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11월 7일)●
1818년 독일의 동물생리학자 에밀 뒤부아레몽 출생
1840년 러시아의 동물학자 알렉산드로 코발레프스키 출생
1856년 (조선 철종 7) 추사 김정희 세상 떠남, 조선조 금석학자. 저서: 원당집, 금석과안록
1867년 폴란드 출신 프랑스 여류 물리학자 마리 퀴리 태어남
( 라듐과 플로늄 발견으로 1903년 노벨물리학상수상, 금속 라듐의 분리성공으로 1911년 노벨화학상 수상)
1867년 마리 퀴리 부인 출생
1876년(조선 고종 13) 한글학자 주시경 태어남
1879년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 출생
1901년 청 나라 정치가 이홍장 세상 떠남
1903년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로렌츠 출생
1908년 어업법 반포
1910년 러시아 작가 레오 톨스토이 세상 떠남(대표작: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카레리나, 참회록)
1911년 국세징수령 공포
1913년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 태어남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지 마라. 최후의 심판은 날마다 발생하고 있다.")
1913년 영국의 박물학자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 사망
1913년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 출생
1915년 월북 사학자 김석형 출생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일어남
1921년 이탈리아, 국가파쇼당 창당
1922년 소련, 코민테른 기념 중앙 라디오 본 방송 개시(소련 라디오방송 정식 개시)
1923년 대전에서 전국형평사대표자대회
1928년 미국 제31대 대통령에 후버 당선
1931년 강서성 서금에서 중화소비에트 임시중앙정부 수립. 주석에 모택동
1932년 제2차 쌍성보전투
1944년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에 4선
1945년 함흥반공학생의거 발생
1950년 이발료 300원, 목욕료 100원
1950년 유엔안보리, 한국대표 초청안 가결
1952년 레바논, 부녀자에 참정권 부여
1953년 막사이사이,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
1953년 발칸3개국, 조약부속의정서에 조인
1955년 부산 초량동 공설시장에 화재. 518개 점포와 주택 57동 전소
1955년 영국 애틀리 노동당수 사임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 대표작: 이방인, 페스트, 시지프스의 신화
1962년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 사망
1962년 주은래, 인도가 중국의 주장선을 인정한다면 국경선에서 중국군을 철수시키겠다고 통고
1968년 공산당 제1서기로 체코의 '프라하의 봄'을 주도. 70세
1972년 미국 대통령에 리처드 닉슨 재선
1973년 민복지연금법안 확정
1975년 해군기동연습서 함대함미사일 시험발사 성공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 발족(사령관에 베시 대장, 부사령관에 유병현 대장 임명),
신흥재벌 제세산업 이창우 구속(외환관리법 등 위반), 제세산업 도산
1979년 한국서 첫 1란성 5 쌍둥이 태어남
1980년 미국 영화배우 스티브 매퀸 사망
1980년 정치풍토쇄신위 발족. 위원장 김중서 대법원장
1982년 레바논, 한국에 파병요청
1982년 서아프리카 오트볼타에 쿠데타
1983년 동아건설, 단일공사로는 최대규모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 수주(수주액 32억9천7백만 달러)
1983년 한국-파키스탄, 국교수립
1984년 신병현 국무총리 권한대행 취임
1988년 인천 남구 아파트서 도시가스 폭발. 1명 사망, 26명 부상
1990년 보리사브 요비치 유고대통령, 동구권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한국방문
1990년 유태인방위동맹 지도자 카하네, 뉴욕서 피살
1991년 노태우 대통령, 미야자와 일 총리에게 정신대 진상 규명 요구
