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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선교연구원 문화매거진 오늘
2012/12/26 10:24 |
“영적 전쟁을 제대로 하는 방법: 가수 싸이와 프리 메이슨이 문제가 아니다”
김철홍(장신대 신약학 부교수)
2010년에 일부 기독교인들이 서울 봉은사 대웅전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한 사건이 있었다.
인터넷에 올린 영상에서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이 땅은 하나님의 땅이라는 것을 선포했다. 하나님에 의해 이 땅은 파괴되고 회복될 것이다. 온전히 하나님만이 승리할 것이다.”
같은 해 대구 동화사에서도 유사한 일이 일어났고, 2011년에는 목사, 장로, 선교사 등 네 명의 기독교인이 조계사에 들어가 메가폰으로 “예수를 믿으라. 하나님 덕분에 밥먹고 사는 것이다. 부처가 밥 먹여 주는 줄 아느냐” 등의 주장을 하면서 소동을 벌였다.
이런 일은 심지어 외국 원정에서도 일어난다. 2010년에 미얀마로 의료 선교를 간 개신교 교인 10여명이 미얀마의 한 법당에 둘러앉아 손을 잡고 찬송가를 부르며 예배를 보았다. 이 예배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사람은 설명글에서 “20일 금식하며 견고한 진을 파하고 첫 예배를 드리던 날, 하나님의 영광이 미얀마 땅과 좌우를 분별치 못하는 죽어가는 수만의 불쌍한 영혼을 기억하여 주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라고 썼다. 소위 말하는 ‘땅밟기 선교’를 국내외 불교 사원에서 한 것이다.
이런 땅밟기 선교를 비판하자 그 동안 열정적으로 땅밟기 선교를 주장해온 최바울 선교사라는 분은 2010년에 국민일보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땅 밟고 기도하기’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는 이것이 약속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너희가 밟는 땅에 다 네게 주리라!’고 약속하셨다. 둘째는 영적 전쟁의 의미이다. 영적 어둠의 세력에 대항하여 기도함으로 그 영적 세력을 제어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기도 형태는 적극적이고 전투적이며 공격적이다...... 할 수만 있으면 불교 절간에서뿐만 아니라 그 분들의 집에까지 방문하여 우상에서 벗어나도록 축복하며 기도해야 한다. 아프리카까지 가서 그 땅을 밟고 기도하는데 왜 가까운 우리 이웃 절간에 가서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겠는가?”
왜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땅을 밟는 것에 집착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은 사람은 최바울선교사가 쓴 ‘세계영적도해’라는 책이나 그와 유사한 주장을 쏟아내는 수많은 영적전쟁 교본을 읽어보면 된다. 소위 말하는 ‘영적 도해(Spiritual Mapping)’란 무엇인가? 이 세상에는 개개의 지역에 거주하는 지역귀신(territorial spirits)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도를 펴놓고 악한 영들이 지배하는 지역과 하나님의 영이 지배하는 지역을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영적 전쟁의 방법은 사탄의 강력한 요새를 허물어뜨리기 위해 사탄이 지배하는 영역을 공격하는 기도를 하는 것이며, 이것을 중보기도의 요체로 주장한다. 이런 영적 전쟁 이론은 신사도운동(New Apostolic Movement)이라는 이름으로 뉴에이지와 기독교의 경계선을 두루 넘나드는 자칭 영적 전쟁 전문가 피터 와그너(Peter Wagner)가 대중화한 것으로 국내의 일부 출판사들이 이들의 주장을 무분별하게 번역하여 소개함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20년 전부터 대학생선교단체들을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왔다. 땅밟기 선교는 공격기도에서 한 단계 더 적극적으로 업그레이드된 버전의 영적 전쟁 방법으로 사탄의 요새에 직접 들어가 그곳에서 공격 기도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땅밟기 선교가 갖고 있는 실제적인 선교의 폐해는 둘째 치고라도 땅밟기 선교가 갖고 있는 신학적 문제는 무엇인가?
