠약해지지 않으니, 마치 흐르는 강물과 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앞의 물은 뒤의 물이 아니며, 뒤의 물도 앞의 물이 아니다. 가는 것은 영원히 가고 오는 것은 머무르지 않는다. 사람에 있어서도 이와 같아서 앞의 행은 뒤의 행이 아니고, 뒤의 행도 앞의 행이 아니다.
공덕을 짓는 비구, 비구니와 우바새, 우바이들은 4대(大)로 된 이 몸을 관찰한 다음 그것을 흐르는 강물에 비유하여서 분별하고 생각한 뒤에는 번뇌가 없는 경지에 이른다. 그래서 우바새, 우바이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阿那含)의 과(果)를 얻고, 비구와 비구니는 아라한의 과를 얻는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티없이 맑은 천안으로 관찰하셔서 사부 대중들이, 5음의 이루어짐과 무너짐, 그리고 나아가는 곳을 분별하는 것을 보셨다. 부처님께서는 그 처음과 끝을 깊이 살피시고는 미래의 중생들을 위해 큰 광명을 보이고, 또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대중들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昔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諸佛世尊凡常說法,相時相宜觀察人意,或有衆生計身是常,昨五陰身今日不異,愚者意迷,謂陰不衰猶河逝駛,前非後流、後非前流,去者永逝來者不停。人亦如是,前行非後行、後行非前行,造功德人,比丘、比丘尼、優婆塞、優婆夷,觀四大身以譬流河,分別思惟至無漏境,優婆塞優婆夷得須陁洹、斯陁含、阿那含果,比丘比丘尼得阿羅漢。爾時世尊以天眼觀淸淨無瑕穢,見彼四部衆分別五陰成敗所趣。爾時世尊尋究本末,爲後衆生示現大明,亦使正法久存於世。爾時世尊集於大衆,而說頌曰:
사람의 목숨은 낮과 밤 같아서
혹은 머무르고 혹은 돌아다니지만
마치 빨리 흐르는 강물 같아서
한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人命如日夜,
或住或周行,
猶如駛流河,
往而不復反。
사부 대중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물러갔다.
四部之衆聞佛所說,歡喜而去。
5늙으면 수척해지고
병들면 자연히 죽게 되며
몸은 썩어서 부패하니
목숨의 마침이 그러하다.
老則色衰,
所病自壞,
形敗腐朽,
命終其然。
옛날 부처님께서는 비사리성(毘舍離城)의 미후지(彌猴池) 옆에 있는 보집강당(普集講堂)에 계시면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혹 어떤 중생은 매우 건장하여서 비할 데가 없는 그 힘을 믿고, 혹은 몸에 병이 없어서 스스로 그 건강에 자신감을 갖으며, 혹은 부자가 되어서 그 살림이 한량없음을 믿고, 혹은 귀하고 권세 있는 종족임을 믿는다. 그리고 혹 어떤 늙은이들은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 퇴물이라고 헐뜯음을 당한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 옳고 그름이 있음을 관찰하시고는 과거의 잘못을 고치고 미래의 복을 닦게 하기 위하여 위의 게송을 읊으셨다.
昔佛在毘舍離城彌猴池側普集講堂所。佛告諸比丘:“或有衆生自怙盛壯力無儔疋,或恃無病自保康寧,或恃財富生業無量,或恃豪貴宗族成就,或有老者集在衆中,爲人所毀稱爲棄物。”爾時世尊觀察其人心有是非,欲使衆人改往修來故說斯頌。
비사리성의 소년들은 이 가르침을 듣고, 혹은 ‘모든 것은 덧없고 나가 없다’는 생각을 내었고, 혹은 부정지관(不淨止觀)의 마음을 내었으며, 혹은 안반(安般)2)을 염(念)하고, 혹은 마음으로 정법(頂法)ㆍ난법(煖法)ㆍ인법(忍法)ㆍ세간제일법(世間第一法)3)을 지켰다. 그래서 수다원이나 사다함의 과를 얻기도 하였고, 혹은 위없는 도를 구하려는 마음을 내었으며, 혹은 벽지불(辟支佛)과 아라한의 도를 구하는 이도 있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위의 게송으로써 비사리성의 소년들을 교화하셨다. 또한 인연법으로써 그 처음과 끝을 살피시고는 미래의 중생들을 위하여 큰 광명을 나타내고 또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다시 대중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時,毘舍離諸童子等聞此教誡,或起無常無我之想,或起不淨止觀之心,或念安般守意、頂法煖法忍法世閒第一法,或得須陁洹果、斯陁含果,或有興發求無上道,或有求辟支佛、阿羅漢道。爾時世尊以此一偈,化毘舍離無數童子,以此因緣尋究本末,爲後世人現其大明,亦使正法久存於世,卽於大衆而說頌曰:
늙으면 수척해지고
병들면 자연히 죽게 되며
몸은 썩어서 부패하니
목숨의 마침이 그러하다.
老則色衰,
所病自壞,
形敗腐朽,
命終其然。
그때에 소년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예배한 다음 물러갔다.
時,諸童子聞佛所說,作禮而去。
6.이 몸뚱이는 오래지 않아
끝내 땅 속으로 돌아가리니
영혼이 이미 떠난 뒤에는
해골만이 홀로 남아 있으리라.
是身不久,
還歸於地,
神識已離,
骨幹獨存。
옛날 부처님께서 비사리(毘舍離)의 감리원(甘梨園)에 계셨다.
그때에 아범화리(阿梵和利)라는 여자는, 자신의 얼굴이 아름다워서 세상에 둘도 없다고 생각하였으며, 나아가서는 사람의 얼굴보다 나을 뿐 아니라 못 되어도 천인의 얼굴에는 미친다고 생각하였다. 과연 그 얼굴은 단정하고 아름다워서 아무리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았다. 또한 그녀의 집은 재산이 한량이 없었으며, 재물과 보배도 많아서 온갖 보배가 모두 풍족하였다.
그때 아범화리는 수레를 우보(羽寶)로 장엄하고 스스로 그 몸을 장식하되, 깨끗이 목욕한 다음 향과 꽃으로 향기를 피우면서 부처님께 나아갔다. 그녀는 땅에 엎드려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서 있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대중들은 아범화리가 부처님께 오는 것을 보고는 모두 애욕이 일어나서 깨끗하지 못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곧 말씀하셨다.
“어떠하냐, 비구들이여. 이 아범화리도 4대(大)로 된 몸을 받았으니, 냄새나고 더러워서 한 가지도 탐할 것이 없다. 비구들이여,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아범화리는 오래지 않아 이와 같이 될 것이다. 높고 넓은 평상에 누워 1억(億)의 가치가 있는 옷을 입고 향기를 피우지만, 그 평상 위에서 갑자기 목숨을 마치게 될 것이니, 사람들에게 떠메여 무덤으로 가서 장사 지내질 것이다.”
昔佛在毘舍離甘梨園中。爾時阿梵和利自怙色貌與世無雙,進過人貌退及天形,形範端嚴視無厭足,然家裏財富不可稱限,饒財多寶七珍備足。時,阿梵和利嚴飾羽寶之車,自嚴莊挍飾沐浴澡洗香花芬薰,往至佛所,頭面禮足在一面住。是時,衆多比丘欲愛未斷在凡夫地,見阿梵和利來至佛所,皆興愛欲起不淨想,佛知其意卽告之曰:“云何,比丘!阿梵和利者受四大形,臭處穢污無一可貪。比丘當知!此阿梵和利如是不久,當臥好高廣牀上,衣裳芬熏價直一億,於彼牀上忽然命終,舁詣塚壙取耶旬之。”
비구들은 이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다.
“죽음은 덧없고 빨라서 노소(老少)를 가리지 않는구나. 이 사람의 아름다운 얼굴은 세상에서도 드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몸을 받고도 장차 사람들에게 버려져서 무덤 속에 있겠구나.”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인연법으로써 그 처음과 끝을 살피시고는 미래의 중생들을 위하여 큰 광명을 보이시고, 또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대중 앞에서 위의 게송을 읊으셨다.
