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나뭇개비 끝에 적린(붉은인)·염소산칼륨 등의 발화연소제를 발라 붙이고 성냥갑의 마찰면에는 유리가루·규조토 등의 마찰제를 발라, 이 두 가지를 서로 마찰시켜서 불을 일으키는 발화용구
<발달과정/역사>
1968년 10월 30일 북한 무장공비가 울진지역에 침투당시 국군이 노획한 북한제 성냥이다. 성냥은 1827년 영국의 J.워커가 염소산칼륨과 황화안티몬을 발화연소제로 쓴 마찰성냥을 고안한 것이 최초이다. 1830년 이후 발화연소제로 황린을 사용한 마찰성냥이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 제조되어 실용화하였으며, 1845년에는 A.슈로테에 의하여 해가 없는 적린성냥이 발명되었다. 그후 1848년 독일인 R.뵈트거가 안전성냥을 발명, 이의 보급에 따라 유독하며 자연발화의 위험이 있는 황린성냥의 제조는 각국에서 법률로 제조금지조치를 취하여 현재 생산되고 있는 것은 안전성냥과 황화인 성냥(딱성냥)이다.
황화인성냥은 한국에서 공해로 인한 근로자의 안전을 위하여 1985년 7월 이후 제조금지조치를 취하였다. 세계 제일의 성냥 생산국은 스웨덴이며, 전세계 성냥의 약 1/3을 공급하고 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연한 분홍빛 색갈에 글자가 새겨져 있음.
<정의> 6.25전쟁 당시 사용하였던 성냥 . <정의> 6.25전쟁 당시 사용한 성냥 <발달과정/역사> 작은 나뭇개비의 한쪽 끝에 마찰(摩擦)에 의해 쉽게 발화(發火)가 되는 유황(硫黃)을 붙여 만든 것이다. 서민(庶民)들이 많이 사용하던 화원(火原)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두꺼운 종이를 이용한 포장 상자에 내용믈이 담겨져 있다.
<제원> 가로 10cm, 세로 8cm, 높이 3cm
1983년 12월 3일 북한 무장공비가 부산 다대포에 침투당시 국군이 노획한 북한제 성냥이다. <정의> 나뭇개비 끝에 적린(붉은인)·염소산칼륨 등의 발화연소제를 발라 붙이고 성냥갑의 마찰면에는 유리가루·규조토 등의 마찰제를 발라, 이 두 가지를 서로 마찰시켜서 불을 일으키는 발화용구.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연한 분홍빛 색갈에 성냥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제원> 가로 : 5.5cm, 세로 : 3.6cm
1983년 12월 3일 북한 무장공비가 부산 다대포에 침투당시 국군이 노획한 북한제 성냥이다.
<제원> 가로 : 5.5cm, 세로 : 3.6cm
<정의> 비행 중 불의의 사고로 인하여 비상탈출(非常脫出)한 조종사(操縱士)가 사용하는 점화용(點火用) 성냥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직경 1.5cm의 플라스틱 원통 속에 딱성냥을 보관하여 화력이 요구될 때 점화용으로 사용하며, 연기를 피워 위치를 알릴 때도 사용된다.
<제원> 크기 : 1.5 x 1.5 x 7cm
광복이후(光復以後) <정의> 마찰을 이용하여 불을 켜는 제구의 하나.