(미야자와 일 총리, 국회 연설에서 사죄와 반성 표명)
1991년 SBS TV방송, 시험전파 발사
1992년 '프라하의 봄'을 주도하고 체코 공산당 제1서기였던 두브체크 세상 떠남
1993년 대전 EXPO 폐막[8월 7일 개막된 뒤 93일간 개장,
이 기간 동안 입장자는 모두 1400만 5808명 (외국인 70여만명)]
1997년 김영삼대통령, 신한국당 탈당
1997년 신한국당과 민주당 합당 선언
1997년 유학자 류정기 옹 별세
1998년 조용필 음악30년 콘서트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 미국 뉴욕주 상원의원 당선
2004년 이라크 임시정부, 이라크 전역 60일간 비상사태 선포
2004년 중국 뤄양 룽먼석굴서 백제불상 첫 발견
2005년 감옥서 사상 첫 복싱 세계챔피언전(태국)
2005년 전교조의 교원평가제 실시 반대 집회
2005년 한국·벨기에 확대정상회담(서울)
1856(조선 철종 7) 추사 김정희 세상 떠남 조선조 금석학자. 저서: 원당집, 금석과안록
1876(조선 고종 13) 한글학자 주시경 태어남
1945 함흥반공학생의거 발생
1950 이발료 300원, 목욕료 100원
1955 부산 초량동 공설시장에 화재. 518개 점포와 주택 57동 전소
1978 한미연합사령부 발족
사령관에 베시 대장, 부사령관에 유병현 대장 임명
신흥재벌 제세산업 이창우 구속(외환관리법 등 위반), 제세산업 도산
1979 한국서 첫 1란성 5 쌍둥이 태어남
1983 동아건설, 단일공사로는 최대규모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 수주 수주액 32억9천7백만 달러
1988 인천 남구 아파트서 도시가스 폭발. 1명 사망, 26명 부상
1990 보리사브 요비치 유고대통령, 동구권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한국방문
1991 SBS-TV, 시험전파 발사
노태우 대통령, 미야자와 일 총리에게 정신대 진상 규명 요구
미야자와 일 총리, 국회 연설에서 사죄와 반성 표명
1993 대전 EXPO 폐막 8월 7일 개막된 뒤 93일간 개장
이 기간 동안 입장자는 모두 1400만 5808명 (외국인 70여만명)
1997 신한국당과 민주당 합당 선언
1867 폴란드 출신 프랑스 여류 물리학자 마리 퀴리 태어남
라듐과 플로늄 발견으로 1903년 노벨물리학상수상
금속 라듐의 분리성공으로 1911년 노벨화학상 수상
1901 청 나라 정치가 이홍장 세상 떠남
1910 러시아 작가 레오 톨스토이 세상 떠남 대표작: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카레리나, 참회록
1913 프랑스 실존주의 작가 알베르 카뮈 태어남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지 마라. 최후의 심판은 날마다 발생하고 있다."
1957년 노벨문학상 수상. 대표작: 이방인, 페스트, 시지프스의 신화
1917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일어남
1928 미국 제31대 대통령에 후버 당선
1944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에 4선
1953 막사이사이, 필리핀 대통령에 당선
1972 미국 대통령에 리처드 닉슨 재선
1990 유태인방위동맹 지도자 카하네, 뉴욕서 피살
1992 체코 공산당 제1서기였던 두브체크 세상 떠남
1968년 공산당 제1서기로 체코의 '프라하의 봄'을 주도. 70세
●마리 퀴리 태어남(1867.11.07)
폴란드 출신 프랑스 물리학자 마리 퀴리가 1867년 11월 7일 태어났다. 아버지는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치는 교사였는데 넉넉하지 않은 집안형편으로 가정교사 노릇을 하며 공부했다.1891년 프랑스 소르본대에 들어가 물리학을 전공했으며 결혼 후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방사능에 흥미를 느껴 함께 연구했다. 이 공동연구로 1898년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했다. 이 두 원소는 최초로 발견된 방사성원소로, 특히 라듐은 우라늄에 비해 훨씬 강한 방사능을 지녔다.1903년 앙리 베크렐, 피에르 퀴리와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1911년에는 순수 라듐을 분리해낸 공로로 노벨화학상을 받아 노벨상 2관왕이 됐다.
