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일생 - 교수라는 이름으로
『스토너』, 존 윌리엄스 장편소설, 알에이치코리아, 2014.
스토너는 어떤 마음으로 한 평생을 살았을까?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을 꿰뚫어 봐야 완벽하게 내안으로 들어온다. 인간은 두 가지 성별을 가지고 있다. 남자와 여자. 남자로 산다는 것에 관해 말할 때 여자는 알지 못한다. 남자가 여자를 모르듯이 말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은 대단한 텍스트다. 한 권의 책으로 한 남자의 일생을 우리는 짐작하게 되기 때문이다.
존 윌리엄스는 『스토너』를 일독한 독자들에게 충고한다. 이 책이 픽션임을, 여기에 묘사된 실존인물은 존재하지 않으며 미주리 대학 영문과의 장소도 사실은 허구였음을 강조한다. 그가 소설이 픽션임에도 왜 독자에게 강조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그는 역설적이게도 스토너를 실존에 존재하는 인물처럼 친근하게 만들어 버렸다. 작가의 탁월한 능력이자 현실감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돼지에게 먹이를 주고 암소들의 젖을 짜고 달걀을 가져오는 일을 맡았던 여섯 살의 스토너는 대학공부도 농장 일을 도울 때처럼 즐거움도 괴로움도 없이 철저하게, 양심적으 했다(p16). 스토너의 부모님은 농장 일을 하면서 즐거움도 없는 노동에 평생을 바쳤음에도 자식도 그러길 바랬다. 그러나 스토너는 숙명에 충실했고 성실했다. 농과대생으로 입학했지만 학문에 눈을 떠버린 것이다. 이를 아처 슬론(교수)는 단번에 감지하고 그에게 학문의 길을 가길 권유한다. 학문과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이로서 스토너는 부모와는 다른 삶 ‘교수’라는 직업에 평생을 바친다. 교수로서 끝없는 지식추구,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 강의를 할 때의 고뇌 등이 고스란히 묘사된다.
평생 교수였지만 교수가 되지 못했던 스토너. 조교수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묵묵하게 대학 연구실에서 보냈던 그는 짧지만 뜨겁게 보냈던 시간도 있었다. 동부의 한 대학에서 코스를 마치고 강사로 있던 캐서린 드리스콜과의 시간이다. 그것은 그를 살아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신분은 연애를 허락하지 않는다. 『스토너』는 일생을 다뤘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결혼생활, 자녀와의 관계, 교수로서 겪는 시련 등이 무게감있게 다뤄졌다.
삶의 끝에 서면 지나왔던 일들이 기록으로 남는다. 스토너도 또한 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p353). 고 이렇게 인생을 기록한다. 누가 스토너에게 무덤덤하게 살았다고 단정할 수 있으랴. 『스토너』를 통해 한 남자로, 아버지로, 교수로 매순간 열정을 가지고 살았음을 이 한권으로 알게 된다. 그의 인생을 완벽하게 알았다고 말하진 못한다. 다만, 어렴풋이 짐작만할 뿐이다. 더욱이 독자가 여자라면 한 남자의 일생을 충분하게 알고 싶다면 이만한 텍스트도 드물다고 본다.
<서평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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