사부 대중들 중에는 이 가르침을 듣고, 혹은 ‘모든 것은 덧없고 나가 없다’는 생각을 내었고, 혹은 부정지관(不淨止觀)의 마음을 내었으며, 혹은 안반(安般)을 염(念)하였고, 혹은 마음으로 정법ㆍ난법ㆍ인법ㆍ세간제일법을 지켰다. 그래서 수다원이나 사다함의 과를 얻기도 하였고, 혹은 위없는 도를 구하려는 마음을 내었으며, 혹은 벽지불과 아라한의 도를 구하기도 하였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한 게송으로 비사리성의 소년들을 교화하셨던 것을 인연으로 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時諸比丘聞之愕然。“無常迅急不避老少,此人形貌世之希有,受如是形便當棄捐在于塚閒。”爾時世尊以此因緣尋究本末,爲後世人示現大明,亦使正法久存於世,卽於衆中而說頌曰。其中四部衆聞此教誡,或起無常無我之想,或起不淨止觀之心,或念安般守意、頂法煖法忍法世閒第一法,或得須陁洹果、斯陁含果,或有興發求無上道,或有求辟支佛、阿羅漢道。爾時世尊以此一偈,化毘舍離無數童子。以此因緣而說頌曰:
이 몸뚱이는 오래지 않아
끝내 땅 속으로 돌아가리니
영혼이 이미 떠난 뒤에는
해골만이 홀로 남아 있으리라.
是身不久,
還歸於地,
神識已離,
骨幹獨存。
모든 대중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물러갔다.
時諸大衆聞佛所說,歡喜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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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이 몸뚱이를 어디에 쓸 것인가.
항상 더러운 냄새가 나며
병들어 고생하고
늙고 죽는 근심이 있다.
是身何用?
恒漏臭處,
爲病所困,
有老死患。
옛날 부처님께서는 가유라국(迦惟羅國)4)의 니구류원(尼拘類園)5)에 계셨다.
그 나라 사람들은 자신들이 큰 종족이고 부유하며 신체적으로도 건장하다고 자신만만해 있었으며, 뿐만 아니라 마음대로 행동하여서 대적할 이가 없음을 자랑하였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몸이 아주 건장하였으나, 몸에 부스럼이 생겨서 밤낮으로 고름과 피가 그치지 않고 흘러 넘쳐 더러운 냄새가 났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코를 막았으며, 그의 아픔과 괴로움을 사람들은 보다 못해 싫어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가짐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대개 사람이 4대(大)로 된 몸을 받기는 한가지이다. 그러므로 6문(門)에서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는 것은 저 사람과 다름이 없다. 모든 사람의 몸은, 근심과 괴로움의 집인데 어떻게 만 가지의 괴로움과 번민, 근심,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때에 여러 석씨(釋氏) 종족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혹은 ‘모든 것은 덧없고 나가 없다’는 생각을 내었고, 혹은 부정지관(不淨止觀)의 마음을 내었으며, 혹은 안반(安般)을 염(念)하였고, 혹은 마음으로 정법ㆍ난법ㆍ인법ㆍ세간제일법을 지켰다.
그래서 혹은 수다원이나 사다함의 과(果)를 얻기도 하였고, 혹은 위없는 도를 구하려는 마음을 내었으며, 혹은 벽지불과 아라한의 도를 구하기도 하였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위의 게송으로 석씨 종족들을 교화하셨다.
昔佛在迦惟羅國尼拘類園中。彼國人民,恒自恃怙豪族富貴軀力强壯,所行自由誇無儔疋。彼有一人,族姓最强,身生瘡痍膿血流溢,晝夜不息臭穢不淨,見皆掩鼻,疼痛苦惱,衆人見者無不厭患。佛知其心而告之曰:“夫人受身四大一類,六門流溢與彼不異,一切人身患苦之室,安止苦惱憂畏萬端。”時諸釋種聞佛教戒,或起無常無我之想,或起不淨止觀之心,或念安般守意、頂法煖法忍法世閒第一法,或得須陁洹果、斯陁含果,或有興發求無上道,或求辟支佛道、阿羅漢道。爾時世尊以此一偈,化彼釋種。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어떤 장자가 부처님과 비구들을 초대하였다. 그래서 비구들은 그 집으로 갔으나 부처님께서는 가시지 않고, 사람을 보내어서 공양을 가져 오게 하셨다.
부처님께서 가시지 않고 사람을 보내어 음식을 가져 오게 하신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두 가지란, 첫째는 여러 천인(天人)들을 위해 설법하시기 위해서였으며, 둘째는 병자를 돌보시기 위해서였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 모두 초대를 받고 떠난 것을 둘러보시고는, 열쇠를 가지고 어떤 방문을 여셨다. 거기에는 어떤 비구가 병이 위중하여서 대소변 위에 누운 채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그런 줄 아시면서 그에게 물으셨다.
“너는 무슨 병을 앓기에 자리에 누운 채 대소변을 보면서 몸을 가누지 못하느냐?”
昔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有一長者請佛及比丘僧。時比丘僧往彼家,如來不往遣信迎食。所以如來遣信迎食,有二因緣。云何爲二?一者欲與諸天說法,二者瞻視病人。是時,世尊遍觀比丘皆悉受請,卽取鑰母開一房門,見一比丘抱患頓篤,臥大小便不能轉側。
그는 타고난 성질이 순박하고 정직하여서 마음에 꾸밈이 없었다. 곧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타고난 성질이 우둔하여서 항상 게으르고 교만한 마음을 가졌기에 조금도 다른 사람을 돕거나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를 돌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참으로 외롭고 곤궁하여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몸소 그를 안아서 문 밖에 내어 놓으신 다음 대소변을 치우고 자리를 씻으셨다. 또한 다시 깨끗한 물을 가져 와서 그의 몸을 씻어 주셨으며, 옷을 입히고 새 자리를 펴신 다음 그를 다시 방 안에 옮겨 놓으셨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팔을 펴셔서 그를 위해 팔베개를 해주셨다.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스스로 힘써서 보다 좋은 법을 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너로 하여금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얻게 하고, 아직 깨치지 못한 것을 깨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마음을 다해 이 법을 받들지 않으면 장차 지금보다 더 심한 고뇌를 받을 것이다.”
爾時世尊知而問曰:“汝有何患,臥著牀褥大小便利,不能轉側?”時彼比丘受性質直內無奸宄,報世尊曰:“受性闇鈍恒懷懈慢,初不勸佐瞻視餘人,是故今日無看我者,今實孤窮所怙無處。”爾時世尊躬抱出在門外,除去不淨湔浣坐具,復取淨水用洗其身,便與著衣敷新坐具還臥房中,如來躬自舒手爲枕,告比丘曰:“汝不加懃求增上法,未獲者獲、未得者得,未受果證令受果證,設不用意受此法者,便當更受劇是苦惱。”
부처님께서는 그를 위해 차츰 아주 미묘한 법을 설하시고, 다시 무수한 방편으로 그를 인도하셔서 용기를 내고 도덕을 생각하게 하셨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다시 닫고 보회강당(普會講堂)으로 가셔서 시자에게 분부하셨다.
“너는 지금 속히 사위성 안에 있는 비구들을 모아서 보회강당으로 오게 하여라.”
비구들이 모인 뒤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비구들은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으며 자매도 없다. 그리고 같은 종족의 다섯 친족도 없다. 그런데 너희들은 서로를 돌보지 않고 서로 내버리니,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저 외도(外道)의 다른 도를 닦는 범지들의 비웃음을 받을 것이다. 즉, ‘저 구담(瞿曇) 사문은 털끝만한 자비심도 없어서 사람의 목숨을 기왓장이나 돌처럼 본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나 외롭고 곤궁한 이를 돌보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우리의 법은 상하를 고르게 하고, 화목하게 하는 것이다. 만일 너희들이 그렇게 한다면 저들을 굴복시킬 것이다.
爾時世尊漸與說極妙法,無數方便勸使勇猛思惟道德,卽從座起還閉房門,詣普會講堂,勅語侍者:“汝今速集舍衛城中諸現在比丘卽詣普會講堂。”比丘已集,世尊告曰:“汝等比丘!無父無母無弟無兄,亦無姊妹,亦復無有宗族五親,不相瞻視各相捐棄,此非其宜,便爲外道異學梵志所見嗤笑:‘瞿曇沙門乃無毫釐慈心,視人形命如視瓦石,死者孤窮無瞻養者。’我法齊整上下和順,汝設爾者便屈於彼。
지금부터는 제자가 스승을 모시기를 부모처럼 섬겨서 죽더라도 버리지 말 것이며, 스승이 제자를 돌보기를 자식처럼 돌보되, 때를 따라 이끌고 쉬게 하여서 죽을 때까지 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스승과 제자가 서로 자애롭고 은혜로워서 그 물결이 영원토록 흐르게 하여라.
그리고 각기 가진 기물(器物)을 골고루 나누어 쓰고, 만일 기물이 없으면 널리 보시하는 집에 가서 보시를 권하여 그로 하여금 복을 닦게 하여라. 또 만일 시주가 없으면 상점에 가서 그것을 사도록 하여라. 마을에 나가 걸식할 때에는 좋은 음식은 병자에게 주고, 나쁜 음식은 자기가 먹도록 하여라. 병자를 돌보는 것은 곧 나 자신을 돌보는 것이니, 거기서 얻는 공덕은 아무 차별이 없다.”
