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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에 작성했던 글인데 혹시라도 지역화폐운동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있을까 해서 내 블로그에서 그대로 떠다 옮겨 놓는다. 길고 딱딱한 글이지만 한번 읽어봐 주면 고맙겠다. 인천에도 배다리를 중심으로 해서 지역화폐운동을 하는 분들이 계신 걸로 아는데, 요즘은 어찌 되어가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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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부터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한 계획이 있어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지역화폐운동(LETS)이라는 게 있어요.
자본주의적 공황과 실업, 만성적 가난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시작된 경제운동인데요, 상당히 주목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어요. 제가 이 운동에 주목한 이유는 단순해요. 악양에서 몇해 살다보니까 농촌 사회 특유의 고질적 병리현상들이 눈에 띄더라구요.
예를 들면 이런거죠. 농번기만 되면 일손 부족으로 쩔쩔 매면서도 효율적인 노동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점, 품을 사서 일손 부족을 메꿀 경우 현금 손실이 큰 타격이 된다는 점, 만성적인 일손 부족과 정반대로 유휴 농기계는 차고 넘친다는 점, 농민 특유의 소생산자적 고립성 때문에 유휴 농기계의 효율적인 사용이 제한된다는 점, 현금의 절대적 부족으로 기본적인 생활수준 이하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이 많다는 점 등등.......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죠.
이 무수한 문제들의 근원이나 해결책을 생각하다 보면 항상 '농촌공동체의 파괴'라는 결론에 가닿곤 했죠. 즉 두레나 품앗이 같은 전통적인 나눔과 돌봄의 공동체가 파괴되면서 자본주의적 상품경제에 농민 각자가 개별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잘 알다시피 농업이 이윤창출이 불가능한 한계산업인 까닭에 현금 획득이 불가능한 농민들은 만성적인 가난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거죠. 게다가 농촌 사회의 심각한 고령화로 인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시도할 수 있는 노력조차 있을 수 없는 침체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거죠. 한마디로 암담하죠.
개인적으론 다른 문제의식도 있었어요. 우리 속담에 '일하는 사람 옆에 앉아만 있어도 한 사람 몫은 하는 거'라는 말이 있는데요, 정확한 말이예요. 제가 원체 게으르고 일머리가 없는 것도 문제였긴 하지만 귀농 4년차로 들어서면서부터 급속히 농사일에 대한 흥미가 없어지더라구요. 첫 두세해 동안 느꼈던 경이감이나 열정이 서서히 사라져 가면서 느낀 것은 '혼자 짓는 농사 진짜 재미없다'예요. 함께 웃고 떠들고 마시면서 즐겁게 해도 힘겨운 게 농사일인데 혼자서 묵묵히 논밭에서 일하다 보면 '이건 아니다'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뿐만 아니라 농사일의 힘겨움을 덜어줄 농기계가 절실히 필요한데 농기계값이 너무 비싸요. 이윤이 보장되지도 않는 상태에서 일년 중 사용기간이 기껏 10여일에 불과한 농기계를 비싼 돈을 들여 장만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매번 빌려쓸 수도 없으니 이래저래 사면초가의 상황이었죠. 저도 결국은 경운기와 관리기, 예초기 등은 장만할 수밖에 없었는데 중고인데도 값이 정말 만만치가 않아요.
문제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인데도 소농경영의 완고함과 고립성 때문인지 서로 협동하고 도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저 파편화되고 고립된 개인들로 흩어져 각개 약진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거죠. 이 상황을 깨고 출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자각은 이미 몇해 전부터 있었어요. 문제는 누가 그것을 먼저 시작하느냐하는 것이었죠.
