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저브레드(Gingerbread)를 직역하면 생강빵이 됩니다. 그러나 진저브레드를 생강빵으로 해석하다 보면 그 의미를 담아 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수세기 동안 유럽에서 만들어진 진저브레드는 어떤 나라에서는 부드럽고 맛이 좋은 케이크인 반면에 다른 나라에서는 평평하고 납작한 쿠키 형태였으며, 또 다른 나라들은 피처(Pitcher)에 따뜻하고 촉촉한 레몬소스나 휘핑크림이 담겨져 함께 나오는 짙은 갈색의 사각형으로 된 빵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진저브레드라는 의미 속에는 하나의 독립적인 개념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강빵, 생강쿠키, 생강과자가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본래의 단어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저브레드의 주재료는 생강(Ginger)입니다. 생강의 원산지는 말레이 반도(Malay Peninsula)로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중국과 인도에서 약 7000년 전부터 자생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생강의 본래 이름인 징기베르(Zingiber)는 산스크리트어의 신가베라(Singabera)에서 유래하였는데, 이는 생강이 마치 사슴의 가지진 뿔 모양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생강을 약간 깨물어 씹어보면 톡 쏘면서 얼얼하게 퍼져오는 맛이 매운맛하고는 또 다른 느낌을 갖게 합니다. 생강 특유의 향으로 인하여 향신료로 많이 사용되지만, 추위에 몸을 보호하고 복통을 진정시키기 위해 쓰이기도 하였습니다. 그 때문에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약재용으로 생강을 수입하였습니다. 그러나 B.C 2800년경에 로도스섬(isle of Rhodes)에 있는 그리스 제빵기술자는 진저브레드를 만들게 되었으며, 또 B.C 2000년경에 그리스의 부유한 가족들 중에는 ‘향신료가 든 벌꿀 케이크’를 사려고 로도스섬을 항해했다는 기록을 보면 과자를 만들 때 점차적으로 생강 등의 향신료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생강과 진저브레드의 배합표가 유럽으로 전해진 계기는 11세기 십자군 원정에서 돌아오는 그리스도 교도들에 의해서였습니다. 이후 가톨릭 성직자들은 성인 대축일과 축제일 등의 특별한 종교적 행사일에 진저브레드를 굽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자에 디자인된 형태들은 성인들을 묘사하거나 특별한 종교적 주제들을 인각(印刻)하였으며 과자를 찍어내기 위해 만든 목재 조각을 쿠키판(cookie boards)이라고 불렀습니다. 커다랗고 정교하게 묘사된 초기의 진저브레드 쿠키판들은 오늘날에는 매우 희귀하여서 가끔은 책이나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중세시대에 수도원을 중심으로 귀하게 만들어지던 진저브레드는 생강을 페이스트리나 빵 반죽 속에 첨가했을 때 나타나는 보존효과 때문에 향신료 빵으로 급속하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영어의 진저브레드란 단어도 생강으로 보존 가공된(preserved ginger) 과자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는 프랑스 고어인 진저브라스(Gingerbras)에서 파생되었으며 원래는 향신료를 의미하는 라틴어 징게바르(Zingebar)가 그 어원이라 할 것입니다.
아무튼 생강이 유럽으로 전해지고 진저브레드의 배합표가 다양한 변화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각 나라들은 자신들만의 특별한 진저브레드를 유지하고 보존해왔습니다.
영국에서는 노르만정복(Norman conquest) 시대에 필사본으로 쓰여진 진저브레드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단어 자체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gyngerbreed, gensbrede, gyngerbrede, gingibretum 등) 아마도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그리스도 교도들이 저마다 가지고 온 기록들의 차이와도 무관하지 않은 듯 합니다.
영국에서 만든 진저브레드의 초기 형태는 과자가 아니었습니다.
14세기에 처음으로 나타나는 진저브레드의 배합표에는 생강등 향신료와 벌꿀을 넣은 반죽에 빵 부스러기에 섞어서 구운 딱딱한 덩어리의 진저 캔디(Ginger candy)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16~17세기쯤에 빵 부스러기 대신에 밀가루를 사용하고 버터와 계란을 배합표에 추가하므로서 보다 가벼운 쿠키 모양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부드럽고 맛있는 진저브레드가 더욱 유명해진 계기는 많은 축제행사에는 반드시 진저브레드 박람회(Gingerbread fairs)가 열리면서 대중화되어 갔던 것입니다. 영국에서 진저브레드를 페어링스(Fairings)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박람회장에서 산 선물이란 뜻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지요.