自今已始,第子侍師事如父母至死不捨,師看第子視如己息,隨時將息至死不捨,師徒相慈恩流永劫,所有什物平等分布,設無什物當詣廣施之家勸令修福。若少知識當詣賈家分衛乞食,好者給病、惡者自食。其瞻病者則瞻我身,所獲功德亦無差降。”
부처님께서 떠나신 지 오래지 않아 그 앓던 비구는 가만히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내가 받은 이 4대(大)로 이루어진 몸에는 갖가지 고통이 깃들여 있다. 이 몸을 무엇에 쓰겠는가. 온갖 더러운 것이 흐르고 병들어 고생하다가 끝내는 늙고 죽는 것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마땅히 스스로 부처님의 말씀을 삼가 받들어 닦자.’
그리고 곧 그는 목숨을 버리고 무여(無餘)열반의 경지에 들어 입멸하였다. 그때에 비구들이 열쇠를 가지고 그 비구의 방문을 열었다. 그들은 그 비구가 이미 목숨을 버린 것을 보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 앓던 비구가 이제 목숨을 마쳤습니다. 그 영혼은 어느 곳에 태어나며 어떤 곳[道]에 있습니까?”
時病比丘,世尊去不久便自思惟:“受此四大衆苦湊集,是身何用?漏諸不淨,爲病所困不脫老死?宜可自謹承修佛語。”卽捨形壽入無餘泥洹境而般泥洹。爾時衆多比丘持鑰母開門,見彼比丘已捨形壽,卽白世尊:“抱患比丘今已命終,不審魂神爲生何處?在何道種?”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 앓던 비구는 작은 선행이라도 쌓았기 때문에 내가 그를 위해 설법하였을 때에는 그 마음이 이내 열려서 깨우쳤다.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내어 법을 향하고 법에 따라 깊은 법을 분별하였다. 그 선남자는 이미 열반에 들었다. 너희들은 마땅히 그 사리(舍利)에 공양하여야 한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이치를 관찰하시고 나서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무르게 하고, 또 미래의 중생들에게 큰 광명을 보이기 위하여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佛告比丘:“彼病比丘素積善行,吾與說法意尋開悟,後便意猛向法次法分別深法。此族姓子已取泥洹,汝等宜可供養舍利。”爾時世尊觀察此義已,欲使正法久存於世,爲將來衆生示現大明,於大衆中而說頌曰:
이 몸뚱이를 어디에 쓸 것인가.
항상 더러운 냄새가 나며
병들어 고생하고
늙고 죽는 근심이 있다.
是身何用?
恒漏臭處,
爲病所困,
有老死患。
중생들은 이 법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衆生聞法,歡喜奉行。
8.이 몸은 더러운 냄새가 나며
온갖 질병이 깃들여 있으나
근심이 없는 제일의 열반은
안온하고 영원한 휴식이다.
是身漏臭處,
衆疾集普會,
無患第一滅,
安隱永休息。
“이 몸은 더러운 냄새가 나며”란 무슨 뜻인가?
이 몸의 온갖 질병과 더러운 것은 사람들이 보기 싫어하는 것이다. 온갖 질병의 고통이 있고, 온갖 더러운 것이 흘러나오는 것은 모든 자극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모든 고통 가운데 5음(陰)을 받는 고통보다 더 심한 고통은 없다.
그러므로 묘한 방편을 구하여 4대(大)로 된 이 몸을 여의고 좋은 계책과 방편의 지혜로 벗어나기를 구하면, 모든 고통과 번민이 영원히 그쳐서 남음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다함[盡]이라 하며, 이미 다하여 비면 그것은 공적(空寂)이니, 또한 나고 사라지거나 집착하고 끊는 두 극단이 없어진다.
“근심이 없는 제일의 열반”이란 무슨 뜻인가?
근심스럽거나 기쁘다는 생각 없이 아주 안온한 것이다.
“안온하고 영원한 휴식이다”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제일의 열반으로서 번뇌가 다한 무여열반을 뜻하는 것이다.
그때에 모인 대중들은 이 이치를 듣고 기뻐하여 받들었으며, 예배하고 물러갔다.
是身漏臭處者,衆患穢污人所惡見,瘡痍苦漏諸不淨衆刺之首,無常變易法應磨滅,苦中之苦莫甚於陰,當求巧便離四大身,善謀㩲慧求於出要,一切衆惱永息無餘,故曰盡也。已盡虛者空寂,亦無生滅著斷之二。無患第一滅者,安隱無憂喜想,安隱永休息,第一滅盡無餘泥洹。時諸會者聞說此義,歡喜而受,作禮而去。
9.더우면 이것을 피하려 하고
추우면 이것을 피하려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앞선 걱정이 많지만
닥쳐오는 큰 변(變)은 알지 못한다.
暑當止此,
寒雪止此,
愚多豫慮,
莫知來變。
옛날 어떤 장자가 집을 지었다. 봄ㆍ가을ㆍ겨울ㆍ여름에 쓸 집을 각각 따로 짓고는 마음대로 지내면서 계율은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매년 세 번, 매월 여섯 번 지내는 재(齋)도 전혀 지키지 않았다. 재산은 한량이 없었으나 인색하고 탐욕이 많아서 보시를 하지 않았는데, 사문이나 바라문에게도 보시하지 않았다.
또 이승과 저승이 있다는 것도 믿지 않았으며, 방일하여 제멋대로였고, 탐욕스럽고 인색하기 그지없어서 교화하기 어려웠다. 더구나 도덕을 알지 못했으며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또한 그는 어느 날 앞채와 뒷채가 딸린 좋은 집과 여름에 쓸 시원한 누각과 겨울에 쓸 따뜻한 집을 지었는데, 동서로 수십여 칸이 되었다. 그러나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그 몸을 해쳐서 갑자기 죽고 말았다.
昔有長者造立屋舍,春秋冬夏各立堂室,任情自用不奉禁戒,歲三月六初不防制,財富無數慳貪不施,亦不給與沙門婆羅門;亦不信有今世後世,放逸自恣慳貪難化,不識道德不計無常,更作好室前庌後堂,淸涼之臺冬溫之室,東西起舍數十餘閒,刀風解形忽然無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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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티없이 맑은 천안(天眼)으로 관찰하셔서 그 장자가 갑자기 목숨을 마친 것을 보셨다. 그리고 그가 살아 있을 때에는 조금도 자비심이 없어서 중생들을 도와 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사람들에게 힘든 일만 시켰으므로 마음에 어떤 계획을 세웠으나 끝내 이루지 못한 것을 아셨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대중 앞에서 그 이치를 나타내어 널리 펼치고, 또 미래의 중생들로 하여금 그것을 잘 알아서 의혹이 없게 하며, 또 과거 여러 부처님의 신성한 입이 봉인(封印)된 것을 나타내 보이고,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고자 하셨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대중들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佛以天眼淸淨無瑕穢,見此長者卒便命終,存在之日無有慈恩加被衆生,但有勞役於餘人民,意所規郭竟不充願。爾時世尊在諸大衆中,欲現其義宣暢本原,亦使將來衆生善解無疑,復現過去諸佛世尊神口印封之所封印,亦使正法久存於世,尋集大衆而說頌曰:
더우면 이것을 피하려 하고
추우면 이것을 피하려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앞선 걱정이 많지만
닥쳐오는 큰 변(變)은 알지 못한다.
暑當止此,
寒雪止此,
愚多豫慮,
莫知來變。
대중들은 부처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時諸會者聞佛所說,歡喜奉行。
10.자식을 낳고는 너무나 기뻐서
애착하여 놓을 줄 모르더니
취한 와중에 세찬 강물이 덮치니
결국 목숨을 잃고 마네.
生子歡豫,
愛染不離,
醉遇暴河,
溺沒形命。
옛날 어떤 거사는 재산이 한량없이 많아서 집안 창고에는 7보가 가득 차 있었다. 즉, 금, 은, 진보(珍寶), 차거(車渠), 마노(馬瑙), 진주(眞珠), 호박(虎珀) 등의 보물이 두루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종과 하인, 코끼리, 말, 수레가 많았으며, 창고에는 곡식이 가득 차 하나도 모자람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대를 이을 자식이 없었다. 그는 자식을 얻기 위해 온갖 신(神)에게 빌었다. 집의 신, 성(城)의 신과 길의 신들 앞에서 꿇어앉기도 하고, 혹은 조상신과 부모와 산신, 나무신, 천지의 신 앞에 꿇어앉기도 하였으며, 심지어 무덤이나 혐오스러운 신에게까지 꿇어앉아 절하였다. 그러나 그 소원대로 아들을 낳지는 못하였다. 그래서 밤낮 시름에 잠겨 있다가 차츰 앓아 눕게 되었다.