제 개인적인 성향이 언제나 걸림돌이었어요. 아는 사람은 잘 알겠지만 제가 원심력보다는 구심력이 강한 스타일이잖아요. '함께 놀기'를 진짜 좋아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혼자 놀기'도 좋아하죠. 게다가 마누라를 등쳐먹고 살아도 크게 불편없는 정도의 여유가 있다보니, 절박함도 부족했죠. 과거의 활동경험이 남겨놓은 기억도 장애요소의 하나였어요. 아무리 작은 규모라도 사람을 조직하고 일을 함께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정열이 필요한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요. 암튼 구구하게 변명할 필요없이 '귀차니즘과 게으름'이 제가 머뭇거린 주된 이유였어요. 지금이라고 달라진 건 없어요. 제가 하루 아침에 '대오각성'하고 '개과천선'해서 '표변'할 수 있는 군자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제 지난번에 이야기한 대로 지역에서 조그만 일이라도 시작해볼까 해요. 힘닿는 대로 작은 노력이라도 해 봐야죠.
돈 없이 잘 살기
- 지역화폐(LETS) 운동에 대한 생각
당연한 말이지만 이 사회에서 돈이 없으면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고, 자식을 교육시킬 수도 없으며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도 없습니다. 아예 인간적인 삶이 불가능한 것이지요.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벌이를 위해 일생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요. 어릴 때 부모가 얼마나 돈을 잘 버느냐에 따라 가정적, 교육적 환경이 달라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청소년기에는 돈벌이를 위한 사회적 자격을 취득하기 위해 살인적인 교육경쟁을 벌이지요. 성년이 되어서도 온갖 굴욕과 수모를 참아가며 적성에도 맞지 않는 직장 생활에 시간을 소모하는 이유도 오직 돈벌이를 위한 것이지요. 노년에도 편안한 여생을 보내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지요. 가히 돈이라고 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요 화두가 되는 것이 자본주의에서의 삶의 모습이지요. 돈을 벌어야만 삶의 기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고 사회적 인정도 받을 수 있고, 행복의 추구도 가능해지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러나 이것이 과연 당연한 일일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없이도 잘 사는 방법은 없을까요? 강요된 돈벌이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고 여유있는 삶을 누릴 수는 없을까요? 자본과 시장이 강제하는 무한경쟁의 압박을 벗어던지고 좀더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 자본주의로부터의 탈주를 꿈꾸는 많은 이들이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지요. 급진적인 일부는 자본주의의 철폐를 부르짖는 정치, 사회적 운동에 투신하고, 소극적인 일부는 귀농이나 공동체 생활을 통해 자족적 생활을 추구하지요. 다른 일부는 내면의 평화를 통해 행복을 찾으려 종교적 명상과 깨달음을 추구하기도 하구요.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은 자본주의라는 감옥, 혹은 삶의 고달픔으로부터 탈주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혁명가가 될 용기도 도시적 상품경제를 벗어날 결단도, 깨달음을 향한 열정도 갖지 못한 채 자본주의가 그려놓은 지옥도와 같은 삶의 미로에서 벗어나질 못하죠. 오히려 대개의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우리 의식 속에 깊이 새겨놓은 마법의 주문, 즉 ‘돈=행복’이라는 지극히 의심스러운 등식을 되뇌이며 돈벌이에 몰두하기에 여념이 없지요.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이 고단한 돈벌이에 의존하지 않고 삶의 여유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없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이들이 고단한 돈벌이의 강박에서 벗어나 돈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하는 다양한 시도가 있으니까요. 그중 하나가 바로 ‘지역화폐(LETS)를 통한 나눔과 연대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1. 지역화폐(LETS)란 무엇일까요?
지역화폐(LETS)란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의 준말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지역 교환-거래체계’ 정도가 되겠네요. 정확히 얘기하면 ‘지역 교환-거래체계(LETS)’와 그 안에서 통용되는 '지역화폐(Local Money)'는 구분해서 불러야겠지만 편의상 지역화폐를 ‘렛츠(LETS)’로 부르기도 하지요.
지역화폐(LETS)란 간단히 정의해서 ‘중앙화폐를 매개로 하지 않는 다자간 품앗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즉 지역 내에서 사람들이 서로 필요로 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자발적으로 교환함으로써 돈이 없어도 일정 수준의 소비 생활이 가능하도록 하는 경제 시스템이라고 보면 되지요. 그 교환의 매개가 되는 것이 바로 지역화폐구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은 거래가 가능하겠죠.
