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교수의 카자흐스탄 견문록 - (2차카작행32) 시신의 얼굴을 개봉한 채 치러지는 유럽식 장례식
시신의 얼굴을 개봉한 채 치러지는 유럽식 장례식(06.2.20.월)
상가에 가보니, 작년에 내가 들렀던 집이었습니다. 최정숙 할머님(1924-2006). 옛날이야기는 기억하는 게 없어 살아온 이야기만 들었던 분이었습니다. 그때 만났던 큰아드님께 문상하니, “어찌 알고 왔느냐”며 반기셨습니다.
빈소는 그 할머님이 쓰다 돌아가신 방에 차려져 있었는데, 방 한 켠에 커텐 드리우듯 천으로 가려 놓아 시신을 볼 수 없었습니다(나중에 확인해 보니, 평상시 입던 옷 가운데에서 깨끗한 옷을 입히워, 염습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묶지도 않고 그냥 관에다 넣어 안치해 둔다고 합니다). 빈소 옆에 화환만 놓여 있었고, 사진이나 이런 것도 없었습니다. 목사님과 함께 우리는 빈소를 향해 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를 드린 후 대문 밖에서 장례예배를 드리겠으니 모두 안으로 들어오시라고 목사님이 말하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목사님께서 기도한 다음, 모두가 다시 대문 밖으로 나왔습니다. 공동묘지 직원인 듯한 사람들이 관을 모시고 나왔는데, 뚜껑은 운구차에 싣고, 시신의 얼굴이 보이도록 개봉한 관을 대문 앞 받침대 위에 놓은 채, 목사님의 집례로 장례예배를 드렸습니다. 최정숙 집사님은 머리에 빨간 수건을 쓰신 채 아주 환하고 평안한 얼굴로 누워계셨고, 그 위에는 손수건 몇 장과 꽃이 놓여 있었습니다.
시신의 얼굴을 개봉한다는 것, 평소의 옷을 입힌다는 것, 유족도 평상복 차림으로 임하되, 딸과 며느리만은 하얀 스카프를 한다는 것도 우리의 전통 장례 풍습과 달랐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고인과의 작별 순서였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 목사님께서 “이제 이 예배가 끝나면 정든 집에서 떠나 장지로 갈 텐데, 마지막으로 고인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면 나와서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러자, 가장 먼저 그 큰아드님이 나와서, 어머님을 소개하고 추모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 어머님은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신 분입니다. 10남매를 낳으셨으나 일곱은 일찍 죽었고, 3남매만 살았습니다. 어렵게 사시면서도 항상 착하게 살아오신 분입니다.”
이어서 35년간 사귀어 왔다는 동네 러시아인 할머니가 나와서 작별을 했습니다.
“이곳에서 남편도 여의고, 자녀들도 다 떠나보내고, 오직 당신과만 친구로 지내었는데, 이제 당신마저 세상을 떠나셨군요.”
사모님이 통역해서 들려주는 그 사연들을 듣자니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유럽식이지만 참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도 한번 적용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장지인 브룬다이 공동묘지는 알마티 시를 벗어나 알마틴 주에 있었습니다. 박박티 가는 길길처럼 무한히 펼쳐진 언덕과 초원지대를 지나서 있었습니다. 하관예배를 드린 후 시신 위에 놓였던 생화들을 꺼내고 뚜껑을 덮고 그 위에 “성도 최정숙지구”라는 홍대를 덮고, 미리 깊이 파놓은 구덩이에 관채로 시신을 드리워 내렸습니다. 직원이 삽에다 흙을 퍼서 들고 있으면, 아들에서부터 차례로 지나가면서 그 흙을 한 움큼씩 집어 뿌렸습니다. 나도 그렇게 했습니다. 묘지에는 수백마리의 까마귀 떼가 몰려들어 상공에서 배회하다 날아내려 묘에 세워둔 그리이스정교회 십자가나 묘비 위에 앉곤 했습니다. 공동 묘지 저쪽으로 알마티 시내가 아득하게 보였습니다. 그곳에서 바라보니, 정말 우리나라 춘천처럼, 알마티시는 이곳 언덕과 천산 사이에 움푹 들어가 있는 전형적인 분지에 형성된 도시였습니다.
같은 공동묘지라 해도, 빈부 차이가 있었습니다. 우선 묘비만 해도, 가난한 사람들은 돌이 아니라 강철판으로 된 것을 썼으나, 우리처럼 돌비를 세운 경우도 많았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묘비에 이름과 생년 몰년만 새겼으나 사진까지 넣은 경우도 많았습니다. 봉분처럼 돋우어놓은 흙이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별도로 묘 테두리를 둘러놓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무튼 어떤 경우이든 묘마다 꽃들이 아주 풍성하게 놓여 있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어떤 무덤은 꽃으로 완전하게 뒤덮여 있기도 했습니다. 그런 무덤이 많았습니다. 이곳은 러시아 정교인과 고려인들의 공동묘지인데, 고려인들은 각종 명절마다 와서 꽃을 바친다고 했습니다. 한식날이나 추석날 같은 명절이면 와서 꽃을 놓는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 옆에 무슨 모형 이슬람사원 같은 집들이 모여 있어서, 저게 뭐냐고 물으니, 이슬람교도, 즉 카자흐스탄 현지인들의 공동무덤이라 했습니다.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나중에 그곳에 다시한번 가서 찬찬히 들여다봐야겠습니다.
***추신 : 김장로님한테 들으니, 장례식 때, 시신의 얼굴에 일일이 입을 맞춘다고 합니다. 유럽 일반이 다 그런 모양입니다.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