‘지금 나의 집에는 재산이 한량없어서 얻기 어려운 보물도 우리집에는 있다. 그러나 내 뒤를 이을 아들이 없기 때문에 만일 내가 죽으면 내 재산은 남김없이 나라에서 가져 갈 것이다.’
昔有居士,財富無數,家裏庫藏七寶充滿,金銀珍寶、車璖馬瑙、眞珠虎珀七珍具足,奴僮僕從、象馬車乘、穀儲倉庫一以無乏,唯闕無息以繫後嗣。彼以子故求禱諸神,或跪舍神城神階陌諸神,或跪諸神先祖父母、山神樹神天地神,下至墓堆穢惡之神,盡向跪拜,竟不充願亦不生子,晝夜愁憂漸以生疾。“今我家裏財寶無數,難得之寶盡在我家,又復無息承繼我後,若我命終,所有財貨盡沒入官。
그는 이런 생각이 들자, 그 원통한 마음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다가 다행히 그는 병이 차차 나았고, 또 한 달이 못 되어서 아들까지 낳았다. 그 아들은 둘도 없이 단정하여 세상에서 보기 드물었고, 안색은 복숭아꽃 같았으며, 온갖 모양을 두루 갖추었다. 부모는 그를 보고 뛸 듯이 기뻐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서 이웃 마을 사람들을 청하여서 잔치를 베풀고 풍악을 울리면서 종일 즐겼는데, 술에 취하거나 잠들거나 하여서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물이 사납게 불어나 덮치니,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하였다.
念此傷惋知復如何?”斯人有幸疾漸瘳降,未經旬月便生一息,端正無雙世之希有,面如桃花衆相具足。父母見已,歡喜踊躍不能自勝,復請比居諸村落人,飮食歡宴作倡伎樂終日自娛,或耽醉睡眠無所覺知。時有大水暴漲駛流,盡漂沒死無存活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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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부처님께서는 티없이 맑은 천안(天眼)으로 관찰하셔서 그 장자가 흥하고 망한 경위를 보셨다. 그리고 이러한 인연법으로써 근원을 살피신 뒤에 미래의 중생들로 하여금 그것을 잘 알아서 의혹이 없게 하고, 또한 과거 모든 부처님의 신성한 입이 봉인(封印)된 것을 나타내 보이며, 또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고자 하셨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대중들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爾時世尊以天眼觀淸淨無瑕穢,見此長者成敗所趣,因此緣本尋究根原,欲使後世衆生善解無疑,復現過去諸佛世尊神口印封之所封印,亦使正法夂存於世,尋集大衆而說頌曰:
자식을 낳고는 너무나 기뻐서
애착하여 놓을 줄 모르더니
취한 와중에 세찬 강물이 덮치니
결국 목숨을 잃고 마네.
生子歡豫,
愛染不離,
醉遇瀑河,
溺沒形命。
그때에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爾時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11.자식이 있고 재물이 있다 하여
어리석은 사람은 허덕이지만
이 목숨조차도 내 것이 아니니
어찌 자식이나 재물이 있다고 하겠느냐.
有子有財,
愚惟汲汲,
命非我有,
何有子財?
어리석고도 극히 어리석으면서도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고
미련하면서도 지혜롭다고 하면
이야말로 지극히 어리석은 자이다.
愚蒙愚極,
自謂我智,
愚而稱智,
是謂極愚。
옛날 부처님께서는 비사리의 미후지 옆에 있는 높은 강당에 계셨다. 그때에 그곳의 많은 소년들은 활 쏘는 기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화살 오늬[筈]를 들고 다니면서 활 쏘는 기술에 있어서는 자신들이 제일이며, 또한 고귀한 종족으로서 세상에 견줄 자가 없다고 자랑하였다.
“이 염부리(閻浮利) 안에는 우리를 따를 자가 없다. 혹 어떤 걱정이 있다 하더라도 세상에 견줄 자가 없거늘, 어찌 저 간사한 도적들이 우리를 속이거나 침략하겠는가?”
그 아이들은 다시 스스로 생각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기술을 닦았으니, 다른 사람들보다 분명 뛰어나다.’6)
그래서 각자 서로를 의지하다가 결국 제도받지 못하니, 죽음이 갑자기 닥쳐와서 그들은 각기 다른 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昔佛在毘舍離獼猴池側高講堂上。爾時衆多童子等,善知射術筈筈相拄,於射術上彼最爲第一,自恃高族與世無雙。“處閻浮利內無及我等,正使有憂慮者,子今與世無雙,豈有奸賊侵欺我等?”兒復自惟:“吾父有伎必勝衆人。”各相憑俟竟不自濟,無常對至逬在異處。是故頌曰:
온갖 질병에 걸린 친척들이나
친한 형제를 눈으로 보면서도
죽음의 사자에게 쫓기게 하고
해침을 받게 하니 물러설 수도 없다.
在衆疾姓流,
目視兄弟親,
爲死使所追,
被害無有退。
죽음의 사자는 여러 종류가 있으니
친족인들 어떻게 구할 것인가.
재물을 수없이 쌓아 두고도
마침내 도적의 침해를 받는다.
死使有數種,
親族所在救,
積財無有數,
爲賊所嬈觸。
타오르는 불은 물로 끄고
번뇌는 저 광명으로 없애며
분노는 독한 약으로 없애고
주술로써 저 삿된 것을 없앤다.
火熾以水滅,
以蓋除彼明,
恚以毒藥去,
呪術除非邪。
사나운 코끼리는 갈고리로 끌고
방목하는 소는 채찍으로 끄니
이들 중생에게 즐거움은 있지만
모두 덧없어 보전하기 어렵다.
暴象以鉤牽,
牧牛以杖將,
此衆皆有樂,
無常難可保。
죽음은 세력이 크기 때문에
가히 의지할 데가 없다.
영원히 살 수 없어
죽게 되는 것임을 알아라.
無常力勢,
不可恃怙,
知死命終,
然不久住。
모든 것은 사라져 없어지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살아서는 세상사에 망가지고
죽어서는 온갖 곳을 떠돈다.
一切皆盡,
無覺知者,
爲世所毀,
流轉諸趣。
이때에 가유라월국(迦惟羅越國)의 여러 석씨 종족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자신들의 활 쏘는 기술은 아무 걸림이 없다고 생각하여서 유리왕(流離王)과 전쟁을 일으켰다. 그런데 활을 쏘아도 혹 눈썹을 떨어뜨리거나 수염만을 떨어뜨릴 뿐,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 유리왕이 곧 뒤로 물러나 돌아가려고 할 때, 여러 신하들이 앞으로 나와 석씨 종족들에게 충고하되, 계율을 받들어 닦음으로써 도의 과(果)를 얻으라고 하였다. 석씨들은 비록 활 쏘는 기술을 가졌지만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지는 못하였다.
그런데 유리왕이 차츰 앞으로 나아가자, 석씨들은 모두 뒤로 물러나 성문을 굳게 닫은 다음 사람을 보내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지금 유리왕의 공격을 받아 매우 위급합니다.”
時諸迦惟羅越國釋種聞佛所說,知已射術無有罣㝵,與流離王共鬪,以箭相射,或殘眉毛或殘鬚鬢,無所傷損。流離王尋欲退還,諸臣前諌:“諸釋種等,奉修戒律皆成道果,雖有射術無所損害。”時流離王漸皆前進,諸釋退還固守城門,遣使白佛:“今日窮急,爲流離王所攻。”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일 성문을 열면 큰 해가 있을 것이지만, 성문을 열지 않으면 아무런 해가 없을 것이다.”
그는 돌아가 석씨들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만일 성문을 열면 유리왕의 해침을 받을 것이지만, 성문을 열지 않으면 그 화를 면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석씨들은 이 말을 듣고는 성문을 더욱 굳게 걸어 잠그고 지켰다.
그러자 유리왕이 성문 앞에 진을 치고 석씨들에게 말하였다.
“속히 성문을 열어라. 서로가 화해하면 손상이 없으리라.”