사례 1)
'갑'은 올해 산 컴퓨터가 고장나서 컴퓨터에 능숙한 옆집 '을'에게 부탁해 돈을 들이지 않고 수리할 수 있었다. 얼마 후 계절이 바뀌자 난초 분갈이 때문에 고민하는 '을'을 위해 '갑'는 평소 취미인 분갈이 솜씨를 발휘했다. 컴퓨터 수리와 분갈이 모두 비용이 드는 일이지만 '갑과 을'은 상부상조해 절약도 하고 이웃 간 의리도 다질 수 있었다.
사례 2)
전직 학원강사였던 주부 '갑'은 집수리를 하여야 하는데 수리비가 걱정되고, 주택보수공사 일을 하고 있는 '을'은 자녀과외를 시키고 싶은데 일감이 줄어서 과외비를 댈 여력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 '갑'이 '을'의 자녀 과외를 시켜주고, 대신 '을'은 '갑'의 집수리를 해주었다.
사례 3)
강원도 산골에 살고있는 "갑"은 유기농 농사를 짓고 있다. 그는 자기 집을 심신이 지친 도시인들의 쉼터로 기꺼이 내어주길 원하고 있으며, 농작물 수출을 위해 일본어 회화공부를 하고 싶어한다. 서울에 살고 있는 "을"은 휴가기간을 이용하여 강원도에 차비만 달랑 갖고 가서 편안히 자연을 벗하고 왔고, "병"이 전해주라던 일본어 회화책과 테이프를 "갑"에게 주었다.
<지역화폐(Local money) - 설미정>
여기서 사례 1)과 2)는 전통적인 품앗이, 즉 1:1 노동교환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이구요. 사례3)이 바로 다자간 품앗이(LETS)의 형태를 보여주지요. 이것이 지역 차원까지 확대되어 일정 규모의 회원간 거래가 성립하면 ‘레츠’가 성공적으로 만들어진 거겠죠.
2. 레츠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작동할까요?
레츠는 작게는 3~4인의 소규모로부터 수백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지역 공동체까지 모두 가능한데요, 기본적으로는 회원제로 운영되는 형태를 띠게 되지요. 즉 레츠의 취지에 공감하는 회원들을 모집하여 서로 필요로 하거나 제공할 수 있는 물품을 조사한 후 거래를 총괄할 실무진을 구성해서 그들을 중심으로 ‘사무실(거래 기록소)’ 혹은 ‘인터넷 카페’를 만든 후 그곳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겠죠.
회원들은 가입할 때 자기 앞으로 계좌를 개설하고 교환에 참여하게 되면, 회원들 사이의 거래관계를 일일이 보고 받고 기록하는 사무소를 통해 전체 회원들 각자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나 물품에 관한 목록을 받게 되고, 각자의 계좌현황을 정기적으로 통보 받게 된다. 지역통화체계라고 하지만 레츠에서는 실제로 돈은 사용되지 않고 다만 물건이나 서비스를 사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는 사무소에서 발행한 목록(또는 신문)을 보고, 그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정해진 레츠 가격으로 거래를 성취한다. 거래가 이루어지면 그 몫만큼 그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한 사람의 계좌에는 마이너스가 기록되고, 공급한 사람의 계좌에는 플러스가 기록된다.
<녹색평론 27호>
계좌에 +가 많으면 많이 제공하였으므로 다른 회원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기회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고, -가 많으면 남으로부터 도움을 많이 받았으므로 남을 많이 도와주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0에서 시작하여 -와 +가 적절해야지 상대적으로 -만 많이 있으면 등록소에서 통제를 일정부분 할 수 있습니다. 회원의 요구에 따라 언제든지 개인의 거래 내력은 공개됩니다. 모든 거래는 두 사람의 합의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거래가는 시장에서의 실거래가에 준합니다. 지역화폐 1 나눔은 현금 1원에 해당됩니다. 지역통화 제도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원칙적으로 채권·채무관계가 아니므로 이자가 없습니다. 지역통화 제도는 교환을 위해서만 존재합니다. 축적에 대한 이자는 전혀 없습니다.