/1867년 화폐속의 인물 퀴리(폴란드 20000) 태어남 [Curie, Marie, 1867.11.7~1934.7.4]
프랑스의 물리학자·화학자.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물리학, 화학 /출생지 폴란드 바르샤바
주요수상 노벨물리학상(1903), 노벨화학상(1911)
폴란드의 바르샤바 출생. 결혼 전 이름은 Marja Skłodowska이다. 당시 폴란드는 분할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제정 러시아의 압정(壓政)을 겪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김나지움의 수학 및 물리학 교사였다. 10세 때 어머니를 잃고 17세 무렵부터 가정교사 등을 하면서 독학하였다. 1891년 파리의 소르본대학에 입학, J.H.푸앵카레, G.리프만 등의 강의를 들었으며, 수학·물리학을 전공하였다. /1895년 P.퀴리와 결혼 후 남편과 공동으로 연구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물리학에서는 새로운 사상(事象)이 잇달아 발견된 시기였는데, 뢴트겐의 X선 발견, H.베크렐의 우라늄 방사능 발견에 자극되어 퀴리 부부도 방사능 연구에 착수하였다. 먼저 베크렐의 추시부터 시작, 이때 방사능의 세기를 측정하는 데에 전기적 방법(피에르가 발견한 압전기의 이용)을 썼다. 그것은 방사선의 정량적 측정법으로서 베크렐의 사진법(寫眞法)보다 편리했다. 토륨도 우라늄과 마찬가지의 방사선을 방사한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방사능(放射能:radioactivity)’이라 불렀다. /또한 방사능이 원자 자체의 성질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러 가지 시료(試料)에 대하여 측정하던 중 우연히 우라늄광물 피치블렌드가 우라늄 자체보다도 강한 방사능을 보인다는 것을 관찰하고, 그 속에 미지(未知)의 강한 방사성 성분이 존재할 것이라고 추정, 이것의 추출을 시도했다. 보헤미아의 요아힘스탈에서 산출되는 피치블렌드에 대하여 방사능을 바탕으로 화학분석을 하여(방사화학분석법의 시초), 1898년 7월 폴로늄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그녀의 조국 폴란드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것이다. 이어 그 해 12월 라듐을 발견하였다. /이 두 원소는 방사성원소로서 발견된 최초의 것으로, 특히 라듐은 우라늄에 비하여 훨씬 강한 방사능을 가진다는 점에서 중요한 것이었다. 이 발견은 방사성물질에 대한 학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새 방사성원소를 탐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러한 업적으로 1903년 퀴리 부부는 베크렐과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피에르는 소르본대학 이학부(理學部) 교수, 마리는 그 실험실 주임이 되었다.
얼마 후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자, 이 후 단독으로 방사성물질을 계속 연구, 1907년 라듐 원자량의 보다 정밀한 측정에 성공하고, 1910년에 금속 라듐의 분리에도 성공하였다. 그 동안 남편의 후임으로 여성으로서 최초의 소르본대학 교수가 되었고, 라듐연구소 건립에도 노력하였다. 이것은 그 후 파스퇴르실험소와 퀴리실험소가 되었는데, 그녀는 퀴리실험소 소장으로서 프랑스의 과학 연구에 공헌하였다./1911년 라듐과 폴로늄 발견으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물리학자인 장녀 이렌은 마리의 실험조수로 있던 F.졸리오 퀴리와 결혼, 1935년 남편과 함께 인공방사능 발견의 공적으로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지 61년 만인 1995년 4월 20일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여성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역대 위인들이 안장되어 있는 파리 팡테옹 신전으로 이장되었다.
