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도 제28차 산행]
1. 일자: 2012. 06. 23 ~ 24. (1박 2일)
2. 날씨: 첫날 맑다가 흐렸고, 다음날은 흐리다 이슬비가 내린 후 점차 갬
3. 인원: 4명
4. 대상: 대운산 / 울산 울주군, 경남 양산시 소재
5. 코스: 내원골-박치골 (약 9㎞, 27시간 소요)
주차장/상대(15:40)-내원암-안부사거리/이정표-제2봉-상대봉(671m/야영/18:13~14:50)-대운산-안부사거리/이정표-지능선-박치골-주차장(18:23)
6. 후기
이번 토, 일요일은 군에 간 아들 면회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래서 당직도 바꾸고, 뱀사골 야영지에서 있을 <지리구구> 신축모임도 포기한 상태였다. 주말이 다가올 무렵 갑자기 면회일정이 취소되었다. 아들 쪽 사정이었다. 해서 바꾸었던 당직을 도로 원위치하고 근교 야영산행으로 가닥을 잡았다. 소띠 친구들에겐 미안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혼자 그 쪽으로 달려 가기엔 마음의 준비가 안됐기 때문이다.
대운산은 울산과 부산의 근교 산으로, 2000년대 초부터 매년 한 번씩 찾았을 정도로 내겐 금정산이나 천성산 못지않게 매우 친숙한 산이다. 그럼에도 근래에는 찾은 기억이 없다. 2009년 8월에 올라본 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마도 근래 산행의 절반을 지리산이 차지한 게 그 원인일 성싶다. 90년대 중반 직장 봄 야유회로 이 산과 첫 인연을 맺었다. 그때 지도 한 장만 믿고 산행에 나섰는데 비교적 무난하게 마무리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서창에서 올라가 대운산 찍고 장안사로 내려갔었다.
근 3년 만에 대운산을 찾는다. 그것도 야영산행으로. 그래서 미안함이 덜하다. 부산 울산 간 고속도로를 경유해 제3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가 다돼서다. 먼저 와있던 동생이 반갑게 맞아준다. 배낭을 정리하고 매점 파라솔테이블에 앉아 남창막걸리 두 통을 비운다. 내가 일과 후 컬컬한 목을 축이는데 목적이 있다면 한 친구는 늦은 해장인 셈이고 다른 두 명은 부득이 받아준 것이다.
미답지인 내원암을 경유키로 한다. 내원암 가는 길은 흐린 날인데도 후텁지근하다. 오가는 차량과 하산객도 심심찮게 마주친다. 이럴 땐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게 답일지도 모른다. 내원암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훤칠한 팽나무가 기품 있게 서있다. 스님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야트막한 산이 둘러싼 절간은 아늑한 분위기다. 잠시 쉬었다가 물 한 바가지를 들이키면서 절간을 빠져 나간다.
곧 계곡을 건넌 산길은 계곡을 얼마쯤 따르다 좌측 능선 안부로 올라선다. 사거리다. 안부를 넘어가면 도통골로 내려서게 된다. 여기서 제2봉까진 줄곧 오르막으로 땀깨나 쏟아야 한다. 전망바위에 이르러 배낭을 내리고 동해바다를 바라보지만 하늘과 바다가 온통 잿빛으로 분간이 안 된다. 요즘 부쩍 말썽을 부리는 고리원자력발전소도 겨우 눈에 잡힐 정도다. 오른쪽 소나무 사이로 대운산이 흐릿하게 다가온다. 암릉을 따라 올라선 제2봉도 막힘이 덜할 뿐 가시거리는 마찬가지다. 상대봉 바로 아래 야영지에는 노란 텐트 한 동이 보이고 그 옆에도 또 다른 한 팀이 준비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오붓하게 하룻밤 보내기는 틀린 것 같다.
