郡守海觀金秀男居士功德碑
창공이 내려 앉아 청산 곁에 기대서고
청산은 길을 비켜 하늘을 담아내다.
홑날리는 눈보라를 빈손으로 껴안더니
오늘은 복사꽃비 하늘 덮어 청산이라.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수많은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바 어떤 인연보다 지중(至重)한 부처님과 인연을 맺었으니 전생(前生)의 적선(積善)과보(果報)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여기 백두대간(白頭大幹) 허리에 자리한 소백산(小白山) 용문사(龍門寺)와는 실로 두터운 불연(佛緣)으로 복원(復元)과 중창 불사(佛事)에 기여한 공적이 크기에 이를 기려 의미를 새기고자 한다. 그의 법명(法名)은 해관(海觀)이고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일구사삼년 삼월 삼십일일 예천군 예천읍 왕신리(旺新里)에서 아버지 김이준(金二俊)공과 어머니 박옥춘(朴玉春)여사 사이에서 육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부인 임혜숙(林惠淑)보살과 사이에 이남 이녀를 두었다.
남달리 불심(佛心)이 깊은 그는 일구팔사년 사월 초파일 불의의 화재(火災)를 당한 용문사를 복원코자 복원불사 추진위원장을 맡아서 보광명전과 영남제일강원 해운루 등을 건립하는데 앞장섰으며 동향각 대장전 보광명전 그리고 극락전 보수와 주변정리 식당 건립 등에 진력하였다.
아울러 예천불교연합신도회장으로서 각 사암(寺庵)의 불사에 적극 동참하고 지원하는 한편 매년 부처님 오신날 봉축 법요식이 원만하게 진행 될 수 있도록 앞장서서 힘을 기울였다. 특히 이십일세기 문화의 세기를 맞아 유교문화권개발사업으로 용문사 경내 정비사업을 벌여 소공원과 주차장 그리고 진입로 등을 일제히 정비하여 새로운 천년고찰로 거듭나게 하였으며 주지(住持) 청안(淸岸)스님과 함께 성보유물관(聖寶遺物館)을 건립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사업비 육십억원으로 이천오년 유월 십이일에 착공하여 이천육년 십월 삼십일에 완공하였다. 지하 백삼십평 지상 백십팔평 등 이백사십팔평 규모의 목조(木造)한식(韓式) 건물을 세우는 대원력(大願力)을 성취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분실(紛失)과 관리(管理)부실이 우려되는 귀중한 성보 유물을 영구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불자들의 신심(信心)과 지혜(智慧)가 증장(增長)되고 이 지역의 관광명소(觀光名所)로 조성하는 등 소신(所信)있는 불자로서 또한 기관단체장으로서 공로가 지대하였다. 이에 용문사 신도회(信徒會)가 중심이 되어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 뜻을 영원히 보존되기를 기원하면서 이 비석을 세운다.
불기 이오오일년(서기 이천칠년) 사월 초파일
법사(法師) 향등(香燈)이 글을 짓고
주지(住持) 벽담(碧潭) 청안(淸岸)大和尙이 증명하며
용문사 신도회장 박일순(朴一純) 거사 및 신도회에서 세우다.
(신도회부회장 : 박준수, 박희식, 박휘식, 박택상, 운영위원: 장면식, 김철진, 장인복)
제일 앞줄에 보문사 도문스님, 신도회장 박일순님, 청안벽담 용문사 큰스님,
군수님 내외분, 김수철박사님
당일 사회를 맡은 용문사신도회 총무국장 장면식입니다.
용문사신도회 박일순회장님
예천군불교사암연합회장이시며 용문사 주지스님이신 벽담청안 큰스님
공덕비 제막식 광경
공덕비의 주인공이신 예천군연합신도회장이기도한 김수남 군수님
행사에 참석하신 김승동면장님을 비롯한 사부대중
한과공장의 팀으로 능천아지매, 박재기동창 형수, 이동석, 지용갑동창 형수님
김학윤서예인연합회장, 용문사 신도회 박희식(박순식동창의 형님), 박휘식부회장,
박일순신도회장,박우상작목반장(박규상동창의 형님), 박준수 부회장님
본사진은 인빌(금당실정보화마을)에서 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