●레프 트로츠키 Leon Trotsky(1879.11.07~1940.08.20)
v트로츠키는 1917년 10월혁명의 지도자로 활약한 러시아의 공산주의자로 본명은 레프 다비도비치 브론슈타인이다.1898년 1월에 혁명활동을 한 혐의로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났지만 1902년 트로츠키라는 이름으로 위조된 여권을 가지고 탈출해 런던으로 갔다. 런던에서 레닌과 만나 러시아 사회민주당에 합류했지만 멘셰비키에 가담하여 레닌과 볼셰비키에 반대했다. 1905년 러시아로 돌아왔으나 혁명적인 파업운동과 차르 정부에 대항하는 여러 반란을 조직했다는 이유로 1906년 다시 투옥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주요 저서 <결과와 전망 Results and Prospects>을 쓰고 영구혁명론을 주장했다. 1907년 시베리아에서 도망쳐 빈에 정착했다.10월혁명 이후 레닌에 합류했고 1917~24년 소련 외무 및 군사 인민위원을 지냈지만 레닌이 죽은 뒤 일어난 권력투쟁 과정에서 요시프 스탈린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1929년 추방당했다. 그후 해외에서 반(反)스탈린 세력을 지도했으나 멕시코에서 스페인 공산당원 라몬 메르카데르에 의해 암살당했다.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 출생(1913.11.07)
1913년 11월 7일 알제리의 몽도비에서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가 태어났다.아버지는 알자스 태생의 궁핍한 노동자였고 어머니는 스페인계 후손이었다. 공립국민학교에서 만난 교사 루이 제르맹의 도움으로 1923년 알제 리세(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갔으며, 알제대학 재학 중에는 철학 교수 장 그르니에를 만나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30년대에 알제리의 젊은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중요한 인물로 주목받았으며 1934~35년 잠깐 알제리 공산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레지스탕스 기관지였던 일간지 <콩바 Combat>의 편집장으로서 큰 영향력을 누렸다. 1942년에 발표한 첫번째 단편소설 <이방인 L'Etranger>(1942)은 아랍인을 죽인 한 '아웃사이더'의 초상을 통해 20세기의 인간 소외를 탐구한 뛰어난 작품이다.그밖에도 <페스트 La Peste>(1947)·<전락 La Chute>(1956) 등의 소설과 평론 <시지프의 신화 Le Mythe de Sisyphe>·<반항적 인간 L'Homme revolte>(1951) 등이 유명하다. 1957년 44세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만 그후 3년이 채 안 되어서 교통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오늘의 역사 11월 7일]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 세상 떠남:
세계적인 소설가이자 문명 비평가, 사상가였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가 1910년 오늘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으로는 ‘전쟁과 평화’`‘부활’`‘참회록’ 등이 있다.
●러시아 '10월 혁명' 일어남(1917.11.07)
1917년 초 '2월 혁명'으로 303년간 황제가 통치하던 러시아 제정은 무너졌다. 이후 러시아는 자본가와 의회세력이 이끄는 임시정부와 노동자ㆍ병사들로 구성된 소비에트 세력으로 나뉘었다. 케렌스키가 이끄는 임시정부는 7월 볼셰비키 봉기와 8월 우파의 쿠데타를 어렵게 넘겼지만, 공산주의 혁명의 흐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11월 6일 케렌스키가 소비에트 군사위원회 회원들을 체포하려고 하자 병사와 노동자들은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이들은 역, 발전소, 전화국 등을 차지하고 혁명의 시작을 알렸다. 이날 밤 제2회 소비에트 대회가 열렸고 이튿날인 1917년 오늘 오전 10시 군사위원회는 소비에트 정권의 수립을 발표했다.이어 혁명군은 페트로그라드 시내를 점령하고 밤 9시35분 임시정부가 있던 동궁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세계 최초의 '노동자ㆍ농민 정부'의 탄생이었다. 10월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시 러시아에서 사용하던 달력으로 따지면 이날이 10월 25일이기 때문이다.
●[역사 속의 오늘] 러시아 10월 혁명(1917.11.7)
1917년 11월 7일(러시아 구력 10월 25일) 오전 10시, 트로츠키를 위원장으로 하는 볼셰비키 군사혁명위원회가 당시 러시아 수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됐음을 선언했다. 레닌이 망명지 스위스에서 귀국한 지 6개월여 만이었다./그해 2월 러시아는 혁명을 통해 303년간 황제가 통치하던 정치 체제가 이미 무너졌다. 이후 러시아는 지주와 자본가, 의회가 힘을 합친 임시정부와 노동자와 군인들로 구성된 소비에트로 대립하고 있었다. /권력을 잡고 있던 임시정부는 7월과 8월 두 차례 소비에트 세력의 봉기를 어렵게 막아냈지만 혁명의 흐름을 막을 수는 없었다./11월 6일 새벽2시, 임시정부 수상 케렌스키가 볼셰비키 신문 인쇄소를 봉쇄하자 트로츠키는 전 부대에 무장봉기를 명령했다. 이들은 역, 발전소, 전화국, 무기고, 국립은행 등을 점거하고 소비에트 정권의 탄생을 알렸다. 세계 최초로 노동자, 농민이 세운 정부였다. ‘10월 혁명’이라 부르는 이유는 당시 러시아가 사용하던 달력으로는 이날이 10월 25일이기 때문이다.
