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동 화장장과 공동묘지
아미동 화장장 (지금의 아미동 천주교아파트 자리)
부산항이 개항되면서 일본인들은 지금의 중구와 서구를 중심으로 정착하는 자가 많았다.
부산부에서는 부내에 흩어져 있는 사영(私營) 화장장(火葬場)인 영도·부산진·아미산·대신리의
화장설비가 불완전하여, 1929년(소화 4) 1월 곡정(谷町) 2정목에 부영(府營)화장장을 신설하였다.
당시 화장장 부지는 968평 3홉, 건물은 136평 6홉의 철근 블록 단층집 건물로 제장(齊場)
정면에 신불(神佛) 양식(兩式)의 재단(齋壇)을 설치했다, 화장장은 무연무취 특허 일제
신식 화장로(無煙無臭 特許 日 新式 爐) 2기를 설비하여 1시간 내외에 완전소각이 가능
하였다 한다. 1933년(소화 8)의 화장장 이용횟수가 1,408회에 달하였다.
1959년 담감동 화장장이 완공되면서 폐쇄되었음
아미동 화장장 자리에 들어선 아미동 천주교아파트 (아미동2가 216-1)
화장장이 폐쇄되면서 그 터를 천주교에서 구입하여 수녀님들 기숙사를 지어
사용하다 1985년6월29일 천주교아파트를 준공하여 일반인들에게 분양하였다.
1909년 아미동 납골 공동묘지 모습, 비석과 묘지 제단이 많이 보인다.
뒤편에는 용두산과 자갈치해변 영도가 보인다. 영도다리가 생기기 전이다.
아미동 비석 문화마을에서 바라본 풍경, 뒤편에 용두산 부산탑과 영도가 보인다. (2014년)
일본인들은 부산 각처에 흩어져 있던 공동묘지를 일본인 전관거류지 외곽지대였던
부산부 곡정(谷町) 아미산으로 옮겼다. 지금의 부산 서구 아미동 산 19번지 감천고개에서
산상교회까지 이어지는 감천고갯길 일대는 일제강점기 시절 공동묘지가 있던 곳이다.
해방후 일본인들이 떠난후 방치되어 잡초지역으로 변해있던 그 곳에 625 한국전쟁
피난민들이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아래와 같은 아미동 비석마을이 생기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 납골 묘지 모습
일본의 묘지들은 바닥이 주변보다 높고 반듯하며 돌 울타리도 있어
비석 들어내고 벽만 조금 더 올리고 지붕만 씌우면 되니 집 짓기 좋은 구조였다.
아미동 비석마을 일본 묘지위에 지은 집 (묘지의 바닥과 벽체를 이용해 그 위에 집을 지었다)
메이지 16년(1883년) 사람의 묘비.....
미야지마 케사오......소화...? 1930년대 죽다?
예전에 이곳이 어떠했는 지를 아직도 잘 나타내고 있는 흔적들이 골목 골목에 남겨져있었다.
담벽과 축대의 일부분으로 쓰인 일본인 비석을 보면서 일제강점기와 6.25사변을 함께 겪은 이곳은
산자와 죽은 자의 영혼이 서로 화합하며 살아가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귀접이 많았다는 동네..
특히 총각들이 많이 당했다고 한다.
기모노 입은 절정 미인들이 다가와 강제로 관계를 가진다고 함.
귀신이라고 느껴질 정도의 의식이 있었는 데도 거부할 수가 없었다고 하며
한번 당할 때 마다 몸무게가 2키로 정도 빠졌다고 한다.
큰 건물을 지으면 일본 혼들이 나타나 방해를 하고 인부들이 죽는 사고도 났다고 함.
사실 관계를 떠나서 일본인 묘터 위에 집을 지어 살다보니 이런 저런 설이
많이 나돌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비석마을 사람들 중에는 제사나 명절 차례 지낼때
일본 영혼들을 위해 제상을 따로 차려 놓고 위로한다고 한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부산시는 지구단위계획을 세운 후 비석문화마을의 세계 유네스코 등재에도 도전한다.
지난해 임시수도 대통령 관저 등 8곳 등이 포함된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이
문화재청 세계유산분과 심의를 거쳐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조건부 등재’가 됐다.
당시 문화재청은 조건부 등재에서 당시 ‘피란민 생활상을 반영하는 유산을 추가하고
신규 추가 유산을 포괄하는 종합보존관리계획 수립’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번 지구단위계획은 이 같은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조처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번 지구단위계획 수립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잘 보여 주고 있는
비석문화마을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세계 문화유산 등재의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 고 부산시에서 2020.10.25 발표했다.
아미문화 학습관
아마문화 학습관 2층에 있는 1세대 사진작가 최민식 겔러리
하늘 전망대
행복마을 안심카페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전경, 상단 중앙 감정초교앞 고개를 넘어서면 감천 문화마을이 나온다.
감정초교는 1979년3월 개교하여 2019년3월 폐교되었다. 주변에 아미동 비석문화마을과
감천문화마을 등이 있어 노년층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 취학 아동들이 거의 없어 폐교하였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은 감천문화마을 보다 볼거리도 적고 규모도 적지만
피난민들의 애환이 담겨있고 분위기가 독특한 동네라 더 관심이 갔다.
아미초교를 졸업한 가수 정훈희(4회), 권투선수 장정구(14회)가 이 지역 출신이다.
정훈희,장정구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감정초교는 개교하기 전이었다,
장정구 선수는 '83년 프로권투 WBC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에 등극한 후
'88년15차 방어까지 성공하였고 2009년 국제복싱연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정훈희는 아미초등학교 총동창회장을 맡았을 정도로 모교에 대한 열성이 대단하였다.
첫댓글 부산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있는 마을이지요.! 지금은 관광지로 변해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