<발달과정/역사>
성냥은 마찰을 이용하여 인공적으로 불을 만들어내는 도구로, 인공의 불은 역사시대 이전부터 우리나라를 비롯해 다른 지역도 비슷한 방법을 이용해 만들어졌는데, 주로 충격법이나 마찰법 등을 사용하였다. 충격법으로 불을 만들려면 부싯돌(차돌)을 황철광으로 세게 쳐서 불꽃을 만들고, 거기에 마른 쑥 같은 인화하기 쉬운 것을 달아 불이 붙게 했다. 마찰법은 구멍 뚫린 나무판을 고정시키고 그와 직각으로 나무막대를 구멍 속에 넣어 세게 마찰하여 나무막대에 불을 붙이는 방식이다. 이런 원시시대의 방법 외에도 오목거울이나 볼록렌즈를 써서 햇빛을 모아 불을 일으키는 방식도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오목거울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이미 2세기부터의 일로 알려져 있고, 화경(火鏡)으로서의 오목거울은 양수(陽燧) 또는 금수(金燧)라고 알려졌다. 또 햇빛을 모아 똑같은 원리로 불을 만들 수 있는 볼록렌즈는 이미 통일 이전의 신라 때부터 혹은 그 전부터 화주(火珠)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음이 확실하다. 그러나 실제로 일반 서민들이 불을 필요에 따라 새로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불을 만들어 사용하였는데, 주로 부싯돌을 이용하여 불을 만들었다. 불을 만드는 방법이 근대적인 것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1880년대 이후에 이르러서였다. ≪한성주보≫에 보도된 것처럼 조선에서 처음으로 성냥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영국인이 1885년 8월 서울의 양화도(楊花渡)에 성냥공장을 세우면서부터였다. 때를 같이 하여 석탄과 석유가 연료로 한국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이후 전통적인 발화도구였던 부시는 19세기에 이르러 성냥이 등장하면서 차차 생활권에서 밀려나다가 결정적으로는 라이터가 나타나면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농어촌에서는 이 부시가 1950년대까지도 필수품이었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유물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여러 개의 성냥개비들을 담아서 판매하던 성냥의 상표로, 성냥이나 성냥갑은 남아 있지 않다. 제품명은 기재되어 있지 않는데, 아래에 밝힌 제조사의 이름으로 보아 제품명이 ‘광명성냥’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아 있는 스티커는 주로 성냥갑에 부착하거나 혹은 전단지 등으로 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붉은 색 바탕에 두 마리의 호랑이와 대나무 그림을 그려 놓았고, 그 위에 ‘조치원(鳥致院)’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으며, 제일 하단에는 ‘광명성냥공업사 근제(光明성냥工業社 謹製)’라고 적어 제조사의 이름을 밝혔다. 성냥은 보통 새로 지은 집이나 이사를 한 집으로 집들이를 갈 때에 선물용으로 많이 애용되었는데, 이것은 불은 그 자체가 생명력의 상징이어서 성냥과 같이 불을 일으키는 것을 사들고 인사가게 되면 새 살림이 불처럼 왕성하게 일어나게 된다는 기원을 나타내는 것이다.
<참고문헌>
이규태, 『개화백경3』, 신태양사, 1969
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89
광복이후(光復以後)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유물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여러 개의 성냥개비들을 담아서 판매하던 성냥이다. 제품명은 ‘돈표성냥’이고, 성냥갑은 두꺼운 종이로 만든 길쭉한 직육면체의 곽으로, 뚜껑은 속이 빈 통형으로 만들어 성냥갑을 밀어서 여닫을 수 있게 만들었다. 성냥통의 측면에는 까끌까끌한 종이포를 붙였는데, 거기에 성냥개비를 대고 그리면 불이 일어난다. 뚜껑 윗면은 성냥의 이름처럼 지폐 모양을 본따서 디자인하였는데, 좌측에는 ‘30000’이라는 지폐의 액수를 적었고 우측에는 옛 인물의 흉상을 그려 넣었다. 윗쪽에는 작은 글씨로 의장등록과 상표등록를 적었고, 가운데에는 붉은 글씨로 제품명을 써놓았다. 제품명 위아래에는 ‘한일화학공업사 덕양성냥’이라는 글귀를 적고 도장 모양을 인쇄해서 제조사를 밝혔다. 성냥은 보통 새로 지은 집이나 이사를 한 집으로 집들이를 갈 때에 선물용으로 많이 애용되었는데, 이것은 불은 그 자체가 생명력의 상징이어서 성냥과 같이 불을 일으키는 것을 사들고 인사가게 되면 새 살림이 불처럼 왕성하게 일어나게 된다는 기원을 나타내는 것이다.