世尊告曰:“若開門者有所傷損,不開門者無所傷損。”時彼信使還至釋所,而語釋言:“如來有教,若開門者爲王所害,不開門者不爲王所害。”諸釋聞語已,重關閉固瞻守門戶。時流離王屯守城門,語釋種曰:“速開城門,兩家共和,無所傷損。”
이때에 석씨들 가운데 과거 인연에 끌리는 사람들은 모두 문을 열자고 하였으며, 과거의 인연에 끌리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부처님의 분부를 받들어 문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석씨 종족 가운데 사마(舍馬)라는 사람이, 앞서 성 밖에서 유리왕과 싸워 7만 명의 중생을 죽이고 코끼리의 어금니를 뽑는 등 무수한 중생을 살상하였다.
그는 유리왕에게 말하였다.
“우리집 노비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결코 물러가지 말아라. 내가 성 안에 들어가 다시 전쟁할 준비를 갖추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라.”
그때에 성안의 석씨들은 석씨 사마가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을 죽였다는 말을 듣고는, 곧 사람을 보내어 그를 불러와서 몹시 꾸짖었다.
“석씨도 아니면서 석씨라 자칭하고, 우리 석씨 종족을 더럽혔다. 너는 이제 이미 명예를 훼손했으니, 이 성에 있지 말고 속히 이 나라를 떠나라. 지체없이 속히 떠나라.”
其中釋種宿緣牽者皆稱開門,無宿緣者承如來教不肯開門。舍馬釋種先在城外與流離王戰,殺七萬衆生,拔象牙傷殺無數衆生。舍馬釋種語流離曰:“室婢生子要莫退還,須我入城更備戰具。”是時,城中諸釋,聞舍馬釋傷害人民不可稱計,卽遣喚舍馬釋呵止責數:“非釋自稱釋,污染我釋種,汝今已毀名,速出國去,不須住此城,速去不須住。”
석씨 사마는 곧 성을 떠났다.
그때에 유리왕은 다시 문을 열라고 재촉하였다. 과거의 인연에 끌리는 석씨들은 다른 석씨들에게 말하였다.
“속히 문을 열어라. 이 노비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어떻게 견디겠는가?”
그러나 과거의 인연에 끌리지 않는 석씨들은 다른 석씨들에게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문을 열면 죽을 것이지만 문을 열지 않으면 죽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유리왕은 다시 성문을 압박해 왔다.
그러자 석씨 마하남(摩訶男)이 유리왕에게 말하였다.
“한 가지 내 소원을 들어 주시오. 만일 허락한다면 곧 말하겠소.”
유리왕은 대답하였다.
“마음대로 말하여라. 나는 어기지 않으리라.”
時舍馬釋卽出城去。時流離王復開門,宿緣釋種語諸釋言:“但速開門,此婢生子何所堪辦?”無緣釋種等語諸釋言:“如來有教,若開門者有所殺,不開門者無所殺。”時流離王復逼城門。時摩訶男釋語流離王曰:“聽我一願,若見許者便當自陳。”王報釋言:“恣汝所說,吾不相違。”
마하남이 앞으로 나가 왕에게 말하였다.
“내가 물 속에 들어가 있는 동안만이라도 우리 석씨들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허락하여 주시오.”
그러자 마하남은 곧 물 속에 들어가 나무 뿌리에 머리털을 매어 묶고 물 밑에서 죽어 버렸다. 그 사이에 여러 석씨들은 모두 도망쳐 달아났다.
곧 유리왕은 사람을 보내어 물 속에 들어가 보게 하면서 말하였다.
“석씨 마하남은 물에 들어가 왜 이리 오래 있는가?”
물 속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이 말하였다.
“석씨 마하남은 이미 물 속에서 죽었습니다.”
그러자 유리왕은 석씨 종족으로서 수다원(須陀洹)의 과(果)를 이룬 7만 명을 산 채로 땅에 묻고, 사나운 코끼리로 하여금 밟아 죽이게 하였다. 이와 같이 과거의 해묵은 인연이 닥치니, 그들은 의지할 데가 없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비사리의 여러 소년들에게 말씀하셨다.
“허공이 땅이 될 수 있고 땅이 허공이 될 수 있어도, 묵은 인연의 과보는 피할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인연법으로써 그 처음과 끝을 살피신 다음 미래의 중생들을 위해 큰 광명을 보이고, 또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時摩訶男釋前白王言:“聽我入水經時令諸釋種各得免脫。”時摩訶男釋卽入水,以髮繫樹根沒死水底,時諸釋皆得逃走。時流離王遣人入水看,舅男釋入水何乃稽遲?尋入水云:“摩訶男釋已死於水。”時流離王取七萬釋種成須陁洹果者,生埋在地暴象踐殺,宿緣對至無所恃怙。爾時世尊語毘舍離諸童子等:“空可爲地,地可爲空,宿對因緣,不可逃避。”以此因緣尋究本末,爲後世衆生現示大明,亦使正法久存於世,在大衆中而說頌曰:
아들이 있어도 의지할 수 없고
아비와 형일지라도 의지할 수 없으니
죽음에 쫓길 때에는
그 어떤 친족도 의지할 수 없다.
非有子恃,
亦非父兄,
爲死所迫,
無親可怙。
그때에 사부 대중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時諸四輩之衆,聞佛所說,歡喜而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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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옳다고 생각하면 행하여라.
옳은 일을 행하면 성취하라.
사람들은 스스로 허덕이면서
늙고 죽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한다.
爲是當行是,
行是事成是,
衆人自勞役,
不覺老死至。
굶주리고 목마른 곤궁한 사슴이
사방으로 달리며 헤매다가
사냥꾼의 화살을 받는 것처럼
애욕을 끊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飢餓乏漿水,
如窮鹿奔馳,
爲獵者所射,
不念斷欲愛。
이와 같이 방편을 구하여
이 몸을 자세히 분별해 보라.
늙음과 죽음이 갑자기 닥치면
마지막 경계에 이르지 못하리라.
如是求方便,
分別此形體,
老死忽然至,
不至究竟界。
많은 중생들은 그 뜻과 행이 같지 않고 하는 일이 각기 다르다. 그러므로 선의 근본을 닦는 데 있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이 마음이 바깥 일에 집착하여서 안의 법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또 닥쳐 올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서 목숨은 항상 있는 것이라고 헤아린다.
옛날 계빈국(罽賓國)에 두 형제가 있었다. 한 사람은 출가하여 아라한의 도를 얻었고, 한 사람은 집에 있으면서 살림을 맡았다.
형은 자주 동생 집에 가서 동생을 깨우치고 가르쳤다.
“보시를 행하고 계율을 지키며 온갖 선의 근본을 닦으면, 살아서는 명예롭고 죽어서는 좋은 곳에 날 것이다.”
衆多衆生志行不同所作各異,所修善本亦不足言,意著外役不念內法,不念死命意恒計常。昔罽賓國兄弟二人,一人出家得阿羅漢道,一人在家修治居業。爾時兄數至弟家教誨弟言:“布施持戒修諸善本,生有名譽死墮善處。”
동생은 형의 말에 대답하였다.
“형님은 집을 버리고 도를 닦으면서 공적인 것도 사적인 것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부모와 처자도 생각하지 않으며, 또 집안 살림살이나 재물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다른 사람에 의해 욕보이게 되더라도 걱정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즐거운 일이 생기더라도 기뻐하지 마십시오.”
형은 무수히 깨우치고 가르쳤지만, 동생은 형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뒤에 동생은 병을 얻어서 갑자기 죽고 말았다. 그리고는 소로 태어나서 사람의 부림을 받으면서 소금 짐을 지고 성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에 형 아라한이 성 안에서 나오다가 그 소를 보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弟報兄曰:“捨家作道,不慮官私、不念父兄妻子,亦復不念居業財寶。若被毀辱不懷憂慼,若遇歡樂不孚用喜。”數數諌誨不從兄教。弟後遇患忽便無常,生受牛形,爲人所驅馱鹽入城。時兄羅漢從城中出,卽向彼牛,而說偈曰:
등에는 무거운 짐을 지고
쉬지 않고 길을 걸으며
사람에게 부림을 받으니
지금은 그리도 고달프구나.
脊負爲重擔,
涉道無懈息,
爲人所驅使,
今日爲閑劇。
코가 꿰여 고삐에 매이고
등은 부르터서 진물이 나며
쉬파리들이 달려들어 빨고 쏘니
지금은 그리도 고달프구나.
穿鼻爲靷繫,
破脊癰疽瘡,
爲蠅所噆,
今日爲閑劇。
먹는 것이란 억센 꼴이고
마시는 것은 비 고인 물이며
채찍은 그 몸에서 떠나지 않으니
지금은 그리도 고달프구나.