▶ 러시아 혁명 발발(1917)
20세기 세계사에 폭넓은 영향을 미친 러시아 혁명! 1905년부터 시작된 러시아 혁명이 불길이 1917년 오늘 절정에 이른다.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조직인 볼셰비키의 지도를 받은 러시아의 노동자와 병사들은 '평화, 토지, 빵'을 요구하며 페테르부르크의 궁전을 공격했다. 볼셰비키는 몇 달 전 짜르 체제가 붕괴된 뒤 들어선 커렌스키 임시정부를 무너뜨리고 권력장악에 성공한다. 볼셰비키의 지도자는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 레닌은 뛰어난 조직력과 지도력으로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켰다. 혁명임시정부인 소비에트 인민위원회의 의장으로 취임한 레닌! 밖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의 교전국이었던 독일에 대해 휴전을 선포하고 안으로는 대대적인 사회주의 개혁정책을 폈다. 레닌의 볼셰비키 정권은 혁명에 반대하는 백군과 내전을 치르는 등 혁명수행에 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제국주의 세계질서 속에서 식민지의 민족해방 운동을 부추기기도 했던 러시아 혁명! 결국 러시아 혁명의 성공은 20세기 공산권과 자본주의권의 대립이라는 세계의 큰 틀을 만들어 냈다.
▶ 한미 잉여농산물 도입 협정(1962)
1962년 오늘! 우리나라와 미국은 1963년도 미국 잉여농산물 도입 협정을 체결한다. 이 협정으로 우리나라는 보리와 옥수수 등 다섯 개 종목 5,432만 달러어치의 미국 잉여농산물을 도입하게 된다. 두 나라 대표는 1962년도의 두 나라 작황을 고려해 1963년도 도입물량을 추가로 더 결정하기로 했다. 경제기획원은 추가분까지 합치면 1963년도 미국 잉여농산물 도입규모는 약 8,772만 달러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미연합사령부 창설(1978.11.07)
1978년 11월 7일 한·미 양국은 제11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의 합의로 설치된 한미군사위원회의 전략지시에 의거해 한미연합사령부를 창설했다.1975년 국제연합(UN) 총회에서 UN군 사령부의 해체를 결의하자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한미연합사령부의 창설이 결정되었다. 이 기관의 설립으로 UN군 사령부가 존속되었으며, 한국군에 대한 미군의 지휘통제가 실질적으로 강화되었다. 1993년 11월 한·미 양국의 합의에 따라 한미연합사령부는 전시에만 한국군을 지휘하도록 변경되었다.한미연합사령부는 미국군 장성을 사령관으로, 한국군 장성을 부사령관으로 해 통합 참모진을 구성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 주한미군의 합법성을 보장받으며 '합의 의사록'에 따라 한국군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한미연합사령부의 주요 기능인 작전통제권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군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연합사령관의 승인을 반드시 얻어야 하지만 ① 외부의 적으로부터 현존하는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경우에는 승인을 얻지 않아도 무방하며, ② 일정 시간 내에 승인을 얻지 못할 경우 대통령 또는 다른 한국군 지휘관이 임의로 부대를 이동시킬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1983년 동아건설, 리비아 대수로 공사 따내
1983년 11월 7일, 동아건설이 단일공사로는 세계최대규모인 32억 9700만 달러의 대수로공사를 리비아에서 수주, 현지에서 계약을 체결했다. /대수로공사는 지름 4mㆍ총길이 1872km의 송수관을 묻어 하루 400만t의 물을 공급, 사막을 옥토로 바꾸기 위한 리비아의 야심찬 프로젝트였다. /2년5개월전 공사 정보를 사전에 귀띔받은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은 사내에 비밀전담반을 설치ㆍ운영하고 21차례나 해외출장을 다니며 직접 뛰었다. /통수식은 연인원 1100만명이 동원되고 550만대의 건설 중장비가 투입된 대역사 끝에 1991년 8월 28일 리비아의 벵가지에서 가졌다. 가다피는 이 공사를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격찬했다. 동아건설은 1989년 2차 공사까지 수주하는데 성공, 1996년 9월 1일에 2차 통수식을 가졌다.
