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던 동네는 화성시 동탄면 신리입니다. 지금은 동탄2신도시로 더 알려진 곳이지요.
농사를 짓던 동네 사람들은 모두 떠나고 지금은 야생동물들만이 좁혀오는 서식지를 고수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멸종위기종2급인 예민한 삵부터 IUCN(국제자연보호연합)의 적색리스트 취약종(중국은 잦은 남획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보호종이고 한국에만 많은 개체수가 살고 있어 절멸위기종)인 눈이 맑은 고라니, 화장실을 따로 갖고 사는 깔끔한 너구리, 내년 봄을 기약할 수 없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쯤 겨울잠을 자고 있을 오소리와 다람쥐, 나무위에서 늘 나를 내려다보는 개구쟁이 같은 청설모, 논 습지에 진흙목욕탕을 만들어 달밤을 즐기는 선녀멧돼지. 그 목욕탕에 알을 낳는 산개구리들, 마을 쥐들의 공포 족제비, 햄스터보다 귀여운 멧밭쥐, 산딸기 밭을 좋아하는 멧토끼, 비오는날 지렁이 사냥을 나와야 볼 수 있는 두더지, 그리고 쥐를 닮아 늘 오해받는 억울한 땃쥐,
어디 이들 뿐인가요. 하늘엔 정지비행의 고수 황조롱이, 여름밤엔 솥이 적다고 노래하는 소쩍새와 긴긴 겨울밤 운치있게 노래하는 수리부엉이 , 양서류를 즐겨 먹어 논습지 근처 숲에서 사랑을 나누는 붉은배새매, 이들은 모두 천연기념물이거나 멸종위기종입니다.
이 밖에도 카리스마의 원조 살모사, 꽃뱀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빛깔의 유혈목이, 알을 좋아해 새들의 미움을 받는 누룩뱀, 청정지역 깨끗한 곳만 고집하는 가재, 도롱뇽, 버들치, 다슬기, 새뱅이새우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야생동물들과 수십종의 곤충들이 살고 있는 동탄2지구, 신리입니다.
지금은 LH공사의 동탄2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고 수백년은 조용했을 산과 하천들이 공사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로인해 저와 화성환경운동연합은 LH의 환경영향평가에서 누락된 멸종위기종 2급인 삵과 수리부엉이, 맹꽁이, 천연기념물 소쩍새와 원앙, 붉은배새매의 존재를 확인하고 이의를 제기해 그들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고 현재 야생동물 사후환경조사도 같이 하고는 있습니다만 기존의 신도시계획은 변경할 수 없고 야생동물들의 이동로도 보장해줄 수가 없으니 공사를 단계적으로 하면 그동안 그들 스스로 어딘가로 이동하지 않겠냐고 합니다. 혹시 이동하지 않는다면 포획하여 다른 곳으로 방사를 하면 된다고 합니다.
근데 말이죠. 우리 생각과 다르게 야생동물들은 자기영역을 웬만해선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곳은 이미 또다른 누군가의 영역인지라 목숨걸고 싸워야 하는 모험을 해야하기때문이지요. 그런 모험을 하느니 그냥 열악해진 기존 서식지라도 어찌어찌 지내고 도시화로 인한 먹이 부족으로 굶어 죽거나 로드킬의 희생자로 우리도 모르게 개체수가 줄어드는 것이지요. 결국 그들은 우리로 인해 사지로 몰리고 간접적인 죽음을 맞이 할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작년 5월경 동탄2지구 공사장에서도 2개월된 어린 삵이 탈진된 상태로 야생동물구조센터에 의해 구조된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올 12월초에 LH공사 관계자들과 삵이동로 사후환경조사를 네번째 다녀왔는데 멸종위기종2급인 삵의 이동로엔 여전히 갓놓은 배설물의 흔적이 보란 듯이 있었습니다. 아니 이길은 삵뿐만 아니라 고라니와 오소리등 야생동물들의 이동로이기도 합니다. 대규모 공사장을 피해 그들만의 은밀한 이동로가 아직은 존재하고 우린 이곳만이라도 지켜주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길은 아파트로 인해 없어져야 하고 사람들의 산책로로 바뀔 것이 뻔합니다. 그럼 이들은 어디로 가야할까요? 그들이 사라진 숲을 차지한다고 해서 우린 과연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예전 우리 선비들은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먼저 자리잡은 나무가 있더라도 그 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피해서 집을 지었습니다. 까치가 먹을 감을 남겨놓는 여유와 공존을 택하며 살았었습니다.
근데 요즘은 어떤가요? 토목건설 기술을 뽐내며 자연을 정복하고 파괴하고 그 위에 빌딩을 짓고 구미에 맞게 단순 식재를 하고 소독이라는 말로 아파트 주변나무에 농약을 뿌려대어 다른 생명들이 깃들 틈을 주질 않습니다. 국적을 알 수 없는 베란다 화분이 집집마다 즐비하고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야생화는 잡초라는 이름으로 아예 발붙일 새도 없이 제초를 당하고 있지요. 자연이 그리워 찾아간 도시 숲은 사람들의 잦은 왕래로 생태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야생동물들도 야생이 아닌 다양한 애완동물로 키워지고 동물원으로 대신하는 슬픈 현실입니다.
요즘 주택공급률이 100%를 넘어섰다는 말이 들립니다. 이젠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봐야할 때라고 봅니다.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사느냐를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세계 행복지수 1위인 부탄은 자연생태계 보전을 위해 나무를 베지않고 국토의 60%를 산림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헌법규정을 만들고 지속적인 보전을 위해 관광객 수도 제한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래도 원시 자연을 보기위해 그 곳을 방문하고 싶어합니다.
또 중남미 국가중 생태가 가장 좋은 코스타리카의 경우는 2차세계대전이후 급속한 개발로 인해 72%였던 숲이 26%까지 줄어들자 숲의 역할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당장의 개발보다는 지속가능한 숲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인식하에 전국토의 23%를 자연보호국으로 지정 생태관광국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스위스도 산림의 73%를 공유림으로 정부가 관리보전을 엄격히 시행하고 5천평방미터 산림벌채는 연방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산이 많다고 산을 없애도 된다는 우리식의 도시개발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알아야할 때입니다.
야생동물들이 생태학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여기서 굳이 설명하진 않겠습니다. 그저 우리처럼 그들도 소중한 생명이라는 것 만으로도 그들은 존재할 가치가 있으니까요.
과거에 무차별 남획과 개발로 사라지게한 호랑이, 표범, 늑대, 여우, 스라소니를 지금은 그리워합니다. 그래서 여우, 산양은 복원도 하고 있습니다만 지금 개체수가 많다고 필요없다고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미래세대에겐 그리움의 대상이 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동네엔 어떤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