食以芻惡草,
飮以雨潦汁,
杖捶不離身,
今日爲閑劇。
축생으로 태어났으니
어떤 계획이 있어 행하겠는가.
부디 저 삼야삼불(三耶三佛)의 덕(德)을
마음을 다해 생각하여라.
以受畜生形,
爲行何㩲計?
爲可專意念,
三耶三佛德。
소는 이 말을 듣고 매우 슬퍼서 목이 메였다.
소 주인이 아라한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였기에 내 소가 슬퍼합니까?”
아라한은 대답하였다.
“이 소는 본래 내 동생이었습니다.”
소 주인은 이 말을 듣고 아라한에게 말하였다.
“당신 동생은 전날 나와 매우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아라한은 말하였다.
“내 동생은 옛날 당신에게 소금 값 한 돈을 빚진 일이 있습니다.”
時牛聞已,悲哽不樂。牛主語道人曰:“汝何道說,使我牛不樂?”道人報曰:“此牛本是我弟。”牛主聞已語道人曰:“君弟昔日與我親親。”羅漢說曰:“我弟昔日負君一錢鹽價。”
그러자 소 주인은 곧 그 소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너를 놓아 주어 다시는 일을 시키지 않겠다.”
그때에 그 소는 곧 깊은 개울에 몸을 던지며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생각하였다. 그리고는 목숨을 마친 후에 천상에 나게 되었다.
중생 가운데 어떤 이는 세상 일에 매우 연연해 하고 재물을 탐하여 집착하면서 선의 근본을 닦지 않다가,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다한 뒤에는 아귀의 세계에 태어난다.
또 어떤 이는 도를 배우려고 집을 떠나되, 세상의 은혜와 애정과 그리고 세간의 8법(法)7)을 버리고 청정한 마음을 닦는다.
是時,牛主卽語牛曰:“吾今放汝,不復役使。”時牛自投深㵎,至心念佛,卽便命終得生天上。或有衆生深慕世累戀著財貨,不修善行,身壞命終生餓鬼中;或復有人出家學道,捐棄恩愛捨世八法修淸淨志。
비유하면 다음과 같다.
어느 태자가 전다라(栴陀羅)8)의 딸을 보게 되었는데, 그녀는 향기가 감도는 영락(瓔珞)을 몸에 걸치고 있었으며 얼굴도 매우 아름다웠다. 그 자태가 마치 천녀(天女)와도 같았기에 그는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했다.
왕은 태자에게 말하였다.
“무릇 왕가의 법도는 다른 종족의 딸과는 혼인하지 않으며, 미천한 백성의 딸과도 혼인하지 않는 것이다. 언제나 장자(長者)나 거사(居士)의 딸과 혼인하게 되어 있다.”
태자가 왕에게 말하였다.
“만일 저 여자와 혼인할 수 없다면, 저는 이 세상에 살지 않고 당장 죽어 버리고 말겠습니다.”
猶王太子栴陁羅女,身珮香瓔顏貌端正,像如天女意欲納娶,其王報曰:“夫王者法不娶外類,不與細民爲婚,常與長者居士共婚。”太子白王:“設不與婚此女者,今當自殺,不堪生世。”
왕은 이 말을 듣자, 마치 음식이 목구멍에 걸려서 배로 내려가지도 않고 토할 수도 없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왕은 태자를 돌려보내고 그 전다라의 집으로 갔다. 왕은 그 부모에게 물었다.
“당신의 딸을 내 아들인 태자에게 시집 보내겠는가?”
처녀의 어머니는 대답하였다.
“저희 종족처럼 살생하는 법을 배우면 딸을 태자님께 시집 보내겠습니다.”
왕은 돌아와 태자에게 말하였다.
“너는 지금 왕의 종족을 버리고 세상의 미천한 일을 익히되, 반드시 살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찌하여 꼭 살생하는 집 여자와 결혼하려 하는가?”
태자가 대답하였다.
“저는 탐내고 즐기기를 좋아하니, 살생하는 법을 배우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王聞此語如食遇噎,旣不入腹又不得吐。王遣出適到栴陁羅家,語女父母曰:“汝當嫁女與我太子。”女母報曰:“隨我種類習殺法者,當嫁女與王太子。”王還語太子曰:“汝今要習殺生法,捨王種類習凡細事,何爲要殺女爲婚?”
그는 곧 왕궁을 버리고 살생하는 집으로 가서 그 딸과의 혼인을 계획하였다. 그래서 오랫동안 섶나무를 지기도 하고 광우리를 들고 집안을 청소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그 나라의 가장 높은 대신이 밖에 나갔다가 그를 보고 물었다.
“그 여자를 얻었습니까?”
태자는 대답하였다.
“하는 일이 너무나 자질구레하고 많아서 벌써 그 여자는 잊고 다시는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대신은 다시 물었다.
“그 향기가 감도는 구슬을 꿴 영락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태자는 대답하였다.
“나는 그것도 잊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신은 다시 물었다.
“아직까지 여자도 얻지 못하고 또 영락도 얻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왕위도 잃고 아무 결과도 이루지 못했으니, 어떻게 합니까?”
그러자 태자는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하였다.
(이 비유는 중생들에게 큰 이로움이 있다.)
太子白王:“意所貪樂,要習殺法不以爲難。”卽捨王宮出詣殺家計婚姻。如是積久,擔負薪草持筐掃,第一大臣出行見之,問王子曰:“竟得女不?”王子報曰:“吾役使煩多,早忘失女不復憶之。”臣復問曰:“香瓔貫珠今爲所在?”太子報曰:“吾亦忘不復憶也。”臣語王子:“旣不得女,亦不得珠,復失王位,無所果獲欲何方宜?”王子墮淚悲感不樂。此譬在衆有所長益。
또 어떤 왕자와 장자와 거사는 출가하여 도를 배우고 공덕을 지어서 아라한이 되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세상의 속박과 집착을 벗어나 욕(欲)과 이욕(離欲), 피안[彼]과 차안[此]의 두 경계를 해탈하여 무명을 분별하고 지혜(智慧)해탈과 무의(無疑)해탈로써 보배로운 이치를 성취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 부모와 형제들은 그들을 꾸짖으며 말렸다.
“이 세상에서 도를 닦는 사람보다 더 천한 사람은 없다. 집집마다 다니면서 걸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사람의 비웃음을 받는 것이 어떻게 즐거울 수 있겠는가? 너희들이 거지가 되어 남의 저주를 받는 것보다는 집에 있으면서 5욕(欲)을 즐기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러나 널리 보시를 하여 복 짓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미래와 과거와 현재의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 외롭고 궁핍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사문, 바라문이나 먼길을 떠나는 나그네에게 보시하여라. 또한 의복, 음식, 침구, 의약 등의 네 가지를 공양하되, 옷을 요구하면 옷을 주고 밥을 요구하면 밥을 주어라. 향과 꽃과 수건과 여섯 가지 그릇 따위도 집에 있으면 힘써 공양할 수 있다. 그러나 집을 떠난다는 것은 매우 고생스러운 일이다.”
或有王子長者居士出家學道,建功立德求爲阿羅漢,離世縛著於欲離欲,彼此解脫分別無明,智慧解脫無疑解脫成珍寶義。父母兄弟呵制,語出家者言:“人中薄賤莫過於道,家家乞求以此爲常,爲人嗤笑何可堪樂?人相呪詛使汝作乞兒,不如在家五欲自娛。分檀布施作福不惓,供給當來過去現在,給施孤窮裸賤之人沙門婆羅門僑客遠行,四事供養衣被飮食牀臥醫藥,須衣與衣須食與食,香熏華鬘手巾六器在家可辦此物,出家極辛苦。”
그들은 다섯 친족들에게 말하였다.
“우리들 생각은 기어코 도를 배우는 데 있습니다. 집에 있으면서 세속 일에 힘쓰는 것을 즐겨 하지 않습니다.”
다섯 친족들은 말하였다.
“세속적인 것을 즐겨 하지 않거든 뜻한 대로 집을 나가라.”
그들은 곧 집을 떠나 도를 닦았다. 그러나 그들이 닦은 것은 쓸모없는 것이었으며, 바른 업은 닦지 않고 세월을 보냈다.
그러자 다섯 친족들이 그곳에 가서 도사(道士)들을 보고 말하였다.
“너희들은 아라한의 도를 얻었느냐?”
그들은 대답하였다.
“도를 배우기 시작한 이래로 이제서야 아라한이라는 이름을 들었습니다.”
다섯 친족들은 다시 물었다.
“욕(欲)과 이욕(離欲), 피안과 차안의 두 경계를 해탈하여 무명을 분별하고, 지혜해탈과 무의해탈로써 보배로운 이치를 성취하는 등 이런 여러 가지 법을 원만히 얻었느냐?”