17~18세기경에는 여러가지 그림이 디자인된 쿠키판으로 진저브레드를 찍어내기도 했습니다. 장식은 매우 정밀하고 정성이 깃들어 있을 뿐 아니라 사프란이나 계피로 색깔을 입혔으며 황금빛의 금박을 칠하기도 하여서 먹기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조각품처럼 보였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궁전에 초대하는 귀족들에게 여왕의 초상화을 찍어 만든 진저브레드를 선물했다고 합니다.
독일에서는 진저브레드를 레브쿠헨(Lebkuchen)이라고 부릅니다.
교회 미사 때 성찬용 진저브레드로 사용된 레브쿠헨은 1395년 프란코니아(Franconia)의 지대장부(Zinsbuch)에 처음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레브쿠헨이란 이름은 중세시대에 레베코헤(Lebekouche)로 불리었는데, 독일어의 레베(lebbe)는 달콤하다(sweet)는 의미이며 그 단어의 레브(leb)는 그리스 로마에서 만들어 먹었던 얇고 평평한 과자인 리붐(libum)의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수도원에서 주로 만들어진 레브쿠헨은 향신료 반죽에 벌꿀을 넣어서 만든 자연식으로 특히 영양분이 많아 멀리 여행을 떠날 때 가지고 가거나 몸이 허약해서 병이 있는 사람들에게 먹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레브쿠헨을 만들었던 수도원 중에는 스위스에 있는 아인지델른(Einsiedeln)과 성 갈렌(St. Gallen)이 유명합니다.
독일에서 레브쿠헨 생산지로 뉘른베르크(Nurnberg=영어 Nuremberg)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17세기초에 세계 무역의 중심지가 된 뉘른베르크는 레브쿠헨을 만들기 위한 원재료와 향신료가 풍부하게 거래되고 있었으며 인근지역(Reichswald)에는 마을을 둘러싼 거대한 숲이 있어서 레브쿠헨에 필수적인 벌꿀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뉘른베르크에서 만든 레브쿠헨에 카다몬, 정향, 계피, 흰후추, 아니스, 생강 등의 각종 향미재료가 들어가는 것은 지역적인 특수성에서 비롯되었다 할 것입니다.
독일에서는 레브쿠헨을 만드는 생산자들(Lebkuchner)이 동일업종의 길드인 레브쿠헨 제빵업자(Lebzelter) 조직을 만들어 제품을 독점적으로 생산했습니다. 17세기에 레브쿠헨 제빵업자들이 가진 독점적 권리는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을 제외하고는 아무곳에서나 레브쿠헨을 만들 수가 없을 정도로 막강한 것이었습니다.
레브쿠헨은 평평하고 단단한 쿠키 모양의 전통을 지속해 오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진저브레드의 전통은 영국의 것 보다는 독일 쪽에 더 가깝습니다. 그런데 영국이나 독일에서 만든 진저브레드가 쿠키 모양인 반면에 프랑스는 향신료가 든 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선 발효를 시키는 것이 두 나라와는 확연하게 다른 차이를 보여 줍니다. 생강과 아니스 열매, 올스파이스 등 여러가지 향신료를 벌꿀과 혼합하여 만든 짙은 갈색이 나는 빵이지요.
프랑스에서는 진저브레드를 팡 데피스(pain depices, 사진)라고 부르는데, 이는 과자라는 의미보다는 빵의 상징성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더구나 1571년에 팡 데피스를 만드는 프랑스 제빵업자들이 제과업자들로부터 분리하여 독립적인 길드 조직을 형성할 정도로 전문화 됩니다. 팡 데피스는 동부의 상공업도시인 디종(Dijon)을 비롯하여 레임(Reims), 파리(Paris) 등에서 만든 것이 평판이 좋아 프랑스 사람들이 특히 선호한다는군요.
그 이외에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진저브레드가 존재하고 있거나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불리는 팬포르테(Panforte)는 넛츠와 건과일이 들어가 기공이 조밀하고 향이 풍부한 진저브레드로 거의 캔디와 같다고 할 수 있으며, 오스트리아와 바이에른에서는 젤텐(Zelten)이라 불렀는데 평평한 과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15세기경에 스웨덴에서 보여지는 진저브레드 비스킷은 그 기원을 알 수 없으나 오늘날과는 다르게 갈색 모양을 띠는 것이 아니라 흰색이어서 카라멜로 무늬를 장식한 것이었습니다.
미국으로 건너간 유럽의 초기 이민자들은 그들만의 진저브레드 배합표를 가지고 갔으나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향신료를 적게 사용하거나 다른 것으로 대체하였습니다. 메이플 시럽이나 수수시럽을 사용하게 된 것은 그 예라 할 것입니다.