- 중략 -
지역화폐 시스템에는 전적으로 시민들의 참여에 의하여 운영되고 시민들의 자율적인 규제와 조정에 의하여 조절됩니다. 개인이 제공하게 되는 지역화폐는 노동, 상품, 기술 등 형태가 가능하며, 일반화폐와 지역화폐도 병행하여 사용할 수 있다. 가령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일반화폐로 50%를 받고, 지역화폐로 50%를 받기 원하면,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은 현금을 50%내고, 나머지 50%는 지역화폐로 계산해야 합니다.
< 설미정 >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해진 레츠 가격’일텐데요. 대표적인 가격 설정 방법으로 ‘노동 가치설’에 근거한 ‘타임 달러’ 방식과 시장 가격에 근거한 가치 결정 방식이 있죠. 이 문제는 좀더 깊이 논의될 필요가 있지만 우선은 일반 시장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현실적이겠죠. 하지만 레츠 운동이 활성화된 지역의 경험을 보면 +계좌가 많은 사람의 경우 -계좌가 많은 사람과의 거래에서 일반 시장가에 훨씬 못 미치는 파격적인 거래를 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하네요. 이것은 레츠가 일종의 나눔과 베품의 기능도 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죠.
3. 레츠가 가지는 장점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으나 가장 핵심적인 것은 ‘돈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점이겠죠. 물론 레츠가 모든 생활물품을 공급할 수는 없겠지만 규모에 따라 상당 부분의 소비 생활을 돈 없이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 유통체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죠.
그 외에도 레츠가 가지는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1) 개인과 개인들 간의 활발한 상호 협력과 상호 부조를 촉진한다.
2) 하기 싫어도 일을 해야 하는 체계와는 달리 교섭과 협상을 통해 서로 조정된다.
3) 돈이 없이도 필요한 사람에게 거래가 가능하다. ( -계좌가 늘어나는 것은 화폐를 발행한다는 의미이다. 이는 재화와 서비스 공유 소유 하에서 자신이 필요한 만큼 화폐를 발행해서 얻어다가 쓰는 형태이다.) 따라서 절대로 돈이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
4) 화폐가 지역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5) 필요한 사람과 제공자가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서로 얼굴을 보면서 거래한다. 따라서 활성화되면, 서비스의 거래를 통한 만족감보다는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기쁨이 이러한 시스템을 더욱 활발하게 가동하는 원동력이 된다.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이며 보이는 손에 의해 시장의 활성화를 이룬다.
6) 일반적으로 물건을 깎거나 싸게 사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역 화폐는 서로가 상대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이것은 서로가 대면성을 갖는 호혜성을 조장하기 때문이다.
7) 지역의 자급자족 시스템을 강화한다. 지역 내에서 서로 공급과 수요를 충족하고 그것을 촉진하기 때문에 지역 내의 자율성을 높인다.
8) 지역 내에게 교환과 거래는 장거리 교환에서 주는 낭비적인 에너지 소비를 줄인다.
9) 생산과 소비, 폐기에 이르는 경제 고리에서 오염을 쉽게 감시할 수 있다.
10) 지역 경제에 재투자되어 친환경 생산이나 서비스 선택을 촉진시킨다.
11) 지역 문화를 생성시켜 공동체를 회복하게 한다.
12) 아이 기르기, 건강한 먹거리 만들기, 헌 물건 바꿔 쓰고 나누어 쓰기 등 간과되기 쉬었던 작지만 소중한 가치들을 서로 합의에 따라 고양시킬 수 있다.