▶ 망명 간첩, 소련에 재망명(1985)
1985년 오늘! 3개월 전 미국으로 망명했던 소련간첩 비탈리 요린체코가 소련으로 재망명하기 위해 미국을 떠났다. 소련 비밀 경찰, 즉 KGB의 고위 요원이었던 요린체코는 자신의 미국 망명은 미국의 납치극이었다고 주장했다. 미국과 소련은 요린체코의 망명이 서로 상대방의 조작극이라며 성명전을 벌이기도 했다.
▶ 나미비아 제헌의회 선거(1989)
1989년 오늘! 남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유엔의 감시아래 제헌의회선거가 실시된다. 나미비아 독립 정부의 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지배를 받아왔던 나미비아 국민들은 신성한 한 표를 정성껏 행사했다. 총선거 결과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 즉 SAF가 전체 일흔 한 석 가운데 과반수가 넘는 마흔 한 석을 확보한다. SAF의 셈 누조마 의장은 이듬해인 1990년 2월 독립 나미비아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셈 누조마 대통령은 3월 21일 나미비아의 완전 독립을 선포했다.
▶ 필리핀 태풍, 4천명 사망(1991)
태풍 셀마호가 1991년 오늘 필리핀 중부를 강타한다.집중호우를 동반한 태풍 셀마는 댐을 붕괴시켜 한 마을을 물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4천 여 명이 사망 또는 실종하고 20여 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한다.
재해대책본부는 피해지역의 교통과 통신시설이 대부분 파괴돼 구조활동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프라하의 봄'을 주도한 둡체크 사망(1992.11.07)
1968년 체코에서 `프라하의 봄`을 주도한 알렉산드르 두브체크가 1992년 11월 7일 숨졌다..1921년 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18세에 공산당에 입당한 뒤 2차대전 중엔 공산당의 나치 유격전에 참가, 두차례 부상하기도 했으며 1958년 소련공산당의 정치학교를 졸업하고 그 후 10년 뒤 체코 공산당의 제1인자가 됐다. 공산당 제1서기가 된 두브체크는 체코에서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접목시킨 '제3의 방법'을 모색했다.두브체크의 개혁의지는 마침내 '프라하의 봄'으로 알려진 자유화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소련이 주도한 바르샤바조약군은 체코를 전격 침공, '프라하의 봄'을 좌절시켰으며 그후 축출된 두브체크는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약20년동안 은둔생활을 했다. 그는 1989년 체코연방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하벨에게 패배한 뒤 상징적인 연방의회의장이 됐다.결국 두브체크의 '인간적 사회주의'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그의 세계에 대한 이상적이고 순수한 비전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다.
●1992년 `프라하의 봄`을 주도한 두브체크 사망
1968년 체코에서 `프라하의 봄`을 주도한 알렉산드르 두브체크가 1992년 11월 7일 숨졌다. 향년 70세였다. 두브체크의 일생은 불운의 이상과 실패한 열망으로 상징된다/1921년 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 18세에 공산당에 입당한 뒤 2차대전 중엔 공산당의 나치 유격전에 참가, 두차례 부상하기도 했으며 1958년 소련공산당의 정치학교를 졸업하고 그 후 10년 뒤 체코 공산당의 제1인자가 됐다. 공산당 제1서기가 된 두브체크는 체코에서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접목시킨 `제3의 방법`을 모색했다. /두브체크의 개혁의지는 마침내 `프라하의 봄`으로 알려진 자유화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소련이 주도한 바르샤바조약군은 체코를 전격 침공, `프라하의 봄`을 좌절시켰으며 그후 축출된 두브체크는 슬로바키아 수도 브라티슬라바에서 약20년동안 은둔생활을 했다. 그는 1989년 체코연방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으나 하벨에게 패배한 뒤 상징적인 연방의회의장이 됐다. /결국 두브체크의 `인간적 사회주의`는 실패하고 말았지만 그의 세계에 대한 이상적이고 순수한 비전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있다.