슈렉’(Shrek)이란 영화를 보셨습니까?
숲 속에서 홀로 은둔생활을 하던 못생긴 초록색 괴물이 공주를 구하기 위해 세상으로 나와서 펼치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슈렉’에 이어 ‘슈렉2’까지 나와 인기를 끌었던 유명한 에니메이션 영화지요.
그런데 무심코 지나쳐 버렸던 ‘슈렉’을 꼭 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주 우연이었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T.V에서 방영하는 ‘슈렉’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진저브레드 맨이 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파콰드 영주가 사는 ‘둘락’ 성(城)의 감옥에 갇힌 진저브레드 맨이 파콰드 영주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관심을 불러 일으킨 것입니다.
무언가에 흥미를 느낀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궁금증을 더하여 마음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비디오 대여점에서 ‘슈렉’과 ‘슈렉2’를 빌려 밤 늦도록 졸린 눈을 비비대면서 보았습니다.
특히 ‘슈렉2’에서는 피오나 공주와 차밍 왕자의 결혼식을 방해하기 위해 슈렉이 거대한 진저브레드 맨을 만들어 어깨 위에 올라타고 성(城)으로 들어오는 장면은 압권이기도 했습니다.
진저브레드 맨(Gingerbread man)은 진저브레드로 만든 사람처럼 생긴 과자입니다.
비슷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캐릭터 쿠키의 한 형태로 ‘인형쿠키’가 있지요. 즉 쿠키 반죽을 만들어 밀어 편 후에 사람 모양의 쿠키 틀로 찍어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려 넣어서 구운 것을 말합니다. 제과점에서는 이런 쿠키를 만드는데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서 이윤이 낮아서 잘 만들지 않지요. 그런데 제빵학원이나 백화점 등 제과 강습을 하는 곳에서는 한 두번씩 만들어 보는 제품이기도 합니다. 사람이나 동물 모양으로 찍어낸 쿠키반죽의 바탕에 시가렛 반죽(혹은 조콩드 반죽)이나 커피 엑기스 등으로 무늬 그림을 그려주고 오븐에서 구우면 그 형태대로 과자가 만들어져 나오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인형쿠키는 진저브레드 맨과 닮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이름이 다른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진저브레드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기 때문에 설사 진저브레드 맨을 닮은 쿠키를 만들었더라도 그 어원을 찾아서 붙이는 것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또 굳이 그렇게 해야 할 이유나 필요가 없었던 것이 중요한 요인이었으며, 그러한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로 변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와는 달리 서양에서 생각하고 있는 진저브레드 맨은 어떤 측면에서는 동심(童心)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진저브레드 맨을 주제로 한 동화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이 있으며 학교에서는 직접 진저브레드 맨을 만드는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노래와 시(詩), 만화, 그림카드 등에 등장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고 수학교재에서 그림도구로 이용되어 아이들의 이해력을 높이는데 한 몫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간 신문의 시사만화에도 그려지고 있으니 어쩌면 진저브레드 맨이 생활 속의 한 부분으로써 밀접하게 연관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진저브레드 하우스(Gingerbread house)는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의 집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헨젤과 그레텔’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어린이 동화가 되어서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가난한 나무꾼의 집에 들어온 새엄마는 생활이 궁핍하여 남편에게 두 아이를 숲 속에 버리자고 조르고, 나무꾼은 마음이 아팠지만 헨젤과 그레텔을 숲 속으로 데려가서 버려두고 옵니다. 첫 번째는 헨젤이 길에 떨어뜨린 조약돌을 찾아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되나, 두 번째는 조약돌을 준비할 수 없어서 빵 조각을 떨어뜨려 놓습니다. 그러나 빵 부스러기를 새들이 주워먹고 없어서 길을 잃고 헤매던 중에 과자로 만든 집을 발견합니다. 그 집은 마녀가 살고 있는 집이었으나 배가 고팠던 헨젤과 그레텔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과자로 만들어진 집을 맛있게 먹기 시작했지요.
이야기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화책을 읽는 수 많은 아이들의 눈에 비치는 과자의 집은 상상의 이미지를 펼치게 하는 마술과도 같습니다. 아이들이 숲 속에 버려진 비정한 슬픔은 사라지고 마음으로 느끼던 정서적인 연민(憐愍)도 눈 앞에 보이는 육감적인 기쁨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나아가 과자의 집에 사는 마녀와의 관계로 설정되는 구도는 아이들에게 용기와 지혜의 기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