<민들레>
무엇보다도 레츠 시스템은 돈 없이 사람이 생활의 기본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뛰어난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레츠 시스템 속에서는 현금이 없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가 없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작은 행동 - 예를 들어, 아기나 환자를 돌본다든지 텃밭 가꾸기를 대신한다든지 -을 함으로써(또는 약속함으로써), 그 대가로 그는 공동체 내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서비스나 물건을 얻을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교환시스템에 참여해 온 사람들의 증언으로서 가장 주목할 것은 사람 누구에게나 잠재된 기술과 지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는 사실, 그리고 현금 경제 밑에서 궁핍화를 강요당하고 소외되어왔던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쓸모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 됨으로써 자존심을 회복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공동체가 활기를 띠고 살아난다는 사실이다.
<녹색평론 27호>
4. 레츠에서는 어떤 물품이 거래될까요?
아무런 제한이 없습니다. 일반 시장에서 돈으로 거래될 수 없는, 즉 상품가치가 없는 사소한 것들도 모두 교환이 가능하지요. 일례로 외국의 경우 ‘노인들의 말동무 되어주기’도 레츠의 거래품목이 된다고 하니, 자신이 제공할 만한 것이 없다고 고민할 필요는 없겠죠. 무가치하다고 여겼던 자신의 능력과 존재 자체가 지역 내에서 인정받고 교환이 가능한 가치로 평가받게 되는 것이 레츠의 큰 장점이기도 하죠.
영국의 서부 요크셔에 있는 '칼더데일 레츠'는 사람들이 이 시스템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의 범위를 잘 드러내고 있다. 조사에 응답한 사람들 중 69퍼센트는 레츠를 통하여 가사 서비스를 - 아기 돌보기, 청소, 정원 가꾸기에서 수도관 수리, 지붕일, 타일작업에 이르는 - 얻었고, 43퍼센트는 물품을 - 대개 식품과 헌옷 - 마련하였고, 24퍼센트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거나 더 공부하는 데 - 자동차 보수, 페인팅 작업, 빵 만들기, 음악 등등 - 필요한 교습을 받았으며, 17퍼센트는 워드 프로세싱과 같은 사무일에 관계된 서비스를 받았다. 그리고 또 17퍼센트는 도구를(자작도구나 잔디 깎는 기계, 또는 컴퓨터) 빌려서 썼다. 이런 패턴은 우리들이 조사해 본 세 나라 레츠 조직들에서도 대체로 비슷하게 나타나 있다.
<녹색평론 27호>
5. 레츠의 문제점은 무엇일까요?
레츠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온통 장점만 존재하는 이상적인 경제체계라면 좋겠지만 모든 새로운 실험이 그렇듯 난관은 존재하게 마련이죠. 레츠를 활성화시키는 데 있어 가장 큰 난관은 회원들의 소극성과 관성적 태도, 불신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더군요. 광주에서의 레츠 운동의 경우 실패한 주된 이유가 아이러니하게도 지역내 공동체의 강고함 때문이라는 평가도 있어요. 즉 농촌 지역의 다양한 인맥과 혈맥, 학맥 등의 공동체성이 도리어 레츠의 필요성을 반감시켰다는 얘기죠.
신선한 식품을 적고 불규칙한 양으로 거래해야 하는 불편은, 특히 중심적인 회합장소가 없는 경우에, 사는 사람에게나 파는 사람에게나 짜증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내의 여러 실험들에서도 이 문제는 그대로 발견된다. ‘미내사’나 ‘한밭레츠’의 운영자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예컨대 박용남(2001)씨는 "여전히 '벌지 않으면 쓸 수 없다'는 기존 화폐제도의 오랜 관습에 많은 회원들이 길들여져 있어 먼저 거래에 나서겠다는 생각 대신에,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주기만 기다리는 상황이 되풀이되었다."고 안타까워한다. 결국 이런 소극적인 태도는 자연히 타인의 구매욕을 자극할 만한 상품이나 서비스의 제공을 가로막게 된다. 게다가 낯선 사람과 접촉해 협상해야 한다는 어색함, 선뜻 그 가치를 판단하기 힘든 물품이나 용역 앞에서 멈칫거리는 일 등이 거래의 활성화를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이것은 새로운 시스템에 대한 모종의 두려움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크게 자기조직화 과정과 생동하는 연대 과정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문화과학 2002년 겨울호>
“기존에 잘 되고 있는 단체가 뜻이 있어서 지역화폐를 도입하고자 하는 경우는 거의 안 될 가능성이 큽니다........기존 단체들이 착각하는 부분은, 우리는 아나바다도 잘 되고 재활용도 잘 되고 있기 때문에 그런 활동의 성과에 지역화폐를 첨가하면 잘 될 거야, 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오산입니다. 전혀 새롭게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존에 하고 있는 활동과 별개로, 그리고 독립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실패할 겁니다. 기존 활동이 잘 된다고 지역화폐가 잘 될 거라는 믿음은 버려야 합니다.”