●대전세계박람회(대전엑스포) 폐막(1993.11.07)
1993년 오늘 대전엑스포(EXPO)가 폐막했다. 대전엑스포는 8월 7일부터 11월 7일까지 93일 동안 대전시에서 열린 국제박람회로 대전세계박람회라고도 한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처음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공인의 전문박람회였다.주제는 '새로운 도약의 길', 부제는 '전통기술과 현대과학의 조화'와 '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재활용'이었고 공식 마스코트는 '꿈돌이'였다. 주제의 의미는 그동안 우리나라가 이룩한 발전성과를 돌아봄으로써 국민의 역량을 모아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또 그동안 매우 빠르게 산업화를 이뤘지만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문제점들도 나타나고 있어 이를 극복하고 다가오는 21세기를 대비하자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개막 후 1400만 5808명(외국인 70여 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고 108개 국가와 33개 국제기구가 전시에 참여, 사상 최대 성공작의 하나로 평가받았다. 대전엑스포가 끝난 뒤 과학공원구역은 '과학은 내 친구'라는 주제의 체험과 실험을 통한 놀이공간으로 탈바꿈해 과학기술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참고> 세계 첫 항공화물 운송(1910.11.07)
http://www.donga.com/fbin/moeum?n=dstory$c_134&a=v&l=0&id=200711070121
<참고> 한미연합사령부 창설(1978.11.07)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48706&yy=2007
오늘의 관심뉴스도 연예인의 봉사활동에 관한 기사입니다. 강남엄마 따라잡기라는 TV 연속극 속에서 열연을 해주었던 정선경씨가 장애인을 위한 봉사활동에도 열정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정상아들과의 편견의 갭이 좁혀졌으면 좋겠고, 각 사회복지기관에서는 연예인들이 댜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개발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면 어떨까 생각해보며 아침을 엽니다.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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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경, '장애이해 UCC' 제작에 동참, 선행실천! [조이뉴스24 2007.11.06 10:54:26]<조이뉴스24>
탤런트 정선경이 장애이해 UCC제작에 참여, 선행을 실천했다.정선경은 지난 5일 오전 10시 고양가좌초등학교에서 열린 '장애이해 UCC' 제작에 참여했다. 이 UCC제작에는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와 국립특수교육원이 기획하고 경기도고양교육청이 지원한다.이 날 정선경은 학생들과 함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안내견에 대한 에티켓', '장애를 가진 친구와 즐겁게 수업하는 에티켓', '급식 중에 함께하는 에티켓', '학습도움반 소개' 등 총 5개의 교육용 UCC 제작에 참여했다.정선경은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연기지도도 하고 사인행사도 벌이는 등 시종일관 즐거운 분위기에서 촬영에 임했다.장애이해 UCC에 대한 소감에 대해 정선경은 "많은 어린이들이 이 UCC를 보고 장애를 가진 친구와 더 친해졌으면 좋겠다"면서 "선생님들과 초등학생들이 교육용으로 많이 봐주기 바란다"고 말했다.정선경은 '장애이해 UCC'를 통해 초등학생들에게 장애를 가진 친구와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는 방법을 알려줄 예정이다.장애인먼저실천 홍보대사인 정선경은 2002년부터 장애인먼저실천 홍보대사로 위촉되어 활동하고 있으며, 평소 어린이를 좋아하여 어린이관련 행사에는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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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속에 있는 것
만약 우리의 선한 것이 승리의 미덕이 아니라, 확인되지 않은 순진함이라면,
인격의 고귀함이 가능하겠는가? -해리 에머슨 포스딕
Consider how impossible nobility of character would be if our goodness were untried innocence
instead of victorious virtue. - Harry Emerson Fosdick
+ 커서 무엇이 될 것인지를 물어보면, 종종 우리는 무엇을 하느냐에 의해서 우리 자신을 한정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
+ When we ask what we're going to be when we grow up, we often define ourselves by what we do. But God says we should define ourselves by what we are. +
오늘의 암송구절 (베드로전서 2장 1-3절)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Therefore, rid yourselves of all malice and all deceit, hypocrisy, envy, and slander of every kind. Like newborn babies, crave pure spiritual milk, so that by it you may grow up in your salvation, now that you have tasted that the Lord is good.