時諸學人語五親曰:“我等志趣必欲學道,不樂在家理俗因緣。”五親報曰:“不樂俗者隨意出家。”卽捨家爲道,所習非要,不修正業經歷數時,五親往見語諸道士:“汝等得羅漢道耶?”道人報曰:“自學道以來,今乃聞阿羅漢名。”五親復問:“於欲無欲,彼此解脫,除去無明,智慧解脫無疑成就珍寶,具足如此衆法爲得不乎?”
도인들이 대답하였다.
“그런 여러 가지 법을 모두 잃었습니다. 이제는 그 이름조차 알 수 없는데 어떻게 행할 수 있겠습니까?”
다섯 친족들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왜 집의 재산과 살림살이뿐 아니라 다섯 친족을 버리고, 은혜롭고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헤어졌는가? 그리고 실없는 일만 익힌다면 세속의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티없이 맑은 천안(天眼)으로 관찰하셔서 다섯 친족들과 도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또 도인들이 법이 아닌 것을 닦아서 바른 법을 따르지 않음을 아셨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교화하기 위하여 이내 신통을 나타내셨다.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인연법으로써 그 처음과 끝을 살피시고는 미래의 중생들을 위하여 큰 광명을 나타내고, 또 바른 법이 이 세상에 오래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하여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道人報曰:“如此衆法我等悉失,不識其名況理行耶?”五親問道人:“汝等何爲捨家財業捐棄五親與恩愛別?所習非法,與世人不異。”爾時世尊以天眼觀淸淨無瑕穢,見彼五親與道人論,知習非法不順正要,佛欲往化因現道力。因此因緣尋究本末,爲後世衆生示現大明,亦使正法久在於世,在大衆中而說頌曰:
옳다고 생각하면 행하여라.
옳은 일을 행하면 성취하라.
사람들은 스스로 허덕이면서
늙고 죽게 되는 것을 알지 못한다.
爲是當行是,
行是事成是,
衆人自勞役,
不覺老死至。
그때에 마성(馬聲) 존자는 다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爾時尊者馬聲,復說頌曰:
13.몸을 씻고 그 몸을 단장하면서도
어리석어 선행을 닦지 않으니
어머니가 죽은 딸을 안는 것처럼
결국 갑자기 죽게 된다.
沐浴莊嚴身,
愚弊不習善,
無常忽然至,
如母抱死女。
중생들은 마음이 맞지 않아 서로 다투면서 실없는 짓만 하고 바른 법을 따르지 않는다.
옛날 어떤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태와 용모가 단정하고 얼굴에는 위엄이 있었으며, 온갖 모습을 두루 갖추었고, 감관도 고요하였다. 또 서로를 존중하였고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싫증을 내지 않았다.
이와 같아서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들 부부는 어느 날 갑자기 눈이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서로를 연모하면서도 남에게 속을까봐 걱정하였다. 남편은 아내를 잃을까봐 걱정하였고, 아내는 남편을 잃을까봐 걱정하여서 서로를 지키니 잠시라도 멀리 가지 못하였다.
그때에 그들의 다섯 친족들이 멀리서 의사를 구해 왔다. 의사가 눈먼 그들의 눈에 약을 붙여서 치료하니 모두 눈이 밝아졌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의 얼굴이 변해서 옛날과 다른 것을 보고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누가 내 아내를 바꿔 갔는가?”
衆生相剋互相是非,所習非要不順正法,猶昔夫婦二人,姿貌端正威顏具足,衆相備悉諸根寂靜,共相待敬終日無厭。如是經曰,夫婦二人忽然失明目無所睹,夫婦相戀恐爲人所欺,夫恐失婦、婦恐失夫,坐共相守不遠斯須。時諸五親遠方求醫,將至失明夫婦所,拊藥治目尋得開明。夫見婦顏變易非故,擧聲而言:“誰易我婦?”
아내도 그 남편의 얼굴이 변해서 옛날과 다른 것을 보고 소리 높여 말하였다.
“누가 내 남편을 바꿔 갔는가?”
그러자 그 다섯 친족들이 그들을 타일렀다.
“젊은 얼굴도 날로 변하는 것이다. 기운은 줄고 힘은 마르며 피부는 늘어나 얼굴에는 주름살이 지면서 날마다 변하고 달라진다. 늙고 찌든 얼굴을 젊은 사람의 얼굴과 비교하여 바라는 것은, 마치 얼음을 뚫고 불을 구하는 것과 같으니, 어찌 잘못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왜 서로 울면서 알아보지 못하는가?”
그들은 거울에 그들의 달라진 얼굴을 비추어 보고 말하였다.
“아아, 벌써 우리도 늙었구나. 그 곱던 얼굴도 오래가지 못하는구나. 그 위엄 있는 모습도 하루아침에 변하고 말았구나.”
그들은 근심과 걱정으로 더욱 고통스러웠다.
그때에 담마야세리(曇摩也世利) 존자가 이러한 인연으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去婦見夫顏狀變易非故,擧聲而言:“誰易我夫?”五親曉曰:“少壯之容隨日遷轉,氣羸力竭皮緩面皺日異日變,以老朽顏望比少壯,鑽冰求火不亦謬乎?何爲啼哭自不相識?”以鏡自照容顏變易,咄嗟老至色不久停,威容挺特一朝色異,愁思憂慮遂增苦惱。尊者曇摩也世利,因此而說頌曰:
마치 어떤 사람이 잠들었을 때
도둑이 몰래 담을 넘어 들어와
재물을 훔쳐가도 모르고 있다가
깨어서야 이리저리 찾는 것과 같다.
如人眠寐睡,
賊竊開牆盜,
失財不覺知,
覺乃周旋覓。
어리석고 배움이 짧아 제멋대로이고
스스로 어두운 연못에 빠져 있을 때
재물을 도적 맞고도 깨닫지 못하니
늙음이란 도적 앞에서는 무력하다.
愚少習放恣,
自陷沒冥池,
不見賊失財,
爲老賊無勢。
그러므로 “진실된 것을 익히지 않아서 도에 어긋나고 법을 잃으니, 늙고 죽게 되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때에 여러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모두 기뻐하면서 물러갔다.
是故說曰:“習不眞要違道失法,不覺老死至。”時諸人民聞說斯語,歡喜而去。
14.그러므로 선정(禪定)을 닦아 익히면
생(生)이 끝나고 번뇌가 없어지리니
비구여, 마군[魔兵]을 싫어하여
이 생(生)과 사(死)에서 벗어나라.
是故習禪定,
生盡無熱惱,
比丘厭魔兵,
從生死得度。
옛날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은 덧없이 변하는 것[無常]이라고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이 말씀을 듣고 크게 염오하는 마음을 내어 이 몸과 모든 감관의 근본을 떠나려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깨우쳐서 바른 행으로 지도하시고 바른 법을 배워 익히게 하셨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무덤 사이나 나무 밑이나 혹은 한적한 곳을 거닐기도 하고 앉아서 참선을 하되, 게을러서는 안 된다. 지금 부지런히 힘쓰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으리라. 비구들이여, 이것이 이른바 나의 계율이다.”
그러므로 “선정을 닦아 익히면, 생이 끝나고 번뇌가 없어지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아침, 한낮, 황혼, 초저녁, 밤중이 지나고 새벽이 되어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니거나 앉아 있거나 오거나 가거나, 혹은 자거나 깨어 있거나, 항상 이 삼매(三昧)를 닦되, 빠뜨리는 일이 없게 하라.”
如來宣昔無常遷轉,諸比丘聞皆興患厭,去離陰持諸入之本,世尊教誡指授正業教習正法,或在塚閒樹下,或露處經行坐禪念定,勿懷懈慢,今不精懃後悔無益,是謂比丘我之禁戒。是故說曰,是故習禪定,生盡無熱惱。淸旦日中向暮、初夜中夜後夜,佛告比丘:“若行若坐若來若去若睡若覺,當念行此三昧使無漏失。
“생이 끝나고 번뇌가 없어지리니”란 무슨 뜻인가?
신(身)ㆍ구(口)ㆍ의(意)로 괴로워하지 않으며, 번뇌의 불길에 시달리지 않고 용맹정진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머리나 옷에 불이 붙었을 때에는 어떻게 그것을 꺼야 하겠는가?”
비구들은 대답하였다.
“머리와 옷을 감싸면 불을 끌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머리나 옷만을 보자고 나는 말하지 않았다. 다시 방편을 구하여 선법(善法)으로써 모든 악법을 없애고, 뜻을 굳건히 하여 모든 선법에 수순하면 생이 끝나고 번뇌가 없어질 것이다.