첫째로, 땅밟기 선교는 정령신앙(animism)에 기초한 세계관이라는 점이다. 지금도 전통사회 문화가 남아 있는 선교지에 가면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는 정령신앙은 각 부족이 사는 지역, 지역마다 그 지역을 다스리는 귀신(territorial spirits)이 있다는 토착신앙이다. 여행자가 새로운 지역으로 들어갈 때 그 지역을 지배하는 신이 누구인지 묻고 그 신에게 먼저 기도하고 들어가고, 그 지역이 끝나 새로운 지역에 들어갈 때는 또 그 새로운 지역의 신에게 기도하고 들어가는 관행은 지금도 남아 있다. 정령신앙은 비기독교적인 세계관이며 정령신앙을 컨텍스트(context)로 해서 기독교 신앙을 토착화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영적 전쟁의 전문가들은 이 정령신앙을 교회 안으로 갖고 들어와 기독교 신앙을 컨텍스트(context)로 해서 정령신앙을 교회 안에 토착화하여 ‘땅밟기 선교’를 만들어 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 선교사가 아니라 교회 안에 침투한 정령신앙의 선교사라고 할 수 있다.
둘째로, 땅밟기 선교는 영적 존재는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기본적 영적 상식을 무시한다. ‘볼펜 끝에 과연 몇 명의 천사 혹은 귀신이 앉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무한대’다. 영적 존재는 인간과 달리 육체를 갖고 있지 않으므로 삼차원적인 공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도에 우리가 아무리 선을 긋고 사탄의 요새를 공격하는 기도를 하고, 가서 땅을 밟아도 사탄의 권세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 땅 위에서 사탄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것이 정치건, 군사건, 경제건, 역사건, 제도건, 문화건, 종교건, 사실 사탄이 활동하는 영역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 가상의 공간이 사이버 공간에서도 사탄은 활동하며, 솔직히 말하면 교회도 그 예외가 아니다. 악한 영들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짓고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생각과 행동을 하게 만들어, 자신의 노예로, 포로로 인간을 사로잡고 있다.
사탄과 악한 영들은 죽음의 세력이 되어 모든 인간을 지배하고, 우리를 어둠의 왕국의 시민으로 만들어 그들의 뜻에 순종하며 죽음과 멸망을 향해 걸어가게 하고 있다. 이것이 현실이다. 사탄이 이렇게 우리 삶 속에서 광범위하게 매우 다양한 형태로 악의 지배를 공고히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땅밟기 선교는 우리가 이것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게 하고 기껏해야 악의 활동을 이차원적, 평면적으로 이해하는데 그치게 한다.
영적전쟁에는 지도에 그릴 수 있는 전선(戰線)이 없다. 사면팔방(四面八方), 전후좌우(前後左右), 상하(上下)의 구분도 없다. 악의 편재성(偏在性)에 눈감는 것은 전쟁에 지는 지름길이다. 땅밟기 선교는 우리를 이 지금길로 인도한다.
셋째로, 땅밟기 신학은 문화와 매체를 통한 사탄의 역사와 기독교의 대응이라는 시급하고 중요한 영적 전쟁의 차원에 우리를 눈감게 만든다. 사탄은 대중문화 안에서도 역사하지만 대중문화 밖에서도 역사한다. 하지만 사탄이 대중문화를 통해 인간에게 행사하는 악한 영향력은 그 어떤 분야보다 더 심각하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가수 싸이가 프리 메이슨(Free Mason)인가를 놓고 기독교 청년들 사이에 사뭇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알고 보면 프리 메이슨에 관한 터무니없는 주장들이 유포된 것도 다 영적 전쟁의 대가들 덕분인데, 싸이가 프리 메이슨과 관계가 있건 없건 상관없이 우리는 싸이를 포함한 모든 문화적 매체를 통해 사탄이 역사하고 있다는 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과 전쟁을 먼저 보아야 한다.
사실 사탄이 싸이만을 통해 역사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사탄은 ‘나’를 통해서도 역사할 수 있고, ‘너’를 통해서도 역사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다 악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엉터리 영적 전쟁 이론은 기껏해야 기독 청년들이 인터넷에서 “싸이가 사탄인가 아닌가?”와 같은 황당한 주제로 토론을 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나 이런 토론도 필요하다. 사탄은그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만 현 상황에서 세상에 악한 영향력을 미치게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존재에 대한 자각과 대응책이 있어야하기 때문이다)
비싼 선교비 들여서 외국에 비행기 타고 가서 겨우 불교 사원에서 찬송가 부르고 대적 기도하게 만들고, 전쟁다운 전쟁 한 번 하지 않았는데도 승리의 찬가를 부르면서 자기도취에 빠지게 만든다. 잘못된 영적 전쟁의 신학은 우리의 눈과 귀를 가려 사탄과 죽음의 세력이 이 세상에서 인간을 죄 속에서 망하게 만드는 엄청난 활동 전체를 보지 못하게 한다.