<한밭레츠 활동가 ‘모래무지’>
레츠가 활성화되는 데는 다양한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실무진 차원에서는 ‘기존의 관성을 고수하려는 태도’가, 회원 상호간에는 ‘불신’이라는 벽이 가장 큰 문제가 된다는 얘기겠죠. 기존의 자본주의적 거래는 돈을 매개로 해서 서로를 드러내지 않고 상품을 교환하는 물질적 거래인데 비해, 레츠는 교환과 거래에 있어 인간적 요소가 짙게 배어든 새로운 체계이다 보니 뭔가 어색하고 불편한 거죠. 달리 말하면 자본주의적 상품시장의 비인간성이 그만큼 우리를 사로잡고 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겠구요.
6. 레츠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현재 국내에도 20여개의 레츠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중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는 ‘한밭 레츠’의 경험을 살펴보면, 결국 상호 대면을 통한 관계형성이 해답이더군요. 한밭 레츠의 경우 설립후 1년 가까이 하루 1건에도 못 미치는 거래 부진이 계속되었다는군요. 그래서 실무진들이 고민 끝에 시작한 것이 ‘품앗이 만찬’이라는 프로그램인데요. 이 프로그램이 한밭 레츠를 활성화시키는 기폭제가 되었다고 해요. 살펴보니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다른 레츠 운동에도 대개 실행하고 있더군요.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품앗이 만찬’이란 것이 있다. ‘품앗이 만찬’은 한밭레츠의 가장 큰 행사다. 회원들이 음식을 한 가지씩 준비를 해오되, 3-4가족이 먹을 만큼 준비하도록 하고, 이를 가족끼리 나눠먹는다. 음식만 나눠먹는 것은 아니다. 재활용품을 가져와 거래도 한다. 이를 ‘두루 장터’라고 한다. 신입회원들을 소개하기도 하고, 회원들은 서로의 소식들을 알리기도 한다. 적게는 80여 명, 많게는 170여 명의 회원들이 참석한다. ‘품앗이 만찬’은 일종의 회원들 간 교류의 장이다. 2007년에는 총 다섯 번의 만찬이 개최되었다. ‘품앗이 학교’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천연세제 만들기’, ‘천연염색’, ‘강정 만들기’, ‘요가’, ‘산조대금’, ‘어린이 마당극’ 등 회원들이 필요한 내용으로 학교를 개최한다. 적게는 4명에서 많게는 20여 명 이상 수업에 참여한다. ‘계절 활동’은 계절에 맞는 활동들, 즉 봄에는 나물 뜯기, 두부 만들기 등의 활동, 여름에는 매실 따기, 다슬기 잡기 등의 활동, 가을에는 공동 김장 담그기 등의 활동을 통해 회원들 간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든다. 매월 4회씩 ‘이동영화’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한밭레츠 내에 ‘이동영화 위원회’를 별도로 두고 복지관이나 각종 센터 등의 공간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풀뿌리자치연구소 - 김현>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레츠는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어요. 유휴 물품의 교환을 통한 ‘아나바다’류의 재활용(환경)운동으로 볼 수도 있고, 지역의 경제적 문화적 유대관계의 강화를 통한 공동체 복원 운동으로 볼 수도 있고, 유통 분야에서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소비자 운동으로 볼 수도 있고,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생활조합운동으로 볼 수도 있고, 자본주의의 결점을 보완하는 대안경제 운동으로 볼 수도 있죠. 심지어 가라타니 고진 같은 이는 자본주의 경제를 넘어서는 반자본주의 운동의 일부로 평가하기도 하죠. 어떤 평가를 내리든 레츠가 자본주의적 상품-화폐경제의 무한질주와 그로 인한 삶의 황폐화를 넘어설 수 있는 중요한 요소를 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겠죠.