광복이후(光復以後)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유물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여러 개의 성냥개비들을 담아서 판매하던 성냥의 상표로, 성냥이나 성냥갑은 남아 있지 않다. 제품명은 ‘매표성냥’이었으며, 남아 있는 스티커는 주로 성냥갑에 부착하거나 혹은 전단지 등으로 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붉은 색 바탕 중앙에 매 그림과 지구본을 그려 놓았고 그 좌우에 ‘매표’라는 제품명을 흰색 글씨로 커다랗게 적었다. 제일 상단에는 ‘TRADE MARK SAFETY MATCHES`라는 문구를 넣었으며, 제일 하단에는 ’응표성냥공업사 제(鷹票성냥工業社 製)‘라고 적어 제조사의 이름을 밝혔다. 성냥은 보통 새로 지은 집이나 이사를 한 집으로 집들이를 갈 때에선물용으로 많이 애용되었는데, 이것은 불은 그 자체가 생명력의 상징이어서 성냥과 같이 불을 일으키는 것을 사들고 인사가게 되면 새 살림이 불처럼 왕성하게 일어나게 된다는 기원을 나타내는 것이다.
광복이후(光復以後) <정의> 나뭇개비 끝에 적린(붉은인)·염소산칼륨 등의 발화연소제를 발라 붙이고 성냥갑의 마찰면에는 유리가루·규조토 등의 마찰제를 발라, 이 두 가지를 서로 마찰시켜서 불을 일으키는 발화용구.
<유래 및 발달과정> 1827년 영국의 J.워커가 염소산칼륨과 황화안티몬을 발화연소제로 쓴 마찰성냥을 고안한 것이 최초의 성냥이라고 알려져 있다. 1830년 이후 발화연소제로 황린을 사용한 마찰성냥이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 제조되어 실용화하였으며, 1845년에는 A.슈로테에 의하여 해가 없는 적린성냥이 발명되었다. 그후 1848년 독일인 R.뵈트거가 안전성냥을 발명, 이의 보급에 따라 유독하며 자연발화의 위험이 있는 황린성냥의 제조는 각국에서 법률로 제조금지조치를 취하여 현재 생산되고 있는 것은 안전성냥과 황화인성냥(딱성냥)이다. 이중 황화인성냥은 한국에서 공해로 인한 근로자의 안전을 위하여 1985년 7월 이후 제조금지조치를 취하였다. 세계 제일의 성냥 생산국은 스웨덴이며, 전세계 성냥의 약 1/3을 공급하고 있다. 한편 세계의 열강들이 성냥제조 수출에 각축전을 벌이고 있을 때, 조선에서는 강철편(鋼鐵片)을 차돌에다 마찰시켜 발생되는 불꽃을 쑥[艾]에 점화하여 불씨를 얻는 방법인 부싯돌을 사용하다가, 소나무를 엷게 깎아 건조시켜 끝부분에 황을 찍어 말린 것을, 화로에 소중히 보존한 불씨에 붙여서 발화시키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불을 이용해 왔다. 1880년 개화승(開化僧) 이동인(李東仁)이 일본에 갔다가 수신사(修信使) 김홍집(金弘集)과 동행 귀국할 때 처음으로 성냥을 가지고 들어왔으나, 일반에게 생활용품으로 대중화하기는 국권피탈 후인 1910년대에 일본인들이 인천에 조선성냥[朝鮮燐寸]을 설립한 것을 비롯하여 군산·수원·영등포·마산·부산에 공장을 설립하여 생산 판매함으로써 가정용으로 보급되었다. 그러나 한국인에게는 공장설치도 일체 허가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술도 배우지 못하게 하여, 한국 시장을 독점하고서는 성냥 1통에 쌀 1되라는 비싼 값으로 판매하였다. 1945년 8·15광복 후 처음으로 한국 사람의 손으로 인천에 대한성냥을 비롯하여 전국에 300여 개의 수공업 형태의 공장이 설립되어 월간 400만 포의 성냥을 생산 공급하게 되었으며, 한국전쟁 후에는 150여 개 업체로 정리되었고, 1970년대부터 자동화시설로 전환함에 따라 업체 규모의 대형화로 업체수가 20개로 감소되었다. 생산능력은 연간 약 2억만 포(500본 기준)로, 한때는 세계 여러 나라에 수출도 하였으나, 최근에는 자동점화장치의 발달, 라이터의 보급 증가로 인한 수요감퇴로 사양화하였다.