바울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들의 적은 가수 싸이도 아니고, 프리 메이슨도 아니고, 이 세상을 지배하는 죄와 죽음의 세력, 사탄의 세력과의 싸움이다.
(그러나 싸이나 프리메이슨이 사탄에게 속해 있다면 그들에 대한 싸움이 곧 사탄에 대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가 제대로 사탄의 세력과 싸울 수 있을까?
첫째로, 전도하는 것이다. 죄악 가운데 사는 사람에게 차근차근 하게 말로 전도해서 그들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그들에게 나아가 이것을 전해주어 그들 구원받아 구원의 투구를 쓰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말씀이 그들의 검이 되게 하는 것이다(엡 6:17). 이것이 바로 사탄의 세력에 승리하는 지름길이다.
(입으로 전도하고 삶으로 그것을 증명해야만 한다. 입으로만의 전도는 무의미하다)
둘째로, 복음을 잘 가르쳐 좋은 성도를 만드는 것이다. 성도들에게 땅밟기처럼 쓸데없는 일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가르쳐 진리의 허리띠를 매어주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로움을 받아 의의 호심경을 붙이게 하고, 그들이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나아가 전도하게 하는 것, 믿음을 굳게 해서 악한 사탄이 쏘는 모든 유혹의 불화살을 다 막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엡 6:14-16).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영적 전쟁을 하는 방법이다. 사탄과 악한 영들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려고 유혹할 때, 우리가 말씀 안에 올바로 서서 사탄의 유혹에 ‘No’라고 대답할 때 사탄은 패배하고, 우리는 승리한다. 영적 전쟁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영적 전쟁은 내 밖에 있는 악에 대해 싸우는 것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 로마서 7장이 말하는 바, 내 안에 있는 악에 대해 싸우는 것이다. 우리의 진짜 적은 프리 메이슨이 아니라 사실은 내 안에 있는 죄다.
(그러면서 직접적으로 사탄의 일을 하고 있는 프리메이슨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게 만들지는 말라)
셋째로, 타락한 세상 속에서 활동하는 어둠의 세력과 맞서 싸우기 위해 자라나는 세대들 중에서 하나님을 알고 복음위에 올바로 선 사람들을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로 들어가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해야 한다.
크리스챤 정치인, 군인, 경제인, 언론인,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등 모든 학문 분야의 학자들 뿐만 아니라, 특별히 문화와 매체 분야에서 활동할 수 있는 크리스챤 영화감독, 드라마 시나리오 작가, 음악가, 가수, 연극배우, 화가, 문필가, 시인, 소설가 등이 많이 등장하여 각 분야에 들어가서 그들이 그곳에서 복음적인 문화를 생산하게 해야 한다. 사회 모든 분야에 복음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새로운 세대를 교회에서 육성해서 이 세상 속으로 파송하는 것에 우리가 헌신할 것인지 아니면 자라나는 세대의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땅밟기를 시킬 것인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성경적인 땅밟기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
영적 전쟁의 대가들은 우리를 이 전쟁에서 지는 길로 우리를 유혹한다. 그 길로 나아가면 교회가 문 닫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다.
(하나님의 참다운 교회는 결코 쇠퇴하거니 문을 닫지 않고 더욱 왕성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엉터리 신학에 기초를 둔 사이비 영적전쟁 이론을 밟아야 부숴야 한다. 올바른 신학에서 올바른 신앙이 자라고, 그래서 올바른 사람이 만들어 진다. 이제는 제대로 영적 전쟁을 하는 법을 가르쳐 모든 성도가 승리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
(법당에 들어가 난동을부린다면 이는 지혜롭지 못한 것이겠지만 어느 지역을 방문하여 그 지역에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되며 그 지역에 역사하는 사탄의 궤계를 물리치기 위하여 성도들이 간구드리는 행위는 귀한 것이다. 만약 이를 두고 밟아 부숴야하는 사이비 영적전쟁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실로 큰 오류요 착각이다. 도리어 이런 발언이 영적전쟁을 흐리게 하는 무서운 사탄의 전략이요 함정일 수가 있다)
첫댓글 영적전쟁을 하는 방법에 있어, 땅밟기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땅밟기로 여리고 성을 돌때 무너지듯이 절이무너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여리고성이 무너졌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