야영지인 철쭉축제 비석이 서 있는 데크에는 제2봉에서 본 그대로 두 팀만 있었다. 우리는 데크 위, 아래 두 군데로 나누어 자리를 확보하고 우측 100m쯤 떨어진 샘터로 간다. 며칠 전 내린 비로 인해 물줄기는 그런대로 괜찮다. 물을 받는 동안 주인인양 달려드는 모기떼에 혈세를 징수당한다. 그리고 텐트 세 동과 타프 한 동을 세우고 야영모드로 들어간다. 달랑 입만 갖고 간 내가 미안할 정도로 갖가지 먹거리가 만찬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어떻게 타프 속으로 들어갔는지 모른다.
다음날, 아침 아홉 시가 넘어서야 겨우 눈을 뜬다. 급할 것도 없는데다 해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해가 떴더라면 벌써 어디론가 사라졌을 것이다. 정신을 차릴 정도로 물을 마시고 나서 주위를 살펴본다. 한 곳에는 지난 밤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만찬장소였다. 두 통 반이나 살아 있는 막걸리에 눈길이 멈춘다. 웬 떡. 잠시 후 다시 둘러 앉는다. 찌개를 끓이고 술이 돈다. 해장인 셈이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날 분위기가 아니다. 날씨도 한몫 거든다. 한 친구는 집안행사 때문에 하산준비를 한다. 어느덧 술은 동나고 퀭한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는데 수십 명이 우르르 올라온다. 창원에서 온 젊은 남녀들이다. 그들은 배낭을 내리자마자 먹거리를 펼치고 불을 피우기 시작한다.
이제 입만 달고 온 내가 재기를 발휘할 때다. 탁발이 필요하다. 하지만 쉽사리 행동하지 못하고 망설일 뿐이다. 그러는 사이 이성과 감성이 싸움을 한다. “체면이 있지 감히 탁발이라니” 하며 이성이 나무란다. “당장 저리로 가라”며 감성이 부추긴다. 이거 참 난감하다. 그때 한 친구가 참외 두 개를 내게 건넨다. 주(酒)님을 모시는데 도움이 된다면서. 그래도 주저하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 위쪽 우측에 자리한 팀으로 간다. “저기요 술이 떨어졌는데 조금 얻을 수 없을까요.” 그러자 저쪽 맞은편에 앉은 한 남자가 아무 말 없이 한 병을 내어 준다. 동시에 가져간 두 개의 참외는 내 앞에 등을 지고 앉은 여성의 손에 쥐어진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꾸벅 하고 우리 자리로 돌아온다. 산에서는 쌀하고도 바꾸지 않는 것이 술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런 술이다. 고마움의 표시로 우리가 끓인 된장찌개를 전해준다.
다시 술병이 돈다. 미끈하게 빠진 술병엔 이슬이 촉촉하게 맺혀 있다. 여인의 잘록한 허리를 안은 듯 감촉이 좋다. 바로 “좋은 데이”다. 이 것이 다할 무렵 또 다른 구세주가 나타난다. 그래서 판은 계속된다. 초딩 친구가 한 일행과 함께 데크에 들어선 것이다. 산꾼 중의 산꾼이지만 산 없인 살아도 술 없인 못사는 친구다. 요리 솜씨 또한 전문가 수준이다. 그런 친구를 산에서 만나다니 하늘이 구세주를 내려 보낸 것이리라. 먼저 빈대떡이 프라이팬에 놓이면서 제 2막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2막의 끝은 기억이 없다. 아무튼 이것 저것, 이술 저술 참 많이도 먹었다.
이슬비가 뿌릴 때 철수를 끝내고 느지막이 하산해서 또 시작했으니,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낸 1박 2일이었다. 그리고 다짐을 한다. 만찬은 평소대로, 조찬은 절주키로. 이번 산행에서 얻은 수확이다. “조찬은 절주키로”. 끝.
[산행사진]
http://blog.naver.com/rawboy/160640668
첫댓글 "절주키로" ...............공감 백배....... 공감............... 모두 절주....... 과연 산이라서 절주가 가능할런지.......ㅇ
명화
잘 읽고 갑니다....슈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