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8 생활 & 문화 산책 궁시렁 궁시렁>
내용증명
스페인 목장 김정택 집사
“오빠? 뭐 이런 게 날아왔던데, 뭔지 봐?”하며 여동생이 핸드폰으로 찍어 뭔가를 보냈어.
이게 뭐지? 수취인은 내 이름이 분명하고 보낸 이는 ‘고객안전관리팀’이라고 찍혀 있었고, 내용증명으로 도착해 있네.
봉곡 어머니집으로 도착한 서류인데 낮에는 사람이 없어서 전달을 못했다고 직접 우체국에 가서 찾아가라고 돼 있었어.
아내와 함께 곰곰이 생각해 봤어. 내가 뭘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연유로 내용증명이란 어마무시한 우편이 나에게 전달됐을까?
한참을 생각해도 짚이는 것이 없긴 한데 ‘고객안전관리팀’이라는 내용으로 봐 내가 판 제품 중에서 아마도 소비자가 뭔가 모를 트집을 잡아 그걸 미끼로 돈을 뜯어내려는 것이 분명하다고 결론을 내렸어.
“일단 상대가 세게 나오고 요구하는 금액이 과도하고 재판으로 끌고 가려고 하면 바로 회사 문을 닫고 기존 거래처는 계속 납품해야 하니 딸내미 이름으로 사업주를 바꿔서 이렇게 저렇게 대응하면 되겠고, 그래도 안 되면 또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하고 그것도 어려우면 서울 쪽에 유능한 변호사를 사서 대응을 해야겠지!” 하며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해 시나리오를 작성했지. 놀란 건 아내도 마찬가지였어. 까딱 잘못하다간 완전 집안이 풍비박산이 날 수도 있으니 잘 대처하자며 격려를 아끼지 않더구만.
차를 세차게 몰아 우체국으로 달려갔어. 내용증명 찾으러 왔다고 하며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니 안쪽 구석에서 한참을 헤매더니 겨우 찾아 주네.
우체국 문을 나서며 바로 등나무 밑에서 내용 확인하기 위해 뜯어서 살펴보았지.
도시가스 검침 안 했다고 도시가스에서 보낸 공문이더구만.
휴우 한숨을 쉬며 세상을 마냥 다 얻은 것처럼 펄쩍 뛰며 콧노래를 불렀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지레짐작으로 서론, 본론, 결론까지 다 정해놓고 걱정했던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더구만. 우리가 걱정하는 일 중에 많은 부분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어떤 어려운 일일지라도 현상 파악하고 듣고, 보고 숙고하고 결정지어도 늦지 않잖아. 인생을 오랫동안 살았고 산전수전 다 겪었노라고 큰소리치며 후배들에게 말하고 다니면서 어찌 되지도 않은 일에 그리 호들갑 떨며 난리부르스를 쳤는지 헛웃음이 나오네.
“아유 택아 ~ 인생 공부 더 해야겠어.”하는 메아리가 울려 퍼지는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