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와 감자
고구마는 말 자체가 덕스러워 보인다.
실제로 나는 고구마를 덕있는 음식으로 본다.
감자라는 말은 어떤가.
강원도 감자바위가 워낙 감자를 싫도록 먹어서 그런가, 감자라면 호감이 없다.
작년 가을 지인이 커다란 수미감자를 반 상자는 되게 주었는데 여태 베란다에 그냥 있어 싹이 반 자는 되도록 자랐다.
오이도 역 뒤 주말농장에 심으라고 집사람이 성화해도 꿈쩍 안 했다. 재작년 그토록 가물던 해 고구마 이백포기 다 말라 죽고 감자 한 바가지 쪼개어 심은 것이 하지 되어 계란 알 만 한 것을 한말을 되게 캤는데, 캐면 뭐라나, 누가 먹어야지. 그래서 그 감자는 베란다 속에 있다가 봄 되어 쓰레기통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고구마와 비교해서 평할 때에는 으레 감자 편을 든다.
지난 해 늦가을 캐다 논 고구마가 맛이 있느니 없느니 해도 너 댓 상자는 되었는데 한 달 전 다 쪄 먹었다.
농사짓는 서실 어르신이 주신 포대용 거름 두어 포를 댓 평 남짓한 밭에 뿌리고 고구마 순을 심었더니 실하게 몸을 불리던 고구마가 캘 무렵 굼벵이 공격을 당해 모조리 겉을 할퀴었다.
화석처럼 굳어지기 시작한 덩어리들을 아까워 큰 놈만 대강 주워 담아 박박 씻고는 큰 식당용 밥통에 넣어 몇 차례 푹푹 삶아 쪄내어 썰어 베란다에 말렸다. 그래도 아랫밭 질퍽한 땅에 심은 고구마는 맛은 없었지만 굼벵이는 핥지 않아 다행이어서 그런대로 한해 겨운 깍아도 먹고 궈도 먹고 쪄도 먹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이라도 고구마가 먹고 싶다는 집사람의 청에는 한 번도 마다 않고 자다가도 일어나서 쪄다주었는데 그게 늘 행복해 했던 것도 맛이야 어떻든 내 농사 직접지은 수확을 내손으로 조리한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늦게 먹는 고구마가 뱃살 불리는데 도움이야 가건 말건...
솔솔 부는 베란다 창에서 바싹 마른 고구마 과자는 돌보다 딱딱하여 먹을 방법이 묘연하여 아직 그대로 쳐다만 보고 있는 실정. 뭐 하나 되는 노릇이 없다.
그렇게 가져오지 말자던 유일한 수확, 늙은 호박은 어떻고, 그놈은 요 몇일 전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문드러졌는데 마치 지구에 왔다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어가는 이티 얼굴 같았다.
기호 식품에 대한 추억이 누구에게나 있다.
어릴 적, 특히 배고프고 추웠던 시절, 특정한 음식은 기억에도 새롭다. 소풍 가는 날 각별히 싸갈 음식이 도시락 외에는 별로 없었던 시절, 인근 부대 장병들이 주말 외출을 나오면 오바 속에 잔뜩 넣어갖고 가져다주었던 커다란, 육군 별표가 선명한 건빵, 그저 그거 한 봉지면 행복하도록 만족 했고 고구마 찐 것 두어 개 추가하면 풍성한 소풍 도시락이 되었다.
과자도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던 시절, 크라운 산도는 정말 맛있었지 않았는가,
객지 나와 의지할 곳 없는 절해고도의 혈혈단신이 마지막 남길 의식(儀式)은 추억의 크라운 산도, 실컷 먹고 보자던 그날 오후 용화사 언덕의 태양은 너무나 강렬했었다. 그리고 더 이상 산도에 대한 그리움은 없고 추억만 남았다.
고구마에 대한 추억은 역사가 산도보다 오래다.
워낙 고구마를 좋아하다 보니 어릴 적, 파란 복(福)자, 수(壽)자 글씨 문양이 빙 둘러 그려진 하얀 사기 밥그릇에 고봉으로 눌러 한 사발 다 먹고는 형수가 이어 누룽지 퍼 오시면 그거 다 먹고 얼마 있다가 간식으로 고구마 쪄 오시면 또 그거 다 먹던, 그런 먹성 좋은 시절의 생각이 떠올라 하는 말이다.
흔히들 감자는 식량이 되어도 고구마는 한 낫 기호식품에 불과하다고 말 한다. 맞는 말일 께다. 1845년부터 1851년 무렵, 감자를 주 식량으로 하던 유럽의 아일랜드에는 심각한 감자 흉년이 들어 한 종류의 감자만 재배하던 아일랜드의 경우 병충해 마름병의 타격이 극심했다. 면역력을 갖추지 못한 아일랜드는 감자로 인해 대기근이 지속되어 당시 아일랜드 인들이 백만 명은 넘게 굶어죽고 호주나 미국, 영국 캐나다로 이주를 택하면서 아일랜드인구는 급격히 감소했던 사건이 있었다.
지금의 미국 아일랜드 주민 3500만명이 다 그 후손이다. 그때 아일랜드 백성이 우리네가 감자 썩으면 버리지 않고 항아리 넣었다가 물 부어 썩혀 녹말을 내어 먹던 지혜가 있었을까 궁금하다. 식량으로 대개 고구마를 주식으로 했다는 민족은 드물고 남미의 경우에도 감자나 옥수수가 주식이었다. 고구마 보다 우선하여 인정받는 원인이 그 식량으로써의 효율 가치에 있기 때문이다.
아마 고구마는 그 달콤한 맛으로 인하여 간식용으로 즐겨 먹으니 인기 있는 음식으로는 으뜸일것이다.
집사람 몸무게가 지난해 겨울동인 5킬로나 늘었다. 고구마 덕인가 한다. 그래서 나는 고구마를 덕있는 음식이라 한다.
고구마는 다이어트 식품이라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