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말기? ∼ 940년 사이에 생존 하신 것으로 추정됨. 이름은 원생(元生)이며 박혁거세(朴赫居世)의 29세손인 경명왕(景明王)의 맏아들로 약, 924년경에 밀성대군(密城大君)에 봉(封)해져 후손(後孫)들이 현재, *밀양[(密陽 : 밀양(密陽)은 경남에 위치한 지명으로 신라 법흥왕(法興王) 때 추화군(推火郡)이 되었다가 757년 밀성군(密城郡)으로 개칭되었다가 고려(高麗) 때에는 밀주(密州)로 하였고, 그후 1895년 밀양군(密陽郡)으로 개칭(改稱)하였다.)]을 본관(本貫)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 내려오고 있다. 묘소(墓所)는 실전(失傳)되고 신라 선원세계(璿源世系)는 경주 숭덕전(崇德殿 : 시조왕[(始祖王)의 사당(祠堂)]에서 편찬한 보첩(譜牒)에 의거하며 밀양에 있는 영남루(嶺南樓)가 밀성대군의 유적지(遺跡地)라고 전해지며 그곳에 이궁대(離宮臺) 풍류현(風流峴) 세루정(洗陋亭)이 있었다는데 이궁(離宮)에서는 신라왕들이 거동하여 놀던 곳으로 신라의 문화행사가 행하여 졌다고 전해내려져 오다가 1921년 여름, 심한 폭우가 쏟아져 산사태로 영남루 북쪽 광장에 커다란 구덩이가 드러난 전문가들 조사에 의하여 밀성대군(密城大君)의 묘소(墓所)임이 확인되었다. 이후 그 자리에 제단(祭壇)을 설치하고 매년 음력 3월3일과 9월9일에 향사(享祀)를 드리고 있다. 밀양박씨(密陽朴氏)의 세계(世系)는 시조 박언침의 8세(世)에서 6파(派)로, 그 아래에서 다시 6파(派)로 나뉘어 크게 12파(派)로 분파(分派)되어 파(派)마다 중조(中祖)를 두고 있으며 이들은 각기 또 여러 소파(小派)로 분파(分派)되어 내려오고 있다. 밀양박씨는 언침의 8세손인 언부(彦孚)를 중시조(中始祖)로 하는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 : 언부公)를 비롯하여 도평의사사공파(都評議事公派: 언상公), 좌복야공파(左僕射公派: 언인公), 밀직부사공파(密直副使公派: 양언公), 판도공파(版圖公派: 천익公), 좌윤공파(左尹公派: 을재公)로 크게 나누고 또한 이들의 후손에서도 진사공파(進士公派: 10세손 원)·밀성군파(密城郡派: 13세손 척)·동정공파(同正公派 : 13세손 원광)·밀직부원군파(密直府院君派: 15세손 중미)·정국공파(靖國公派: 15세손 위)·규정공파(糾正公派: 16세손 현) 등으로 분파(分派)가 되어 크게 밀양박씨의 12파로 나누어져 아래 대(代)로 내려온다. 이 각 파(派)들은 후대(後代)를 다시 내려오면서 여러 계파(系派)로 분파(分派)되었다. 가장 규모가 큰 문중은 문하시중공파(門下侍中公派)의 종파인 은산군파[(銀山公派: 영균(永均)], 행산군파[(杏山君派:世均)]를 비롯하여 좌상공파, 규정공파, 사문진사공파, 밀성군파 등으로 나뉘어지는데, 이들은 또다시 여러 계파로 분파된다. 이 중에서 규정공파가 밀양박씨 분파 가운데 가장 후손이 번창하였고 여기서 나눠진 낙촌공파, 강수문도공파가 주류를 이룬다. 이 외에 사문진사공파와 밀성군파, 좌복야공파 등에서도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