<일반적 형태, 특징> 성냥은 대부분의 경우 발화연소제에 산화철·황연(黃鉛)·군청(群靑) 등의 안료(顔料)를 혼합하여 착색(着色)한다. 성냥갑의 마찰면에는 발화제인 적린과 연소조제(燃燒助劑)인 황화안티몬 등의 혼합물에 유리가루·산화철을 혼합하여 콜로이드액 또는 포리졸 등의 접착제로 엷게 칠한다. 성냥개비의 끝을 적린 면에 마찰시키면 적린이 발화하여 그 열로 먼저 발화연소제가 폭발적으로 연소하고 곧이어 나뭇개비에 침투된 파라핀왁스가 연소되어 나뭇개비에 옮겨 붙는다. 나뭇개비의 원목으로는 피나무·사시나무·포플러나무·아스핀 등을 사용한다. 안전성냥의 종류는 통성냥과 갑성냥으로 대별되며, 규격 및 품질은 한국산업규격(KS G 3101)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유물은 사각형 성냥갑에 든 비호표 통성냥인데, 발화원리로는 황화인 성냥에 속한다. 성냥갑의 옆 4면에 마찰제를 발라 놓아 성냥불을 붙이도록 하였다. 윗면의 뚜껑면에는 호랑이 그림을 그려 놓아 ‘비호표’라는 상표를 상징하고 있다. 성냥은 현재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집들이 선물로 성냥을 선물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불처럼 가세가 확 살아나라는 뜻이었다.
<참고문헌> 서울시립대학교박물관, 『우리들이 살아온 21세기』, 2000. 학연사, 『한국민속논고』, 1984. 두산세계대백과사전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유물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여러 개의 성냥개비들을 담아서 판매하던 성냥의 상표로, 성냥이나 성냥갑은 남아 있지 않다. 제품명은 기재되어 있지 않는데, 다만 아래에 밝힌 제조사의 이름으로 보아 제품명이 ‘대동 성냥’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남아 있는 스티커는 주로 성냥갑에 부착하거나 혹은 전단지 등으로 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붉은 색 바탕에 날개가 달린 꽃사슴과 굽이치는 소나무 그림을 그려 놓았고, 제일 하단에는 ‘대동화학공업공사 근제(大同化學工業公司 謹製)’라고 적어 제조사의 이름을 밝혔다. 성냥은 보통 새로 지은 집이나 이사를 한 집으로 집들이를 갈 때에 선물용으로 많이 애용되었는데,이것은 불은 그 자체가 생명력의 상징이어서 성냥과 같이 불을 일으키는 것을 사들고 인사가게 되면 새 살림이 불처럼 왕성하게 일어나게 된다는 기원을 나타내는 것이다.
광복이후(光復以後)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유물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여러 개의 성냥개비들을 담아서 판매하던 성냥이다. 제품명은 ‘아리랑성냥’이고, 성냥갑은 두꺼운 종이로 만든 직육면체의 곽으로, 뚜껑은 속이 빈 통형으로 만들어 성냥갑을 밀어서 여닫을 수 있게 만들었다. 성냥통의 측면에는 까끌까끌한 종이포를 붙였는데, 거기에 성냥개비를 대고 그리면 불이 일어난다. 뚜껑에는 붉은 색 바탕에 ‘아리랑’이라는 제품명 적었고, 그 아래에는 ‘조양산업 주식회사’라는 글귀를 적어 제조사를 밝혔다. 성냥은 보통 새로 지은 집이나 이사를 한 집으로 집들이를 갈 때에 선물용으로 많이 애용되었는데, 이것은 불은 그 자체가 생명력의 상징이어서 성냥과 같이 불을 일으키는 것을 사들고 인사가게 되면 새 살림이 불처럼 왕성하게 일어나게 된다는 기원을 나타내는 것이다.