생(生)이란, 생존과도 같은 것이다. 늙고 병들고 죽는 것도 생존이 있기 때문이며, 근심하고 번민하며 고통스럽고 방황하는 것도 모두 생존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이「무상품」을 말씀하실 때, 아난(阿難)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生盡無熱惱者,身口意不惱,不爲結火所惱,勇猛精懃。”佛告比丘:“然頭然衣以何防之?”比丘白佛:“救頭護衣乃可防之。”佛告比丘:“不如來言觀頭觀衣,更求方便以善法消滅惡法,用意堅固,於諸善法永不越緖,生盡無熱惱,生者猶生有,老病死猶生有,憂惱苦患周旋往來皆由有生。”當說無常品時,時阿難便說頌曰:
나는 어느 한때에 들었으니
부처님께서는 출요(出曜)를 말씀하셔서
어리석고 무지한 중생들을
자비로써 제도하셨다.
吾聞一時事,
如來說出曜,
衆生懷愚闇,
以慈往拔濟。
“무상(無常)을 말씀하셨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그 말씀이 이름[名身]과 문장[味身]과 글귀[句身]와 이치[義身]를 완전히 갖추어서 흠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說無常者,名身味身句身義身充足,口說無瑕。
“나는 어느 한때에 들었으니”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께서는 5음으로 된 몸과 여섯 가지 감관의 모양[入相]을 다 분별하시고는, 그것이 중생들의 수명과 부합하여 화의 근본인 몸이 생겨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어느 때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다”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마음을 한가지로 하여 산란심이 없게 하고,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아서 온갖 선의 근본을 구하라. 어리석고 무지한 중생들을 위하여 그 길을 열어 보이고, 세상의 중생들이 눈뜬 장님이거든 그들에게 눈을 주어서 보게 하라. 또 큰 자비로 그들을 고통에서 구제하고, 그들을 보기를 마치 부모가 자식을 보는 것같이 하라.”
아난은 그 뜻을 게송으로 설명하였다.
聞是一時,吾者陰持入相盡能分別人士,夫衆生壽命生形禍身。吾從佛聞一時,事如是,專意不亂亦不他念,求諸善本,爲愚闇衆生開示徑路,衆生處世生盲無目,便與開目使得視瞻,以大慈哀拔濟其苦,視彼衆生如父如母,敷演其義。
깊은 글귀의 이치를 알아
그 도덕을 잘 닦으면
온갖 괴로움을 모두 없애고
무여(無餘)열반에 이르게 되리라.
以解深句義,
善修其道德,
便得盡諸苦,
得逮無餘處。
어떤 때는 이치로써 번뇌를 없애고 문장과 글귀에는 마음을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불경(佛經)에서도, “번뇌가 없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지 않고 평등하게 바른 이치를 본다. 그러나 속박을 없애고 번뇌를 제거하면 생이 없으므로, 생이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 그 불경에서는, “혹은 불경을 아무리 외워도 번뇌를 없애지 못한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글귀의 이치를 깊이 알라고 말씀하셨다”고 하였다.
어느 때에 라후라(羅喉羅) 존자는 부처님께 나아가 땅에 엎드려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원하옵건대, 부처님께서는 저를 위해 설법하시어 저로 하여금 이 번뇌에서 속히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或以義除結,不以味身句身,佛經亦說不施無漏等見順正,無結去漏勿生便說生,非餘是佛經,或誦佛經不盡結使,是故世尊說當深解句義。時,尊者羅云往至佛所,頭面禮足在一面坐,時尊者羅云白世尊曰:“唯願如來!與我說法,使有漏心疾得解脫。”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인연잡송(因緣雜誦)을 생각하고 그것을 다 외운 뒤에 내게로 다시 오너라.”
그래서 라후라는 인연잡송을 외워서 유창하게 입에 익힌 뒤에 부처님께 나아가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인연잡송을 모두 외웠지만 아직도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너는 오성음잡송(五盛陰雜誦)을 외워라.”
爾時世尊告羅云曰:“汝當思惟因緣雜誦,已誦訖,來至如來所。”是時,羅云便誦因緣雜誦流利上口,至世尊所,白世尊曰:“唯然世尊!已誦因緣雜誦,有漏不得解脫。”世尊告羅云:“汝諷誦五盛陰雜誦。”
라후라는 분부대로 오성음잡송을 다 외웠다. 그리고 다른 날 다시 부처님께 나아가 말씀드렸다.
“오성음잡송을 다 외웠지만 아직도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너는 육경락잡송(六更樂雜誦)을 외워라.”
라후라는 그 분부대로 육경락잡송을 다 외웠다. 그리고 다른 날 다시 부처님께 나아가 말씀드렸다.
“육경락잡송을 모두 외웠지만 아직도 번뇌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爾時羅云卽受教誡便誦五盛陰,復於餘時至世尊所白世尊曰:“已誦五盛陰已,有漏心不得解脫。”爾時世尊告羅云曰:“汝當誦六更樂雜誦。”時羅云受佛教已復誦六更樂,復餘時到世尊所白世尊曰:“已誦六更樂已,有漏心不得解脫。”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마땅히 그 이치를 생각하고 관찰하여야 한다.”
곧 라후라는 부처님의 분부대로 스스로 그 이치를 생각하고 분별하였다. 그래서 차츰 번뇌를 없애고 아라한의 과(果)를 얻었다. 그것은 다 그 이치를 분별하였기 때문에 단계를 넘어 도를 얻은 것으로 번뇌가 다하고 깨달음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아난도, “그 깊은 글귀의 이치를 알아 그 도덕을 잘 닦고, 도로써 번뇌를 끊어 7사(使)9)의 속박을 제거하면 번뇌가 영원히 다해 무여열반에 이르게 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是時,世尊告羅云曰:“汝當思惟觀察其義。”爾時羅云承受佛教,卽自思惟分別其義,漸盡結使,得阿羅漢果。皆由分別義,故越次取證,盡有漏成無漏。是故阿難說曰:“以解深句義,善修道德,以道斷結,去諸七使纏縛,永盡無餘。”
도(道)란, 이른바 열반이니, 번뇌가 다하여 없어지면 나고 사라지거나 집착하고 끊는 두 극단이 없어져서 안온하고 즐거울 것이다. 그러므로 “그 도덕을 잘 닦으면”이라고 한 것이다.
“온갖 괴로움을 모두 없애고”란 무슨 뜻인가?
이른바 괴로움이란, 생ㆍ노ㆍ병ㆍ사의 괴로움과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괴로움, 원수와 만나는 괴로움이다.
“무여(無餘)열반에 이르게 되리라”란 무슨 뜻인가?
무여일반이란, 제일의 이치로서 위없는 것이며, 그것보다 뛰어난 것은 없다는 뜻이다.
道者謂泥洹,滅盡無生滅著斷安隱快樂,是故說曰,善修其道德。便得盡諸苦者,所謂苦者,生苦、老苦、病苦、死苦、恩愛別離苦、怨憎會苦。得逮無餘處,無餘者,第一義,無上無有過者。
出曜經卷第三
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1)첫 번째는 삼계(三界)의 미혹된 견해인 견류(見流)고, 두 번째는 욕계(欲界)의 미혹됨인 욕류(欲流)며, 세 번째는 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의 미혹됨인 유류(有流)고, 네 번째는 삼계의 무명인 무명류(無明流)다.
2)āna-apāma의 음사로서 수식관(數息觀)을 뜻한다.
3)깨달음에 들기 위한 가행(加行) 단계로서 4선근(善根)을 이르는 것이다. 각각 정법(頂法), 난법(煖法), 인법(忍法), 세간제일법(世間第一法)의 위(位)가 있다.
4)부처가 태어난 나라로서 가비라(迦毘羅, kapilavastu)라고도 한다.
5)니구류(尼拘類, nyagrodba)는 용나무[榕樹]의 일종이다.
6)고려대장경에는 “오보유기필승중인(吾父有伎必勝衆人)”이라고 되어 있으나, 문맥상 보(父)를 구(久)로 풀이하였다.
7)인간의 마음에 애증(愛憎)을 갖게 하는 것으로 이(利), 쇠(衰), 훼(毁), 예(譽), 칭(稱), 기(譏), 고(苦), 낙(樂)의 여덟 가지이다.
8)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을 뜻한다.
9)일곱 가지의 번뇌로서 애욕(愛慾), 에(恚), 유애(有愛), 만(慢), 무명(無明), 견(見), 치(癡)가 그것이다.
첫댓글 흐린 눈이 조금은 맑아진 것 같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