삶에 필요한 온갖 것들이 - 심지어 가장 근원적인 사랑하고 돌보는 일까지 - 슈퍼마켓에서 돈을 주고 사들여야 하는 상품이 되어버린 오늘날의 상황에서, 이웃끼리의 상호의존적인 연대만으로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레츠를 비롯한 지역통화운동의 의미는 단순히 궁핍한 시대의 임시적 생활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님이 확실하다. 지역통화 문제에 관한 어떤 이론가의 말처럼, 이것은 어쩌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 세이팡, 길/ 윌리암스, 콜린(1998), 레츠-상호부양의 교환체계, <녹색평론>
마지막으로 지역화폐에 대한 몇 가지 의문점을 문답 형식으로 정리한 글을 덧붙입니다.
지역화폐에 대한 궁금증 풀기 (설미정)
Q. 많은 잔액을 남겨 둔 채 지역 통화 시스템을 떠나면 어떻게 되나요?
A.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습니다. 시스템에 남아 있는 사람끼리 거래를 계속합니다. 도망자가 다른 회원에게 남긴 +계정은 여전히 회원들에게 유효하게 사용됩니다.
그러나 도망자는 지역 통화 '나눔'을 가지고 도망갈 수는 없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에 대한 책임은 공동체가 전체가 지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이 후, 공동체로 다시 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회원간의 신뢰를 기초로 한 공동체에서 신뢰의 상실은 가장 가혹한 벌이 될 것입니다.
회원에 가입할 때 +,-계좌간의 적정한 균형을 유지하고 모든 정보를 공개하기로 한 것은 이를 통해 회원간의 신용 정도를 가늠하고,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 입니다.
Q. 지역통화 '나눔'을 통해 사업상 어떤 이점이 있나요?
A. 구매자의 입장에서 보면, 보다 적은 현금으로 물품과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으므로 회원의 집을 찾게 될 것입니다. 사업자의 입장에서 보면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에 따라 전체 매출 또한 증가되어 현금 수입 역시 이전과 같거나 증가하게 됩니다. 신뢰에 기초한 지역 통화 '나눔' 회원이 고객이 되므로 성실성이 높아집니다. 마지막으로 지역통화 '나눔'을 통한 광고의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습니다.
Q. 운영경비는 어떻게 충당하나요?
A. 회원들의 동의를 받아 사용됩니다. 매달 발행되는 소식지 발송료, 컴퓨터 통신 유지비등 최소한의 비용을 지불하기위해 거래수수료를 책정합니다. 지역 통화 '나눔' 거래에 대해서는 5%의 수수료를 받아 관리소의 유지에 필요한 지역통화 '나눔' 비용으로 쓰여집니다.
Q. 거래 조건은 어떻게 정하나요?
A. 전부 또는 일부를 지역 통화 '나눔'으로 거래합니다. 이에 대한 비율이나 조건은 전적으로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 정해집니다.
Q. 사무국은 무엇을 하나요?
A. 회원들의 거래 내역을 정리, 계정을 유지하며, 절차에 따라 회원의 가입을 받습니다.
또한 회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며, 홈페이지 등 필요한 컴퓨터 통신을 관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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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제서 글을 봤네..
첨 들어봤는데, 많이 공감이 간다.
글에 있는 사례 말고, 활성화 된 '렛츠' 사례들이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