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초 김응현 선생의 생애
출생과 가문
여초 김응현 선생은 1927년 1월 22일 서울 강북구 번동
(당시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번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명문가 출신으로, 병자호란 당시 청과의 화의를 거부한
청음 김상헌의 14대손이며, 문곡 김수항의 12대손입니다.
여초의 가문은 청백과 절의, 학문 정진의 가풍으로 유명했으며,
대대로 명필가를 배출한 집안이었습니다.
# 교육과 서예 입문
어린 시절 여초는 구한말 비서원승을 지낸 조부 김동강으로부터
한학과 서법을 배웠습니다[2]. 숭인보통학교 시절부터 당나라
유명 서예가들의 해서를 배우기 시작했고,
1930년대 말에는 중국 한나라와 위나라의 비첩들을 접하며
서예에 대한 깊은 관심을 키웠습니다.
# 서예 활동과 업적
1956년 '동방연서회' 설립회원으로 참여했으며,
1969년부터는 이사장으로 활동하며 수천 명의 제자를 양성했습니다
. 여초는 서예잡지 <서통>과 <서법예술>을 창간하는 등
서예 보급에도 힘썼습니다.
여초의 서예 실력은 "추사 이후 여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뛰어났으며, 해서, 행서, 초서, 예서, 전서 등 모든 서체에 능통했습니다.
특히 2003년 76세의 나이에 완성한 '광개토대왕 비문'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 말년과 유산
1996년 인제군 북면 한계리에 '구룡동천(九龍洞天)'이라는 집을 짓고
만년을 보냈습니다. 2007년 80세의 나이로 타계했으며,
그의 유산을 기리기 위해 2013년 6월 인제군에
여초서예관이 설립되었습니다.
여초 김응현 선생은 한국 서예계의 거장으로,
전통 서예의 복원과 발전에 평생을 바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출처] 여초 김응현 선생님의 간략한 일대기|작성자 진소왕태극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