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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맞아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이 추석 차례상 앞에서 절을 하고 있다. 추석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은 대체로 사과, 대추, 시금치, 고사리 등으로 구체화해 전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품 목을 구체적으로 정한 옛 문헌은 찾기 어렵다. 더군다나 제철이 아닌 시금치나 배추 등은 맛이 덜 들었고, 사과나 배 등은 생장 촉진제를 이용해 재배하기 때문에 풋내가 나는 경우가 상당하다. / 조선일보 DB
공자 이래로 적어도 주자 이래로 그랬을까? 아니다. 유교식 법도의 모본인 '주자가례'를 봐도 과일, 소채, 포 등으로 대분류만 해놓았지 그 구체적 품목은 없다. 대추 놔라 밤 놔라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러면 조선에서 누군가 저 상차림을 만든 것은 아닐까 싶지만, 조선에서도 그런 법도 따위는 없다. 과일, 나물, 포, 적 따위의 대분류만 있지 구체적으로 사과 올려라 배 올려라 하지 않았다. 그러면,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이 똑같이 차리는 저 차례나 제사 음식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길어봐야 가정의례준칙 같은 게 나온 일제강점기이고, 짧게는 6·25전쟁 이후 가정생활백과, 가례집 등이 보급되면서부터의 일이다. 명절만 되면 상차리기 그림을 그려 실은 신문도 저 상차림의 보급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여기서부터, 우리는 우리 조상의 신분과 계급에 대해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조상에게 제물을 바치고 예를 올리는 계급은 유교 질서를 굳건히 지켜야 하는 양반들이 하는 일이었다. 그 아래아래의 계급인 '상것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성씨도 없는데 예 올릴 조상이 어디에 있겠는가. 조선 초기 양반은 인구의 10%, '상것들'은 70% 정도였다. 조선 중기에 들면서 양반이 급속히 늘어나는데 군역을 피하기 위해 족보를 산 '상것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일이다. 구한말 신분제도가 사라지면서 양반이라 주장하지 않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다들 양반이 되었으니 유교의 법도에 따라 시시때때로 조상에게 예를 올려야 했다. 그러나 어떻게 제사상, 차례상을 차려야 하는지 몰랐다. 가장 좋은 방법이 남의 집 상차림을 쫓아 하는 것이었다. 이를 가가례라 한다. '국민 계도' 차원에서 이 집안 저 집안의 가가례가 가례집, 생활백과, 신문 등등에 올랐다. 그러면서 제물이 구체화되었다. 예를 들어 과일이면 되었던 것이 대추, 밤, 사과, 배 식으로 그림이 그려졌다. 조율이시니, 홍동백서니, 생동숙서니 하는 말도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대한민국에 유교적 신분과 계급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스스로 양반이라 하여도 덕 볼 것은 없다. 아직도 양반 상것 가리겠다 하면 오히려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명절이나 제사에 음식을 차리는 일을 두고 '양반놀이'라며 그만두자 할 것은 아니다. 산업화로 온 가족이 흩어져 살 수밖에 없는 이 대한민국에서 명절이나 제사에 다 같이 모여 음식을 먹는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럴 것이면, 기왕이면, 맛있는 음식을 차리는 것이 어떨까 싶은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맛없는 음식으로 추석상을 차리는지 꼼꼼히 살펴보겠다. 나물에 시금치, 고사리, 도라지가 꼭 놓인다. 시금치는 겨울 채소이다. 요즘 시금치는 물맛밖에 안 난다. 고사리는 봄에 따다 말려둔 것인데 여름을 넘겼으니 그 향이 흐리다. 도라지는 꽃이 지고 잎이 시들어야 도라지의 향이 짙어진다. 지금 것은 도라지인가 싶을 정도로 향이 없다. 곶감은 지난해 것이다. 햇곶감이 나오려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사과는 바닥에 반사판 놓아 때깔만 붉게 올렸지 아직 풋내가 있다. 배는 정말이지 너무 맛없다. 추석 특수에 맞춘다고 지베렐린(생장촉진제) 처리한 것이 대부분이라 크고 때깔만 나지 무보다도 못하다. 대추는 아직 녹색이라 단맛이 없다. 추석이 지나야 붉게 익고 그때이면 설탕같이 달다. 여름 배추는 질기고 아린 맛이 있다. 9월 조기는 여름 조기에 든다. 살이 무르고 맛이 없으며 비리다. 대구와 명태는 원양의 냉동이다. 제철을 피해 맛없는 것만 고르는 '신기'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 후기의 유학자 유장원이 쓴 '상변통고'라는 책이 있다. 유교식 예법을 정리해놓은 책이다. 그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후한서'에서 안제(安帝)가 조칙을 내리기를 '무릇 천신하는 새 음식이 제 절기에 맞지 않은 것이 많아서, 혹은 덮어 키워 억지로 익히고, 혹은 땅을 파서 싹을 틔우기도 하여 맛이 제대로 나기도 전에 자라나는 것을 꺾어내니, 어찌 철에 순응하여 사물을 육성하는 도리이겠는가? 지금부터 제사를 받듦에는 모름지기 철에 맞추어 올려라'고 했다."
안제는 후한의 황제였으니 2000년 전의 일이다. 조선의 유학자 유장원도 안제의 말을 따르라고 이 말을 그의 책에 써놓았다. 나도 그 말을 받아서 쓴다. "추석상에 제철의 맛있는 음식을 올리자." 개화한 대한민국 국민이 조선의 양반보다, 아니 2000년 전 중국인보다 융통성이 없다니 황당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