광복이후(光復以後)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유물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여러 개의 성냥개비들을 담아서 판매하던 성냥이다. 제품명은 ‘운기(雲基)성냥’이고, 성냥갑은 두꺼운 종이로 만든 직육면체의 곽으로, 종이갑의 위쪽 면을 뚜껑으로 만들어 덮었다. 성냥통의 측면에는 까끌까끌한 종이포를 붙였는데, 거기에 성냥개비를 대고 그리면 불이 일어난다. 뚜껑에는 경도와 위도가 그어진 지구 모양 안에 ‘운(雲)’자와 ‘기(基)’자를 각각 넣었고, 그림 위쪽에는 영문 글귀를 적어 놓았으며, 아래에는 ‘대원 성냥 공장’라는 글귀를 적어 제조사를 밝혔다. 성냥은 보통 새로 지은 집이나 이사를 한 집으로 집들이를 갈 때에 선물용으로 많이 애용되었는데, 이것은 불은 그 자체가 생명력의 상징이어서 성냥과 같이 불을 일으키는 것을 사들고 인사가게 되면 새 살림이 불처럼 왕성하게 일어나게 된다는 기원을 나타내는 것이다.
광복이후(光復以後)
<일반적 형태 및 특징> 이 유물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여러 개의 성냥개비들을 담아서 판매하던 성냥이다. 제품명은 ‘지구표성냥’이고, 성냥갑은 두꺼운 종이로 만든 직육면체의 곽으로, 종이갑의 위쪽 면을 뚜껑으로 만들어 덮었다. 성냥통의 측면에는 까끌까끌한 종이포를 붙였는데, 거기에 성냥개비를 대고 그리면 불이 일어난다. 뚜껑에는 경도와 위도가 그어진 지구 모양을 그려 놓았고, 그 위에 날개를 좌우로 넓게 편 새 그림을 그렸다. 독수리 그림 좌우로 ‘지구표’라는 제품명과 ‘특제품’이라는 글귀를 적었고, 새 그림 위쪽에는 영문으로 ‘CHIGU-MATCHES’라고 적어 놓았으며, 아래에는 ‘평화 성냥 공장’라는 글귀를 적어 제조사를 밝혔다. 성냥은 보통 새로 지은 집이나 이사를 한 집으로 집들이를 갈 때에 선물용으로 많이 애용되었는데, 이것은 불은 그 자체가 생명력의 상징이어서 성냥과 같이 불을 일으키는 것을 사들고 인사가게 되면 새 살림이 불처럼 왕성하게 일어나게 된다는 기원을 나타내는 것이다.
성냥은 대부분의 경우 발화연소제에 산화철·황연(黃鉛)·군청(群靑) 등의 안료(顔料)를 혼합하여 착색(着色)한다. 성냥갑의 마찰면에는 발화제인 적린과 연소조제(燃燒助劑)인 황화안티몬 등의 혼합물에 유리가루·산화철을 혼합하여 콜로이드액 또는 포리졸 등의 접착제로 엷게 칠한다. 성냥개비의 끝을 적린 면에 마찰시키면 적린이 발화하여 그 열로 먼저 발화연소제가 폭발적으로 연소하고 곧이어 나뭇개비에 침투된 파라핀왁스가 연소되어 나뭇개비에 옮겨 붙는다. 나뭇개비의 원목으로는 피나무·사시나무·포플러나무·아스핀 등을 사용한다. 안전성냥의 종류는 통성냥과 갑성냥으로 대별되며, 규격 및 품질은 한국산업규격(KS G 3101)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유물은 사각형 성냥갑을 조그많게 만들어 휴대하기 편하게 만든 휴대용 성냥이다. 발화원리로는 황화인성냥에 속한다. 두 개의 성냥갑이 한쌍을 이루는 형태인데 하나는 성냥을 담을 수 있도록 하고, 다른 하나는 그 성냥통을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휴대용 성냥은 일회용 라이타나 지퍼라이타 등의 유행으로 현재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성인 남자들이 담뱃불을 붙이기 위해 지니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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