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의 병과중 공병은 사단급 부대에 대대급 부대가 편성되고 군단급 부대에 속한 공병부대는 여단급이나 연대급이다.
육군 말고 해군이나 공군 그리고 해병대에도 공병부대는 있으며 해병대의 공병은 육군의 병과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배치된다.
보통 공병 1개 중대가 보병여단(과거 연대급)을 지원한다.
공병부대는 전 후방에 어디에 있어도 병력편제를 할 때 인원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이는 다양한 공병의 주특기가 있어야 파견도 보내며 다양한 부대 임무를 하게 되는데 보통 3개 중대가 모이거나 4개 중대가 모여 대대가 구성이 되지만 공병대대는 2개 중대가 모일 경우도 있다.
국군이 창설될 때 공병 또한 병과를 만들어 창설이 되는데 국방경비대 시절인 1948년 초반 공병부대가 만들어 지며 공병학교에서는 다양한 주특기를 가진 병력들을 양성한다.
6.25 동란이 발생했을 때 초기 교량을 파괴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것 때문에 북한군의 진격이 빨라지자 한강다리를 급히 폭파하여 공병감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기도 했는데 후에 소명은 되지만 죽은이는 살아 올 수 없었다.
영화에서는 웰컴 투 동막골에서 신하균 배우가 연기한 '표소위'의 전투복에 공병장교 휘장이 눈에 잘 드러나는데 당시의 상황과 딱 맞지 않지만 공병장교의 모습을 잘 재현한 것 같다.(표소위는 다리 폭파에 대한 죄책감으로 탈영)
각 군단 뿐 아니라 군 사령부 급에도 공병단(연대급)이 있고 전문화 되어 있으며 휴전 후엔 김해에 공병학교에서 공병장교와 공병주특기를 가진 부사관과 공병주특기병을 양성했으나 지금은 장성에서 여러 전투병과 학교와 같이 한 곳에서 병력을 양성한다.
건군초기 다른 병과와는 달리 개성있는 병과휘장 만드는 데 미군것을 본 따기 보다는 우리 고유의 독립문을 상징으로 했으나 60년대가 넘어가면서 병과휘장은 변화를 한다.
기존의 것은 은색에 독립문 모양이지만 60년대 이후 금색에 칼을 넣었다.
사병용
돌아가신 아버지가 공병하사관(지금은 부사관으로 불림)으로 야공단에서 차량선탑도 하시고 한때는 공병소대장(장교가 부족하다 보니) 그리고 고속도로 건설과 여러 나라 참전비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셨다.
전쟁이나 각국 전쟁의 초기에 병력을 보내 참여하며 (비둘기 부대, 상록수 부대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공병은 피해를 복구하고 초기 전쟁이나 전쟁 이후도 여러 가지 임무를 부여 받고 많은 일을 하는 중요한 부대이다.
유명한 맥아더가 공병장교로 시작을 했다고 하는데 야전군인의 꽃은 보병이지만 이를 도와주고 크게 하는 건 공병이라 생각한다.
육군 공병가의 가사를 보면 공병의 이미지가 잘 나와있다.
적막고 전우의 길을 터주는 맹수라 용감한 육군 공병들...
과거 전방사단에서 체육대회를 하면 전방에 나가 있는 보병이나 그 뒤에 있는 포병보다 사단사령부 근처에서 늘 작업과 교육을 하던 공병대대 병력들이 줄다리기나 씨름을 우승하고 단체점수가 높아 우승기도 가지고 가는 것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건장한 이들이 많았던 것 같고 급수니 목욕탕 및 막사건설을 위해 투입되는 병력들을 보면 점호 없이도 잘 통제가 되고 유지가 되었다고 한다.
타 장교들에 비해 뒷모습을 보면 병사들과 구별이 어려웠다고 하는데 그만큼 현장에서 오래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지금은 다양한 장비를 운용하고 더 전문화가 되어 과거의 이미지와는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